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서연후의 장례식장엔 꽤 많은 사람이 찾았다. 그 이유는 서연후의 가족이 최대한 사람들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연후 가는 길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죽은 이에게는 그리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장례식이란 절차는 기본적으로 그렇다.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한.’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이었으니.
그러니 핑계였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우울한 마음을 덜고자 하는 것이 본질.
물론 가족과 친척 사이에서도 반대가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물며 그 원인은 어머니의 도박이 원인이었다. 어디에 가서 하소연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원망할 사람은 서연후의 어머니였기에. 그래서 2일장에 사람도 웬만해선 부르지 말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아니요. 그래서 꼭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모으고 싶어요.’
서연후의 형 서연석이 강하게 밀어붙였다.
‘어차피 기사로 나가서 알 사람은 전부 다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어머니가 이번 계기로 도박을 끊었으면 좋겠어요.’
서연석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연후가 바랐던 거예요. 그러니 널리 알려야죠. 제 얼굴에 침 뱉기지만요.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어머니가 정말로 반성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서연석은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 초등학교 동창들까지 찾았다. 최대한 연락을 돌리고 직접 얼굴을 맞대며 부고장을 손수 돌렸다.
‘이번에 내 동생이 죽었거든. 가는 길에 한 사람이라도 많았으면 해서 그러는데, 시간 괜찮으면 부의금은 안 내도 좋으니까 밥 한 끼 먹고 갔으면 좋겠다.’
10년도 훌쩍 넘어 이제는 끊어진 인연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연석의 진심은 통했다. 정말 피치 못한 사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전부 다 잠깐이라도 들렀던 것이다.
그런 서연석의 노력, 그리고 일가친척 모두가 서연석의 주장에 동의했기에 최대한 사람을 모았고. 그래서 장례식장은 북적북적했다. 다만 분위기는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정신 줄을 붙잡고 있는 서연석을 제외하면 나머지 가족들은 울고 울고 계속 울어 넋을 놓아 버린 상태였다. 게다가 이미 아는 사람은 전부 다 알았다, 서연후가 왜 죽었는지. 자연스레 뒷말도 나왔다.
“이제 서른 좀 넘었다지?”
“쯧쯧.”
“엄마 도박 빚 때문에 죽었다던데.”
“그놈의 핏줄이 뭔지.”
상을 치르는 와중에도 몇몇 기자들이 찾았다.
“저어,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바쁩니다.”
요 며칠 사이 기자들에게 시달린 유가족과 친척들은 아예 핸드폰을 꺼 놓거나 무음으로 돌려놓았다. 그랬더니 기자들은 장례식장까지 방문했다.
“저기, 기자님.”
“네?”
“사람이세요? 지금 여기 장례식장이잖아요. 사람이 죽었잖아요.”
“…….”
“인터뷰도 몇 차례 했는데 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그러세요? 마음대로 기사를 내보내는 거? 저희 인터뷰 적당히 자르고 짜깁기해서 자극적으로 편집하는 거? 좋다 이거예요.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와서 지X이세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지X? 아니, 그리고 저희 쪽이랑은 인터뷰 안 하셨…….”
서연석이 기자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그럼 지X이 아니고 뭐예요? 아, 이것도 기사로 내보내시려나? 가족의 죽음으로 미쳐 버린 유가족들이 기자에게 욕했다고? 뭐, 앞뒤 정황 다 자르고 다짜고짜 욕한 것처럼 말이에요.”
장례식장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기자에게 쏠렸다. 아무리 기자여도 다수의 시선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기자가 이도 저도 못 하고 당황하자, 서연석이 한숨을 폭 내쉬며 상황을 수습했다.
“인터뷰는 이따 제가 해 드릴 테니까 밥이나 한 끼 하세요. 다른 가족 건드리지 말고요.”
상황이 정말 거지 같지만, 그래도 기자 나부랭이여도 기자는 기자. 더는 외부에 구설수를 만들기도 좀 그랬다. 더불어 동생이 가는 길 아니던가.
“……알겠습니다.”
기자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조용히 구석으로 자리 잡았다.
‘응?’
그때 은후가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기타?’
장례식장에서 웬 기타.
은후가 그런 기자를 살짝 노려본 후 구석에서 기타 치는 귀신 성호에게 마나로 의지를 전달했다.
‘그럼 부탁할게요.’
‘네.’
기타 치는 귀신 성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은후의 손가락이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다.
* * *
음악은 인류 역사와 참 오랫동안 함께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종류는 다양했고 여러 수단으로 쓰였다. 개중 하나가 바로 미사곡이었다.
죽은 이에게 안식을, 남은 이에게 위로를.
정식 명칭은 위령 미사곡, 다른 말로는 레퀴엠.
라틴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들어 본 말.
흔히 진혼곡이라고 번역된다.
하지만 기타 치는 귀신 성호는 진혼곡에 관해 잘 몰랐다. 정확히는 제대로 공부하거나 확실하게 알고 있는 악보가 없었던 것. 그러나 언젠가 이런 감정을 담아 곡을 만든 적이 있었다.
‘내가 사라진다면 슬퍼 울어 줄 이가 누가 있을까.’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루비는 슬퍼해 주려나.’
아마 그렇겠지. 울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이 된 이후 성호는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 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버티겠지만 그래 봐야 몇 년, 길어야 10년 남짓이라고 여겼다.
‘그 전에 루비가 먼저 죽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먼저 사라질 수도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참 슬프겠어.’
그 감정을 담아 만든 곡.
딱히 가사는 붙이지 않았다.
그저.
그저.
오롯하게 음률로만.
그 감정을 가사로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
‘조금은 서연후 씨가 부럽네.’
이토록 슬퍼해 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내가 서연후 씨였다면.’
남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슬퍼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슬퍼하기는 해야겠지만. 그런 이중적인 감정에 성호는 속으로 쓰게 웃으며 기타를 계속 튕겼다. 은후의 몸을 빌려서.
* * *
장례식장에 어느 순간부터 울린 기타 소리. 그리고 이내 기타의 음률을 제외한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기타에서 뿜어지는 소리에 모두가 감정을 이입당한 탓이다.
사실 음악이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대단하고 실력 좋고 유명한 이가 연주한다고 할지라도 누군가는 곡에 몰입하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과 가치관이 다르니까. 또 그날그날 기분과 처해 있는 상황이 달랐다. 물론 친인의 죽음이라는 면에 있어서 여기 있는 모든 이가 공감대를 이룰 수도 있겠으나 어지간한 연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서연후? 이름도 솔직히 가물가물한데. 초등학교 동창이기는 해도 그게 언제 적 일이야? 그래도 직접 얼굴까지 비추고 부탁했으니 잠깐 들르기는 할까. 장례식장이 그리 먼 곳도 아니까, 뭐.’
본디 모르는 사람의 죽음은 무덤덤한 법이었다. 사람은 자기 손톱에 찔린 가시의 상처가 모르는 사람의 죽음보다 아프기 마련이었으니. 하물며 정말 끊어지기 쉬운 사소한 인연으로 참여한 자리였다.
‘진짜. 거지 같네. 이래서 인터뷰 오기 싫었는데.’
‘다음 달에 빠져나갈 대출금이 얼마더라?’
‘여기 육개장 맛 괜찮네.’
‘연석 선배 장례식 끝나면 바로 출근하시려나? 안 하면 내가 뺑이 쳐야 하는데, 씁.’
최대한 사람을 모았기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이들보다 아닌 사람이 더 많은 장례식장이었다. 하지만 이내 성호의 연주에 슬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끕.”
만약 내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가까운 사이의 누군가가 죽었다면.
성호의 연주를 들으며 자연스레 그런 상황을 떠올렸다. 그랬다면 이런 슬픔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울었다. 누군가는 허탈하게 웃었다. 누군가는 슬픔을 외면하고 싶어 음식에 집중했다.
‘내 동생이 죽었다면.’
한 조문객이 생각했다.
‘내 아내가 죽었을 때 이랬던 것 같은데.’
또 어떤 조문객이 생각했다.
죽음. 슬픔.
사람이라면 언젠가 거치지 않을 수 없는 단어. 실제로 가까운 이를 잃은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저 뉴스나 인터넷으로만 접한 죽음만 겪은 사람들. 하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 죽음과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잘해 드려야지.’
그래서 누군가는 이런 생각도 했다.
‘저번에 동생이랑 싸웠는데, 먼저 연락해 볼까?’
저마다 죽음과 슬픔에 푹 빠졌다.
하지만 성호의 연주에는 위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가까운 이의,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슬퍼해야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그러니 너무 죽음과 슬픔에 매몰되지 말라고.
‘자신을 망치는 슬픔을 죽은 이가 바라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 메시지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 * *
10분 남짓한 연주였다.
연주가 끝난 후 은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조용히 장례식장을 벗어나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가기 전에 하연이에게 인사는 하고 갈까.’
은후가 이하연을 찾았다.
“야.”
“어? 어어.”
“괜찮아?”
“아니, 어, 응. 괜찮아.”
이하연이 우물쭈물했다.
왜 그런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은후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나 이만 가려고.”
“벌써?”
“해야 할 건 다 한 것 같으니까.”
“으응.”
당장에 유가족 중 서연후를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람은 없는 것 같고, 어느 정도 기타로 정서적인 케어도 해 줬으니, 당장은 뭘 더 할 필요가 없었다.
‘서연후의 어머니는.’
일단 좀 더 지켜보다 나중에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지만.
‘그런데 또 도박을 하려나?’
모르겠다.
흔히 도박에 중독된 뇌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그러니까 도박을 다시 할 가능성도 크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뭐.’
다시 빠진다면 그때는 확실하게 마법으로 조치하면 되니까. 그렇게 은후가 생각한 뒤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때 몇몇 사람이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하지?’
대부분 아직도 성호의 연주에서 비롯된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몇몇은 은후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다.
‘박수를 쳐야 하나?’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은후가 장례식장을 막 빠져나갔을 때.
“저기요.”
“네?”
밥을 먹다 만 기자가 서연석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뭐가요?”
“다짜고짜 찾아와서 인터뷰 요청한 거 말입니다. 인간으로서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정말로 죄송합니다.”
“…….”
방금 기타 연주 때문에 기자는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역지사지.
만약 내 친지의 죽음에 자신처럼 기자들이 찾아와서 소란을 피운다면 어땠을까.
“인터뷰는 안 해 주셔도 됩니다. 따로 기사도 안 내보낼 거고요. 아까 말씀하셨던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였으면 그 상황에서 더 심한 욕설이 나왔을 것 같네요.”
그리고.
‘앞으로 착하게……까지는 모르겠다.’
기사를 쓰고 취재를 하는 데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지키자.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기자들에게 많이 시달렸을 줄 압니다. 그에 관해 제가 사과드릴게요. 제가 딱히 기자들을 대표하는 건 아닙니다만, 같은 종사자로서 정말 저희가 못났구나 싶네요. 괜히 기레기라 사람들이 욕하는 게 아니죠.”
“……사과하셨으니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조심해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자가 쓰게 웃으며 장례식장을 나가려고 했을 때. 서연석이 기자를 붙잡았다.
“그래도 식사는 마저 다 하고 가세요. 그리고 인터뷰…… 해 드릴게요.”
“네?”
“대신에 짜깁기 같은 거로 편집해서 내보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기사 나간 거 좀 봤는데 너무 편향적이랄까. 잘못된 내용도 많고요.”
“그런가요?”
“네.”
그날 밤, 인터넷에 기사 하나가 실렸다.
‘최근 한강에서 벌어진 극단적인 선택에 관하여 유가족들이 말하는 진실.’
서연석의 부탁대로 별다른 편집 없는 인터뷰 전문이 포함된 기사였다. 그리고 그 내용에는 기자들의 괴롭힘에 관해서도 확실히 언급되어 있었다. 기사를 올린 기자가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무릅썼던 것이다.
* * *
그 시각 덕진공원.
“오. 이거 되게 재밌다!”
수호령과 서연후는 보드게임 젠가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