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35화 (35/170)

제35화

김경훈이 웃으며 은후와 이하연에게 말했다.

“두 분 일단 메이크업부터 받으실까요? 안쪽은 시간에 맞춰 세팅 끝날 겁니다.”

“알겠습니다.”

김경훈이 크게 외쳐 직원을 불렀다.

“유영아!”

“네! 가요!”

은후와 이하연은 사진관의 직원 은유영을 따라 제일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두 분이 오늘 모델 촬영을 하시는 분들 맞죠?”

“네, 이은후라고 합니다.”

“이하연입니다.”

“전 서이선이라고 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고요.”

서이선은 솔직히 오늘 모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 다 초짜라고 했으니까. 하물며 남자 모델은 데뷔조차 하지 않은 일반인. 하지만 스튜디오의 제일 권력자인 김경훈의 지시를 어길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항의라고는 미리 사진을 보지 않는 것 정도.

‘그때 뭐라고 하셨더라.’

너도 사진을 보면 마음에 들어 할 텐데. 만약에 실물 보고 마음에 든다면 술 한잔 사라고 했던가.

‘하.’

진짜였다.

평소 성격답지 않게 스무스하게 넘어간 건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일을 밀어붙인 것 때문이라 여겼건만.

‘좋아.’

애초에 일을 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기분과 별개로 이건 공식적인 업무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공식적인 업무라고 할지라도 의무감에 하는 것과 자발적으로 하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은후의 외모와 분위기 때문일까. 서이선의 마음이 움직였다. 최선을 다해서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서, 오늘 한번 작품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느낌으로.

‘그런데 좀 아쉽네.’

이번 촬영에 있어서 빛나야 하는 건 결국 상품이었으니까. 그래서 프로필 촬영과 같은 개인을 뽐내는 것처럼 할 수 없었다. 물론 모델이 아예 묻혀서는 안 되겠지만 더더욱 중요한 건 상품.

가장 이상적인 건 모델과 더불어 사진에 표현되는 모든 소품이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 이상론을 말하자면 배경까지도 말이다.

‘아.’

그래서.

서이선이 깨달았다.

‘경훈이 오빠가 초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모델로 섭외한 이유가.’

메이크업하고 있으니까 알겠다.

특히 남자. 여자도 꽤 괜찮지만.

‘이은후라고 했지.’

은후가 모델로서 재능이 정말로 출중하다는 것을.

* * *

둘 다 메이크업을 끝나고 촬영장 내부에 도착했을 때.

“와.”

다들 나지막이 감탄했다.

사람의 눈길을 한번에 사로잡는 것은 아니었다.

잘생김. 예쁨. 옷 잘 입는 것.

그런 건 업무적으로 일상이 되어 버린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다들 보는 눈은 까다로웠다.

‘확실히 원장님이 고집한 이유가 이래서였어?’

사람의 눈길을 지속적으로 끌어당기는 마력이랄까. 조금 오글거리게 표현한다면 태양이 아닌 달에 가까운 느낌. 그러면서도 메이크업의 특성 때문인지 아슬아슬한 느낌이 있었다.

“크.”

사진관 원장 김경훈이 다가와 두 사람을 쭉 훑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게 퇴폐미지.”

은은하고, 묘한.

“근사하지 않아?”

“그러게요. 전 김경훈 씨가 미친 게 아닌가 싶었는데.”

뒤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김경훈의 말에 맞장구쳤다.

“안녕하세요. 전 오늘 촬영 담당을 맡은 에디터 장하수라고 합니다. 제2안은 폐기해도 좋겠네요.”

“2안이요?”

이하연이 되묻자 장하수가 씩 웃으며 답했다.

“오늘 촬영의 실패도 염두에 두고 있었거든요. 여기 경훈 씨의 체면도 있으니 일단 진행은 하겠지만…… 이번 건이 제 커리어에서 좀 중요한지라.”

“하수 씨가 절 못 믿었군요?”

“반신반의했죠. 아예 못 믿었으면 애초에 처음부터 결사반대했을 겁니다.”

“그래서 어때요?”

“인정하죠. 제 눈이 옹이구멍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건 다른 분들도 다 그럴걸요? 제가 멍청한 게 아니라 김경훈 씨가 특별한 거죠.”

상대를 인정하고 높임으로써 자신을 낮추지 않는 화법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하지만 목소리에 담긴 진정성과 장하수의 정중한 태도가 김경훈에게 만족감을 자아냈다.

“좋아요. 슬슬 시작해 보죠.”

김경훈이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하수가 은후와 이하연에게 말했다.

“이은후 씨는 이번 촬영이 처음이시고. 이하연 씨는 그래도 경험이 좀 있으시다고 했죠?”

“네.”

“일단 설명은 드리겠습니다. 대충 머리에만 담아 두세요. 오늘 콘셉트는 겨울의 신비입니다.”

“겨울의 신비요?”

“네.”

은후가 살짝 당황했다.

“일단 방금 입고 오신 슈트와 코트로 한 장. 대신에 위에서 얼굴 반이나 3분의 1쯤 가릴 거고요. 다음은 코트에서 패딩으로 바꿔서 찍을 텐데 그때는 셔츠를 좀 이것저것 입어 보게 되실 겁니다. 표정의 경우에는…….”

약 5분 동안 이어진 이런저런 설명들.

“……이상입니다. 뭐, 전부 기억하시지는 못하시겠지만 일단 알아는 두셔야 하니까요. 자세한 디렉팅은 실제 촬영에서 들으시면 될 거고요. 혹여나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바로바로 물어보세요.”

“알겠습니다.”

“저쪽도 준비가 거의 다 된 것 같으니 이동하실까요?”

화보 촬영이라고 하기에 그냥 단순히 꾸미고 잘 차려입고 적당히 찍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네.’

하기야 어떤 일이든 전문적으로 파고들다 보면 어렵고 난해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반대도 가능하지.’

결국 모델이란 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포즈와 표정이 전부가 아니겠나. 전문가가 듣기엔 폭언이나 다름없겠지만 은후가 보기엔 그러했다.

‘그런 거라면 충분히 자신 있지.’

마법사라면 응당 자신의 신체는 전부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스탠바이!”

이윽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촬영은 정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김경훈이 초보자인 은후를 배려해서……는 아니었다. 은후가 디렉팅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이행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은후의 뛰어난 신체 통제력에 있었다.

“이번에는 친구가 아닌 연인답게! 방금 그 자세에서 은후 씨가 하연 씨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고! 하연 씨는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 주세요!”

디렉팅 직후, 은후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걸 바라보던 조명 감독이 옆에 있던 김경훈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초보 맞아?”

“아마도. 혹시 몰라서 여기저기 알아봤잖아.”

“그거야 그런데. 아무리 봐도 모델로 몇 년 족히 구른 베테랑 같다는 말이지.”

“그건 동감.”

솔직히 방금 그런 디렉팅까지 내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은후의 모습에 점점 지시가 세세해지고 난이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는 방금처럼 눈빛만으로 분위기를 바꿔 보라는 지시까지.

‘그런데 완벽에 가깝게 수행했다는 말이지.’

어디 겉멋이 든 모델처럼 자기 마음대로 디렉팅을 해석하지도 않았다. 그게 김경훈은 참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도 그렇고.’

처음에는 여자 쪽인 이하연이 리드하는 것 같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진짜 초짜라면 천재라고 봐야지.’

모델에도 천재가 있을 수 있던가.

‘다른 분야도 아니고.’

하기야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모델로서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외모까지도 그렇다.

‘나중에 진지하게 한 번 제의해 봐야겠군.’

모델을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는지.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일단 나중이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촬영이 쭉 이어지고 생각보다 일찍 일정이 종료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스태프들은 다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로 덕담을 건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은후가 있었다.

“진짜 초짜 맞아요?”

“그럼요. 이런 거로 거짓말 안 하죠.”

원래 다들 촬영이 힘들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다. 모델이 처음인 일반인 아니던가. 물론 그 점을 감안했기에 욕설까지는 들리지 않겠지만 최소한 고성이 울려 퍼지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이렇게 기분 좋은 촬영은 다들 오랜만이었다.

“오늘 협찬받은 옷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거 있으시면 좀 가져가세요.”

장하수의 말에 이하연이 반색했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그 정도 권한은 제게 있거든요. 아니, 아예 전부 드리겠습니다. 겨울옷이라 좀 이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시간 금방 갈 겁니다. 주소 알려 주시면 제가 따로 택배로 부쳐 드리겠습니다.”

좀 더 두 사람에게. 정확히는 은후에게 호의를 사고자 하는 장하수의 배려였다. 은후는 그걸 알았지만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순수히 호감을 사고 싶다는 것뿐이었으니까.

* * *

은후라면 몰라도 이하연에게 있어서는 꽤 촬영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용산역까지 함께한 다음 바로 헤어지기로 했다.

“좀 더 같이 놀다가 들어가고 싶은데 너무 피곤해서 안 되겠다.”

“촬영이란 게 보통 일은 아니더라.”

“그러니까. 어우, 졸려.”

“아까 오는 길에서 꾸벅꾸벅 졸던데. 얼른 들어가서 쉬어.”

“응.”

하지만 촬영 직후 이하연의 컨디션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기 때문일까. 말을 하면서도 다시 조는 모습에 은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안 되겠다.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

“괜찮아, 괜찮아.”

“내가 안 괜찮거든.”

“그래도.”

그럴 확률은 낮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가자.”

“……응, 땡큐.”

은후의 예상이 적중했다. 택시를 잡자마자 어깨에 기대어 졸다 못해 잠든 것이 같이 가기를 잘했다 싶었다.

“도착했어. 얼른 내려.”

“응?”

“엘리베이터까진 같이 안 타도 되지?”

“어, 응!”

택시를 타고 이하연의 집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5분. 그사이에 짧게나마 잠에 들었기 때문일까. 이하연의 정신이 갑자기 확 들었다.

“그럼, 나 간다.”

은후는 당황하는 이하연의 모습에 픽 웃으며 손을 휘휘 흔들었다.

‘내가 미쳐!’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어쩌자고 그런 짓을.

그런데 잠시 후.

용산역에 도착한 은후도 순간적으로 이하연만큼이나 당황했다.

‘음?’

몇 번이고 왔던 용산역이었다. 그런 용산역에 마나가 크게 울렁이고 있었다.

‘뭐지?’

전혀 이런 낌새를 느낀 적이 없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느낌은 아니었다. 은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감각을 집중했다. 그러자 마나가 일련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중심은 1번 출구인가.’

흐름을 따르다 보니 도착한 곳.

‘어쩔까.’

이대로 들어선다면 평소와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질 것 같은데.

‘무작정 들어가기는 그렇고.’

다만 정말로 기묘한 것이 있다면 1번 출구에서 음식 냄새가 솔솔 풍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꽤나 구수하고도 맛있는 냄새가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냄새는 없었…… 간판?’

갑자기 나타난 간판도 분명히 없다가 생겨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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