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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46화 (46/170)

제46화

은후는 파티를 위한 쇼핑 목적으로 잠시 덕진공원을 벗어났다.

처음은 치킨집이었다.

“학생, 또 왔네?”

“그러게요.”

자취방 근처의 치킨집.

“그나저나 오늘 날씨가 참 좋아. 그렇지 않어?”

“그러니까요.”

치킨집 주인과는 서로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을 아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였다.

“오늘은 뭐 포장해 줄까?”

“프라이드랑 양념 한 마리씩 부탁드려요. 먼저 결제하고 다른 데 들렀다가 금방 다시 올게요.”

“그려! 내 맛있게 튀겨 놓을게!”

“네,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이루어진 짧은 잡담.

가게를 벗어나는 은후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게 주인이 중얼거렸다.

“거참, 얼굴도 잘생기고 인사성도 참 밝은 학생이란 말이야.”

그다음 은후가 들른 곳은 치킨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피자집이었다. 불고기와 페퍼로니 한 판씩 포장 주문을 한 후 근처에서 가장 큰 마트를 찾았다.

‘음료수도 적당히 종류별로 사고.’

과자도 이것저것 담고.

그때 마트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후배 임서혁이었다.

임서혁도 은후를 알아봤는지 반갑게 다가오면서 인사했다.

“형.”

“뭐 하고 있어?”

“쇼핑하고 있었죠. 형은요?”

“나도, 뭐.”

은후가 마트 장바구니에 담은 물건들을 눈빛으로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친구분들이랑 술이라도 한잔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임서혁이 생각하는 친구는 아니겠지만.

“안녕하세요, 선배님.”

“유리도 있었네.”

“네.”

“그나저나 아쉽네요. 저희 동아리 술 모임 있는데.”

“그래?”

“네, 문자 했는데 대답도 없으시고. 좀 서운한데요.”

은후가 픽 웃으며 답했다.

“좀 바빴어.”

“형도 시간 되시면 잠깐 들르세요. 저희 덕진공원에서 모여서 한잔하기로 했거든요.”

덕진공원이라.

“상황 봐서.”

은후 또한 술자리는 아니지만 파티를 벌이기로 한 곳이지 않던가. 그래서 은후는 애매한 대답을 남겼다.

“그럼 적당히 마시고.”

“네.”

“유리 너도. 저번에 보니까 술이 별로 몸에 안 받는 것 같던데.”

“걱정 감사합니다.”

은후는 후배들과 헤어진 후 쇼핑을 전부 마쳤다.

치킨 두 마리, 피자 두 판, 그 외 다양한 과자와 음료들.

또 술도 적당히 샀다.

오늘 마실 건 아니지만 리어카에 미리미리 보충해 놓기 위해서였다.

‘하필 세일을 해 가지고는.’

비정기적으로 이따금 하는 마트의 주류 세일.

그 폭이 상당해서 이것저것 집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들고 가기에 만만치 않은 양. 하지만 은후에겐 아공간이나 다름없는 리어카가 있었다.

은후는 주위를 쓱 둘러본 후 마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CCTV의 사각지대에서 은폐 마법을 펼친 뒤 리어카에 쇼핑한 것들을 모조리 집어넣었다.

‘얼른 가자.’

다른 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특히 수호령이.

‘은근히 식탐이 있다니까.’

그렇다고 보기 싫을 정도로 탐욕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태어난 이래 자신을 만나고 음식이란 걸 처음 접했으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고.

‘뭐.’

먹는 모습도 보기 좋으니까.

그냥 그런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배부르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였으니. 은후는 되도록 그래서 공원의 수호령에게 이것저것 먹이고 싶었다.

* * *

은후가 덕진공원에 다시 돌아오자, 수호령이 대표로 마중 나왔다.

“왔어?!”

“응.”

“어, 그런데 치킨이랑 피자는?”

“사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공원의 수호령은 은후의 대답에 얼굴에 느낌표를 띄웠다.

“아! 저번처럼 어디선가 뿅 하고 나타나는 거야?”

“그렇지.”

“진짜 편하겠다.”

“확실히 아공간이 있으면 편하기는 하지.”

“아공간?”

은후가 픽 웃으며 수호령에게 아공간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어디서 났어? 은후가 만들었어?”

“예전에 한 노인분과 여기에 왔던 거 기억나?”

“응응, 비 오는 날에.”

“그때 그 노인이 남긴 유산이야.”

직접 만들지 못할 것도 없지만.

‘시간도 시간이고.’

재료도 그렇고.

아공간을 만든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수호령과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공원을 걸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호수 근처에 도착했을 때 수호령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은후도 깜짝 놀랄걸!”

“뭔데?”

“가 보면 알아.”

“그래?”

수호령이 대놓고 무언가를 숨겼다. 은후는 그런 수호령의 천진난만함에 웃으며 호수 가까이 다가갔다.

“짜잔! 저기 봐 봐!”

개구리가 호수 위에 돗자리를 폈다.

물로 만든 돗자리였다.

그 위에 낡은 기타 그리고 시바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바견에게는 은후가 미리 은폐 마법을 펼쳐 두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호수 위에 덩그러니 개 한 마리가 있는 모습이었을 테니까. 수호령은 자신이 해낸 일인 것처럼 엣헴, 하며 자랑했다.

“어때?”

“좋네.”

“하나도 안 놀라?”

“이래 봬도 좀 놀랐어.”

“으으, 그럼 이건 어때?!”

수호령이 입술을 삐죽이더니 호수를 폴짝폴짝 뛰어갔다. 은후에게 손을 힘차게 흔들며.

‘저건 또 어디서 배운 거람.’

개구리에게 배운 것 같은데.

나는 게 아니라.

은후도 피식 웃고 호수에 발을 내디뎠다. 수호령의 모습을 보고 나서 왠지 모르게 그러고 싶어서. 그런 은후의 모습에 다시 돌아온 수호령이 깜짝 놀랐다.

“뭐야! 은후도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네?”

“하늘도 나는데, 뭐. 그나저나 그건 개구리한테 배운 거야?”

“응응. 물과 관련된 재주가 많더라구. 나한테도 이것저것 알려 줬어. 잘했지?”

“그럼, 잘했어.”

은후가 수호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호령이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웃었다.

이윽고 호수 위 돗자리에 도착한 은후와 수호령을 개구리와 기타 치는 귀신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시바견 루비의 경우 끙끙거리며 연신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아무래도 물 위였기 때문에 두려운 것 같았다. 그걸 기타 치는 귀신이 연신 달래며 괜찮다고 쓰다듬었다. 은후는 그 모습에 가볍게 마나를 움직였다.

심신이 안정을 찾게끔.

그러자 루비는 이내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르게 편안한 모습이 되었다.

“어라?”

그런 루비의 변화에 기타 치는 귀신이 의아함을 표했다. 은후는 피식 웃고는 리어카에서 쇼핑해 온 것들을 꺼냈다.

“일단 다들 먹죠. 오는 길에 제가 조치를 취해 뒀으니 다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오!”

수호령이 슬그머니 눈치를 본 뒤 제일 먼저 프라이드 닭 다리 하나를 집었다. 이후 개구리는 피자 한 조각을, 기타 치는 귀신은 과자 한 봉지를 깠다.

“이거요, 진짜 먹어 보고 싶은 과자였거든요. 근데 먹을 기회가 없었네요.”

포테이토 칩.

“얼마 안 하는데, 살아 있을 당시엔 그 돈이 뭐가 아깝다고. 콜라도 그렇고.”

콜라는 몇 번인가 먹기는 했지만.

“좋네요.”

과자를 먹는 기타 치는 귀신의 표정이 행복감에 물들었다.

“루비야.”

개인 루비를 위한 음식도 있었다.

“먹어 볼래?”

반려견을 위한 간식, 황태와 육포.

그르륵.

루비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마침 덕진공원의 호수에서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음악과 어우러지는 분수 쇼였다.

3D 수막 영상 설비 및 수중 조명 그리고 다양한 음향 설비를 갖추었기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쇼였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의 분수 쇼에 비하면 다소 모자란 감은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있느냐는 것.

그 아무리 멋진 장소여도 어떤 이와 같이 있는가, 그게 사람의 기분을 결정하는 것이니.

“와! ……응?”

수호령이 맛있게 치킨을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다 흠칫했다.

“에잇!”

분수 쇼를 구경하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호수에 빠질 뻔한 것. 수호령이 힘을 써서 다행히 빠지진 않았다. 그대로 내버려 뒀으면 십중팔구.

근처에 있던 부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이 중년 여성에게 무어라 했다. 중년 여성이 미간을 찡그리며 당신은 뭐 하고 있었냐며 소리 지르려던 찰나.

“으앙! 엄마 아빠 싸우지 마!”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부부가 당황하며 아이를 달랬다.

“헤헤, 잘했지?”

“잘했어. 그런 의미에서 여기 양념 치킨 닭다리도 먹어.”

“그, 그래도 될까?”

“그럼. 다들 괜찮죠?”

개구리가 동의한다며 날개를 집었다. 기타 치는 귀신이 어깨를 으쓱이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 좋은 날 노래가 빠지면 안 되겠죠?”

“노래는 나오고 있는데?”

수호령의 반문에 기타 치는 귀신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가사가 없잖아요.”

기타 치는 귀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자신이 바랐던 소망.

화목한 가정.

행복.

‘거참, 묘하네.’

분수 쇼와 더불어 흘러나오는 음악은 꽤 유명한,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몇 년 전 크게 성공한 영화의 OST였다.

배경음으로 깔렸던, 가사가 없는 노래.

그런데 기타 치는 귀신의 노래는 마치 그 곡의 원래 가사인 것처럼 엄청나게 잘 어울렸다.

‘다만 뭔가 쓸쓸하네.’

개구리나 수호령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루비는 어느 알아차렸나.’

루비가 기타 치는 귀신의 옆에 달라붙어 낑낑거리며 위로했다. 기타 치는 귀신은 루비를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노래 불렀다.

‘그건 아마도.’

그저 소망으로 그쳤기에.

하지만 그 소망보다 더 바라는 것은.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인가.’

귀신이 될 정도의 집념, 그 대상인 음악.

* * *

좋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던가. 호수 위에서 벌어졌던 파티가 끝이 났다. 은후가 쓰레기를 정리하자 수호령이 말했다.

“나 졸려. 개굴아, 여기서 좀 자도 될까?”

“좋지. 나도 같이 자야겠다.”

수호령이 은후와 기타 치는 귀신에게 물었다.

“은후랑 귀신 아저씨도 같이 잘래?”

“나는 괜찮아.”

“저도요.”

“루비는?”

시바견 루비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가 그르륵거린 후 수호령 옆에 몸을 웅크렸다.

“은후 씨.”

“네?”

“잠시 산책할까요?”

“뭐.”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있는 시바견 루비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개구리가 있으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싶어서.

그래도 혹시 몰라서 개구리에게 한마디 당부를 해 둔 후, 은후는 기타 치는 귀신과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까 노래 부르면서 알았는데요.”

“네.”

“들려주고 싶더라고요. 제 음악을, 사람들에게.”

“저도 느꼈습니다.”

“신기하네요. 딱히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제가 정령의 감정에 좀 민감한지라.”

기타 치는 귀신이 웃었다.

“수호령과 개구리 친구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은데,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더라고요.”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그냥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답답하니까.

“언젠가 그럴 수 있겠죠? 은후 씨가 기회를 만들어 준다고 하셨으니까.”

“지금도 가능하죠.”

“네?”

“지금도 괜찮다고요.”

은후가 피식 웃었다.

“어때요, 해 보실래요?”

“……네. 부디.”

“직접 모습을 드러내실 수는 없고, 제 몸과 목소리를 빌려서 하는 형태가 될 텐데. 그건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그게 어디에요.”

덕진공원의 호수 근처, 적당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은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귀신이 들린 낡은 기타를 고쳐 잡았다. 그런 은후를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후배 임서혁이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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