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이세계로 따지자면 귀신이 깃든 낡은 기타는 일종의 아티팩트였다. 따지고 보면 그런 아티팩트는 일반인에게 무척 위험한 물건이었다.
심지어 이 기타마저도 그랬다.
물론 이세계에서의 강대한 힘을 얻게끔 해 주는 마검이라거나 독을 내뿜게 하는 등의 험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인에겐 그 정도로 위험할 수도.’
음악이라는 집념, 그 집념을 일반인에게 강요할 테니까.
음악을 하라고.
또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기타 치는 귀신이 강제로 일반인의 몸을 차지할 수도 있었다.
‘혹시 모르는 법이니.’
음악에 미쳐서, 불에 타 죽는 고통이 비견되는 일을 겪으며 귀신이 되었으니.
‘뭐.’
일어나지 않을 미래였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은후가 몸을 기타 치는 귀신에게 맡겼다.
그리고 은후가 마나로 의사를 전달했다.
‘이참에 확실히 계약을 하죠.’
‘계약이요?’
‘네.’
‘무슨 계약이요?’
몸의 통제권을 넘길 시 할 수 있는 건 음악에 관련된 것뿐이라고, 그리고 은후가 원하면 다시 즉시 몸의 통제권을 되돌려야 한다는, 그런 계약이었다.
‘이세계에서였다면 더 세부적으로 이런저런 조건을 붙였겠지만.’
현대에서 마법에 관한 깨달음을 얻었다. 보디 체인지까지 겪어 이전보다 더욱 세밀하게 마나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큰 줄기만 정해 둔다면 문제가 없었다.
‘여차하면.’
공격해서 소멸시킬 수도 있으니까.
그 정도 힘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선의와 호의로 이루어진 관계라도 최악은 대비해야 하는 법. 너무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은후와 기타 치는 귀신이 친분을 나눈 건 고작 며칠에 불과했다.
은후는 그런 생각을 가감 없이 기타 치는 귀신에게 전했다. 기타 치는 귀신은 은후에게 딱히 서운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으니까.
‘제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좋아요.’
은후의 마나가 움직여 계약진을 만들었다. 이내 계약진이 은후와 기타 치는 귀신을 엮었다.
‘계약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마법진이 빛났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빛.
‘이거로 된 건가요?’
‘아뇨. 마지막으로 이름을 제가 지어 줘야 합니다.’
‘이름요?’
‘네, 생각해 둔 이름이 있는데요.’
별빛 성, 부를 호.
‘성호, 어떠세요?’
별빛을 부르다.
‘마음에 드네요.’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과분할 정도로.
기타 치는 귀신이 은후가 지어 준 이름을 인정했다. 이것으로 계약이 완료되었다.
* * *
임서혁을 비롯한 탐사 동아리 사람들이 은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반가운 나머지 가서 말을 걸려고 했으나 기타를 치려는 은후의 모습에 다들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기타를 들고 분위기만 잡고 있는 은후의 모습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게 너무 어울려서 다들 자신도 모르게 은후에게 집중했다.
“분위기 죽이네. 내가 저러고 있으면 똥폼인데.”
임서혁의 친구 양유찬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분위기 깨네.”
“아니, 근데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은후 선배, 기타도 칠 줄 알아? 너 친하잖아. 아는 거 없음?”
임서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몰랐지.”
“그래?”
“어.”
“친한 거 맞음?”
“친하다니까.”
그때 드디어 은후의 손가락이 드디어 움직였다.
디링.
얇은 기타 선율.
그리고 이내 이어지는 은후의 목소리. 임서혁과 양유찬의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집을 나온 어느 날 장미 정원에 도착했죠.”
기타 치는 귀신 성호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이어 나갔다. 이전에 은후에게 불렀던 <장미 정원>을 기본으로 한 다른 버전이었다.
기타는 배경음으로, 가사는 읊조리듯.
노래라기보다는 내레이션이라고 해야 옳았다.
“그때 정원에 흐르던 노래의 한 소절.”
하늘의 짙푸름처럼 네 인생도 그러하길.
“먹구름이 끼고 궂은 날이 있어도, 결국 다시 파란 하늘이 될 테니까.”
어두운 가정환경.
“전 노래를 부르기로 했어요.”
우연히 맞닥뜨린 노래가 꿈을 갖게 했다.
노래라기보다는 짧은 하나의 이야기였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게다가 우울함 속에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 있던 이들 모두가 은후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노을이 내려앉은 하늘, 기타 치는 귀신 성호의 이야기가 허공을 노닐었다. 조용히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와 함께.
모두가 공감했다. 사람들의 귓가에 잠시 머물다 사그라드는 이야기였음에도. 정확히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은후가 치는 기타는 아티팩트였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은후가 혹시 몰라 그 여파를 최소화하기는 했지만, 한계는 있었다. 아티팩트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기타 치는 귀신 성호가 바라는 건 그저 내 이야기를, 음악을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뿐. 만약 성호가 다른 마음, 예컨대 사람들을 세뇌라도 하려고 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렇게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되니까.
은후가 멋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마나의 흐름을 관조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은후의 목을 빌린 성호의 노래가 노을과 함께 덕진공원에 내려앉았다, 한참 동안.
* * *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은후가 사라진 후 한동안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여전히 음악의 여파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흑.”
“훌쩍.”
누군가는 울었다.
“아.”
누군가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
“…….”
또 누군가는 침묵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금 들은 노래에 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너무 슬펐어.”
“그러니까 말이야. 마치 내가 겪은 것 같았다니까.”
은후가 속한 탐사 동아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기타를 쳐서 아는데. 저 정도 실력이면 1~2년 해서 되는 게 아니라니까?”
“그래?”
“어. 그리고 저 정도 실력이면 당장 데뷔해도 될 것 같은데.”
“그 정도야?”
“그 정도야. 진짜 미쳤음.”
친구 양유찬의 말에 임서혁이 내심 서운해 했다.
‘기타도 치실 줄 알았구나.’
하지만 그 감정을 이내 금방 수습했다. 친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모든 걸 알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뭔가 사정이 있겠거니 싶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관심이 없던 탓일 수도 있었고.
임서혁이 은후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게임이었으니까. 그리고 만날 때마다 거의 게임에만 관해 이야기했다. 최근 들어 좀 아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덕진공원에 은후가 부른 노래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건 잠을 자고 있던 개구리와 공원의 수호령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은후도 노래도 부를 수 있었어?”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본인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점일까.
“그건 아니고. 내 몸을 빌려서 여기 성호가 부른 거야.”
“성호?”
“기타 치는 귀신. 내가 이름을 붙여 줬어.”
“은후가 이름을?”
“응.”
은후가 공원의 수호령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일종의 계약이구나. 나도!”
“응?”
“나도 이름!”
“하하.”
은후가 멋쩍게 웃었다.
“나중에 봐서.”
정령에게 이름을 지어 준다는 건 계약을 하지 않아도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공원의 수호령은 뾰로통해졌다.
“치사해.”
“아니, 그게 쉽게 생각할 게 아닌데.”
“쉽게 생각 안 했는걸.”
“…….”
그런가.
“게다가 은후 아니었으면 난 진즉 없어졌을걸. 생명의 은인이야. 아, 그으, 혹시 은후가 곤란하다면 안 되기는 하는데. 뭔가 민폐라면 말이야.”
“그런 건 아니야.”
“그래?”
“그래. 그러니까 조만간 이름 지어 줄게. 하지만 이름이란 게 쉽게 지을 게 아니니까, 좋은 이름으로 생각해서.”
“알았어. 기다릴게.”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듯하자 개구리가 말했다.
“비가 올 것 같아.”
비라.
“한동안 전국에 비가 내릴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소 사흘 이상은 말이야.”
개구리가 잠시 고민하다가 수호령에게 물었다.
“하루에서 이틀 정도는 좀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아. 어때? 저번에 그 용산역 술집, 가고 싶다고 했잖아.”
게다가 용산역에서 한강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혹시 모를 위험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바로 덕진공원으로 이동할 수 있을 거라고 개구리가 말했다.
“가 보고는 싶은데, 혹시 나 없는 동안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공원의 수호령 본질은 아이를 위함이었으니.
그래서 수호령이 망설였다.
“그럼 여기에 술집을 열자.”
은후의 말에 수호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아마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도 승낙할 거야.”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의 목적은 결국 자신을 인지하는 존재를 만나기 위함이었으니. 그게 기왕이면 본거지인 술집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특별한 술집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 또한 목적은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한마디로 죽기 싫어서.
그건 은후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마나를 나누어 주면 되니까. 직접 전달해 줘도 좋고, 음식을 통해서 줘도 괜찮고.
‘그런 조건이면 충분히 받아들이겠지.’
그 외 초대할 사람이 있을까.
‘박수무당인 김영호 정도인데.’
굳이.
‘조만간 만나 보기는 해야겠지만.’
신분과 금전적으로 관련하여.
하지만 그건 급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김영호에게 이들의 존재를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쯧.’
은후가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누군가 초대할 사람이 없구나 싶어서.
‘뭐.’
없으면 어떤가.
은후가 생각을 정리한 후, 공원의 수호령에게 말했다.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좀 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끔.”
“정말?”
“응, 약속.”
“약속!”
복숭아 씨앗. 그리고 이번에 받은 부탁, 이름을 지어 달라는.
어떻게든 될 것 같기는 했다.
‘아니.’
어떻게든 되게끔 하면 되지.
은후가 결심했다.
“개구리 친구.”
“응?”
“몇 명이나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어? 범위는 어떻고?”
“한반도에 한정해서 비가 전국에 내린다면 몇 명이든……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수십 명 정도는? 내가 공간을 이어 둔 곳에 한정해서.”
“이따 한강에 좀 같이 가게. 어때?”
“도깨비 구미호 부부를 만나러?”
“그렇지. 일단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에게 의사를 물어봐야 할 테니까.”
개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흘러갔나.’
은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노래를 부르고 온 뒤 이름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며칠 동안 전국에 비가 내린다고 개구리가 말하고, 또 그 개구리가 공원의 수호령이 가진 소망을 들어주고 싶다고 해서.
‘소망이라기엔 좀 거창한가.’
바람이라고 할까.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와 한번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들어주고 싶어서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좋네.’
둘이 정말로 친해진 것 같아서.
지금도 둘이 장난치고 놀고 있는 걸 보아하니 확실히 비단 천 나침반이 제대로 된 인연을 이어 준 모양이었다.
“어? 비다!”
개구리가 기분 좋게 웃었다.
“예상보다 좀 빨리 내리기 시작했네. 아마 몇 시간 뒤면 전국에 비가 내릴 거야.”
이윽고 개구리의 말대로 시간이 흐르자 전국에 비가 쏟아졌다. 잠시 후 은후와 개구리가 덕진공원 호수로 풍덩 하고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