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50화 (50/170)

제50화

한강은 평소와 다르게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서연후의 자살을 목격한 지나가던 아저씨가 119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이 한강에 뛰어들었다는 진술에 119가 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1년 기준으로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인원은 총 396명. 개중 실제 사망자는 87명이었다. 이런 불의의 사고를 막기 위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한강 수난 구조대였다.

“찾았습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오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구조대는 최선을 다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찾아야 생존 확률이 올라갈 테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연후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시체가 되 버린 서연후의 몸뚱이를 확인한 구조대 반장이 혀를 찼다.

“쯧.”

이럴 때마다 힘이 쭉 빠졌다.

무엇이 그리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는데.’

하기야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나 다름없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구조대 반장은 굳이 그 사연을 알고 싶지 않았다. 이처럼 자살을 하는 이들 중 안타까운 과거를 지니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니.

‘괜히 우울할 뿐이지.’

반장이 다시 한번 혀를 찬 후 옆에 대원에게 말했다.

“담배 있지?”

“반장님, 담배 끊으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내가 화병에 먼저 죽겠다. 한 개비만 줘 봐.”

“에휴.”

우산을 쓰고 간신히 서로 불을 붙였다.

“신원 확인은 됐어?”

“네, 품속에서 신분증이 발견되었거든요.”

“그래. 경찰에 잘 인계하고.”

“네.”

수난 구조대의 역할은 사체를 건져서 인양하는 것까지였다. 이후의 일은 한강 경찰대의 몫이었다. 심지어 구조대는 빤히 시체라고 보여도 죽었다는 판정조차 할 수 없었다.

그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의사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래서 구조대는 유가족과 만날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서연후는 죽기 직전 형과 동생에게 문자로 짧은 유서를 남겼다.

[나 마포 대교에서 죽으려고. 유서는 형이랑 동생 메일로도 보내고 내 자취방에 인쇄도 해서 뒀어. 혹시 몰라서 품에도 지퍼백에 넣어 뒀으니까, 자세한 건 읽어 보고. 그리고 고맙고 미안했어.]

몇 년 전부터, 은연중에 자신의 죽음을 계속해서 가족들에게 암시했다. 하지만 이처럼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 문자를 받은 즉시 서연후의 형과 동생은 경찰에게 신고했다. 그리고 마포대교로 바로 달려왔다.

마포대교에서 구급차가 있는 곳은 유일했고 그리 찾기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서연후의 형 서연석과 여동생 서영은은 금방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오빠 살아 있죠?!”

순간적으로 근처 대원들 모두가 당황했다.

“저기요!”

그리고 침묵했다.

실제 현장에서 이처럼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구조대가 조우하는 건 모두 처음이었다. 꽤 오랜 시간 구조대를 지휘한 반장조차도.

다급함, 초조함, 불안감.

그 외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서영은의 외침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죄송합니다.”

결국 구조대의 책임자인 반장이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너무 늦었습니다.”

두 남매가 무너졌다.

이윽고 도착한 서연후의 부모 또한.

네 가족이 오열했다.

대원들이 시체로 다가가려는 가족들을 최대한 말렸다. 익사한 시체의 모습은 절대로 좋은 모습이 아니기에. 그래서 유가족들이 더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저어, 반장님.”

“왜?”

“고인의 품에서 유서가 발견되었는데요.”

“유서?”

“네. 지퍼백에 넣어 두셨더라고요. 어떻게 할까요?”

반장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내용은 확인했어?”

“앞에 조금만요. 보고 나서 유서인 줄 알았고요.”

“유가족인 것도 추정이잖아. 신원 확인도 거의 확실하기는 하지만 안 되었고. 혹시 저분들이 유가족이 아닐 수도…… 하.”

반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

“네.”

그 광경을 모습을 숨긴 채 은후가 잠자코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내가 개입할 건 없나.’

자살 유족.

남은 이들은 대개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꽤 높은 확률로 죽은 이를 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고. 하지만 서연후의 유가족이 당장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경황이 없어서 그러겠지.’

그럴 결심을 하는 것도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였다.

‘꽤 높은 확률로.’

은후가 배운 바에 따르면 그랬다.

‘처음엔 부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너무 슬퍼서 우울해 하고.’

왜 말리지 못했나.

좀 더 신경 쓰지 못했나.

그런 죄책감과 함께 꼭 죽었어야 했냐는 자살자를 향한 원망 등,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감정이 깊어진 유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당장 내가 마나로 감정적인 부분을 케어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아니었다.

적어도 은후의 생각은 그랬다.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도 인간 개개인의 권리였으니까.

‘물론 어느 정도 케어는 해 줘야지.’

최소한 자살은 하지 못하게.

그리고 어머니가 도박을 끊을 수 있게.

‘당장은 아닌 것 같네.’

은후가 등을 돌렸다.

* * *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 그리고 개구리와 은후는 한강을 통해 다시 덕진공원 호수로 건너왔다. 물론 막 귀신이 된 서연후까지도.

“왔다!”

덕진공원의 수호령이 쪼르르 달려왔다.

“많이 기다렸어?”

“으으응. 조금? 그래도 괜찮았어. 여기 성호도 있고, 또 루비도 있었으니까.”

수호령이 은후와 함께 온 이들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다들 안녕!”

으레 처음 만나면 나누는 인사가 오고 갔다.

“그쪽이 은후 선생이 말하던 수호령인가 보구만?”

“응. 도깨비 아저씨지?”

“아저씨?”

“아니야?”

도깨비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저씨 맞지. 아저씨, 아저씨라고.”

“옆에는 구미호 아줌마?”

아줌마라는 말에 구미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임자 화났어?”

“화 안 났, 거든요.”

“흐흐.”

“여보?”

도깨비가 움찔했다.

“으응, 아줌마가 싫으면 누나라고 부를까?”

외견상으로는 누나라고 불러도 되겠지만, 구미호도 그건 차마 양심에 찔려 이렇게 말했다.

“이모라고 부르렴.”

“그럼 도깨비 삼촌이야?”

“카하하하하! 삼촌 좋지! 아저씨보다 낫구먼!”

“헤헤.”

은후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거기 귀신 씨는 누구야? 못 보던 얼굴인데.”

“새로운 주민?”

“주민?”

“자세한 건 좀 이따가 설명해 줄게.”

수호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우리 뭐 해?”

“파티.”

“파티!”

“오!”

수호령과 개구리가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아까도 파티를 하긴 했지만.’

인간처럼 배가 부르다고 뭘 못 먹는 건 아니니, 못 할 것도 없었다. 그 대화에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가 눈치껏 움직였다.

“거기, 꼬마.”

“삼촌, 왜?”

“내 신기한 거 보여 줄까?”

“응!”

도깨비가 씩 웃은 후 자신의 방망이를 들었다. 그리고 땅을 꽝 내리쳤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간이 포장마차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모습이 꽤 특이했다. 일종의 이동형 선술집이라고 해야 할까.

“오오오오오오!”

수호령이 깜짝 놀라 외쳤다. 그 감탄에 도깨비가 마음에 든다는 듯 씩 웃었고, 구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차 안쪽으로 이동했다.

“이모!”

“왜 불렀니?”

“맛있는 거!”

“돈은 있고?”

“어어, 돈 내야 해?”

구미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응?”

그 광경에 도깨비가 혀를 찼다.

“쯧쯧, 애를 왜 놀려?”

“내가 언제요?”

“방금.”

“귀엽잖아요.”

“그거야 그런데.”

그 대화에 수호령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나…… 어, 귀여워?”

그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내 성호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좋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비는 이곳에 있는 이들을 전부 비껴가고 있었다. 개구리가 힘을 쓴 탓이다. 그 때문에 모두가 편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이모!”

“응?”

“나, 나, 나도 술 마셔 보면 안 돼?”

“어?”

“나도 마셔 보고 싶은데 은후가 맨날 안 된다고 해.”

그 말에 구미호가 은후를 바라봤다. 은후가 조그맣게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더 크면 마시렴.”

“나는 다 컸는데.”

“아직 애잖니?”

“나 애 아닌데.”

“대신에 내가 맛있는 음료를 줄게.”

구미호가 부드럽게 웃으며 식혜를 내왔다.

“식혜는 마셔 본 적 있어?”

“아니. 식혜가 뭐야?”

구미호가 수호령에게 식혜에 관해 설명했다. 도깨비와 서연후는 뭔가 죽이 맞았는지 서로 대작하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호는 홀로 자작하며 기타를 쳤고, 시바견 루비는 피곤했는지 성호 옆에서 코까지 골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좋네.’

정말로 좋은 날이었다.

‘다만 음기는 어떻게 좀 해야겠는걸.’

수호령이나 개구리만 있다면 모르겠다. 폐지 줍는 노인이나 우산 요괴도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다. 하지만 이제 귀신이 둘이나 이곳에 계속 머무를 예정이었다.

자연히 따라오는 귀신의 존재감,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기운. 결국 귀신은 사람들의 상상과 믿음에 기반하는 이들이었기에 따라오는 게 음기였다.

‘아직은 크게 문제가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분명히 뭔가 문제가 생길 터.

다행히 그 해결책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 바로 천도복숭아 씨앗이었다. 은후가 연구해 본 바, 천도복숭아 나무가 제대로 자라기 위한 양분은 바로 음기였다.

개구리가 몇 번이나 자신의 거처에 씨앗을 심었음에도 나무가 제대로 크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양분으로 흡수할 음기가 모자랐으니까.

‘어디가 좋을까?’

몇 군데 장소는 점 찍어 뒀지만.

‘고민이네.’

은후가 주위에 마나를 퍼트렸다.

‘역시 여기가 제일 좋으려나.’

덕진공원에서도 비교적 음기가 가득한 곳.

벽진 폭포.

덕진공원 외곽을 산책하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조그마한 폭포였다. 그리고 그 폭포 바로 아래에 조그마한 호수가 있었다. 은후는 그곳에 천도복숭아 씨앗을 심을 생각이었다.

웬 나무를 호수에 심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은후가 천도복숭아 씨앗을 연구한 결과가 그랬다. 개구리의 증언도 그랬고 말이다. 오히려 보통 땅에서는 거의 자라날 수 없었다고.

‘딱 지금이 좋겠어.’

예상했던 시간이 되었다.

씨앗을 언제 심느냐, 또한 중요한 부분이었으니. 게다가 애초에 벽진 폭포에 씨앗을 심을 생각했기에 은후 일행이 자리 잡은 곳도 폭포 바로 옆이었다.

“어디 가?!”

은후가 등을 돌려 폭포로 발걸음을 옮기자 수호령이 외쳤다. 은후가 폭포 아래 호수로 걸어가며 말했다.

“멀리 안 가.”

“나도 같이……!”

은후가 수호령에게 고개를 저으며 가만히 있으라 손짓했다. 그리고 리어카에서 씨앗을 꺼내 호수에 떨어뜨리며 마나를 움직였다. 호수 아래에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후우.”

은후가 크게 숨을 내뱉은 후 마나를 움직였다.

방대한 마나였다.

‘자연의 마나.’

그리고 감정의 마나.

두 마나가 적절히 섞이며 천도복숭아 씨앗에 스며들었다. 이윽고 환한 빛이 호수에서 퍼져 나왔다. 이내 천도복숭아 씨앗이 싹을 틔웠다.

‘집중하자.’

은후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천도복숭아 나무가 음기를 주 양분으로 한다지만, 양기 또한 필요했다. 그 비율이 중요했다. 천도복숭아 씨앗의 관점에서 은후가 불어넣는 자연의 마나는 양기였고, 귀신으로부터 비롯된 감정 마나는 음기였으니.

‘예상과 오차가 조금 있네.’

천도복숭아 나무가 자라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이윽고, 천천히, 조금씩, 천도복숭아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은후 외 모두가 집중하며 바라봤다.

신기한 감정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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