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은후가 만든 김밥을 모두 맛있게 먹었다.
“치킨보다 맛있는 것 같아!”
수호령의 감탄과 칭찬에 개구리가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요리에 꿀 발랐나?”
‘꿀을 발랐으면 달았겠죠.’
“비유잖아, 비유. 하여간 연후 동생은 매사 진지하다니까.”
‘동생이요?’
“그럼, 내 나이가 몇인데.”
개구리가 김밥 한 조각을 더 집으며 말했다.
“천 살 넘었으니 사실상 내가 제일 형이지.”
‘그런데 은후 씨에게는 동생이라고 안 하지 않습니까.’
개구리가 슬그머니 은후 눈치를 본 다음 입을 열었다.
“에헤이,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하여간 김밥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래? 김밥이 원래 이렇게 맛있는 게 아니야?”
수호령의 질문에 개구리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마다 입맛의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은 치킨이나 피자를 더 맛있다고 할걸?”
“그럼 은후가 엄청 요리를 잘하나 보다. 이거 은후가 직접 만든 거라고 했어.”
“정말?”
“응응.”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제가 솜씨 좀 부렸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먹으면 그냥 조금 더 맛있다는 수준에 그칠 거고요.”
마나를 듬뿍 담으며 식자재의 본연의 맛을 끌어올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음식에 마나를 넣었다는 것.
‘인간이 아닌 이들은 마나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
하물며 미각은 더더욱.
이세계에서도 그랬었다.
‘그나저나 오늘 대학교 개강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습니다.”
서연후와 은후의 대화에 수호령이 슬쩍 끼어들며 물었다.
“대학교? 그, 아이들이 나중에 훌쩍 크면 간다는 곳이지?”
“맞아.”
“재밌는 곳이라고 하던데.”
“나름대로는?”
재밌는 곳이라.
‘잘 모르겠네.’
대학 생활을 반추해 보면 재밌는 일이 없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추억도 꽤 있으니까. 하지만 재밌는 곳이라고 한다면.
‘글쎄.’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은후에게는 아니었다.
“근처에 전북대학교 있잖아. 거기 맞지? 은후가 다니는 곳.”
“응. 맞아.”
“한번…… 으응, 아니야.”
“가 보고 싶어? 솔직하게.”
수호령이 김밥을 한 조각 집어 오물거리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같이 놀러 가자. 약속할게. 그리 머지않은 시간에 같이 갈 수 있도록 할 테니까.”
“정말?”
“그럼.”
“으응. 기다릴게.”
은후가 벽진 폭포 앞에 심어진 천도복숭아 나무를 바라봤다.
‘천도복숭아 나무가 좀 더 자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될 터.
사실 지금도 비가 온다는 조건이 있어야 하겠지만, 개구리의 도움을 받아 갈 수는 있었다. 다만 그러지 않은 까닭은 공원의 아이들 때문에. 혹여라도 수호령이 자리를 비울 때 불상사가 생길까 봐 그러한 것.
하지만 천도복숭아 나무가 좀 더 자란다면. 그러면 천도복숭아 나무에서 비롯되는 힘이 수호령에게 자유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덕진공원에서 떨어져도.’
덕진공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간섭할 수 있도록.
아이에 한정하겠지만.
‘그리고 먼 훗날.’
대한민국 전역을 마음 편히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수호령이 천도복숭아 나무의 힘을 직접 이용할 수 있어야 할 테고.’
그러기 위해서 은후는 수호령과 천도복숭아 나무에게 같은 시간에 이름을 지어 주며 서로를 연결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재료를 구해야겠어. 연구에도 좀 더 힘을 써야겠고. 그나저나 이름은 어떻게 한다.’
정령에게 있어서 이름은 존재의 본질을 규정했다. 그렇기에 은후는 천도복숭아 나무에는 수호라는 이름을 붙일 예정이었다. 다만 덕진공원 수호령의 이름은 아직도 고민이었다.
‘참 어렵네.’
게다가 이름을 지어 주는 순간 지금보다 더욱 짙은 인연으로 연결되는 셈이니. 그건 일종의 계약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정령 사이에.
그 계약의 내용은 마법사와 정령이 합의하기 나름이었다. 그리고 어떤 계약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악용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노예나 다름없는 계약도.’
아니, 노예 그 이하로도.
‘그 때문에 정령과 인간 마법사와 전쟁도 벌어졌으니.’
은후는 직접 겪지 못했으나 이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실화였다. 물론 수호령과 그런 노예 계약 따위 할 생각 없었다. 챙겨 주면 더 챙겨 줬지.
* * *
피크닉 이후 은후는 다시 대학교로 향했다. 오전에 있었던 교양 수업 승마와 다르게 전공 과목은 얼굴을 비춰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오후 1시. 과목명은 응용사회 심리학.
가는 길에는 기타 치는 귀신 성호와 함께했다. 그 이유는 성호가 수호령 몰래 이런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대학 생활이 부럽다고. 한번 은후와 함께 간접 경험이라도 해 보고 싶다고 말이다.
‘저는 못 가 본 곳이라서요.’
그러면서 캠퍼스 커플이라든가 멋진 동아리 생활, 잔디밭에서 흥겨운 술자리 등을 말했다. 대학을 가기 전 흔히 사람들이 상상하는 로망. 하지만 그 로망은 막상 대학교에 가면 대개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런 로망을 실제로 실천하고 겪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극소수일 터.
‘하지만 굳이.’
성호에게 말해 실망이란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제일 먼저 가 보고 싶은 곳이 어디예요?”
‘도서관?’
“도서관이요?”
‘네. 언제였더라, 영화에서 대학교 커플이 데이트하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첫 수업이라 금방 끝날 테니 바로 가 보죠.”
그렇게 성호와 대화하면서 은후는 수업받을 교실에 도착했다.
203호.
은후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잠깐 시선이 모였다. 그리고 몇몇은 아닌 척하면서 계속 은후를 흘끔거렸고, 누구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은후는 그 시선들을 무시하며 자연스레 창가 중간 자리에 앉았다. 그때 처음부터 계속해서 은후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은후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이은후?”
“어, 동하 맞지?”
“어어, 맞아. 오랜만이다?”
“그러게.”
안면이 있는 동기. 하지만 그다지 친하지는 않은.
‘나름 친했던 것 같은데.’
1학년 무렵에는.
하지만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제대 이후 학교에 다니며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굳이 교류하지 않았다.
“할 말 있으면 하고.”
“아니, 그냥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그랬지.”
“그러냐.”
“어.”
서동하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했다. 그 와중에 교수님이 오셨고 서동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다들 방학 잘 보냈나요?”
교수 강장원. 전공은 사회심리학.
학부생은 물론 대학원생 사이에서도 인품 좋기로 유명했다.
‘실제로도 그러셨지.’
지도 교수였기에 사적으로 몇 번 만남을 가지고 이런저런 상담을 했을 때 정말로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었다. 게다가 리포트를 제출하면 학생마다 의미 있는 코멘트를 남기셨고.
‘언제는 복붙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니라고 밝혀졌다.
“출석은 굳이 부를 필요가 없겠군요. 숫자를 세어 보니 전원 참석한 것 같으니 말이죠. 그나저나 다 아는 얼굴인데 굳이 제 소개는…… 음?”
강장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거기 학생?”
“저 말씀입니까?”
“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이은후입니다.”
“아, 이거 참. 너무 오랜만에 봐서 누군가 했습니다. 명색이 지도 교수라는 사람이 담당 학생 얼굴도 몰라봤네요. 미안합니다.”
강장원이 은후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사담은 여기까지 하고 간단한 설명 후 수업 끝내겠습니다. 첫날이니까요. 혹시 첫날부터 수업하고 싶으신 분 있으신가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이후 강장원은 본 수업의 목적과 개요에 관해 짧게 말한 후 수업을 마쳤다.
‘재밌네요.’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성호가 은후에게 말했다. 은후는 주위 시선을 고려하여 마나로 의지를 전달했다.
‘재밌어요?’
‘네.’
하기야.
‘나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지만.’
성호에게는 아닐 테니까.
‘뭐랄까, 기대하던 상상이 현실로 눈앞에 펼쳐진 것 같달까요?’
은후가 속으로 쓰게 웃었다.
‘나중에 실망 안 했으면 좋겠는데.’
도서관으로 가는 길, 성호가 콧노래를 불렀다.
이윽고 도서관에 도착했다.
‘오래되어 보이네요.’
‘실제로 오래되었죠.’
제2대 중앙도서관으로 완공된 건 1983년. 몇 년 후 중앙도서관이 이전하면서 제2도서관으로 사용하게 된다.
‘들어갈까요?’
낡은 건물과 어울리는 단정한 분위기가 도서관에는 가득했다. 한마디로 관리가 잘된 느낌이랄까. 그리고 은후의 예상대로 도서관은 매우 한적했다.
‘사람이 잘 안 보이네요?’
‘학기 초니까요. 보통 학생이 도서관에 오는 경우는 시험 기간에 공부한다거나, 혹은 과제를 위한 자료를 찾는다거나 그럴 때뿐이거든요.’
‘아하, 그럼 지금 있는 학생들은 엄청 부지런하다는 거네요?’
‘그렇죠.’
이왕 도서관에 온 김에 은후는 이번 학기에 작성할 논문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일전 상담하면서 결심했던 게임과 심리를 관련지은 논문. 학부 졸업 논문이기는 하지만 기왕이면 확실하게 잘 쓰고 싶었으니까.
‘응?’
그렇게 은후가 자료를 찾으려고 책장을 살피던 도중.
‘커플?’
커플로 보이는 두 남녀가 책장 사이에서 입을 맞추는 장면을 목격했다. 물론 진한 딥 키스는 아니고 정말 잠깐, 살짝만 대었다 떨어지는 버드 키스였다. 이후 무엇이 좋은지 서로 숨을 죽여 웃다가 주위를 살피고 화들짝 놀랐다. 은후를 발견한 것이다. 민망했는지 그 커플은 자리를 바로 피했다.
‘좋네요.’
‘그러게요.’
은후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뭔가 갑자기 기타를 치고 싶어졌는데요.’
‘그럼 치면 되죠.’
‘괜찮을까요? 너무 민폐가 아닌가 싶기도 해서요.’
‘물론 괜찮습니다. 만약 민폐가 된다거나 곤란한 상황이면 망설이지 않고 말씀드릴 테니까요.’
애초에 은후는 성호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이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에 관해 성호에게 다시 한번 확실히 말했다. 너무 미안해 하지 말라고.
‘오히려 예상했던 것보다 얌전한 편이니.’
성호가 음악에 관련된 집념을 생각하면 말이다.
‘관객은요?’
‘은후 씨면 괜찮아요.’
은후가 고개를 끄덕이고 도서관을 벗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살핀 후 은폐 마법을 펼친 다음 도서관 꼭대기 난간에 자리 잡았다.
‘방음 마법도 써야지.’
구체적으로 사람이 들을 수 없도록.
거기까지 한 후 은후는 성호에게 몸을 빌려 줬다. 이윽고 은후를 제외한 사람은 들을 수 없는 기타 소리가 도서관 꼭대기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주제는 대학교의 낭만과 설렘.
‘그리고 풋풋한 사랑인가.’
참 따뜻한 노래였다.
그래서였을까.
은후 주위에 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흔히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새라면 참새나 비둘기 정도를 떠올리지만, 의외로 많은 새가 살고 있었다. 특히 나름대로 자연이 조성된 대학교였기에 더더욱.
‘덕진공원도 새들에겐 정말 가까운 곳이니.’
박새류, 직박구리, 까치, 멧비둘기 등, 정말 다양한 새가 은후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성호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에 이끌려서.
‘그건 아마도.’
은후가 새들이 몰려든 이유에 관해 마법적으로 분석하려다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냥 온전히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 분석은 지금 연주를 즐기고 난 뒤에 해도 충분하니까.
‘좋네.’
햇빛에 구름이 잔뜩 걸쳐 있어서 도서관 건물 꼭대기 난간도 제법 아늑한 느낌이었다. 마치 지금 성호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처럼.
아늑한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