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56화 (56/170)

제56화

초보자가 숯을 다루는 일은 꽤 어려웠다. 백탄의 경우엔 토치로 불을 붙이는 것조차 난이도가 제법 있어서 초보자라면 실패하기도 쉬웠고 불을 붙인 이후에도 문제였다.

평소에 사용하는 가스레인지와 다르게 세기를 조절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는 은후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냥 마나를 이용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저건 잘못하면 타겠는걸.’

은후가 고기를 먹으며 틈틈이 불 세기에 신경 썼다.

“고기 진짜 잘 굽네?”

“헤헤, 내가 재능이 좀 있나 봐.”

개구리의 칭찬에 수호령이 으스댔다. 사실은 은후가 알게 모르게 불 세기를 조절한 덕분이었고, 개구리도 그걸 눈치챈 것 같았지만 눈치 없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어.’

‘왠지 힘이 더 나는 것 같다니까.’

언제부터인가 친구 먹기로 한 서연후와 성호가 연신 고기를 먹었다.

‘맛있을 수밖에 없지.’

은후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픽 웃었다.

저번에 먹었던 김밥보다 좀 더 신경을 썼으니.

‘기타라도 치기는…… 좀 그런가.’

‘왜?’

‘요새는 혼자 치면 재미가 없어서.’

‘재미?’

‘어, 이번에 확실히 느꼈는데 은후 씨 몸을 빌려서 치는 기타 소리가 훨씬 더 좋다고 해야 하나? 감정 이입이 쉽다고 해야 하나.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그건 은후가 성호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계약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하물며 은후는 마법사였다. 성호가 은후의 몸을 빌리는 순간 은후의 마나를 느끼고 공유할 수 있었으니. 물론 은후의 허락 없이 멋대로 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타 치는 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여간 혼자 치면 좀 그래.’

‘재미가 없다?’

‘아, 맞아. 재미가 없어. 그렇다고 매번 내킬 때마다 몸을 빌려 달라고 하긴 그렇잖아?’

‘하기야.’

‘사람이, 아니, 귀신인가? 그래도 도리가 있어야지. 먹고 있는 사람 건드리는 거 아니잖아.’

성호는 은후를 슬쩍 살피며 서연후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다 들리는데.’

그렇게 속삭여도.

게다가 예전에도 그랬으나 계약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좀 더 확실하게 성호의 본심을 은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좀 안쓰럽기도 하지만 기분이 좋기도 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제어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게다가 만약 성호가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상황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기타를 치겠다고 요구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기분이 나쁠 터였고.

‘관계라는 게 그렇지.’

성호가 귀신이 된 과정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감안은 하겠지만. 다만 예상보다 훨씬 더 자신의 감정을 잘 제어하고 있다는 게 좀 의문이었을 뿐.

‘왜일까.’

이세계에서 계약했던 정령들을 떠올려 보면.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당장 이 자리에서 마법 연구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즐거운 자리가 아니던가.

‘그나저나 수호령은 먹는 것보다 고기 굽는 데 재미를 붙인 것 같네.’

처음엔 열심히 먹는가 싶더니 중간부터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고기를 굽느라 바빠 보였다. 그래서 은후가 수호령에게 다가가 물었다.

“재밌어?”

“응!”

은후의 질문에 수호령이 해맑게 답했다.

“그래도 먹어 가면서 해야지.”

“충분히 먹었어! 은후야말로 더 먹어야지.”

수호령이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뭔가 내가 굽는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좋아 가지구.”

“그래?”

“응응, 그러니까 은후도 얼른.”

“알았어.”

수호령이 은후가 가져온 일회용 접시에 고기를 담아서 주었다. 은후는 거기서 고기 한 점을 먹은 후 수호령에게 쌈을 싸서 먹여 줬다.

“맛있지?”

수호령이 입을 오물오물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먹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이 흘렀다.

‘갈비는 나중에 먹을까.’

지금까지 먹은 건 삼겹살. 하지만 굳이 갈비까지 꺼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다들 만족하게 먹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양도 일부러 넉넉하게 사 왔고.

‘갈비 양까지 생각하면 좀 과한 감이 없잖아 있으니까.’

게다가 그냥 단순한 고기도 아니었고 마나까지 듬뿍 넣었으니 정령들에게는 포만감 또한 크게 느껴졌을 터였다. 은후는 마나를 이용해 뒷정리한 후 쓰지 않은 숯을 꺼냈다.

“숯은 왜?”

수호령의 질문에 은후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불멍이라도 할까 싶어서.”

“불멍?”

“불을 바라보면서 멍 때린다는 의미야.”

“응?”

불을 피우고 그걸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고 휴식을 취하는 행위. 미래에 캠핑을 즐기는 이들이 만들어 낸 신조어로써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말이었기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원래는 나무를 이용해서 해야겠지만.

‘뭐 어때.’

숯도 나쁘지 않았다.

불 세기를 조절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실험할 것도 있고.’

고기를 구울 때 썼던 건 검탄. 그리고 지금 쓰려는 숯은 백탄이었다.

“어때?”

“으음. 잘 모르겠어.”

“그래?”

“응. 그래도 왠지 모르게 좋은 것 같기두 하고. 아까는 고기 굽느라 불을 잘 보지는 못했으니까.”

은후가 피식 웃은 후 테테로 나무와 비슷하다고 판단한 신갈나무로 만든 숯을 조금 떼어 냈다. 그리고 마나로 갈아서 마나를 주입한 뒤 타오르고 있는 불에 뿌렸다.

“어?”

단순한 숯 향이 변했다.

“꽃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나만 그래?”

“나도 그래.”

수호령의 질문에 개구리가 답했다.

‘저도요.’

‘나도.’

성호와 서연후도.

‘은후 씨가 뭔가 한 모양인데요?’

모두가 은후를 바라봤다. 은후는 맞다는 의미에서 미소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 진짜 좋다.”

개구리가 감탄한 표정으로 멍하니 눈을 감았다.

테테로 나무의 또 다른 활용법이었다. 고온에서 가공한 뒤 잘게 가루로 만들어 불과 접목시키면 기분 좋은 향이 나게 되는데, 마법사나 정령에게 안정감을 선사했다.

향의 경우엔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는데, 은후가 선택한 건 이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하위나스라는 꽃 냄새였다.

“그런데 처음 맡아 보는 향인데. 내가 어지간한 꽃은 다 알고 있는데 말이야. 어떤 꽃 향이야?”

개구리의 질문에 은후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 세상에는 없는 꽃.”

“없는?”

“아마도.”

“거참. 비밀이 많은 친구란 말이야.”

개구리는 은후의 말에 굳이 묻지 않고 타오르는 불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모두가 그랬다. 은후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조금 전까지 떠들썩했다는 게 거짓말처럼 고요함이 가득 찼다.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되었는데.’

은후가 호수에 있는 천도복숭아 나무에 시선을 던졌다. 이윽고 천도복숭아 나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도복숭아 나무가 품고 있는 마나에 변화가 생긴 것.

‘역시.’

은후가 굳이 테테로 나무로 추정되는 신갈나무 숯가루를 불에 뿌려 하위나스 꽃내음을 풍기게 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천도복숭아 나무의 성장 촉진을 위함이었다.

‘신갈나무는 테테로 나무라고 봐도 무방하겠어.’

이 과정을 통해 은후는 신갈나무가 테테로 나무와 동일한 성질을 가졌음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게 제일 빠른 방법이었다. 단순히 연구를 통해서 알고자 했다면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료를 구할 수 없으니까.’

이세계에서는 정말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현대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위험을 무릅쓰고 실험했다. 혹시라도 아니라면, 그리고 부작용이나 기타 다른 이상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투자할 시간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해.’

어느 정도는 수습할 자신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엔 지금의 천도복숭아 나무를 날려 버리고 새로 심으면 되니까.

‘내 수중에 있는 씨앗은 둘.’

한마디로 보험이 있었다.

게다가 아직 천도복숭아 나무를 심은 지 얼마 안 된 상황.

‘좀 더 시간이 흘렀으면 아까워서라도 못 했을 거야.’

그리고.

‘다들 좋아할 테니까.’

당장 주위 모두의 표정에 편안함이 가득했으니.

이윽고 천도복숭아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느리기는 하지만 눈으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속도로.

‘응?’

다만 은후도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좀 더 자랄 거로 예상된 천도복숭아 나무의 성장이 멈추고 가지 하나에서 꽃이 피어난 것이다. 보통 나무라면 그럴 수 없었다. 다 자라지도 않은 나무에서 활짝 핀 꽃이라니. 하물며 복숭아나무 꽃이 피는 시기는 대개 4월이었다.

‘하.’

거참.

‘하기야 보통 나무는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더욱 흥미로웠고.

‘저 꽃도 따로 연구해야겠는데.’

하지만 그보다 지금은.

은후가 박수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다들 저기 봐 볼래?”

“응?”

은후가 손가락으로 천도복숭아 나무를 가리켰다.

“꽃이 폈다!”

수호령이 소리쳤다. 그리고 쪼르르 폭포 앞까지 달려가 이리저리 천도복숭아 나무에 핀 꽃을 살폈다. 성호와 서연후가 그 뒤를 쫓았다. 다만 개구리는 너무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꼬, 꽃이 폈네?”

“폈지.”

“은후, 네가 뭔가 한 거지?”

“그렇지?”

“아니.”

개구리가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상해?”

“이상하지. 너무 이상해. 게다가 저 천도복숭아 나무 심은 지 100년도 안 지났잖아?”

“100년?”

1,000년이나 살아서 그런지 시간 스케일이 달랐다.

“내가 힘이 있었을 때 꽃 피우게 하려고 진짜 노력했단 말이야.”

“그런데?”

“140년 정도 걸렸어.”

“기네.”

“길지. 그런데, 아니, 그게 중요한 건 아닌가.”

개구리가 은후를 쓱 바라본 후 표정을 풀며 말했다.

“저 천도복숭아 나무 말이야, 예전에 말했던 낙원을 만들기 위해서 쓸 거지?”

“그렇지.”

“그럼 됐어.”

“뭔가 다르게 쓸 수도 있다는 뉘앙스인데.”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이건 나중에 기회 되면 이야기할게.”

개구리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뭔가 사연이 있나 보군.’

개구리가 인간의 형태에서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폴짝폴짝 뛰어서 벽진 폭포 아래에 형성된 호수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리고 천도복숭아 나무 가까이 다가가 피어난 꽃을 올려다보았다. 은후도 가까이 다가가 꽃을 바라봤다.

‘예쁘긴 하네.’

은후가 따로 알아본 보통 복숭아나무 꽃과 비슷했다. 다만 다른 점 또한 명확했다. 마나를 적잖이 머금고 있어서, 그래서 그 여파로 꽃이 반짝였던 것.

게다가 그 반짝임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피어오르는 불과 만나 사방으로 산란했다. 그래서 은은한 느낌을 풍겼다. 은후도 그냥 생각을 비우고 그 풍취를 수호령 옆에서 즐기기 시작했다.

‘좋네.’

좋아.

‘아.’

충분히 기뻤다.

수호령을 비롯한 낙원의 주민들과 함께 이런 시간을 갖는 게.

‘내가 자아낸 광경에서.’

흐뭇하기도 했고, 이것이 행복인가 싶기도 했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인데.

‘내가 수호령을.’

그리고 개구리를, 성호를, 서연후를 신경 쓴 이유가 그래서였나.

‘행복해지고 싶어서.’

은후가 속으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미소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