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건물에 소문이 퍼진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비 오는 날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
굳이 비가 오지 않아도 들리는 쇳소리.
‘마치 목을 다친 짐승이 짖는 것 같다고 했던가.’
꽤나 구체적인 소문이었다.
하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은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현대는 귀신이 자연 발생하기란 지극히 까다로운 환경이지 않던가.
‘분신사바도 그렇고.’
아주 오랫동안,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퍼진 일종의 미신. 물론 그런 미신도 세월이 쌓이고 믿음이 모이면 진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분신사바를 믿는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
‘막상 직접 하는 당사자조차 장난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은후의 후배 임서혁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진짜로 귀신을 믿고 분신사바가 실제로 이루어지리라 여긴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건 다른 동아리 후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디 보자.’
은후가 구 농촌 진흥원 건물에 도착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귀신이 있을 수도 있는 법 아니던가.
‘기우였나.’
은후가 건물에 마나를 투사했다. 하지만 딱히 이상한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개가 한 마리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방금 도망쳤다.
‘내 마나를 느꼈나?’
조금 전까지 가만히 건물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마나가 투사되자마자 재빠르게 달려나간 걸 보면 반쯤 확실하지 않을까 싶었다. 딱히 은밀하게 마나를 투사한 것도 아니었고.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에 관해선 나중에 한번 따로 알아볼까.’
인간이 아닌 동물은 대개 좀 더 마나에 민감하기 마련이었다. 그건 이세계 또한 그랬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 그래도 본능적이나마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건 꽤 드문 일이었다.
‘적토마 같은 역사 속의 말이 그렇겠지.’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렇게 혹시 모를 위험을 확인한 후 마나와 인간 외 동물 간의 상호 작용에 관해 고찰하던 은후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형, 오셨어요? 꽤 일찍 오셨네요. 칼같이 약속 시간 맞추는 거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요.”
후배 임서혁이었다.
“어쩌다 보니. 날씨도 좋아서 산책도 할 겸.”
그 외에 이번 흉가 탐사 일정에 참여하는 동아리 후배들이었다. 개중에는 며칠 전 만났던 임서혁의 친구 양유찬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 이은후야. 04학번이고. 이거 괜히 내가 끼어들어서 민폐는 아닌가 모르겠네.”
“민폐라뇨. 전혀 아니에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으레 처음 만나면 나누는 인사를 은후와 후배들이 가볍게 나누었다. 그리고 대부분 은후의 외모와 왠지 모를 신비한 분위기에 호감을 느꼈다.
‘뭐랄까.’
다가가기 힘든 느낌.
은후와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안면이 있는 나예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저 기억나세요?”
“나예리?”
은후가 기억을 더듬었다.
“네. 아까 미리 서혁이한테 들었는데 진짜 많이 바뀌셨네요.”
“칭찬이지?”
“그럼요.”
“너도 많이 바뀌었다?”
“저요?”
나예리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많이 티 나요?”
“마지막으로 본 게 1년 전이었지?”
“그렇죠.”
“그때보다 20킬로그램은 넘게 빠진 것 같은데, 티가 안 나면 안 되지. 그러면 억울할 거 아니야. 확실히 살 빼니까 인물이 사네.”
“그러는 선배는 저보다 더 심한 것 같은데요, 그으.”
나예리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흘렸다.
“얼굴에 손대신 것도 아니라고 들었고요.”
“댔을 수도 있지.”
은후가 피식 웃으며 일부러 말을 모호하게 돌렸다.
“손대신 거예요?”
“글쎄다.”
본디 사람은 믿고 싶은 걸 믿는 동물이 아니던가. 은후는 괜히 자신의 얼굴을 두고 이래저래 입씨름하기 싫었다. 당장 눈앞의 나예리도 멋대로 착각한 것 같고.
‘이게 정상이지.’
임서혁의 경우가 특이 케이스고 말이다. 뒤에서 임서혁이 나예리에게 무어라 말하려던 걸 은후가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렸다.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일단 탐사부터 해야겠지? 나는 적당히 뒤에 빠져 있을 테니까 내 눈치 보지 말고 하던 대로 해.”
동아리의 총무이자 실질적인 리더인 임서혁이 외쳤다.
“혹시 모르니까 두 명씩 짝지어서 들어갈 거야. 아까 제비뽑기로 결정했던 대로. 혹시 모르니까 다시 말하자면 처음은 나랑 예리가. 그다음은…….”
은후 포함하여 이 자리에 있는 건 총 여덟.
“……마지막으로 은후 선배님이랑 유찬이가. 분신사바는 건물 쭉 둘러보고 할 거고.”
짝궁을 정하는 건 미리 제비뽑기로 할 거라고 임서혁이 은후에게 문자를 했었다. 은후에게 있어서 그런 건 별 중요한 게 아니어서 그러라고 했었다.
“혹시 질문이나 불만 있는 사람?”
“저요.”
긴 머리카락에 흐릿한 눈동자를 가진 임유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임서혁이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짝궁에 불만 있어?”
“하나한테 불만은 없는데요, 은후 선배님이랑 같이 들어가 보고 싶거든요. 물론 은후 선배님이 허락한다면요. 그러면 안 될까요?”
“왜?”
“관심 있어서요. 참고로 하나에게는 방금 말했는데 괜찮다고 했어요.”
임유리의 말에 주위 애들이 오오, 하면서 샤랄라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하나야, 맞아?”
“네. 맨날 얘랑 붙어 다니는데 한 번쯤 떨어져도 괜찮죠.”
“선배님은요?”
“나도 상관없어.”
은후가 동의를 표하자 그 자리에서 짝궁이 바뀌었다. 그러자 양유찬이 불만스레 외쳤다.
“야! 나는?”
“너는…… 중요한가?”
“아 씨.”
“그래서 싫다고?”
“그건 아닌데. 그래도 물어는 봐야 하는 거 아님?”
“어, 아님.”
서로 싸우거나 진심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건 아니었다. 너무 친했기에 서로 장난스레 투닥거리는 것일 뿐. 그 말투나 장난스러운 티가 팍팍 났기에 다른 동아리 사람들도 그냥 웃고 말았다.
“야, 너 저번에 하나한테 관심 있다고 했잖아.”
“그걸 기억함?”
“그래. 그러니까 제비 좀 잘 뽑지.”
“그게 내 맘대로 되냐.”
“그러니까 이번에 잘해 봐라.”
임서혁과 양유찬이 서로 속닥였다. 매우 희미한 목소리임에도 은후에게 있어서는 마치 근처에서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은후가 가까이 다가온 임유리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임유리입니다.”
“인사는 아까 했잖아?”
“그건 단체로 한 거니까 다시 개인적으로 인사드리는 거예요.”
“예의가 바르네.”
“감사합니다.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뭔가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맹한 느낌과 다르게 할 말은 똑바로 하는 타입 같았다.
“그런데 왜 짝궁 바꿔 달라고 했어?”
“진짜로 관심이 있어서요.”
그 말에 은후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이성적인 호감이 아닌 신기함이었으니까. 그래서 잠깐 고민하다가 대놓고 물었다.
“무슨 관심? 이성적으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감.”
“감이 좋으시네요.”
임유리가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저 안면 인식 장애거든요.”
“응?”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침대에서 떨어져서 크게 머리를 다친 적이 있어요. 다행히 목숨에 지장도 없었고 별문제 없는 줄 알았죠.”
하지만 임유리는 훗날 알게 되었다. 자신이 안면인식장애라는 걸.
“사람의 얼굴이 전 다 비슷비슷해 보여요. 남녀 구분 정도는 되는데요. 하여간 그래서 사람을 알아볼 때 목소리나 복장 분위기 같은 거로 구분하거든요? 가까이 있으면 냄새로도 대충 알 수 있고요. 처음에 다른 사람들도 그런 줄 알았고요.”
그런데 살아 보니 아니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자신이 안면 인식 장애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그런 거 쉽게 말해도 돼?”
“딱히 비밀도 아닌데요, 뭐. 저랑 친한 애들은 전부 알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그게 나한테 온 거랑 무슨 상관인데?”
“선배님 얼굴이요.”
“어.”
“그, 엄청 뚜렷하게 보여요.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 대화 좀 나눠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냄새도 엄청 좋았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건 조금 부끄러웠기에 임유리는 거기까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게 끝?”
“네, 다예요.”
은후는 임유리에게 그냥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납득이 가능할 만한 이유였기에. 그래서 한동안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취미는 타로요. 그림이 예뻐서 관심 가지게 되었죠. 선배님은요?”
“나는 산책? 예전에는 게임이었는데. 그런데 타로로 학교 내에서 되게 유명하다며?”
임유리는 그 대화 속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안면 인식 장애라는 말을 솔직히 바로 털어놓았음에도 은후가 자신을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병을 알고 나면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인데. 모두가 그랬다. 자신은 전혀 아닌데. 딱히 불편한 것도 없는데. 이게 일상인데. 그런데 은후는 아니었다.
‘신기한 사람.’
얼굴뿐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그리고 왠지 모를 편한 느낌이었다.
“제 카드가 좀 잘 맞거든요. 따로 열심히 공부도 했고요. 선배님도 언제 한번 봐 드릴까요?”
“나는 됐어.”
그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은후 또한 임유리에 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마나 적응력이 엄청 높아.’
무언가 계기만 있다면 마나를 인식하고 본능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일종의 재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후천적으로 사고를 겪으며 안면 인식 장애라는 병과 함께 얻은 재능인지는 모르겠지만.
‘타로 카드가 잘 맞는다는 것도 그래서일 거고.’
게다가 타로 카드 또한 그 역사가 길었다. 또한 분신사바와 다르게 그 믿음도 상당했고.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그러니 타로 카드로 점을 보는 행위 자체에 힘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게 임유리의 재능과 맞물렸을 터.’
물론 미래를 내다본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행위였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틀리거나 다를 확률이 엄청나게 높겠지만.
‘개인에 한정한다면.’
또 디테일하지 않고 두루뭉술하면서도 일반적으로 들어맞는 보편성을 가지고 예언한다면 괜찮은 예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쟤는 이세계였다면 마법사로 대성했을 수도 있겠는걸.’
그 재능을 탐낸 이들이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꽤 이런저런 다툼이 일어날 정도의 재능이었으니.
“선배님, 곧 저희 차례예요.”
“그러네.”
“그나저나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져서 좀 기대했는데 별거는 없나 보네요.”
“귀신을 믿어?”
“반쯤은요.”
임유리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을 믿는데 분신사바를 준비했어?”
“의견은 제가 낸 게 아닌걸요. 전 반대했다고요.”
“그래?”
“네, 그래도 금기만 잘 지키면 크게 위험한 건 없을 것 같아서 극구 말리진 않았는데요.”
은후가 혹시 몰라 은근슬쩍 떠봤지만 딱히 임유리 본인이 능력자와 얽히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응?’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폐건물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정령?’
그러니까 귀신.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아.’
착각 아닌 착각이었다.
‘정령이 깃든 물건이 있었군.’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기타였다. 하지만 존재감이 너무나 희미했다. 마치 은폐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랬기에 아까 마나를 투사했어도 감지되지 않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