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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41화 (41/170)

제41화

은후와 공원의 수호령 그리고 개구리는 공원 바깥 근처를 산책했다. 치킨을 뜯으면서.

“나, 가까이서 자동차가 달리는 거 처음 봐!”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허공에는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와 양념 소스 그리고 치킨 무와 콜라가 둥둥 떠 있었다. 다만 비는 그 주위를 비껴가고 있었다. 개구리가 물 한 방울 튀지 않게 신경 쓰고 있던 덕분이었다.

“정말?”

“응, 주차장에 멈춰 있는 거랑 멀리서는 봤는데.”

개구리가 혓바닥으로 날개를 날름 가져가며 말했다.

“난 치킨 먹는 거 처음이야. 근데 되게 맛있다. 천도복숭아만큼은 아니지만.”

“애초에 천상과 지상의 음식을 비교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

“그런가?”

“당연하지. 그리고 천도복숭아는 천상에서도 엄청나게 맛있는 거라며.”

지나가는 누군가가 봤다면 정말 기가 막히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강아지만 한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면서 어린아이와 이야기하는 모습이라니.

‘내가 없어도 딱히 상관은 없으려나.’

애초에 일반인이 이 개구리나 공원의 수호령을 볼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냠냠.”

치킨을 오물거리며 연신 주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수호령. 그 뒤를 폴짝거리며 뛰는 개구리.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잠자코 뒤를 따랐다.

* * *

즐거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고 하던가. 공원 주위를 산책하고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던 은후는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임을 깨달았다.

“간다.”

“벌써?”

“약속이 있거든. 아, 그런데 가기 전에 하나 묻자.”

“나?”

은후가 고개를 저으며 개구리를 눈으로 가리켰다.

“뭔데?”

“혹시 서울까지도 이동할 수 있어?”

“비가 내린다면. 예전에 내 집 연못이랑 한강을 연결해 뒀었거든.”

“수호령은?”

개구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기까진 나도 힘들어. 전국에 비가 왕창 팍팍 내린다면 어찌어찌 가능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그러다가 비의 세기가 약해지거나 그치기라도 한다면 수호령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그런가.”

“그렇지.”

개구리가 씁쓸하게 웃었다. 수호령이 난 괜찮다며,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개구리를 달래며 은후에게 눈동자로 고맙다는 의사를 표했다.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며칠간 천도복숭아 씨앗을 연구하며 나온 의외의 결과를 접목한다면.

‘좀 더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은후는 말을 아꼈다. 기대를 심어 줬다가 연구 결과가 좋지 않다면 실망도 클 테니까.

‘일단 개구리가 수호령을 공원 바깥에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원리를 어떻게든 확실하게 알아야겠는데.’

방금 산책에서 자세히 살펴봤지만 감이 잘 잡히질 않았다. 개구리가 말하길 그냥 본능적으로 자연스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번 시도해 봤고, 그리고 성공했다고 하는데.

‘뭐.’

개구리에게 그런 원리까지 알기를 바라는 건 무리니까. 그래도 가능성을 본 게 어디인가.

“그럼, 나 간다.”

“잘 가! 조만간 또 놀러 와야 해!”

수호령의 눈동자에 잠시 쓸쓸함이 머물렀다. 하지만 예전처럼 계속해서 은후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어진 건 아니었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은후는 그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쁨이 더 컸다. 은후가 언제나 항상 수호령의 곁에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비단 천 나침반이 정말로 도움이 되었어.’

나침반이 아니었다면 이런 인연을 맺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나저나 언제 또 작동하려나.’

개구리와 같은 인연은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보물도 좋고.’

다만 개구리와 만난 이후 비단 천은 힘을 잃었다. 척 봐도 천이 머금었던 마나의 상당량이 사라졌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직접 마나를 불어넣자니 불안해서 그럴 수는 없고.’

비단 천 나침반은 사람의 손길을 거친 마나를 거부했다. 그래서 은후는 잠깐 시도해 보고 금방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부분 또한 은후의 연구 거리에 추가되었다.

‘여기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약속했던 PC방에 도착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살폈다.

‘PC방이라.’

참 오랜만이었다. 한때는 PC방 죽돌이이기도 했었는데.

‘서혁이랑도 자주 왔었지.’

이곳도 그랬다.

새로 생긴 PC방이지만 은후에게 있어선 과거의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은후는 PC방 입구에서 카드 키를 집어 들고 주위를 살폈다.

‘찾았다.’

은후도 한때 즐겼던 유명한 AOS 게임이었다. 잠시 뒤에서 후배가 게임 하는 걸 지켜보던 은후가 말했다.

“거기서 스킬 샷이 좀 그랬다?”

“아 씨, 안 그래도 한 타 져서 게임 조져서 짜증…… 어?”

은후의 동아리 후배 임서혁이 화를 내려다 멈칫했다.

“저어, 은후 형?”

“뭘 처음 본 사람처럼 굴어.”

“형 맞아요?”

“맞아.”

임서혁이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임서혁의 친구가 말했다.

“야, 네가 말했던 그 선배야?”

“어, 어어. 은후 선배가 맞는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서혁이 같은 과 동기 양유찬이라고 합니다!”

“서혁이 동아리 선배 이은후야. 그런데 목소리가 좀 크다.”

“죄송합니다.”

“새벽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잖아. 그리고 그렇게까지 각 잡을 것도 없는데.”

양유찬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그게?”

“너무 잘생기셔서요.”

“그래서?”

“하하, 그게요. 솔직히 말하면 선배님께 잘 보이면 떡고물이라도 좀 떨어질까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잘생기셨으면 주위에 예쁘신 분들도 많을 거 아니에요? 요즘 저 진짜 외롭거든요. 나중에 친해지면 소개 좀 부탁드릴까 싶어서.”

정말로 솔직한 후배 친구의 말에 은후가 피식 웃었다.

“별로 없어.”

“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

“진짜야.”

진지한 은후의 말에 양유찬이 임서혁에게 물었다.

“선배님 말씀 구라지?”

“구라는 아닐걸. 얼굴이 너무 바뀌셔서.”

“바뀌어?”

“어. 무지막지하게.”

“참고로 성형은 안 했다.”

“무슨 인형설삼이라도 드셨어요? 아니면 공청석유?”

무협지 마니아다운 임서혁의 비유에 은후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임서혁이 은후의 얼굴을 이모저모 뜯어보며 말을 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은후 선배 확실하게 맞네요. 말투도 그렇고.”

예전과 달라도 너무 달라진 모습을 은후도 자각하고 있었기에 준비한 변명을 꺼내 들었다.

“그냥 푹 쉬고 운동 좀 하다 보니 얼굴이 바뀌더라고.”

“그게 말이 돼요?”

그냥 적당히 우기는 것.

“말이 안 될 건 뭐냐. 예전에 내 몰골이 좀 그랬잖냐. 피로에 찌들어서. 게다가 살도 좀 많이 빠졌어.”

“아니, 그래도 그렇지. 차라리 성형했다고 하시면 쉽게 납득이 될 텐데.”

“그렇게 생각하려면 생각하고.”

“형 말을 안 믿는다는 건 아닌데요. 근데 동아리 애들은 안 믿을지도요.”

“맘대로 생각하라고 해. 걔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별 관심 없으니까.”

은후의 대답에 임서혁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는 자신의 평판에 꽤 신경을 쓰셨던 것 같은데.’

말뿐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관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곧 9시다?”

“아.”

은후가 옆자리에 앉아서 PC방 입구에서 가져온 카드의 번호를 누르고 로그인했다.

“형, 형.”

“왜?”

“모레 동아리 일정 같이 가실래요?”

“4학년이 가면 민폐지.”

“에이, 그러시지 말고요.”

은후와 임서혁이 든 동아리의 이름은 탐사. 이름 그대로 탐사하는 동아리였다.

메인은 크게 둘, 동굴과 흉가.

때로는 일반적으로 갈 수 있는 동물원이나 놀이동산으로 가기도 했다. 물론 후자의 경우엔 단순히 놀러 가기 위함이었고 적당히 명분을 가져다 붙이긴 했지만. 예컨대 동물원의 경우 동물 생태 탐사라든가, 놀이동산의 구조를 알아보기 위한 학술 탐구 목적이라든가.

‘전설은 남극 탐사였지.’

어떻게 학교를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식적인 지원을 받아서 남극 탐사를 다녀온 위 기수가 있었다. 남극 탐사는 동아리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전설로 남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은후도 부푼 꿈을 안고 동아리에 들었었다.

‘결국 남극은 못 가 봤지만.’

게다가 은후의 경우는 좀 예외지만 보통 4학년은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후배들의 눈치도 그렇지만 취업이란 현실에 대부분 바쁘기 마련이었으니까.

“혁아.”

“네, 형.”

“일단 수강 신청에나 집중해라.”

“그 정도 멀티태스킹은 가뿐하죠. 그러니까 내일 어떠세요?”

“아니.”

무어라 한마디 하려던 은후가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어째서 후배가 자신에게 그런 권유를 이리도 적극적으로 하는 이유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경 쓰였냐?”

“네? 뭐가요?”

걱정.

“내가 게임 접었다고 한 거.”

“하하, 좀 뭐, 그렇죠. 형 스트레스 푸는 수단이 게임이잖아요. 그리고 원체 좋아하기도 하셨고. 그런 형이 게임을 접을 정도로 뭔가 사건이 있지 않나 해서요.”

“그다지. 무슨 일……이 있긴 했다만.”

자신만 기억하는 미래를 겪고, 이세계로 건너가고, 복수를 끝마치고 시간을 거슬러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일이.

“그러니까요. 기분 전환으로 같이 가자는 거죠. 흉가 탐사 끝나고 술도 한잔 같이 하시면서 이야기도 좀 하고요.”

“이번 탐사 주제는 흉가야?”

“네, 그리고 후배 중에 오컬트 좋아하는 얘가 있는데요. 흉가 탐사하면서 분신사바도 해 보는 게 어떻냐고 하더라고요. 재밌을 거 같지 않아요?”

다른 의도도 아니고 순수한 걱정에서 비롯된 후배의 배려였다. 그래서 은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나지막한 은후의 대답에 뭔가 쑥스러운 나머지 임서혁이 일부러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결국 같이 가실 거면서 튕기시기는. 그럼 매력 없다니까요?”

“너한테 매력 있어서 뭐 하게?”

“에헤이, 또 그러신다.”

“야.”

“뭐?”

“은후 선배님 정도면 저렇게 하셔도 충분히 매력 있으실 거다. 근데 거기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냐?”

임서혁이 픽 웃으며 친구 양유찬에게 대꾸했다.

“흉가 같은 거 관심 없다며?”

“분신사바는 관심 있거든. 갑자기 생각났는데 분신사바 꺼낸 후배가 너랑 같은 임씨 아님?”

“맞아, 유리.”

“걔가 진짜 용한 점쟁이란다.”

“점쟁이? 아. 타로?”

“어. 카드가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고 소문 자자하더라고. 그러니까 분신사바에서도 뭐 볼 수 있지 않겠냐?”

임서혁이 어깨를 으쓱인 후 답했다.

“크게 기대하면 재미없을 텐데. 뭐, 너도 일단 동아리 명부에 이름은 올라가 있으니까 딱히 문제 될 건 없을 테니 알아서 해.”

“쟤도 우리 동아리에 들었었어?”

“네. 이름만 올리고 활동은 거의 안 해서 형은 모르실 거예요. 술자리에 몇 번 나온 게 다라서.”

“못 본 건 타이밍이 안 맞아서 그랬나 보네. 그나저나 수강 신청은 성공했고?”

임서혁이 씩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저도요. 노리던 교양 하나 놓치긴 했는데, 나머진 다 건졌으니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죠. 수요일이 좀 꼬이긴 했는데.”

하기야, 다들 수강 신청을 몇 번이나 해 봤을 텐데.

그건 은후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이틀 후.

은후는 본가에 내려온 상태였다. 일전 후배로부터 받은 제안인 흉가 탐사의 위치가 익산이었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어머니와 시간도 보낼 겸.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하고. 동아리 활동 주제가 흉가 탐사라면서?”

“네. 동아리 애들도 같이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오래된 건물이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할게요.”

예전이라면 잔소리라 느꼈을지도 모를 어머니의 말씀. 하지만 지금은 마냥 좋았다. 그렇게 은후는 어머니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다소 이른 시간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동산동, 구 전라북도 농업진흥원의 건물.

‘1988년 이래 쭉 방치되었다고 했던가.’

확실히 오래되기는 했다.

‘그나저나 최근에 소문이 쫙 퍼졌다고 했던가.’

건물에 귀신이 나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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