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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45화 (45/170)

제45화

기타 치는 귀신이 생전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 때, 근처에 소문이 퍼졌다.

건물에 귀신이 들어섰다고, 그런 사람들의 믿음.

그리고 기타 치는 귀신이 죽어 가면서, 그것도 끔찍한 고통 속에서 바랐던 바람. 기타, 노래.

그 결과 귀신이 되었다.

그리고 귀신이 된 이후에 비가 오는 날이면, 혹은 어느 정도 여력이 되는 날이면 기타를 쳤다, 노래했다. 그래서 소문은 꾸준히 유지되었다.

“제 유일한 관객이었죠, 요 아이는. 그런데 제가 귀신이 된 이후엔 절 알아보지 못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좀 쓸쓸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크게 다쳐서 오더라고요.”

목에 큰 상처를 입고.

“아마 다른 근처 개들과 싸운 것 같았는데 죽을 것만 같았어요. 피를 너무 흘려서.”

그리고 마치 이곳을 자기 무덤으로 삼으려는 듯했다고.

“안타까웠죠. 제 유일한 친구였거든요.”

그래서 노래했다. 기타를 쳤다.

자신과 다르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으니까.

“근데 신기하게도 안 죽더라고요. 크게 다쳐서 목소리도 이상해졌지만요. 그리고 그때부터 저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건 아마 음악의 힘이었을 겁니다.”

“네?”

“때로는 인간의 바람이 기적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물론 미약한 힘이었겠지만요.”

은후가 시바견의 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개의 목에 마나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확실합니다.”

그리고 아까 <장미 정원>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처럼 그 정도의 바람과 소망을 담았다면, 그리하여 치유의 심상이 구현되었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결과였다.

물론 오늘보다 더욱 미약한 힘이었겠지. 하지만 그 미약함이 때로는 기적을 만든다. 시바견이 여전히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래서이지 않을까 싶었다.

‘의문점은 그런 힘을 쓰고도 상당 기간 존재를 유지했다는 것인데.’

그건 차차 알아보면 되는 일이었다.

굳이 중요한 게 아니기도 했고.

‘마법사로서는 엄청난 흥밋거리지만.’

그 전에 은후는 인간이었다.

귀신이 가진 안타까운 사연을 두고 호기심을 먼저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마법보다 인간이 먼저였다.

언제부턴가, 현대로 돌아온 이후, 그리고 어느 순간 얻은 깨달음에서 비롯된 확고한 가치관이었다.

“그나저나 마나라니. 뭔가 판타지 영화 같네요. 〈반지의 제왕〉처럼?”

“귀신이 있다는 것부터가 그렇죠. 저와 비슷한 사람이 아예 없지도 않고요. 능력 있는 무당이라던가 도사도 있는 세상인데요.”

“신기하네요.”

“그렇죠?”

은후가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계속 이곳에 계실 건가요?”

“마음 같아선 어디로라도 가고 싶죠.”

그럴 수 없어서 머문 것뿐.

이 장소에 관한 추억은 있을지언정 미련이나 집착 따위는 없었다.

“그럼 다른 곳으로 가실래요?”

“어딜요?”

“친구가 될 수 있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요.”

“거참, 말씀 묘하게 하시네요.”

은후가 픽 웃었다.

“아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저와 같은 귀신?”

“귀신은 아니에요. 비슷한 느낌이지만요.”

“루비도 함께 갈 수 있다면 가겠습니다.”

시바견의 이름은 루비였다.

“원래 이름을 안 지어 주려고 했거든요. 정 붙이기 싫어서. 그런데 원치 않더라도 정은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피를 흘리며 죽기 직전에.

“이름을 붙여 줬죠. 새빨간 피를 흘리면서도 눈빛이 강렬했거든요.”

그때 하나의 보석이 떠올랐다.

“루비야.”

그르륵.

시바견이 대답했다.

“옆에 형님이 같이 어디론가 가자는데, 같이 갈래?”

루비가 긍정의 의미로 얕게 목소리를 내었다.

“의사 소통이 되시나 보네요?”

“간단하게는요.”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어.”

“네, 말씀하세요.”

“염치없는 부탁이기는 합니다만, 사람들에게 제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기회가 있을까요?”

신비한 힘을 가진 은후.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게 보내는 일종의 선의. 그걸 믿고 기타 치는 귀신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했다.

“그,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런 말은 원래 나중에 더 친분이 쌓이거나, 제가 뭘 드릴 수 있을 때 말해야 하는 건데. 왠지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네요. 잊어 주세요.”

그건 귀신이 되면서 바랐던 소망이었고, 미약한 믿음만으로 스스로를 존재할 수 있게끔 만든 근원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집념.

그 때문에 기타 치는 귀신은 다소 조급했다. 은후를 만난 이후로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이 현실화된 것 같아서. 하지만 염치를 알았다. 감정에 못 이겨 말을 꺼냈지만 이내 잊어 달라는 말을 하는 것만 봐도 은후는 알 수 있었다.

‘대단하네.’

그래서 은후는 이해했다.

이 척박한 현대에서 귀신이 될 정도의 감정. 하물며 그건 원한과도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었으니. 그렇기에 은후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요.”

“저, 정말요?!”

“네.”

“그.”

은후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너무 죄송해 하지 마세요. 저라도 얻는 게 없는 건 아니니까요.”

감정 마나. 그 외에도.

‘심상 구현의 음악.’

마법사로서 호기심을 채울 기회가 아니던가.

마법 이전에 인간. 하지만 그 이후라면 마법이었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귀신의 소망도 들어주고.’

호기심도 채우고. 이런 게 일석이조 아니던가.

“그나저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요?”

귀신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네요, 인간관계라든가. 아버지와 어머니 외에는 그다지.”

심지어 부모님에 관한 감정 또한.

그래서 아까 기타 치는 귀신은 담담하게 자신의 과거를 늘어놓을 수 있었다. 두서없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돌이켜 보면 기타 치는 귀신의 감정이 제대로 드러난 건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뿐이었다.

‘정말로 음악만이 남았나.’

그래서 기타 치는 귀신에게는 생전의 인연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럼 가실까요?”

은후가 기타를 집었다.

“너도.”

그르륵.

루비가 슬그머니 기타 치는 귀신의 눈치를 봤다.

“같이 가자.”

루비가 일어섰다.

은후가 하늘을 날았다.

“오, 오오?!”

그륵!

처음 하늘을 나는 귀신과 시바견이 놀랐다.

어느 날, 해가 꼭대기에 걸칠 무렵이었다.

* * *

은후가 기타 치는 귀신과 시바견 루비를 데리고 간 곳은 덕진공원이었다. 덕진공원에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공원의 수호령이 쪼르르 달려와 마중 나왔다.

“은후 왔다!”

공원의 수호령이 은후에게 반갑게 인사한 후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번에도 친구 데려온 거야?”

“그렇지?”

기타 치는 귀신이 공원의 수호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아이는 누구예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요.”

“수호령입니다. 귀신은 아니고요.”

은후가 정령이란 개념에 관해 가볍게 설명했다.

인간의 믿음이나 소망으로부터 태어나는.

“혹은 그냥 우연히 나타나기도 하죠.”

큰 카테고리인 정령, 그 아래에 귀신 및 요괴 등등이 있다는 말까지.

“저 아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의 소망이 있었죠.”

공원 안쪽을 거닐며 은후가 공원의 수호령에 관한 사연을 풀어 놓았다. 그에 기타 치는 귀신의 눈이 깊어졌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안타까움. 슬픔 그리고 대견함.

여러 가지 감정이 깃든 눈빛이었다.

“기타를 치고 싶네요. 노래도요.”

“나쁘지 않죠.”

“뭐야, 뭐야. 저 귀신은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르는 거야?”

“그렇지.”

기타 치는 귀신이 말했다.

“당신을 위해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실래요?”

“좋아! 대신에 나랑 친구 해! 그리고 말투, 너무 오글거려.”

기타 치는 귀신이 멋쩍게 웃었다.

“그나저나 옆에 개는?”

“시바견이라는 견종인데. 여기 기타 치는 귀신이랑 친구.”

“그런데 나를 알아보네? 똑바로 날 볼 수 있는 동물은 못 봤는데. 아, 개구리 친구 빼고!”

“얘에게도 사연이 있거든.”

죽을 뻔한 위기.

그리고 기타 치는 귀신이 바랐던 소망.

그 과정에서 아마 시바견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아하.”

수호령이 쪼르르 시바견 루비 옆으로 다가갔다.

“착하지?”

그륵.

수호령의 해맑음에 시바견이 잠자코 몸을 맡겼다. 그렇게 잠시 수호령이 루비의 등을 쓰다듬었다.

“여기서 기타를 칠까요?”

기타 치는 귀신의 말에 은후가 주위를 둘러봤다.

한참 밝은 낮.

그래서인지 사람도 꽤 많았다. 그래서 사람이 드문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뭐.’

이 또한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다만 혹시 모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은후가 간단한 마법을 펼쳤다. 조그마한 반경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피해 갈 수 있게끔.

“이제 괜찮을 거예요.”

“네?”

은후가 픽 웃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악에만 관련되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구나 싶어서.

“뭔가 하신 모양인데, 어쨌든 괜찮다는 거죠?”

“네.”

귀신이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자작곡인데 좀 부끄럽네요. <장미 정원> 정도의 완성도는 아니라서요. 그래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전주곡은 잔잔했다.

“좀 도와줄래?”

시바견이 귀신의 말에 반응했다.

그륵, 그륵.

쇳소리에 가까운 울음소리.

하지만 이내 귀신의 기타 소리가 어우러지며 기묘한 화음을 자아냈다. 옆에 있던 수호령이 깜짝 놀랐다.

“오! 개구리도 부를까?”

“비가 오는 날이 아니어도 올 수 있대?”

“응응, 호수에서 멀어지면 안 되지만. 정확히는 거기 있잖아, 다리 중간에 있는 건물 옆에 조그마한 공터.”

“아.”

호수 다리의 가운데, 조그마한 땅.

“일단 곡 하나는 듣고 가자.”

“알았어.”

귀신이 노래했다, 루비와 함께.

기분 좋은 하늘, 은은한 음악, 그리고 친구들.

‘술은 좀 그렇고.’

차가 적당한가.

그런 은후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수호령이 품에서 잔을 꺼냈다. 일전에 은후가 만들어줬던 찻잔이었다.

“차 마시고 싶은데 솔잎이 없네. 이따 마시자.”

은후가 피식 웃은 후 마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솔잎이 아닌 연잎을 따 왔다.

“연잎 차도 괜찮을 거야.”

“그치. 연잎 차도 좋아.”

은후가 마나를 이용해 물을 구해 왔다.

좋은 노래.

따뜻한 연잎 향이 솔솔 풍겼다.

* * *

곡 하나를 마친 후 은후 일행은 호수 다리 중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중간 쉼터에 심어진 나무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 아래에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개구리 친구라뇨?”

기타 치는 귀신의 의아함에 은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면 알 겁니다.”

“금방 불러올게!”

수호령이 호수로 사라졌다. 이윽고 호수 어딘가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개굴개굴.

보통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였다.

“뭐야? 새로운 친구가 왔다길래 와 봤는데.”

“왔어?”

개구리가 기분 좋게 울었다.

강아지만 한 개구리의 등장에 기타 치는 귀신이 깜짝 놀랐다.

“개, 개구리가 말을 하는군요.”

수호령은 그래도 인간 형상이었는데.

개굴개굴.

“정확히는 의지를 전달하는 거지.”

기타 치는 귀신.

목을 다친 시바견 루비.

공원의 수호령.

마지막으로 흑마법사 은후.

‘참 묘한 조합이란 말이야.’

은후가 속으로 픽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모인 기념으로 파티라도 할까?”

“파티!”

수호령이 눈빛을 반짝였다.

개굴개굴.

“피자 먹어 보고 싶은데. 그나저나 옆에 개는 뭐야?”

개구리가 호기심을 가지고 시바견 루비에게 다가갔다. 시바견이 귀찮다는 듯 그륵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타 치는 귀신이 잠깐 머뭇거리다 말했다.

“저는 파티에 어울리는 곡을 연주하면 되겠군요. 아, 그리고 저는 피자보단 치킨이 좋아요. 시원한 콜라도 함께였으면 좋겠는데요. 대신 좋은 음악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눈치를 봤다.

“그, 어려운 부탁은 아니죠?”

은후가 피식 웃었다.

어느 날, 화창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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