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은후가 속으로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좀 반성해야겠는걸.’
단순히 마나를 투사하지 않고 마법을 썼다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현대라고 너무 얕보지 않았나 싶었다. 그런 은후를 임유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선배님?”
“어. 왜?”
“아무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쳐다보고 계세요?”
“아니야. 뭔가 있는 것 같았거든.”
“그래요?”
“응. 그런데 내 착각이었나 봐.”
호기심은 일었지만 당장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은후는 임유리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바깥으로 벗어났다.
‘딱히 큰 위험은 없는 것 같네.’
하기야 애초에 귀신이 물리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무언가 정말로 특별한 계기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러나 그마저도 한정된 힘이겠지.
“원래는 제일 분위기가 으스스하다는 3층에서 하려고 했는데 먼지가 너무 많더라고. 건강에서 안 좋을 것 같으니까 1층에서. 다들 괜찮지?”
다들 생각보다 별거 없는 건물 때문에 흥미가 뚝 떨어진 듯 동의했다.
“흉가라기보다는 폐건물? 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냐. 으스스한 그런 느낌도 없고.”
“그러니까. 예전에 강원도 갔을 때 거기가 장난 아니었는데. 오래됐다고 해서 기대할 게 아닌가 봐.”
“분신사바는 뭐 있으려나?”
“그걸 믿냐.”
“그래도 할 때는 이게 진짜다! 하고 해야지.”
그리고 이어진 분신사바.
하지만 은후의 예상대로였다. 혹시 몰라서 살짝 긴장하고 지켜봤지만 별거 없었다.
‘다만 흥미롭기는 하네.’
일종의 원시 마법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었다.
그걸 이세계에선 주술이라고 불렀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사람들의 믿음에서 탄생한 힘을 다루는 원시적인 방법이랄까.
‘따지자면 분신사바는 정령을 불러내어 대화를 나누는 법이겠지.’
필요한 건 일정한 형식과 재료.
그렇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위험 부담은 어쨌건 지식만 있다면.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이데 구다사이.”
주문을 외칠 때마다 미묘하게 대기의 마나가 흔들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흐름을 만들 수 없었다.
‘만약 흐름이 만들어졌다면.’
근처 귀신이 이끌렸을 것이다. 혹은 정령이.
예컨대 아까 낡은 기타에 깃들어 있는.
그때 분신사바에 참여하고 있던 양유찬이 외쳤다.
“오! 미, 미친! 진짜 펜이 움직인다!”
“정말?!”
하지만 은후는 속으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거 연기네.’
짜고 치는.
은후가 속으로 피식 웃으며 잠자코 임서혁과 양유찬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을 때, 임유리가 슬쩍 다가와 말했다.
“서, 선배님.”
“응?”
“저거 위험하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해?”
“진짜 귀신이 찾아온 거면 큰일이잖아요.”
얘도 은근 허당이고.
‘하기야.’
재능은 어디까지나 재능.
마나를 다루기는커녕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데 무엇을 바랄까.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곳은 현대였다.
‘점이야 타로 카드와 우연과 재능이 맞물린 것이고.’
은후가 은근히 불안해 하는 임유리에게 말했다.
“별일 없을 거야.”
아주 멀리서, 어디선가에서 닭이 울었다.
꼬끼오!
시간이 꽤 지났나 보다.
“뭐, 뭐야?”
“방금 들었어? 나만 들은 거 아니지?”
“어어.”
“귀신이 뭐 말한 건가?”
희미하게 들리는 그 소리에 연기하던 임서혁과 양유찬의 표정도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자신들이 하는 게 연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착각에 빠진 것이다.
‘재밌게들 노네.’
그 소리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은후뿐이었다. 너무 멀리서 다가온 소리였고 망가진 창문을 거쳤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게 닭 울음소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른 새벽이었다.
* * *
분신사바 이후 미리 예약해 두었던 식당을 찾았다. 익산 터미널 근처 골목에 있는 숨은 맛집으로 꽤 입소문이 퍼진 곳이었다.
“야야, 마지막에 진짜 소름 아니었냐?”
“그러니까. 그래서 건물도 괜히 오싹해 보이는 거 있지? 그 전까지 뭐 없었는데.”
아침 식사하면서 다들 술 한잔씩 가볍게 기울였다.
“오랜만에 어떠셨어요?”
“나쁘지 않았어.”
후배 임서혁의 질문에 은후가 가볍게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소주였다.
“크.”
“요란스럽게 마시기는.”
“다음에 또 같이 가요.”
“시간 되면.”
“고민 있으시면 좀 털어놓으시고요.”
은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맥주를 홀짝이던 임유리가 물었다.
“선배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있을걸? 그 좋아하던 게임도 접으셨거든.”
“저도 들어 드릴 수 있는데.”
“그냥 심경 변화가 생긴 거지.”
은후가 말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자 임서혁이 주제를 바꾸었다.
“아, 그나저나 이거, 보고서 쓰기 참 애매하네요. 나름 탐사 동아리인데 이번 메인은 솔직히 분신사바였잖아요.”
“이번 보고서, 굳이 안 써도 되는 거 아니에요? 따로 예산 타서 온 것도 아닌데.”
“그래도 공식적인 일정이잖아. 나름.”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선배도 한잔 받으세요.”
“나 참. 이래서 임원들만 고생이지.”
“정확히는 선배가 너무 신경 쓰는 거죠. 회장 선배만 봐도 진짜 일 대충 하는 것 같던데.”
일상적인 대학 생활 이야기에 은후가 추억에 잠겼다.
별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 * *
술자리는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다들 밤을 새웠기에 꽤 지쳤기 때문이다.
“그럼 선배님, 학교에서 뵈어요.”
“그러니까요. 밥 사 주신다고 한 거, 빈말 아니시죠?”
마지막까지 자신을 신경 써 주는 임서혁과 임유리에게 은후가 손을 흔들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구 농촌 진흥청 건물을 찾았다.
근처에 도착할 무렵, 은후는 마법을 써서 자신의 기척을 지우고 존재감을 감추었다. 그리고 아까 새벽에 봐 두었던 낡은 기타가 있는 3층을 찾았다.
‘확실해.’
귀신이 들린 기타였다.
그곳에는 처음에 은후가 건물에 마나를 투사했을 때 바로 도망갔던 개로 추정되는 동물이 있었다. 다만 은후의 눈에는 그 개가 퍽 특이해 보였다.
‘회복 마법?’
목과 얼굴 부위에 마나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던 탓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시바견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마법이라고 보기엔 너무 난잡한데.’
물론 마법이라고 하여 전부 정교하고 복잡한 건 아니었다. 때로는 단순하기도 했으며 일부러 어지럽게 의도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개의 목에 남은 흔적은 너무도 지저분했다.
‘마치 죽음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려다 반쯤 성공한 것처럼.’
그때, 기타 소리가 들렸다.
시바견이 짖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개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쇠가 내뿜는 같은 거친 소리와도 같았다. 이윽고 기타에서 희미하게 사람의 형상이 피어올랐다.
귀신이었다.
어디선가 들어 본 매우 유명한 곡이 기타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비틀스인가.’
‘예스터데이’. 너무도 유명했기에 은후도 알고 있는 곡이었다.
하지만 원곡과 미묘하게 달랐다.
‘좋네.’
귀에 거슬려야만 하는 개 소리가 기타 소리에 어우러졌다. 직접 듣지 못했다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로 잘.
“제 곡은 어땠나요?”
귀신이 은후에게 물었다.
“훌륭했습니다.”
은후가 모습을 드러내며 가볍게 박수 쳤다.
느닷없는 목소리에 시바견이 화들짝 놀랐다. 그런 시바견을 귀신이 살살 달랬다.
“괜찮아. 그런데 눈치채셨나요?”
“네, 시선이 가끔 제 쪽으로 향했으니까요.”
“하하.”
“그런데 어떻게 제가 있는 곳을 아셨나요? 보통 귀신이라면 눈치를 못 챘을 텐데요.”
“제 감각이 좀 민감해서요. 귀신에게도 감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외에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사람이 숨어 있다고 느꼈거든요.”
은후가 짐작이 가는 게 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쪽으로 능력을 얻은 건가.’
정령 중에도 특별한 개체는 있었다. 귀신도 정령의 한 갈래이니 특별함을 가지지 못하리란 법은 없었다.
‘처음에 기타를 감지하지 못했던 것도 그래서였겠지.’
자신을 숨기고 누군가를 감지하는, 일종의 은신과 관련된 능력이랄까.
“그런데 사람 맞으시죠?”
“사람 맞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고 계시네요. 별로 놀라시지도 않으시고요.”
“좀 재주가 있어서요.”
“그런가요. 혹시 저를 도와주신 거 맞나요? 보통 비 오는 날 아니면 한 곡 연주하기도 힘이 드는데.”
귀신이 굳이 은후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기타를 친 이유는 그런 착각 때문이었다. 일종의 작은 보답이랄까. 게다가 귀신이 된 이후 자신을 처음 알아본 사람이기도 했다. 또 처음에는 다른 이들과 함께였다. 그런데 굳이 다시 이곳을 찾았다.
“그건 아닙니다.”
“그래요?”
“네. 짐작 가는 게 없지는 않지만요.”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인간이 죽고 귀신이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의 믿음 때문이란 걸 아시나요?”
기타를 쳤던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몰랐습니다.”
“그래서 귀신의 힘 또한 사람의 믿음에 기반합니다. 참고로 아까 저와 함께 왔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압니다.”
“그들이 믿었죠.”
이곳에 귀신이 있으리라고.
물론 우연이 겹쳤던 덕분이다. 하필 분신사바를 하고 있던 도중에 멀리서 닭이 울었고, 그 소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으니까.
“순간적으로나마 강하게 믿었으니 그게 힘이 되었을 겁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지금 모습을 드러내고 기타를 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겠고요. 그리고 귀신이 되신지 좀 되신 모양인데요.”
“네. 시간 개념이 둔해져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1년은 넘었을걸요?”
“지금 현대에 귀신은 그렇게 오래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기타 쳤던 귀신이 별 탈 없이 존재하는 이유는.
‘소문.’
이 건물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그 믿음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까 술자리에서 듣기로는 소문이 꽤 오래전부터 퍼졌다고 들었으니까.
“아하, 그런데 그걸 어떻게 잘 알고 계세요? 퇴마사라도 되시나.”
“퇴마사는 아니죠. 그리고 퇴마사라면 지금 눈앞의 귀신을 퇴치하지 않을까요?”
“착한 퇴마사일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나쁜 귀신은 아니라서요. 인간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고요.”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기타를 좀 더 쳐 주실 수 있으실까요?”
“기타요?”
“네. 아까 연주 잘하시던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곡 더 치면 오늘은 잠들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좀 힘들 것 같네요. 이 아이와 좀 더 놀고 싶거든요.”
은후가 픽 웃으며 마나를 좀 나누어 주었다.
“어?”
“이번엔 제 도움이 맞습니다.”
귀신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신청곡 있으실까요?”
“비틀스 곡이라면 뭐든지요.”
잔잔한 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렛잇비’.
동시에 아까와 다르게 목소리까지.
‘좋구나.’
은후가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기타 치는 귀신에게 힘을 나누어 준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들었던 노래로부터 묻어나는 감정 마나. 그 감정 마나가 자신과 관련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흡수되는 마나는 양질이었다.
‘그런 생각은 뒤로 미룰까.’
시바견의 상처라거나.
궁금하지만, 그건 나중에.
은후가 리어카에서 술과 잔을 꺼냈다.
이제는 아무도 이용하지도 않은 오래된 폐건물에서 불후의 명곡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