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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39화 (39/170)

제39화

빗소리에 리듬이 생겼다.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

그 정도도 위치마다 미묘하게 달랐다.

개구리 바로 근처에서는 조금 약하게, 다소 떨어진 곳은 강하게. 또 어딘가에서는 아예 내리지 않은 공간도 생겨났다. 그 때문에 빗소리의 울림이 달라졌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하늘이 노래를 하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얽히고설켰다. 그때 은후는 깨달았다. 개구리가 음악을 만들고 있구나.

‘거참.’

개구리의 울음소리에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덩실덩실 움직이는 행위는 춤이 분명했다. 그렇게 한동안 개구리가 자아내는 음악과 춤사위를 감상하던 은후 근처에 한 동자승이 나타나서 외쳤다.

“스승님!”

“무슨 일이냐?”

“여기! 여기 한번 봐 보세요! 여기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요!”

“오호, 자연은 신비롭다더니.”

며칠 전 아침에 만났던 스님과 어린 동자승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개굴개굴(불쌍한 아이야).”

갑작스러운 개구리의 말에 은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불쌍해?”

“개굴(몇 년 전에 부모가 이 절에 버리고 갔거든).”

개구리는 빗소리의 리듬에 맞춰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짤막한 울음소리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은후에게 전달했다.

“저 아이에게 조그마한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은데.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도움이라.

“어떻게?”

“내 소리를 저 아이도 들을 수 있게끔 힘 좀 써 주면 좋겠어. 그 정도 능력은 있는 인간 같은데 말이야.”

“내가 그래야 할 이유는?”

“이유는 없지. 하지만 꼭 이유가 필요한가?”

“필요하지.”

왜냐하면 은후는 마법사였기에.

은후가 잠시 고민하다 툭 내뱉었다.

“마음이 움직였다고 할까.”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라고 했다.

측은지심. 그리고.

‘저 스님과 작은 인연도 있으니.’

석등에 관한 이야기. 공짜로 대접받은 아침밥.

‘그 정도 이유면, 뭐.’

충분하지 않은가 싶었다.

요령은 간단했다. 일전에 정령의 모습과 목소리를 일반인에게 보이고 들리게끔 했던 것처럼.

“모습도 보이게 할까?”

“잠깐뿐이라면. 저 동자승에 한정해서.”

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를 움직였다.

개구리가 비를 조정했다.

동자승과 늙은 스님이 있는 곳에 비가 내리지 않게 되었다. 그 신기함에 동자승이 깜짝 놀랐다.

“스, 스승님!”

“허허, 부처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구나.”

그리고 잠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요!”

두 스님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

동자승의 경우엔 개구리의 모습까지.

정말로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환상이라도 본 게 아닐까 싶었다.

“스, 스승님도 보셨어요?!”

“무얼 말이냐?”

“개구리요, 개구리! 진짜 큼지막한 개구리가 방금 보였어요!”

동자승이 양팔을 벌리며 흥분에 차 외쳤다.

“허허, 그 전설이 진짜였나 보구나.”

“전설이요?”

“그래. 내 스승님께서 들려준 이야기인데. 내가 이야기해 준 적이 없든?”

“없었어요!”

빗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개구리가 노래와 춤을 멈췄다.

이내 스님들이 있는 곳에도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거세지는구나. 우산을 써도 몸이 많이 젖겠어.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전설 이야기는요?”

“안으로 들어간 뒤 몸을 데우면서 이야기해 주마. 잘못하면 감기 걸린다, 인석아.”

두 스님이 등을 돌렸다.

개구리가 울었다.

개굴개굴.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지며 두 스님을 배웅했다. 다만 아까와 다르게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 * *

두 스님이 건물로 완전히 사라진 후, 개구리는 은후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은후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일종의 워프 게이트인가.’

석등에 일렁이는 빛은 은후가 알고 있던 워프 게이트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원리는 거의 비슷한 것 같았다.

‘연구할 거리가 더 늘었네.’

도착한 곳은 석등 안에 조성된 공간이었다. 얼마 전 스님이 말해 주었던 전설과 똑같은 광경이 은후의 눈앞에 펼쳐졌다.

얕은 호수. 검푸른 하늘. 그리고 달과 별.

다만 하늘은 인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언뜻 보면 자연과 똑 닮은 것 같으나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했다.

‘석등을 매개체로 아예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군.’

그것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마법사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그건 너무도 아름다운 일종의 예술 작품으로 보였다. 단순히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은후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재료와 시간과 노력만 들어간다면.

하지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이러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은후의 표정을 보고 있던 개구리가 물었다. 바깥과 달리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서.

“아름답지?”

“확실히. 원리가 짐작도 안 가는군.”

“응? 원리?”

“하기야 신의 힘에 합리를 바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

은후가 이 공간이 가지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마법사의 관점에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제야 개구리는 은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리고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풍경을 바라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게 아니었어?”

“물론 풍경도 아름답지. 하지만 그것보다 아름다운 건…….”

“됐고.”

“하여간 무식하기는.”

“무식은 무슨.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있다고?”

은후가 픽 웃었다.

“그건 그렇지. 그래서?”

“응?”

“날 초대한 이유는?”

“그놈의 이유는 꼭 필요해? 아까도 이유를 굳이 가져다 붙이던데.”

“마법사니까.”

“흐흥, 마법사라.”

개구리가 은후를 초대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래서 좀 도움을 구할까 싶었지.”

“도움?”

“그래, 도움. 나는 원래 용이 되고 싶었거든.”

“들었어.”

“응? 누구한테?”

“한 스님에게.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은후가 개구리에게 스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러자 개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맞는 말이네. 빠진 이야기는 좀 있지만. 참고로 날 구제해 주신 분은 지장이셔. 좀 엄하시지만 따뜻하신 분이지. 인간도 아닌 축생에게도 손길을 뻗치는 분이시기도 하고.”

지장보살. 이승에서 터를 닦고 중생을 구제하는.

“여전히 용이 되고 싶어서?”

“글쎄.”

이제는 잘 모르겠다.

“지장께서 말씀하셨지. 집착을 버리고 우뚝 솟은 산만큼 덕을 쌓으라고. 그러면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버리고자 하는 것부터가 이미 집착인데.

“계속 버리려다 보니 잘 모르겠더라고. 지장께서 날 놀리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닐 텐데.”

개구리가 한참을 생각하다 폭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이제는 아무렴 어떤가 싶기도 해. 덕을 쌓는 건 계속하고 싶지만. 그건 기분 좋은 일이거든.”

문제는 덕을 쌓을 길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하고 인간의 믿음이 흐려졌지. 그 여파로 나와 같은 괴력난신은 설 곳을 잃었거든. 알지?”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힘을 쓸 수 없으니 어디 덕을 쌓을 길이 있나.”

개구리의 경우 존재를 유지하는 건 문제가 없었으나, 인간에게 힘을 쓰기가 힘들다고 했다. 일반인에겐 목소리를 전달하거나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어려워졌다고.

“홀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거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덕은 남을 구하고자 하는 데에 있어.”

“그래서 도와 달라?”

“응.”

“내가 왜?”

“그러게.”

개구리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은후가 픽 웃었다.

“딱히 못 도와줄 이유도 없지.”

“정말?”

“악행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덕을 쌓고자 함이라고 했으니까.”

“도와주는 거야?”

“글쎄.”

애매한 은후의 태도에 개구리가 은후를 향해 폴짝 뛰었다. 그리고 부딪히기 직전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칫, 재미없네.”

“협박이나 공격으로는 안 보였거든.”

게다가 설령 진짜 공격이라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놀라지도 않고.”

“1,000년도 넘게 산 개구리인데 그 정도 재주는 있을 수도 있지.”

“으으.”

“또 숨긴 재주 있으면 보여 줘 봐. 그럼 놀랄 수도 있지?”

“……칫.”

개구리가 고개를 픽 하고 돌렸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은후의 눈치를 살핀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절엔 왜 왔어? 우연히 방문한 건 아닌 거 같던데. 내 집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거 보면.”

“그게 보였나?”

“보인 건 아니고 느꼈지. 집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었으니까. 보통 인간은 잠깐 머문 후 떠나기 마련이니까.”

은후는 잠깐 고민하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선한 개구리인 건 확실한 것 같으니.’

조금 전 어린 스님에게 보여 준 측은지심, 그리고 덕을 쌓고자 한다는 말, 그건 모두 진심이었다. 정령이나 다름없는 개구리였기에 그 말이 사실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오, 아직도 나 외에 세상에 괴력난신이 꽤 남아 있었구나. 그나저나 호수에 사는 아이의 수호령이라. 정말 친구가 되면 좋겠다.”

“그런데 너도 이 근처에서 못 벗어나는 거 아니야?”

“흐흥, 그런 건 아니지.”

“뭔가 또 재주가 있어?”

“그럼.”

물이 일정 이상 고여 있는 곳이라면 길을 연결할 수 있다고.

“연못에 비축해 둔 힘이 많이 약해졌긴 했지만, 그래도 서너 번 정도라면 어떻게든 될 거야. 너무 먼 곳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네가 말한 위치 정도라면야.”

“그런가.”

“그래서 소개해 줄 거야?”

“누굴?”

“그 아이의 수호령 말이야. 비슷한 친구가 있었으면 해서 날 찾아왔다며? 친구가 필요한 이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것도 덕을 쌓는 일이니까. 그리고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고.”

개구리의 눈빛에 쓸쓸함이 감돌았다.

“예전에는 나도 친구가 꽤 많았다고. 다들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서 그렇지. 하기야 나도 지장님 아니었으면 골골거리고 있거나 진즉 죽었을 테니까.”

시대의 흐름에 따른 사멸. 그건 인간의 믿음에서 태어난 요괴의 숙명이었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용이 되고자 했던 개구리의 경우가 다소 예외적인 케이스였을 뿐.

“그나저나 이야기하다 보니까 인간은 물론이고 우리 같은 괴력난신을 네가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응, 괴력난신도 생명이니까. 그 생명을 돕는 일 또한 덕을 쌓는 일 아니겠어?”

“나쁜 괴력난신이라면?”

“그럼 멸해야지. 모든 괴력난신을 돕자는 건 아니야. 오히려 악에 물든 이라면 구제해야만 해. 같이 덕을 쌓지 않을래?”

악이라.

개구리가 말하는 악은 무엇일까. 악도 관점에 따라서 선이 될 수도 있는 법인데. 하지만 말하는 걸 보아하니 개구리는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하게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이에 관한 건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은후가 잔잔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덕을 쌓는 일에는 관심이 그다지 없지만 친구를 도와줄 수는 있지.”

은후의 말에 개구리가 웃으며 물었다.

“우리 친구 할까?”

“앞으로 네가 하기 나름이려나.”

은후의 말에 개구리가 슬그머니 눈치 보며 다시 말했다.

“지금부터는 안 돼?”

“안 될 건 없는데. 좋아. 하자, 친구.”

은후의 흔쾌한 대답에 오히려 개구리가 당황했다.

“정말? 앞으로 내 하기 나름이라며.”

“그럼 거짓말일까. 그래서 싫다고?”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으, 까칠하기는.”

개구리가 구시렁구시렁하다가 은후에게 말했다.

“그럼 가 볼까?”

“어디로?”

“네가 말한 공원으로. 내가 꿍쳐 둔 천도복숭아가 좀 있는데 말이야. 오늘 만남을 기념해서 꺼낼까 했는데, 그 아이의 수호령 친구랑도 같이 나눠 먹고 싶거든.”

“벌써 친구인가? 만나지도 않았는데.”

개구리가 웃었다. 그리고 사람의 형상에서 다시 개구리 모습으로 변한 뒤 호수로 폴짝 뛰어들었다.

“빛나면 들어와.”

이윽고 연못에 워프 게이트가 열렸다. 덕진공원 호수로 가는.

“어?!”

강아지만 한 개구리가 덕진공원 호수에 나타났다. 호수 근처에서 놀고 있던 공원의 수호령이 깜짝 놀랐다.

“네가 걔야?”

“개, 개구리가 말을 한다?!”

이윽고 뒤따라온 은후가 수호령에게 손을 흔들었다. 수호령이 은후에게 쪼르르 달려가 외쳤다.

“은후다! 그리고 저기! 말하는 개구리가 있어!”

“별일 없었지?”

“응응, 없었지. 그런데 저기, 저기!”

“거참, 개구리 말하는 거 처음 보나.”

수호령이 은후의 뒤에 숨어서 고개를 삐쭉 내밀며 외쳤다.

“처음 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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