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44화 (44/170)

제44화

기타 치는 귀신은 정말로 신이 났다.

평소에는 아예 힘이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그나마 낫지만.

‘그래 봐야 서너 시간?’

온전히 기타에만 집중한다면 그 시간마저 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기타를 연주하면 본능적으로 자신이 사라질 거란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껏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르기 어려웠다.

‘그런 걱정 없이 이렇게 신나게 연주한 게 얼마 만인지.’

귀신이 된 이래로는 처음이었다.

“후우. 혹시 비틀스 말고 리퀘스트 없나요?”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제가 음악은 잘 몰라서요.”

“그럼 자작곡이라도 들려 드릴까요?”

“자작곡 좋죠.”

“제목은 ‘장미 정원’입니다. 사실 ‘장미 정원에서 바라본 희망’이라고 지으려고 했는데 너무 긴 것 같아서요.”

기타 치는 귀신의 눈동자가 아련해졌다.

쓸쓸함. 절망.

‘그리고 희망.’

여러 감정이 뒤섞인 감정의 파동이 은후에게 전해졌다. 정령이 내뿜는 감정이었기에 은후는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곡 같은데.’

게다가 자작곡이라고 했으니.

그리고 다른 감정이 듬뿍 느껴졌다.

말하고 싶다, 고.

“일단 곡부터 들어 볼까요?”

“네.”

귀신이 기타를 쳤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본인의 곡이었기 때문일까, 자신이 겪은 일이었기 때문일까. 음률이 향을 뿜기 시작했다. 은은한 장미 향이었다. 조금 전까지 비틀스의 노래에선 이러지 않았는데.

‘그건 아마.’

귀신의 심상이 구현되었기 때문이겠지, 현실에.

‘내가 아무리 존재를 유지하는 데 마나를 보태 주었다고 한들 이게 가능하단 말이지.’

자신의 마음을 현계에 투영하는 것, 즉 현실 개변이었다. 현실에 자신의 마음을 실체화시켰다. 그건 아무리 작은 현상이어도 이는 마법으로 따지자면 정말로 위대한 일이었다.

‘나도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인데.’

그것도 억지로, 과거 이세계에서, 죽은 아내의 복수를 위해 공작 가문과 전쟁했을 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위험에 처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은후는 자신의 심상을 현실에 구현했다.

죽음과 절망이란 심상을.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죽음과 절망의 형태가 적들에게 주어졌다. 독이나 화살은 물론 이세계에 없던 현대의 이적까지도. 개중 백미는 핵이었다.

물론 원리 따위는 몰랐다. 핵융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대에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핵폭탄의 결과는 알았다. 그 결과를 현실에 가져왔다.

그 결과로 은후는 당시 전투에서 이겼다. 그 전투의 여파로 끝내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나 그건 은후가 끝내 죽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대륙 공적으로 지목당한 이유 중 가장 큰 지분 또한 핵폭탄을 현실에 구현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힘이다. 악마와 계약한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흑마법사라고 해도 이는 인류를 배신한 것!’

그렇게 은후는 대륙 공적이 되었다.

은후는 당시를 회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핵폭탄에 비하면 정말 가벼운 일이긴 하지만.’

장미 향기. 그리고 이내 투명하게 떠오르는 정원. 하지만 귀신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롯하게 음악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리라. 은후는 짙은 마법적인 호기심을 느꼈으나 리어카에서 다른 술을 꺼냈다.

‘일단 음악을 즐기자. 마법적인 호기심은 나중에라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

설령.

‘그러지 못하면 어때.’

자신의 마음을 현실에 구현할 정도의 음악이었다. 마법적인 것을 떠나 음악 자체만으로도 훌륭하기 그지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비틀스 음악을 부를 때만 해도 그럭저럭 잘 부른다는, 딱 그 정도에 불과했는데.

‘며칠 전에 고민하다가 사 둔 술이 어디 있더라.’

장미 정원이라고 했다.

마침 어울리는 술이 리어카에 있었다.

헨드릭스 진.

진은 간단하게 말해 곡류를 증류시켜 만든 것인데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싸구려부터 고급까지, 싼 건 대형 마트 주류 코너에서 7, 8천 원 내외로 구입할 수 있었다.

은후가 큰맘 먹고 산 헨드릭스 진의 가격대는 5만 원. 아직 투자금이 회수되지 않았기에 고민하다가 집은 술이었다. 나름 프리미엄 진이었다.

장미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술이기도 했다. 헨드릭스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었다. 장미 정원의 관리사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래서 술에서도 장미 향이 짙게 풍겼다.

‘더불어 오이도.’

오이 향은 왜 넣었는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아무렴 어때.’

은후가 잔에 얼음을 생성했다. 그리고 헨드릭스 진을 넣고 스트레이트로 마시기 시작했다. 장미 향이 은후의 입안을 적셨다.

실제로 음률을 따라 주위를 맴도는 장미 향기. 그 향기는 어느새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아주 희미했던 장미 정원이 꽤 선명해졌다.

‘마음에 들어.’

비틀스의 노래를 부를 때, 그때는 그냥 단순히 좋았다면, 지금 노래는 은후의 마음에 쏙 들었다.

노래에 어울리는 술, 잠시나마 현실이 되어 버린 장미 정원.

은후가 술잔을 흔들었다.

얼음이 녹아 옅어진 술에서 장미 향이 흘러나왔다.

* * *

고작 한 곡이었다.

하지만 그 곡을 부름으로써 기타 치는 귀신은 세상에서 사라질 뻔했다. 은후가 신경 써서 마나를 계속해서 공급해 주지 않았다면 몇 소절 부르지도 못하고 소멸했을 것이다.

“어우, 엄청나게 피곤하네요.”

“방금 죽을 뻔한 건 아시나요?”

“죽어요? 전 이미 죽었는데요?”

“귀신이라고 안 죽는 건 아니거든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멸이랄까요.”

기타 치는 귀신이 당황했다.

은후가 피식 웃으면서 아까 리어카에서 꺼내 두었던 다른 술잔에 헨드릭스 진을 따른 후 건네며 말했다.

“술 못하시는 건 아니시죠?”

“네.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정확히는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은후 앞에서 감정을 숨길 수 없는 귀신은 없었다.

“마시면 좀 괜찮아지실 거예요. 지금 엄청 지친 것 같고 막 어질어질하시잖아요? 게다가 이 술은 장미 정원을 모티브로 삼았거든요.”

은후의 말에 기타 치는 귀신이 잠자코 잔을 건네받았다.

“그런데 저, 음식을 못 먹는데요.”

은후가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잔을 부딪쳤다. 기타 치는 귀신은 속는 셈 치고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입안에 느껴지는 알코올. 그리고 퍼지는 장미 향. 약간의 오이 맛까지.

“귀신도 뭘 먹을 수 있나요?”

“그러니 권했죠.”

게다가 기타 치는 귀신에게 권한 술잔은 더욱 특별했다. 마나를 듬뿍 담았으니까. 심지어 감정 마나까지. 그리고 그 감정 마나는 기타 치는 귀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정확히는 마지막 장미 정원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 퍼졌던 감정들의 향연. 그걸 은후가 가공해 술에 부여했다. 그래서 기타 치는 귀신이 자신을 존재할 수 있는 데 더욱 힘이 되었다. 기타 치는 귀신은 가득 차오르는 힘을 실제로 꽤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감정까지도.

술에는 기타 치는 귀신이 노래를 부르며 느꼈던 감정까지 담겨 있었다. 그래서 기타 치는 귀신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과거를 말했다.

“저는요.”

“네.”

“저는 집이 참 싫었어요.”

“그런가요?”

“네. 차라리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되고 싶었죠. 왜냐하면 부모님은 개한테는 정말 잘해 줬거든요.”

기타 치는 귀신이 강아지를 자신의 근처에서 그르렁거리는 시바견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서 처음엔 동물을 싫어했어요. 저보다 잘해 줬으니까. 아, 그리고 아버지는 선생님이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참 중요시했고요. 그런데 부모로서는 영 빵점이었어요. 선생으로서도 그렇고요.”

뭔가 트집거리가 있으면 학생을 때리고.

“기분 풀이로 구타하고, 그런 선생 아시죠? 솔직히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뭣한데.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는 저에게 나름 잘해 주셨죠.”

그래서 아버지의 악행을 외면했다.

“제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던 어느 날 가정주부였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저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저를 밀치고서는. 아버지는 그 화풀이를 저한테 하시더라고요. 그거까지는 이해해요.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소위 말하는 재벌 3세였거든요.”

그리고 망나니였다.

“음주 운전이었는데요. 원망할 대상은 그 망나니 새끼인데, 분풀이를 할 수 없으니 저한테 한 거죠. 자연스레 손찌검도 하고. 개한테는 잘해 주고. 어머니가 저보다 좋아하셨으니까. 솔직히 어렸을 때 그게 참 질투 났거든요?”

어린아이는 사람들의 감정에 민감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그게 부모라면 더더욱. 그래서 기타 치는 귀신은 알았다고, 어머니는 자신보다 개를 더 소중히 여긴다는 걸.

“티는 안 냈죠. 언젠가 저를 더 사랑해 주시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그 개가 저한테 엄청 살갑게 대해서 어느 순간부터 미워하기도 그렇더라고요.”

하지만 그 전에 어머니는 죽었다.

아버지는 기타 치는 귀신에게 구타를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명분은 공부였어요. 제가 공부에 영 소질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원망의 화살이 저에게 온 거겠죠. 그 망나니 새끼한테는 뭘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개는 아꼈다고 했다.

“근데 웃긴 건 저를 구타하는 아버지를 집에서 기르던 개가 말렸다는 거예요. 말도 못 하는 개가요. 진짜 웃기지 않아요?”

그 때문에 화가 난 아버지는 개를 때려 죽였다.

기타 치는 귀신도 죽을 뻔했다고 했다.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왔어요. 한참을 헤매다가 장미 공원에 도착했고요.”

어느 봄날, 집에서 나와 정처 없이 헤매다 도착한 곳은 익산 배산체육공원의 장미 정원이었다.

“그때 장미가 만발해 있었죠. 그리고 음악도 흐르고 있었어요.”

그때 귀에 꽂힌 한마디 가사.

[하늘의 짙푸름처럼 네 인생도 그러하길

먹구름이 끼고

짓궂은 날이 있어도

결국에 다시 파란 하늘이 될 테니까]

“그 가사에 위로받고 그때 결심했죠.”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그래서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처음엔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했고, 다음엔 식당에서 불판을 닦았고. 사기도 참 많이 당했어요. 당시에 고등학생이었거든요.”

미성년자였기에 돈을 떼먹히기도 부지기수.

“가출로 신고당해 붙잡혀서 집으로 들어가기도 했는데요. 참, 아무리 제가 폭력을 당해서 죽을 뻔해 가지고 도망쳤다고 해도 경찰들은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도망쳤다.

그러다가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다.

방치된 폐건물.

“이름을 바꾸고, 제대로 된 신분을 증명할 수 없으니 아르바이트도 힘들고. 그러다가 여기 시바견을 만났어요. 그래도 도망칠 때 집에서 온갖 돈이 될 거 가지고 나왔거든요?”

이후 이곳에서 기타를 쳤다.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여기에서 작은 상처를 입었어요. 알고 보니 그게 파상풍이었더라고요. 근데 별 신경 안 쓰고 내버려 뒀는데.”

결국 죽었다. 곧 죽어도 병원은 가기 싫었기에.

위기를 감지했을 때는 너무 늦었다.

“병원에 가면 신분을 증명해야 하고. 그러면 다시 집에 끌려갈 거로 생각했거든요. 처음 다쳤을 때 약국에서 알코올이라도 사다가 소독이라도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작은 상처라고 무시했다.

“아, 진짜. 차라리 빨리 죽고 싶더라니까요, 어휴.”

파상풍에 걸리면 죽는 그 순간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기 마련이었다. 이는 파상풍의 특성 때문인데, 운동 신경은 마비되지만 감각 신경은 그대로 살아 있기에 그렇다.

우리가 흔히 겪는 근육 경련, 쥐가 난다고 표현하는 그 현상을 온몸으로 겪는다. 그리고 그 결과 몸이 원형으로 말리고 끝내는 호흡곤란으로 질식해 죽는다.

문제는 감각이 살아 있기에 이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모조리 겪는다는 것. 화상으로 죽는 것 못지않게 끔찍한 고통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얼른 죽고 싶었는데 그 와중에 생각나더라고요.”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기타를 치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고요.”

그런 끔찍한 고통 와중에도.

‘그래서 귀신이 되었는가.’

원한이 아니라, 절망이 아니라, 집념 때문에.

두서없이 말하던 기타 치던 귀신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은후는 묵묵히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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