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58화 (58/170)

제58화

현대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소에 거대한 동물을 마주하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동물원에 가지 않는 이상에는. 설령 동물원에 가도 가까운 거리에서 접하긴 어려웠다. 그 외에는 어쩌다가 사고로 동물이 동물원을 탈출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어?’

그래서 몇몇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한 여학생은 다리에서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흉포한 말이 내뿜는 아우라에 기가 눌린 것이다.

‘이대로 피하면 사고가 나겠는데.’

찰나의 시간.

은후가 주위를 쓱 살핀 후 손을 뻗었다. 말이 저리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큰 사고가 나는 걸 막는 게 우선이니.

“워워.”

은후가 내뿜은 마나가 말에게 투사되었다. 말이 크게 비명을 내지르며 앞발을 추켜세웠다.

“악!”

앞으로 닥칠 끔찍함에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비명을 내질렀다. 또 누군가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말은 은후 앞에서 앞발을 땅에 내려찍으며 투레질했다.

“착하지.”

은후가 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왜 그랬어?”

은후가 내뿜은 마나 덕분에 흥분이 다소 가라앉은 말이 투덜거렸다.

‘달리고 싶은데 달릴 수 없게 해.’

크게 콧김을 내뿜으며 자신의 불만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말. 그리고 뒤늦게 승마장 직원들이 달려왔다.

“학생, 괜찮아요?!”

은후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아니, 지금……!”

한 직원이 은후에게 소리 질렀다.

“학생, 지금 죽을 뻔한 건 알아요?!”

딱히. 만약 눈앞의 말이 그대로 돌진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귀찮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데.

원래 은후였다면 적당히 자신은 눈에 띄지 않게 사태를 수습했을 터였다. 애초에 말이 달려오는 걸 확인하자마자 손을 써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죽지 않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아니, 그게!”

“그보다 사과가 우선 아닐까요? 관리 소홀로 벌어진 일인데요”

“…….”

은후의 말에 직원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때 뒤에서 책임자로 보이는 한 중년 사내가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교수가 달려와 은후를 포함하여 피하지 못했던 학생의 안위를 살폈다.

“대체 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학생들에게도 정말 미안합니다.”

* * *

끔찍한 사고가 날 뻔한 일에 관하여 승마장의 책임자가 다시 한번 직접 고개를 숙이고 양해를 구했다. 단순한 사과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보상 또한 뒤따랐다.

원래 승마 교양 수업에 포함된 실습비를 면제해 주기로 한 것. 대신에 이 일을 비밀에 부쳐 달라고 부탁했다. 정확히 말해서 언론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겠으나, 다행스럽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게다가 학생들 처지에서 금액도 나름 컸기에 아무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나저나 은후 선배 봤어?”

“미쳤지. 말 진정시킨 게 은후 선배 맞지?”

그리고 은후가 활약한 여파로 학생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다. 누가 봐도 은후가 손을 뻗어 말을 진정시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냐?”

“근데 너무 태연하게 있었단 말이야. 은후 선배 표정, 안 봤냐?”

“봤지. 근데 놀라서 얼어붙은 거겠지.”

“손을 뻗어서 말을 멈춘 건?”

“우연의 일치.”

그렇지 않아도 잘생긴 얼굴 덕분에 알게 모르게 교양 수업에서도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은후였다. 거기에 말을 멈춘 건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자, 자! 잡담은 그만하고 다들 집중!”

그 와중에도 수업은 계속되었다. 사고가 날 뻔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사고가 나지는 않았으니까.

“혹시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수업 취소하고 싶은 사람은 이따가 따로 남아서 말하고! 그리고 오늘은 정말 간단한 실습만 하고 금방 마칠 테니까! 혹여라도 하기 싫으면 바로 말할 것!”

다만 은후만 예외로 수업에서 빠졌다. 아까 난동을 부렸던 말이 은후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교수와 은후에게 따로 양해를 구한 것이다.

“허, 거참, 신기하네, 신기해.”

“뭐가요?”

“스타더스트. 요놈 말이야. 우리도 다루기 힘든 말인데 학생 앞에선 순한 양이라도 된 것처럼 가만히 있으니.”

“이렇게 착한데요?”

달릴 때 뒤에서 흩뿌려지는 먼지가 별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한때는 해외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명마라고. 다만 안타깝게도 나이를 먹고 운동 능력이 떨어지며 은퇴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후 운이 나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세계 이곳저곳에 팔려 다니다가 국내로 들어온 건 재작년. 전주 승마장의 후원자 중 한 명이 씨수말로 데려왔다고 한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후원자가 스타더스트의 팬이었다는 점 등이 어우러져서 승마의 불모지인 대한민국 전주 승마장에 오기는 했지만,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너무 난폭해져서 말이야. 오늘처럼 마구간을 탈출한 일은 처음이었지만.”

은후가 속으로 쓰게 웃었다.

난폭해진 이유는 단순했다. 달리고 싶은데 달릴 수 없으니까. 구체적으로는 직원들이 스타더스트가 힘껏 달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간 달리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 정도로 스타더스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만약 달리다가 정말 죽기라도 한다면 관리 소홀로 문책을 받을 게 뻔하지 않은가.

은후에게만 온순해진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줘서였다. 더불어 은후의 마나가 스타더스트의 감정을 진정시키기도 했고.

“얘가 이러는 이유를 알겠네요.”

“정말?”

“네. 못 달리게 해서 그래요.”

“산책은 꼬박꼬박 시켜 주는데?”

“산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거죠.”

스타더스트의 전담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것 치고는 누구도 자기 등에 태우려고 하지 않았어. 자존심이 엄청나게 세서 말이야. 작년 즈음이던가.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좀 자유롭게 풀어 둔 적이 있었는데 혼자서 달리려고 하지도 않았고.”

스타더스트가 원하는 건 자신의 수준에 맞는 기수를 등에 태우고, 그리고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수준 떨어지는 사람은 태우기 싫다고 하네요.”

흔히 소설이나 영화에서 말이 주인을 가린다고 하는데, 그건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 정도로 말의 지능 수준은 뛰어났다.

경주에서 패배하면 눈물을 흘리거나, 또 승리하면 관중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한다거나. 카메라가 무엇인지 인식하여 사진을 찍음에 있어서 호불호까지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찍힌 사진을 바라보는 걸 싫어하는 말도 있었다.

“학생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자연스럽게요.”

“믿기 어려운데.”

“믿기 싫으시면 안 믿으셔도 되고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말을 업으로 삼았기에 말의 심리를 읽거나 공유한 사람이 있다는 걸 직원은 알았다. 다만 의문스러운 건 은후의 나이였다. 하다못해 말과 관련된 전공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하니.

그렇다고 아까 난폭해진 스타더스트가 은후 앞에서 멈췄던 점, 지금도 온순히 은후 옆에서 가만히 있는 걸 고려하면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저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요. 스타더스트도 진정이 된 것 같고요.”

“어어, 그래. 고마웠어요, 학생.”

은후가 직원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등을 돌렸다. 그때 스타더스트가 투레질했다.

가지 말라고.

자신과 함께 달려 달라고.

스타더스트가 본능적으로 은후가 뛰어난 기수임을 알아본 것이다. 물론 그건 현대에서 요구하는 기수와 다른 점이 있었다. 은후의 말타기 실력은 진짜 실전에서 써먹는 것들이었으니까.

‘쯧.’

애처로운, 말 스타더스트의 울음소리.

죽기 적전에 시원하게, 뛰어난 이와 함께 있는 힘껏 달리고 싶다는 소망. 은후가 그래서 마나로 감정을 전달하여 물었다.

‘진짜로 그렇게 달리고 싶어? 달리는 와중에 죽더라도?’

스타더스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타더스트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건 죽기 전의 소원이었다. 은후가 잠시 고민하다 마나로 의지를 전달했다.

‘조만간 다시 올게. 그때 한번 신나게 같이 달리자. 몸 관리 잘하고 있어. 사고 치지 말고 직원 말 잘 따르고.’

스타더스트가 물었다.

진짜냐고.

은후가 대답했다.

진짜라고.

이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 들어주기 어려운 소원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었으니. 죽기 직전 말의 소원이라니 가능하면 들어주고 싶었다.

* * *

며칠 후, 친구 이하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 전주에 놀러 가도 될까?

“언제?”

- 내일?

“상관없어.”

이하연이 전주로 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숨 돌리고 싶어서.

그리고 은후를 만나고 싶어서.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호감.

게다가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이래 마음을 제대로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친구가 없었다. 가까운 친구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 시기에 인터넷 방송은 아직 일반인들에게 거리가 먼 단어였다.

더불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인지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악플에 관련된 스트레스는 물론. 또 언뜻 그냥 보기에는 꽤나 방송이 쉬워 보여서.

‘돈 참 쉽게 벌어서 부럽다고 했던가?’

그런 말까지 들었다.

나름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그 이후 이하연은 그 친구와 멀어졌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 절대로 방송과 관련된 하소연을 하지 않았다.

‘은후는 그러지 않았는데.’

해 보지 않은 일임에도 은후는 방송을 절대로 쉽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직접 방송하는 자신보다 더 자세히 아는 것 같기도 했다. 뼈와 살이 되는 조언도 많이 해 주었고.

‘그렇다고 너무 투덜거리지는 말아야지.’

한동안 방송에만 열중하다 보니 지치긴 지쳤나 보다. 이하연은 스스로 자신에 관한 돌이켜 보며 전주역에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내 전주역에 도착했을 때.

“왔어?”

“어.”

마중 나온 은후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처럼 웃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만든 미소와는 달랐다. 방송하면서 우는소리를 할 수는 없으니까 계속 웃으려고 노력했는데. 이하연 스스로도 그 점을 깨달았다.

‘아.’

웃음에도 종류가 있구나.

뭔가 새삼스러웠다.

“뭐 힘든 일 있었나 봐?”

“아니, 어. 응. 그냥 좀.”

이하연이 애매하게 웃었다. 한숨 돌리고 싶기도 했지만 하소연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은후를 바라보니 굳이 우울한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갑자기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웃는 게 힘들어 보여서. 그나저나 기분 전환 좀 하고 싶다며?”

“응.”

“승마장 갈래?”

“웬 승마장?”

은후가 말 스타더스트와 며칠 전 약속했던 바를 언급했다.

“게다가 말 타는 건 기분 전환도 좀 될 거야.”

“나, 한 번도 안 타 봤는데.”

“그럼 이번에 한번 해 봐.”

“그럴까……?”

이하연이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말과 약속이라. 말과 그런 약속도 할 수 있나 싶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싶기도 했다. 은후가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니까. 그리고 또 이런 거짓말이라면 괜찮았다. 자신이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고 해서 승마장에 데려가려는 핑계일 터인데.

“그런데 전주에 승마장이 있었구나.”

“응. 꽤 역사가 깊다고 하더라.”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은후와 이하연은 승마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승마장에 은후가 도착하자 직원들이 반겨 주었다. 며칠 전 사건 때문에 은후를 알아본 것이다.

“은후 학생, 어서 와요.”

이하연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승마가 취미였어?”

“취미는 아닌데.”

은후가 애매하게 웃었다.

‘직원들이 저렇게 반겨 줄 정도면 많이 왔다는 거 아닌가?’

이하연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물었다.

“직원들 대부분이 너 알아보는데?”

“그게 말이지.”

은후가 며칠 전 있었던 사건을 언급하며 스타더스트가 있는 마구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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