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48화 (48/170)

제48화

물을 매개로 공간을 잇는다.

그게 개구리가 발휘한 능력의 본질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일종의 워프 게이트라고 볼 수 있으나, 작동 원리나 힘이 작동하는 이치는 전혀 달랐다.

‘꼭 엘프들이 사용하는 숲의 길과 닮았네.’

엘프는 숲과 숲을 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통로는 오로지 엘프 혹은 엘프가 허락한 존재만이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인간이 지배하던 대륙에서 엘프는 멸종하지 않을 수 있었다.

‘쯧.’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찼다.

개구리가 사용한 방법에서는 크게 뭔가 얻을 건 없었기에. 이 역시 인간이 사역할 수 없는 원리와 이치가 담겨 있는 듯했다.

‘뭔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은후는 하나 계획을 하고 있었다.

워프 게이트 설치.

용산역의 술집과 덕진공원 사이에 반영구적으로 공간을 뚫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워프 게이트는커녕 단순한 워프라도, 공간을 잇는 건 힘든 일이었다.

‘워프라면 어떻게든 일시적으로 몇 번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게이트를 설치하는 데는 재료가 필요했으니까. 다만 현대에선 필요한 재료를 대다수 얻을 수 없었다. 현대에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세계에서 정말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오크의 피조차 그러했다. 그래서 은후의 연구 중 하나는 바로 대체 재료였다. 예컨대 고블린의 이빨 대신에 현대에서 구할 수 있는 무언가로.

‘나 참.’

이동하는 시간, 영원과도 같은 찰나.

은후가 쓰게 웃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연구 중점이 워프 게이트와 같은 명확한 목적성을 띠기 시작했으니.

‘왜일까.’

그저 호기심에 이것저것 손을 대었는데.

그런데.

‘그래.’

개구리가 말했다. 괴력난신을 도와 달라고.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은후뿐이라며. 은후는 생각해 보겠다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런 일도 괜찮겠다 싶어서 그러자고 마음먹었다.

‘원래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려고 했는데.’

적당히 돈을 벌고, 효도하고, 그냥 하고 싶은 마법 연구를 하고.

그렇게 적당히 살다가 죽으려고 했다.

하지만 만남이 있었다.

폐지 줍는 노인을 시작으로 공원의 수호령을, 우산 요괴를, 개구리를, 구미호와 도깨비 부부를, 그 외에도 저마다 각기 사연을 가진 귀신들을, 그러한 만남이 은후의 마음을 움직였다.

‘덕진공원이 좋겠지.’

갈 곳을 잃은, 사라지려는 정령의 낙원이 될 곳은.

* * *

한강의 깊은 아래 어딘가, 은후와 개구리가 나타났다.

‘올라갈까?’

‘좋아.’

은후와 개구리가 물길을 거슬렀다.

‘응?’

그때, 은후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렸다.

‘사람?’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알겠다.

‘죽었군.’

시체였다. 서른 남짓의 청년으로 보이는.

무엇이 그렇게 사무쳤는지 귀신이 된 것 같았다. 다만 머지않아 곧 사라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일전에 평범한 행복을 바랐으나 그러지 못하고 고독사했던, 자취방 위층 아저씨 김유석처럼.

‘운이 좋았네.’

기타 치는 귀신 성호와 같은, 평범한 인간을 뛰어넘는, 비상식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의 감정을 품은 채 죽은 게 아니라면 귀신조차 될 수 없는 시대였다. 김유석의 경우도 우연히 은후의 눈에 띄었기에 귀신이 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하고 유예 기간이 뚜렷했고 말이다.

그 기간 또한 고작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살 및 익사로 추정되는 이도 원래라면 귀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구리가 한강에 공간을 이은 여파가 맞물렸다.

‘게다가 아예 한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음울함.

하기야 자살하는 사람 중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을까.

이처럼 은후가 자살로 단정한 이유는 생전의 옷차림에 있었다.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고 따로 상처를 입거나 한 건 아니었으니. 결정적으로 몸에 무거운 물건들이 덕지덕지 묶여 있었다. 사고가 아니란 증거였다.

‘타살이라기에는 좀 그렇지.’

이곳은 대한민국, 세계에서 치안으로 따지자면 1~2위를 다퉜다. 그런 대한민국의 한강 마포대교에서 누군가를 죽인다. 말이 안 되었다. 굳이 한강이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는 곳은 널렸으니까.

‘타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한 건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 알 수 있겠어.’

어쩔까.

은후가 고민했다.

‘마나를 나누어 준다면.’

김유석 때처럼 사라지려던 걸 은후가 강제로 탄생시킨 게 아니니 금방 사라지지는 않을 텐데.

‘어쩔 수 없는 마법사인가.’

은후가 피식 웃었다.

이성과 합리.

이유를 찾고 있었다, 저 귀신을 도울 이유를.

그저 우연이란 인연이라 생각하면 그만인 것을.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하면 그만인 것을.

‘뭐, 감정 마나도 앞으로 더 필요할 테니까.’

앞으로 건설할 낙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래서 은후가 움직였다.

‘사연을 들어 보고.’

내 기준에서 악이 아니라면 돕는다.

은후가 그렇게 결정한 뒤 귀신에게 다가가 마나를 나누어 주었다.

‘어?’

귀신이 어리둥절했다.

흐리멍덩하던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여기는 어디죠?’

은후가 마나로 의지를 전달했다.

‘한강 아래입니다.’

‘한강이요?’

귀신이 흠칫한 후 답했다.

‘저는 죽었나요?’

‘네, 저기 시체 보이시죠?’

귀신이 시체를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그리고 예상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죽었군요. 다행이다.’

‘다행이라뇨?’

‘네, 다행입니다. 제겐 삶이 더 고통이었으니까요.’

‘자살이 맞으십니까?’

‘네, 아마 곧 제 시체가 발견되겠죠. 죽기 직전에 가족에게 문자도 남겼고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저를 말리기도 했으니까요. 아마 신고했겠죠?’

귀신이 흐릿하게 웃었다.

‘그런데 누구세요? 저와 같은…… 어?’

귀신이 어리둥절했다.

‘저 죽은 거 맞죠?’

‘네.’

‘그런데 왜 말을 할 수 있죠?’

‘귀신이니까요?’

‘…….’

은후가 피식 웃었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사람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요.’

‘?’

그때 개구리가 울었다. 개굴개굴.

‘언제까지 그렇게 잡담하고 있을 거야?’

귀신이 깜짝 놀랐다.

‘개구리가 말을?!’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급한 건 아니잖아?’

‘수호령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

‘하여간. 내가 다 이른다?’

은후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가자. 거기 그쪽도 같이 가시죠.’

‘네? 어어, 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은 알았다. 은후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는 개구리도 그렇고. 거기에다 홀로 이곳에 남겨져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귀신은 잠자코 은후를 따라가기로 했다.

* * *

용산역 1번 출구.

그곳에도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만 평소 비가 내릴 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는 것. 용산역 1번 출구를 벗어난 시민들이 투덜거렸다.

“요새 안개가 너무 잘 끼지 않아?”

“그러니까 말이야. 비만 오면 그러는 것 같다니까.”

“도깨비가 나온다는 소문도 있고.”

“도깨비는 개뿔.”

“아니, 그게 들어 보라니까?”

안개. 비 오는 날의 도깨비.

이러한 말이 나도는 건 실제 용산역 1번 출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가 소문을 퍼트렸기 때문이다. 일전 은후가 술집에 방문한 뒤부터.

왜 이전까지 그러지 않았느냐면 꽤 긴 세월 방문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기에. 1년에 한 번 이상, 그 주기로 사람이 술집에 오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다는 약속을 했단다.

“정확히 말하면 이 술집으로 비롯된 힘을 쓸 수 없다는 약속이었죠.”

“누구하고요?”

“누구긴 누구것어. 이 술집을 실질적으로 지어 준 땡중과지.”

“땡중요?”

“암, 땡중이었지.”

“이이도 참. 월면이 얼마나 우리한테 잘해 줬는데요.”

“잘해 주기는…… 잘해 줬지.”

도깨비의 눈빛에 아련함이 스쳤다. 은후가 판단하기엔 땡중이라 부르는 것도 서로 친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기행을 일삼기는 했지만 그처럼 참된 스님이 얼마나 있었다고요.”

술집을 지을 당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제일 큰 도움을 준 건 법명이 월면이란 스님이었다고.

“법호는 만공이었어요. 아마 인간들에게는 그렇게 더 잘 알려져 있을 거예요.”

속명은 송도암.

“수월과 혜월 두 사람과 함께 경허의 석 달이라 불렸죠. 스승인 경허도 꽤 유명했고요. 잘 모르시나요?”

“솔직히 처음 들어 봅니다.”

“그래요?”

“하여간 월면과 그런 약속을 했어. 그래서 술집으로부터 비롯된 힘을 쓰려면 1년 이내에 최소한 한 명은 사람이 손님으로 와야 한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예 한 명도 안 오게 되었죠. 몇 년 정도는 우연이겠거니 했는데 말이죠.”

알아차렸을 때는 어떻게 손을 써 보기엔 늦었다고.

“저와 이이 힘만으로는 길게 살기도 어려울 것 같으니 살아남기를 포기했어요. 그냥 순리를 받아들이고 남은 힘으로 둘이 알콩달콩 지내다가 죽자고 결심했는데.”

그러다가 희망을 만났다.

그게 바로 은후였고.

그래서 그런지 도깨비와 구미호는 은후를 퍽 살갑게 대했다. 은후는 그 이야기를 듣고 왜 1년 이내에 다시 와 달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종족 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시간 관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하여간 잠시만 기둘려. 음식이랑 술을 금방 내올 터이니.”

“술은 정말로 기대해도 좋으실 거예요. 나름 비장의 술이거든요.”

그렇게 술집에 도착해서 이야기하기를 잠시.

개구리가 울었다.

개굴개굴.

‘그나저나 나는 안 보이나?’

구미호가 호호 웃으며 답했다.

“보이고 말고요.”

개구리가 사람으로 변신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없는 개구리 취급해?”

“은후 씨가 너무 반가워서 그랬죠. 미안해요. 그 옆에 귀신 씨도.”

구미호의 솔직한 사과에 개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에서 죽은 귀신도 얼떨결에 같이.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은후 씨 아니었으면 손님으로 안 받아들였을 거예요. 저희 처지가 좀 빈곤해서요.”

“빈곤?”

“네, 개구리 씨도 알겠지만 요새 우리 같은 이들이 살아남기 참 힘든 세상이잖아요?”

개구리가 뭔가 알겠다는 듯 물었다.

“술집 때문인가?”

“그렇죠. 눈치채셨나 보네요.”

특별한 건물이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 괴력난신에게 힘을 부여하는.

물론 주인인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에게 지분이 가장 크다지만.

“손님으로 오는 인간이 아닌 이들에게조차 어느 정도의 힘을 주니까요. 저희 입장에서는 손해죠. 인심도 곳간이 풍부해야 나오는 법 아니겠어요.”

“확실히.”

무언가를 느낀 개구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크, 운 좋은 줄 알어.”

도깨비가 음식과 술을 내오며 말했다.

“우리 같은 이들에겐 여기가 천국이니. 특히 개구리는 몰라도 거 귀신한테는 말이야. 일단 한잔하자고.”

도깨비, 구미호, 개구리, 인간, 귀신.

이렇게 묘한 조합이 모인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이거, 감자조림이 정말 맛있군요.”

“흐흐, 그렇지? 임자 솜씨야. 그나저나 거 귀신 양반은 안 먹나?”

한강에서 죽어 귀신이 되어 버린 이가 말했다.

“그으, 귀신도 음식을 먹을 수 있나요?”

“크하, 거 웃긴 귀신이네.”

“이제 막 귀신이 되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를 겁니다.”

“으잉? 요새도 귀신이 되는 인간이 있나?”

“없지는 않죠. 사라지지 않고 존재를 유지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만.”

도깨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평범하게 귀신이 되면 얼마 못 버티고 사라져 버릴 세상인디.”

“귀신이 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겹쳤기 때문이고요. 전주에서 한강으로 이동할 때 개구리 친구가 힘을 좀 썼거든요. 그 여파의 결과랄까요.”

“호오, 보통 개구리 양반이 아닌 줄은 알았는데 신묘한 재주가 있구만.”

“엣헴.”

개구리가 으스대며 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도깨비가 호탕하게 웃으며 술을 따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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