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도깨비가 어깨를 으쓱한 후 말했다.
“보물이나 인연을 찾아 주는 나침반이여.”
“보물은 그렇다 치고 인연이요?”
“그렇제. 원래는 보물만 찾아 주는 물건이었는데 방망이로 때렸더니 그렇게 바뀌어 버렸스. 카! 더 멋져지지 않았나?”
인연을 찾아 주는 기능이라.
낭만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은후는 도깨비의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게다가 그 보물은 나침반을 손에 쥔 이가 꼭 필요한 걸 찾아 준다우. 꽤 높은 확률로.”
“그것도 저기 있는 게 도깨비방망이 때문인가요?”
“오. 알아보는구만.”
도깨비방망이. 일종의 요술봉.
“원래는 쇠몽둥이였는데 어느 순간 홍두깨로 바뀌어 버렸스. 거기 인간 선생은 쇠랑 나무 어떻게 좋은가?”
“딱히 선호하는 건 없습니다.”
은후의 말에 도깨비가 김 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조용히 있던 구미호가 슬쩍 입을 열었다.
“전 쇠보단 나무가 좋아요. 만약 쇠몽둥이를 들고 있었으면 청혼하자고 했을 때 거절했을 거예요.”
홍두깨란 칼국수를 할 때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는 굵고 긴 방망이를 뜻한다. 주로 박달나무로 만들지는데 눈앞의 도깨비방망이도 그런 것 같았다.
‘그나저나 쇠보다 나무인가.’
그거까진 그렇다 쳐도 방망이의 재질 때문에 청혼을 거절할 수도 있었을 거라니. 구미호의 미적 감각은 잘 모르겠다 싶었다.
‘그리고 쇠와 나무에 관한 질문은 뭔가 친분을 다지려고 한 말 같은데.’
은후는 눈앞의 두 존재가 사람이 아닌 게 좀 새삼스러웠다.
“작동 방법이나 주기는 어떻게 됩니까? 일회용품은 아닌 것 같은데요.”
“글쎄, 알아서 자연스럽게? 손에 쥐고 있으면 알아서 글씨가 바뀌며 방향을 가리키제. 횟수는 잘 모르겠고.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구미호가 도깨비를 째려보며 말했다.
“인간에겐 중요하겠죠. 하여간.”
“크하하!”
이런 대화도 그렇고.
그러나 딱히 나쁘다거나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뭔가 정겹고 따뜻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은후는 픽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게 무어 중요할까요.”
“흐흐, 선생이 말이 통하는 인간이어서 참 다행이여.”
도깨비는 크게 별생각이 없는 듯 다시 한번 웃었고, 구미호는 살짝 놀란 눈으로 은후를 바라봤다. 은후가 탁자 위에 놓인 비단 천을 집으며 말했다.
“조만간 친구와 함께 놀러 오겠습니다.”
“그려, 그려. 내 그때는 푸짐하게 차리겠네.”
은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구미호가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물었다.
“조만간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1년 이내에는 오시겠죠?”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1년은 인간에게 있어서 꽤 긴 시간이거든요.”
* * *
요괴 부부가 운영하는 술집을 빠져나오자 새벽이었다. 아직은 해가 떠오르지 않고 기지개를 켤 무렵, 은후는 역에서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역 바깥으로 나왔다.
‘아침 첫 열차까지는 시간이 좀 남네.’
사실 원래는 첫 열차의 출발 시각까지 시간을 보내다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첫 열차까지의 시간이 제법 남은 까닭은 요괴 부부의 술집에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달라.’
큰 차이는 아니지만.
‘나중에 좀 더 친분을 쌓고 난 뒤에 허락을 구하고 연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시간과 관련된 마법은 그 규모나 크기와 상관없이 엄청난 고난도였다. 그래서 은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요괴 부부의 술집은 은후의 연구 우선순위에서 꽤 뒤로 밀렸다. 친분을 쌓을 시간이나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점도 그렇지만 다른 연구 거리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리어카도 그렇고.’
당장은 간이 아공간 아티팩트로만 쓰고 있는 리어카. 하지만 은후의 직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숨겨진 비밀이 있을 거라고.
‘아직 결과는 지지부진하지만.’
언젠가 알 수 있겠지.
당장 급하게 알아야 할 건 아니니까.
은후는 그리 생각하며 은폐 마법을 펼친 뒤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겸사겸사 다소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좋네.’
누군가에겐 하늘을 나는 이유가 무척 특별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로서 일정 경지에 오른 이후의 은후에게는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세계에서와 달리 현대에서는 마음대로 날 수 없었다. 은폐 마법을 펼치면 되기는 했지만 사소한, 예컨대 근처 편의점이나 마트에 갈 때조차 그렇게 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그 때문에 쌓인 아주 미약한 스트레스. 그래서 이따금 은후는 은폐 마법을 펼치고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처럼.
‘아.’
좋은 하늘이다.
은후는 쭉쭉 올라가다가 용산 시내를 딱 구경하기 좋은 위치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일정한 높이가 되니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자유로이 허공을 노닐며 산책할 수 있었다.
여름이어서 느껴지는 다소 후덥지근한 공기마저 기분이 좋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지 얼마나 지났을까.
동이 텄다.
부드러운 햇살.
‘여기서 술 한잔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다음에 요괴 부부의 술집에 오면 말을 한번 꺼내 봐야겠다. 햇살을 안주 삼아 아침에 한잔하자고.
‘바깥에 아예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
문제가 있다면 이 위치에서 어떻게 술을 마시느냐인데.
‘잔이라도 떨어뜨리면 큰일이니. 그래도 뭐.’
그건 그때 가서 어떻게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마법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혹은 그 도깨비가 방망이로 뚝딱하고 뭔가 만들어 낼지도 모르지.’
하늘을 나는 양탄자라든가 말이다.
* * *
다음 날.
은후는 덕진공원을 찾기로 했다. 일전 공원의 수호령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신기한 일 겪으면 꼭 와서 알려주기! 최대한 빠르게! 아, 물론 그렇다구 막 무리해서 빨리 올 필요는 없지만!’
처음엔 최대한 자주 놀러 와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무리한 부탁이란 걸 깨달은 수호령이 말을 바꾸었다.
신기한 일을 겪으면, 이라는 단서 조항을 단 것이다. 수호령이 바라보기에 은후는 그런 일을 겪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날 보고 도와줬으니까. 아, 물론 아무 일 없어도 가끔은 놀러 와 줘야 해? 약속!’
‘그래, 약속.’
은후는 그 약속을 지켰다.
‘아! 놀러 올 때 맛있는 것도 함께! 이것도 약속이야?’
맺어 묶는다(約束).
마법사의 말이라고 하여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말에 의지와 마나가 실리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지키지 않으면 스스로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흔한 판타지 소설의 설정처럼 약속을 어기면 목숨을 잃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일이지.’
한번 마법사가 된 이상 그 외의 삶은 상상할 수 없으니. 그러니 마법사는 말할 때, 특히 약속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순대국밥 두 그릇 포장 부탁드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셔!”
다만 그건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되는 게 아니었다. 극고의 경지에 이른다면 그럴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보통 마법사에겐 진심이 필요했다. 이건 은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무의식에 드러난 진심. 마나만 실려서는 안 되었으며 자발적이어야만 했다. 강요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마법사는 대개 약속에 신중했다.
‘혹시 모르니까.’
은후가 가볍게 맺은 수호령과의 약속. 하지만 그 안엔 은후의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건 은후의 마음을 수호령이 움직였기에. 그렇기에 은후는 수호령이 안타까웠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오로지 자신이라는 것에.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라면 수호령과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만 안타까운 건 수호령의 정체성이었다. 덕진공원의 수호령이기에 그 일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도깨비에게 받은 나침반이 뭔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굳이 친구를 찾는 일이 아니더라도.
* * *
“맛있어!”
“국밥은 언제나 맛있지.”
“그런데 은후는 안 먹어?”
“먹어야지.”
은후가 흐뭇하게 웃으며 일회용 수저를 손에 들었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이런 기분을 현대에서 느낄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떤 가게 거야?”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데. 용집이라고.”
전북대학교 근처의 오래된 순대국밥 전문점이었다.
“아! 최근에 어떤 부부가 말하는 거 들어 본 것 같아.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거기까진 못 나가지 않아?”
“응, 그렇지. 그래서 아쉬웠어. 먹진 못하더라도 가게 구경 한번 해 보고 싶었었거든. 분위기가 좋다고 들어서.”
하지만 이제 괜찮았다. 이렇게 은후가 포장해서 사다 주었으니까. 가게 구경은 못 해도 음식 맛은 보았으니까 말이다.
“헤헤.”
은후가 속으로 쓰게 웃었다. 겉으로는 절대 티를 내지 않고서.
“그래서 오늘은 그냥 온 거야? 신기한 일은 없었어?”
“그냥 온 거면?”
“그럼 뭐어, 그래도 좋아.”
“그런가.”
“그럼!”
은후가 후식으로 공원 내에 있는 자판기에서 콜라 두 캔을 뽑았다. 그리고 뚜껑을 딴 뒤 한 캔을 수호령에게 건네며 말했다.
“신기한 일도 겪었어.”
“오! 무슨 일이었는데?”
은후가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가 운영하는 술집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도, 도깨비!”
은후의 입이 열릴 때마다 수호령의 눈빛이 반짝였다.
“구미호는 진짜 꼬리가 아홉 개야?”
“그러니까 구미호겠지? 다만 직접 보지는 못했어. 꼬리는 쉽게 드러내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
“그럼 언제?”
“애정 표현을 위해서나, 아니면 크게 힘을 쓸 일이 있을 때?”
“오오오오, 신기하다. 나도 그 술집 가 보고 싶다아.”
“그러게.”
같이 가면 참 좋을 텐데.
“그래서 다음에 놀러 가기로 했거든.”
“응응. 나는 못 가니까 다음에 놀러 갔다 오면 또 이야기해 줘.”
“그 조건이라면 조건이려나. 이런 물건을 받았어.”
“물건? 놀러 가는 것뿐인데?”
은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그게 그 나침반이야? 나침반이 비단 천이라니 뭔가 되게 신기하다.”
“나침반이 뭔지는 알고?”
은후의 농담에 수호령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 정도는 알거든!”
“한번 만져 봐.”
“내가?”
“응.”
“그으, 그래도 은후가 쓰는 게 좋지 않을까? 보물이나 인연을 찾아 주는 거라며.”
보물이나 인연.
“딱히.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게다가 내가 손에 쥐었어도 별 반응은 없었어.”
“그래도.”
“지금도 그렇잖아?”
“응? 아. 그렇네.”
수호령에게 건네기 위해서 손에 쥐고 있는 비단 천. 하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나침반 기능이 작동한다면 글씨가 알아서 모양을 바꾼다고 했는데 말이다.
“오랫동안 쥐고 있으면 또 모르잖아.”
은후가 픽 웃으며 억지로 수호령의 손에 비단 천을 쥐여 주었다. 그때 비단 천의 글씨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나가 움직인다.’
비단 천에 서려 있던 마나가.
다만 은후가 손을 떼자 갑자기 마나가 멈췄다.
“응? 이거 이상한데?”
“잠시.”
은후가 다시 손을 뻗었다.
“뭐야, 뭐야!”
“다시 작동하나 본데.”
수호령이 놀라며 감탄했다.
“오오! 나랑 은후가 만져야 움직이는 거네!”
“오!”
은후가 같이 맞장구치며 비단 천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글씨가 스스로 모습을 바꾸었다.
‘남서쪽인가.’
작동한 이상 나침반이 가리키는 보물을 찾거나 인연을 만나지 않으면 재시동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수호령에게 나침반을 가져다주고 싶었는데.’
직감이 맞아서, 그리고 나침반이 잘 작동되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다만 예기치 못한 건 둘이 만져야 작동이 된다는 것일까. 하지만 이건 기쁜 오산이었다.
“한번 가 보자!”
“어딜?”
“나침반이 가리키고 있는 데!”
언제나처럼 활발하게 수호령이 덕진공원의 남서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내 실망했다. 덕진공원 내에선 딱히 보물이 있거나 새로운 인연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거,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거지?”
“그렇지.”
“그럼 나 대신 가 줄래? 궁금해. 우리 둘에게 도움 되는 보물이나 인연이 뭔지.”
“좋아.”
“대신에 인연은 모르겠지만 보물이라면 은후에게 양보할게!”
은후가 픽 웃은 뒤 검지로 수호령의 이마를 딱 때렸다.
“친구면 이해득실을 따지는 거 아니야.”
“그, 그렇지. 우리는 친구지! 응, 응!”
짙푸른 하늘.
살랑이는 바람에 너울거리는 비단 천.
그 사이에 수호령의 부끄러운 웃음소리가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