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33화 (33/170)

제33화

누군가는 말한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겠냐고.

특히 현대는 미디어가 발달했기에 미의 기준이 참 높아진 시대가 아니던가. 하지만 정말로 의학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 아니라면 꾸미고 꾸미지 않고는 차이가 확연히 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전문적으로 꾸밈을 업으로 삼은 사람의 손에 맡긴다면 더더욱.

“헐.”

솔직히 김지훈은 별 기대를 안 했다. 자신의 외모에 관해서 알고 있었으니까.

못생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생긴 건 아닌, 한마디로 평범.

이따금, 아주 가끔 어쩌다 샤워를 하면서,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며 좀 잘생기지 않았나 싶기도 했지만, 그것도 찰나일 뿐이었다.

‘잘생긴 건 은후 형 정도 되어야지.’

김지훈은 느꼈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은후의 외모가 얼마나 뛰어난지. 왜냐하면 시선이 쏠렸으니까. 같이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솔직히 외모에 자격지심이 있으면 같이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초라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은후는 마나로 세심하게 김지훈의 감정을 케어해 주었다. 그 덕분에 김지훈은 이렇게 꾸민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최소한 옆에 있어도 괜찮달까.’

근처에서 원장의 잔심부름을 도와주던 직원이 슬쩍 김지훈에게 말했다.

“우리 원장님 솜씨 좋죠?”

“그러게요. 이렇게 바뀔 줄은 저도 몰랐어요.”

원장이 픽 웃으며 답했다.

“이거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인데 이 정도는 해야죠. 신경 좀 많이 썼어요. 개인적으로도 뿌듯하네요. 그리고 이건 절대 빈말은 아니고 김지훈…… 학생?”

“네.”

“학생 같은 경우엔 좀 차이가 크게 나요.”

“뭐가요?”

“메이크업하고 안 하고의 차이요. 가끔 그런 사람이 있거든요. 한마디로 화장발 잘 받는 사람이란 거죠. 그러니까 공부 좀 해서 꾸미고 다녔으면 좋겠네요. 아무것도 안 하면 좋은 얼굴 아깝잖아요.”

김지훈이 고개를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

조금은 부끄러웠다.

외모에 관한 제대로 된 칭찬은 처음이라서. 물론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빈말로 칭찬해 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칭찬은 궤가 다른 느낌이었다.

“스타일링에 관한 건 여기 영은이하고 대화 나누세요. 메이크업 실력은 아직 별로인데 옷 고르는 재주 하나는 기똥찬 애예요.”

원장의 말에 직원이 입술을 삐죽이며 김지훈과 로비로 사라졌다. 직후 원장이 은후에게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조금 부담스러운데.’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럼 이제 어, 실례지만 성함이?”

“이은후라고 합니다.”

“그럼 은후 씨, 손 좀 대 봅시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그래.

‘어떤 무언가에 미친 사람이 보내는 그런 눈빛이야.’

예컨대 마법사들이 흥미로운 소재를 발견했을 때라든가, 드워프가 유명한 보검을 살펴볼 때라든가.

* * *

김지훈이 은둔형 외톨이로 시간을 보낸 건 약 3년. 그 시간에서 제대로 된 외출을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그 기간은 패션과 거리가 먼 삶이었다. 애초에 패션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그러니까 오늘 헤어나 메이크업은 이런 스타일이 잘 어울릴 거예요. 쇼핑은 요 근처에 옷 가게 많으니까 적당히 아무 데나 들어가셔도 괜찮을 거고요. 그리고 평소에 안 꾸몄을 때는 그냥 기본만 입으세요. 막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 옷이나 희한한 신발 신지 마시고요.”

그래서 숍 직원인 이영은의 조언을 그대로 흡수했다. 그리고 잘 모를 때에는 전문가의 조언을 그대로 따르는 게 제일 좋으니까.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한 적이 없는 김지훈도 이런 사실은 잘 알았다.

‘그리고 이런 건 미리미리 메모해 두지 않으면.’

김지훈은 이영은의 조언을 핸드폰에 잘 메모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이게 직업인걸요.”

이영은은 그런 김지훈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있는 힘껏 조언해 주었다.

“화장품 같은 경우에는요. 아까 원장님께서 쓰셨던 거 그대로 사시기엔 부담이 좀 있으실 거예요. 죄다 좀 고가의 물품들이라. 중저가 브랜드라도 찾으면 좋은 게 상당히 많거든요? 일단 파운데이션은…….”

화장품 브랜드부터.

“브러시 같은 것들도 처음에 종류별로 구매하는 것도 좀 그럴 거고요. 사 봐야 제대로 처음엔 제대로 못 쓸 확률이 높거든요.”

메이크업에 관한 조언들까지.

그렇게 이야기를 한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은후와 숍 원장이 로비에 나왔다.

“형 오셨…… 와, 진짜 미쳤다.”

김지훈은 은후의 꾸민 모습에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건 옆에 있던 이영은도 마찬가지였다.

“원장님 눈썰미랑 실력은 여전하시네요.”

“그렇지?”

원장이 뿌듯하게 웃으며 은후의 얼굴을 찬찬히 다시 한번 살폈다.

“이 정도면 돈 안 받아도 안 아깝지.”

강렬하고 무언가 끈적이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처음에 원장이 은후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성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작품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하물며 제 손으로 완성한 작품이 아니던가.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공짜로 해 주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할인은 좀 해 줄 테니까 종종 놀러와요.”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요.”

“뭐, 은후 씨라면 굳이 안 꾸며도 괜찮죠. 그런데 보니까 아시겠죠? 보석도 갈고닦아야 더 빛이 난다는 걸.”

뭔가 부끄러운 표현, 드라마를 볼 때나 들을 수 있을 법한. 하지만 당당하고도 퍽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했다.

* * *

숍을 나오자 해가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둘은 일단 쇼핑부터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

대학가 근처답게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괜찮은 옷을 구비한 가게가 많았다. 아마 어지간한 대학교 근처 옷 가게는 그런 느낌일 터. 그렇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은후는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가게에 들어가기로 했다.

‘응?’

길을 걷던 와중.

“큼.”

김지훈이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했다.

“왜 그래요?”

“어색해서요.”

해가 떨어졌지만 근처의 조명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물론 대낮 정도의 환함은 아니었으나 사람의 얼굴을 식별하기에 충분한 불빛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레 은후와 김지훈에게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은후 형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바라보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 점이 김지훈은 괜히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 김지훈의 표정과 태도에 은후가 피식 웃었다.

‘일단 성공인가.’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는 참 여러 방법이 있을 터였다. 은후가 생각하기에 개중 제일 정석이면서도, 어렵지만 성공만 한다면 효과가 좋은 건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은후가 선택한 건 바로 외모를 꾸미는 것이었다. 외모로부터 비롯되는 자신감은 자연스레 기분을 좋게 하고 자존감을 높여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혼자 있었으면 도망쳤을지도 몰라요.”

“왜요?”

“엄청 부담스러웠을 것 같거든요. 그나마 형이랑 옆에 있어서 좀 묻히니까 나은 거죠.”

“너무 자신감에 찬 거 아니에요?”

김지훈이 멋쩍게 웃자 은후도 덩달아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 외모 때문에 효과가 크게 없으면 마법까지 동원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오히려 낫다고 봐야겠지. 그렇게 잠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한 옷가게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옷가게에 들어가자, 점원이 인사한 뒤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호, 혹시 찾으시는 옷 있으실까요?”

“네, 여기 이 친구가 입을 옷인데요.”

보디 체인지 이후 딱히 꾸미지 않아도 잘생긴 외모의 은후. 그런데 제대로 된 메이크업을 받았다. 게다가 옆에 있는 김지훈도 은후 옆에 있어서 그렇지, 제법 잘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였다.

“찾으시는 바지는 여기 있거든요. 한 번 입어 보시겠어요?”

단순히 옷을 고르는 것뿐인데, 직원의 눈빛과 말엔 친절함이 듬뿍 담겨 있었다.

“DC도 좀 해 드릴게요. 대신에 다음에 또 오셔야 해요?”

굳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할인까지 받았다. 옷가게에서 나오면서 김지훈은 참 얼떨떨했다.

‘거참.’

김지훈은 옷가게에서 산 옷을 입고 바로 나왔다.

“좀 걸을까요?”

“네.”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서.

“커피라도 마실래요?”

“어, 네. 커피는 제가 살게요.”

은후는 피식 웃으며 김지훈을 지금 들어가려는 커피숍 앞 벤치에 앉혔다.

“됐어요. 커피는 다음에 사요. 뭐 마실래요?”

“아아요.”

“사람 구경 좀 하고 있어요.”

“네.”

은후가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누군가 쭈뼛쭈뼛 다가와 김지훈에게 말했다.

“저기요.”

“네?”

“그으, 괜찮으시면 번호 좀 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 저요? 저랑 같이 있던 형이 아니라요?”

“네, 그쪽이요.”

옷가게에서 받았던 친절처럼 이 또한 처음이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번호를 물어본 것은.

“감사합니다! 연락드릴게요!”

번호를 알려 주고.

‘이거 헌팅이지?’

이제야 뭔가 실감이 났다.

‘와.’

외모 하나만으로.

정확히는 꾸민 것이지만.

굳이 메이크업 숍에 들른 이유가 있구나.

‘그나저나 은후 형이 사람 구경하라고 했는데.’

그것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말한 것일 터였다. 만난 시간은 하루 채 되지 않았지만 그런 말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김지훈은 생각했다. 잠깐밖에 겪어 보지 못했지만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잠시 후, 은후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김지훈에게 다가왔다. 은후는 아까보다 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김지훈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고 있어요?”

“그게요, 형.”

“네.”

“번호요. 누가 저한테 번호 물어보고 갔다니까요?”

“잘됐네요.”

은후가 싱긋 웃었다.

* * *

계속해서 시간이 흘렀다.

‘몇 시지?’

새벽 4시.

그냥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원래라면 진즉 집으로 돌아갔어야 할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토록 편하게 지낼 수 없는 시간이었다.

‘피곤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았다. 또 왠지 모르게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한껏 꾸민 모습도 아까워서. 그래서 어머니에게 연락한 후 계속해서 머물렀다.

‘여전히 잠도 잘 오지 않고.’

그사이 들떴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느낀 것도 이래저래 많았다.

‘다들 즐겁게 사는 것 같아.’

물론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다들 즐거워 보였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미친 것 같기도 했다.

술에 취해 토하거나. 괴성을 지르거나, 또는 길거리를 정신없이 달리거나. 그 외에 풋풋한 모습으로 연애하는 커플도 봤다.

‘방금 그 커플도 그랬지.’

같이 걷다가 여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남자 친구 앞의 길을 막고, 그리고 가볍게 입맞춤을 한 뒤에 통통거리며 걸어 나가는.

“어때요?”

“뭐가요?”

“오늘 나온 거. 뭔가 느꼈다면 좋겠는데요.”

“느꼈어요.”

은후가 씩 웃었다.

“그럼 갈까요?”

“어딜요?”

“가 보면 알아요.”

“어, 네.”

은후가 데리고 간 곳은 대학가 근처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인력 사무소였다.

“저분들은 이제 막 출근하는 사람들이에요.”

“이 시간에요?”

“네. 일용직이라고 하죠?”

“진짜 일찍 출근하시네요.”

“늦게 출근하면 일거리를 구할 수 없거든요.”

왠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직전까지 머물었던 대학가 근처의 분위기와 정 반대라서.

“다들 먹고살기 위해 일하러 꼭두새벽부터 나오신 분들이에요.”

이후 은후가 데려간 곳은 인력 사무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덕진 간이 정류소였다. 그곳에도 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저분들도 일하러 나오신 분들일까요?”

“글쎄요. 아마도요? 그런데 하나 확실한 건 저기 아주머니 보이죠?”

아침 장사를 위해 간이 가판을 편 아주머니 한 분, 은후는 김지훈을 데리고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모, 김밥 두 줄만 주시겠어요?”

“어우, 잘생긴 총각들이네. 그런데 무슨 김밥? 기본 말고 참치랑 치즈도 있거든요.”

“뭐 먹을래요?”

“저는 참치요.”

“치즈랑 참치 하나씩 주세요.”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김밥 두 줄을 내주었다. 은후는 계산을 한 후 김지훈에게 말했다.

“김밥 장사 준비하려면 정말 새벽부터 준비해야 하거든요, 혹은 밤을 새우거나. 제가 알기로 저 아주머니는 거의 매일 나오세요.”

“매일요?”

“네, 매일. 이런 분들이 참 많아요. 전주라서 사람 숫자가 얼마 없어서 그렇지, 서울에 가 보면 장난 아니거든요.”

하루를 힘들게 시작하는 사람들.

“물론 모두가 하루를 힘들게 시작하죠. 누가 힘들지 않겠어요. 동생도 하루를 시작하는 게 힘들었을 거예요.”

“저는.”

김지훈의 말문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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