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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55화 (55/170)

제55화

다음 날 오후.

은후는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남부 시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고사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함이었다. 근처 마트에서 팔지 않은 각종 수산물이나 버섯류 등등.

‘어떻게 갈까?’

은후가 있는 자취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 그렇다고 도보로 이동하기엔 상당히 멀었다.

‘걸어가면 한 시간 정도였던가.’

잠깐 고민하다가 은후는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은폐 마법을 펼치고 날아가도 금방이겠지만.

‘그리고 좀 더 편하겠지만.’

시내버스는 안 탄 지 진짜 오래되었으니까.

그냥 왠지 모르게 그러고 싶었다.

‘언제부터였더라.’

과거.

이세계에 가기 전 어느 정도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후 자동차를 구매한 다음에, 그 이후로 버스를 탈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고속버스라면 모를까, 시내버스는 더더욱.

‘카드가 분명히 여기 서랍에.’

찾았다.

다소 빛이 바랜 티머니 카드였다.

‘어머니가 사 주셨지.’

그래서 소중하게 오랫동안 썼던 기억이 났다.

‘술 마시고 잃어버렸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은후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이윽고 창문 너머 배경이 휙휙 지나가기 시작했다. 익숙하면서도 너무 오랜만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멍하네.’

은후가 차창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른한 눈빛에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때문일까.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이내 버스 안이 조용해졌다. 이후 버스 정류소에서 탄 손님들 또한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버스에 적잖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조용하기 짝이 없었기에. 은후가 버스에서 내린 뒤에야 그 고요함이 깨졌다.

* * *

버스에서 내린 은후가 기지개를 켰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마지막으로 왔던 건 순대국밥을 먹기 위해서였던 것 같은데.

‘일단 고사리부터 살까.’

은후가 시장을 둘러보며 고사리를 파는 곳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뭐 드릴까요?”

“고사리 좀 주시겠어요? 말린 거로요.”

“얼마나 드릴까?”

“국산이랑 중국산 각 1킬로그램씩요.”

“잠시만 기다려요.”

은후는 고사리를 산 뒤 적당히 걷다가 마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약하게 만든 뒤 고사리를 아티팩트 리어카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존재감을 드러낸 뒤 눈에 띄는 식자재는 모두 사들였다.

‘고사리는 좀 더 대량으로 구해야겠는데.’

그건 나중에 전주 유지인 이창석에게 부탁할까 싶었다. 술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면 넉넉히 구해 줄 터였다.

‘바다에도 한번 가 봐야겠고.’

물고기를 사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바다에도 연구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그건 마법사로서의 직감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네.”

은후가 시장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버섯 전문점이었다. 식용 버섯을 다양하게 다루는 것 같아 보였다.

“응? 버섯을 종류별로 조금씩 다 달라고?”

“네.”

은후의 요청에 가게를 운영하는 노인은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군말 없이 버섯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부 챙기면 가격이 좀 나갈 틴디.”

“돈은 넉넉하게 가져 왔어요.”

버섯까지 산 뒤에 시장을 빠져나오던 은후의 눈에 정육점 간판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고기나 구워 먹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깻잎과 상추도 샀고, 또 식용 버섯도 다양하게 샀으니 고기만 사면 되었다.

‘수호령은 고기 구워 먹은 적 없을 테니까.’

개구리나 다른 귀신들은 모르겠지만.

좋아, 그렇게 하자.

식자재의 경우에는 은후가 직접 먹어 봐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식사는 거의 덕진공원에서 하게 되네.’

최근 들어 그렇게 되었다. 특히 아침이나 점심은 몰라도 저녁은 더더욱. 굳이 노력하거나 의식한 건 아닌데도. 그래서였을까. 수호령이 어제저녁에는 은후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부담 안 돼?’

‘무슨 부담?’

‘음식 말이야. 솔직히 우리들은 음식 안 먹어도 되잖아.’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돈이 필요하잖아? 음식 사는 데.’

‘그렇지?’

‘그래서. 좀 미안하구, 부담될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자주 사 오는 것 같아서.’

은후는 수호령에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며 피식 웃었다.

* * *

은후는 자취방 근처 마트에 들렀다. 그릴과 집게 및 숯을 사기 위함이었다.

‘숯도 분명히 팔았던 것 같은데.’

개인이 운영하는 그리 크지 않은 마트임에도 말이다. 이내 은후는 마트에서 숯을 발견하고 헛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구석에 박혀 있는 비싼 숯이 너무 눈에 익었던 것이다. 은후는 설마 싶어서 숯에 손을 대고 마나를 움직여 확인했다.

‘테테로 나무가 맞는 것 같은데?’

고온에서 태우면 마나를 집약하는 성질을 띠게 되고, 마법사가 직접 섭취하면 마나 밀도가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나무였다.

‘한계는 명확하지만.’

아주 미미하달까. 한계도 명확했고.

일정 이상이 되면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야.’

게다가 이세계에서 정말 흔한 나무였다. 그래서 어떤 마법사도 꼭 한 번은 먹기 마련이었다. 또 마법 실험이나 연구를 할 때 대부분 꼭 들어가는 재료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숯은 아니네.’

마트에서 파는 숯의 종류는 총 셋.

백탄과 검탄 그리고 최고급 백탄.

은후가 테테로 나무로 봤던 게 최고급 백탄이었다.

‘20만 원.’

다른 숯의 가격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비쌌다. 재고도 소량이었다. 은후는 일단 백탄과 검탄을 1킬로그램씩, 그리고 최고급 백탄을 모조리 집었다.

“여기 계산이요.”

“응?”

마침 카운터를 보고 있던 사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 고기 구워 먹으려고 숯 사는 거지?”

“네.”

“백탄이랑 검탄 차이는 알고 있고?”

“아니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검탄은 바로 기름을 흡수해서 불이 파바박 붙거든. 불붙으면서 터지면서 튀는 것도 심하고. 그래서 고기 굽는 난도가 좀 있어. 개인적으로 고기 맛은 검탄으로 굽는 게 더 낫다고 보는데, 그래도 처음이면 백탄 쓰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최고급 백탄은 사라고 둔 게 아닌데.”

“네?”

사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격은 제대로 본 거 맞지? 2만 원 아니야.”

“네, 20만 원이라고 쓰여 있던데요?”

“그러니까. 양도 얼마 안 되는데 그걸 누가 20만 원이나 주고 사겠어? 300그램 정도인가, 하여간 그건 그냥 개인적으로 자랑하려고 놓아 뒀던 거야. 우리 형님이 숯 관련 업계에서 종사하시거든.”

우리나라에서 숯 재료 중 가장 좋은 나무는 신갈나무라고 한다.

“개중에서도 바위 틈새에서 자란 신갈나무가 최고라고 해. 그런데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고, 그렇게까지 따지면서 숯을 만들지는 않거든.”

예전에 한때 초고급화 전략으로 만들어 팔려고 시도해 봤으나 높은 가격 때문에 거의 팔리지 않아서 실패했다.

“그렇다고 가격을 낮추자니 업체에서도 손해라서 때려치웠다고 하는데. 여튼 그 최고급 백탄은 우리 형님이 준 선물인데 쓰자니 아깝고 해서 그냥 전시해 둔 거야, 그거는. 팔 생각 안 하고서.”

“방금 말씀하신 바위 틈새에서 자란 신갈나무로 만든 숯인가 보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일반 백탄만 계산해 주면 되지?”

“아니요. 전부 사겠습니다.”

“응? 방금 설명 못 들었어?”

“들었어요.”

거참. 마트 사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은후를 바라봤다.

“20만 원 주고 정말 사게?”

“네.”

은후가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해 주세요.”

“허.”

마트 사장이 몇 번이나 은후에게 다시 물은 후 결국 카드를 긁었다.

* * *

은후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덕진공원으로 향했다.

‘신갈나무라고 했지.’

덕진공원에 들르기 전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결과, 중부지방 산지에 정말 흔하다고 했다.

‘이거로 걱정 하나는 덜었네.’

마나를 집약시킬 수 있는 재료가 필요했는데.

예기치 못한 기분 좋은 우연이었다.

‘아무래도 이세계에서 말하는 테테로 나무가 우리나라에선 신갈나무인가 본데.’

자세한 건 진짜 신갈나무를 보고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어도 상관없고.’

마나를 집약시킬 수 있는 재료임은 틀림없으니, 그거면 되었다.

설령 테테로 나무와 신갈나무가 동일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물론 완벽하게 같지 않다면 혹시 모르니까 좀 더 이런저런 실험을 해서 정확한 성분과 특성을 알아야겠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즐겁게 감수할 수 있었다.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어?”

덕진공원에 도착했을 때, 은후를 마중 나온 수호령이 신기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처럼 은후가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띤 건 처음이라서.

“응.”

“무슨 일?”

“정말 우연히 좋은 재료를 구했거든.”

“재료?”

“복숭아나무에 힘이 되는 재료랄까.”

“오! 정말?”

은후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파티야. 그것도 고기 파티. 직접 숯불에 구울 거고.”

“고기 파티!”

고기라는 말에 수호령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것도 직접 불에 구워서!’

언젠가 꼭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어 보고 싶었는데.

신이 난 수호령이 벽진 폭포로 가는 길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외쳤다.

“은후가 오늘 저녁은 고기 파티래!”

벽진 폭포에서 몸을 담그고 느긋하게 쉬고 있던 개구리가 그 외침에 인간으로 변신한 뒤 은후에게 다가와 물었다.

“소?”

“소는 안 사 왔는데. 소도 사 올걸 그랬나.”

“그럼 돼지?”

“그렇지. 삼겹살이랑 갈비.”

“음음, 돼지도 훌륭하지. 소가 더 좋지만.”

은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소고기 먹으면 되겠네.”

“그럼 좋지.”

은후가 마나를 움직여 흙을 이용해 간이 화로와 테이블을 만들었다. 그리고 간이화로 안에 숯을 넣고 불을 붙이며 고기 구울 준비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개구리가 고기를 먹어도 되나?’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호가 개구리에게 물었다.

“안 될 게 뭐 있어.”

‘그래?’

“보통 개구리는 안 되겠지만 난 보통 개구리가 아니니까.”

‘하기야, 탈이 날 거면 진작 났겠어. 치킨이나 피자 같은 것도 보통 개구리는 못 먹겠지.’

“지금 나 걱정해 준 거?”

성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개구리가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한쪽에서는 성호와 개구리가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선 서연후가 시바견 루비와 놀아 주고 있었다. 은후와 수호령은 고기를 구울 준비를 마쳤고 말이다.

“나, 나! 내가 고기 구워 볼래!”

“조심해.”

은후가 집게를 수호령에게 넘겼다. 수호령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벽진 폭포 근처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은후는 그 냄새가 일정 거리 이상 퍼지지 못하도록 마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벽진 폭포를 피해 가게끔 조치를 취했다. 다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덕진공원에 방문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민폐라면 민폐였다.

‘그렇다고 아직은 수호령을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는 없으니.’

다행히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마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최고급 백탄의 재료가 되었다던 신갈나무 덕분에 말이다.

“이제 먹어도 되려나?”

“괜찮을 것 같아. 잘 구웠네.”

“헤헤.”

“자르는 건 내가 할게.”

“응.”

은후는 리어카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일회용 접시를 꺼낸 뒤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고기를 마나로 일으킨 바람으로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다들 먹…… 응?”

수호령이 소리치려다가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시바견 루비를 발견하고 은후에게 물었다.

“루비한테도 줘도 돼?”

“너무 많이만 안 주면.”

돼지고기는 지방 함유량이 많았기에 적당히 양을 조절해서 줘야 했다. 그리고 그냥 고기가 아닌 양념을 발랐다든가 양파나 마늘 등을 같이 구웠을 땐 주면 안 됐다. 이와 같은 점만 고려한다면 개에게 돼지고기를 주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응응, 알았어.”

돼지고기 냄새와 함께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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