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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31화 (31/170)

제31화

다소 못 미덥기는 했지만, 자신이 친구에게 부탁해서 만든 자리였다. 그래서 김수영은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은후를 조심스레 관찰했다.

‘명희가 자랑한 것처럼 대단하긴 한가 보네.’

열이 넘는 손님 중 누구 하나 은후에게 반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전부 존댓말에 공손하기 짝이 없는 태도. 잠깐만 봐도 그건 확실했다.

‘이제 군대 다녀오고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했는데.’

성인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서로 친분이 쌓이기 전까지 상호존대가 예의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게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무수히 많이 접하게 된다.

소위 나이가 벼슬인 줄 아는 사람부터,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면 말 정도는 놓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까지, 그런 사람들은 너무 흔했다.

‘분위기……도 그렇고.’

사람 자체가 풍기는 일종의 아우라랄까. 그런 게 은후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사기꾼, 다른 하나는 진짜 무언가 능력이 있는 사람.

김수영이 판단컨대 은후는 후자였다. 친구인 명희의 사람을 보는 눈도 그렇지만, 적어도 금전적으로 은후가 뭘 요구한 적이 일절 없다고 했으니.

“일단 좀 나가실까요?”

“네.”

은후의 말에 김수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명희가 가게 문 앞까지만 배웅했다.

“난 빠지는 게 낫겠지?”

김명희는 친구의 고민을 대충 수박 겉핥듯 알 뿐이었다.

‘상담하다 보면 내밀한 사정까지 털어놓아야 하니까.’

그래야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자신은 빠져 주는 게 옳았다. 그런 친구의 배려에 김수영이 고마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과가 어떻든 나중에 비싼 밥 한 끼 살게.”

“아마 기대 이상일걸?”

은후와 김수영은 가볍게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편의점에 눈에 띄었다. 바로 근처에 편의점에서 손님들을 위한 간이 테이블 또한.

“음료수라도 드시겠어요?”

“아, 제가 사 올게요. 선……생님께서는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은후는 김수영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봤다.

‘맑네.’

하지만 그렇게 맑은 것치고 대기가 심상치 않았다.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은데.’

막연한 감. 하지만 그 감은 마법사의 것이었으니.

“선생님?”

“집에 우산이 없어서요.”

은후가 편의점에서 1+1 행사를 하고 있는 우산을 집어서 계산했다. 김수영은 잠깐 의아하게 느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음료수를 계산했다. 그리고 편의점 근처 벤치로 이동해 잠시 침묵하다가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만약에.’

눈앞의 젊은 선생님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좋고.

‘아니어도, 뭐.’

어쩔 수 없지.

최소한 하소연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편해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세상일이란 게 기대할수록 실망감도 커지는 법. 세상을 살아가며 김수영이 습득한 나름의 지혜였다.

“은둔형 외톨이라고요?”

“네. 한 3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계기는 혹시 짐작 가시는 게 있으실까요?”

“딱히 잘 모르겠어요.”

김수영의 아들은 원래 소심한 아이였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말수가 적고 운동은 싫어했죠. 책을 읽거나 음악 감상을 좋아하고요. 그렇다고 제 할 말도 못 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좋고 싫음에 있어서 자기 의사 표현은 꽤 확고했다고 했다.

“웃기도 잘 웃었고, 어렸을 때는 그랬어요. 학교 다닐 때 왕따 같은 문제는 겪은 일이 없다고 알고 있고요.”

“확신하시나요?”

은후의 물음에 김수영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요. 적어도 다른 계기가 있다면 왕따는 아닐 거로 생각해요.”

“아드님에게 의지는 있어 보이시나요?”

“의지요?”

“네,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곰곰이 생각하던 김수영이 답했다.

“없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아예 그런 의지가 없거나, 혹은 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면 상담 센터에도 안 간다고 했을 테니까요. 병원은 곧 죽어도 안 간다고 하는데요.”

마음 같아선 전문 병원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우울증 약 먹는 거로 손가락질받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소문이야 좀 돌겠지만. 아니요, 설령 손가락질 좀 받고 소문 돌면 어때요. 우리 아들 건강이 우선이지.”

회복만 된다면야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

그렇게 얼마나 이야기를 했을까.

툭.

툭.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

분명히 조금 전까지 날이 맑았는데.

여전히 햇빛이 쨍한데.

여우비였다.

방울방울 조금씩 떨어지던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은후가 아까 샀던 우산을 펼쳤다.

“여기 우산요.”

“감사합니다.”

예상한 건 아니었을 테고.

아마 우연.

하지만 꽤 산뜻한 우연이었다.

부디 우연이 내 아들에게까지도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 * *

은후는 일단 김수영의 아들 김지훈을 만나 보기로 했다. 일단 만나기만 한다면 은후는 자신 있었다. 최소한 계기를 직접적으로 만들어 줄 자신이.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갑자기 어머니가 데려온 사람에 김지훈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은후라고 합니다. 심리 상담사예요.”

“상담사요?”

김지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엄마도 진짜. 그런데 진짜 심리 상담사세요?”

“그럼요. 예비 심리 상담사이긴 합니다만.”

“예비요?”

“네. 아직 학부생이라서요. 올해 졸업해요.”

“아니.”

김지훈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젊어도 너무 젊잖아. 그리고 우리 엄마 요새 갑자기 왜 그런대?’

몇 년 동안, 아니, 어렸을 때부터 쭉,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관심도 주지 않던 엄마가 아니던가. 그런데 갑자기 최근 들어 확 체감될 만큼 대화를 자주 시도하지 않나, 심리 상담 센터를 가자고 하지를 않나.

물론 그게 썩 나쁘거나 싫지만은 않았다. 어쨌거나 자신을 지금까지 키워 준 부모님이니까. 또 자신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귀찮아.’

게다가 이런 느닷없는 만남은 더더욱.

“요새도 메리마 온라인 하신다면서요?”

“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

“어머님께 들었어요. 생각보다 어머님이 아드님에게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아, 네.”

메리마 온라인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온라인 RPG 게임이었다. 은후 또한 열심히 했던, 이하연과 재회를 이루었던 게임.

‘그러고 보니 아이템 넘겨주기로 했는데.’

왜인지 모르게 이하연으로부터 그런 말이 없었다.

“제게 하루만 시간 내줄래요? 그러면 제가 골드나 아이템 좀 드릴게요. 저도 나름 의뢰받고 온 거라서 뭐라도 해야 하거든요.”

“선생님도 메리마 온라인 하세요?”

“네.”

“어, 음. 그런데 저 요새 메온은 잘 안 하긴 하는데요. 정확히는 접속 시간이 너무 줄었다고 해야 하나? 접을까도 고민 중이에요.”

“왜요?”

“별로 재미없어서요.”

재미없는 이유는 최근에 진행한 밸런스 패치에서 김지훈이 주력으로 키우는 캐릭터가 큰 너프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사실 그전부터 좀 질리고 있었거든요. 숙제가 너무 많거든요. 아시죠?”

“잘 알죠. 안 해도 상관은 없다고 업체에서 말하지만, 진짜로 안 하기도 그렇고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손해니까.

“암살자류를 전체적으로 너프시킨 건 이해를 해요. 제가 하면서도 워낙 사기라고 생각은 했으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머더러는 심했어요. 인간적으로 파티를 못 구할 정도로 너프 때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게임 이야기로 물꼬를 트자, 김지훈은 무엇이 할 말이 많은지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은후는 김지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좋은 청자로서 맞장구치거나 리액션도 곧잘 보여 주었다.

내 이야기에 남이 집중하고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말하는 사람은 신이 날 수 있었다. 그렇게 메리마 온라인에서 어느 순간 다른 게임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그래서 요새는 콘솔류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영 흥이 안 나더라고요. 한 1, 2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는데. 이게 게임 불감증인가 싶기도 해요.”

새로운 어떤 게임을 시작해도 오랫동안 하지 못하고 흥미를 잃게 되는.

“집중도 잘 안 되고, 뭐랄까 하고 싶어도 할 게임이 없다고 해야 하나? 제가 잘 가는 커뮤니티에 글 올려 보니까 그게 게임 불감증이라고 좀 쉬다 오라는데.”

게임 하지 말고.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막상 게임 안 하면 할 것도 없고요. 방송 보거나 인터넷 돌아다니는 것도 잠깐이지.”

은후가 지금까지 한 건 그저 김지훈의 이야기를 들어 준 것.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정작 중요한 것이 없었다.

어째서 집에 틀어박히게 되었는가.

아마 무의식중으로 그에 관한 주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은후는 살짝 마나를 움직여 김지훈의 마음을 편안케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게임만 하면서 살 거예요?”

“네?”

“집에서 잘 안 나간다고 들었어요.”

“그거야 그렇죠. ……솔직히 굳이 나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대학교는 생각 없어요? 꽤 괜찮은 곳에 합격했다고 들었는데요. 바로 휴학하긴 했다지만 등록금도 냈으니 복학할 수는 있을 텐데.”

“그러게요.”

언제부터였더라, 집에 틀어박히게 된 건.

“그냥 처음엔 좀 지긋지긋했어요. 엄마나 아빠는 바쁘다고 집에 거의 없고. 지금이야 좀 나아졌지만 그 전에는 나한테 관심도 없는 것 같았고.”

이런 이야기, 딱히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대화가 편안해서.

그냥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서.

그래서 김지훈은 자신의 마음의 빗장을 살짝 열었다.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저, 공부 머리가 좀 있거든요. 딱히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성적도 꽤 괜찮았고요. 그래서 게임 하는 것도 딱히 터치가 없었어요.”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을 보기 직전에나 조금 잔소리가 늘어난 정도였다.

“그 잔소리가 처음엔 좀 좋았어요. 부모님이 나한테 관심을 두는 것 같아서. 그래서 일부러 집에선 게임 하는 모습만 보여 줬죠.”

하지만.

“잔소리도 잠깐이지, 고3이라고 뭐 없대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수능도 그럭저럭 잘 봤다.

“부모님은…… 여전했어요. 수능 결과도 듣고 나서 그냥 그렇구나, 고생했다, 몇 마디로 끝났고요. 그러니까 뭔가 맥이 탁 풀리는 거 있죠? 게다가 어디 대학교에 갈지는 알아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친구들은 아니던데.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그런 부모님이 요새 어디 있냐고요. 좋게 말하자면 아들을 믿는 거겠죠. 근데, 그, 음.”

그건 다르게 바라보면 무관심이었다.

“부모님이 바쁜 건 이해해요. 두 분 다 일이 엄청 바쁘시니까. 같이 사업하시니까 당연히 바쁘시겠죠. 요새도 바쁘신 것 같고요. 그 와중에 상담 센터도 찾아서 간 건 그건 좀 좋았는데.”

무관심이 쌓이고 쌓인 상처.

처음엔 그냥 바쁘시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그래서 어느 순간 부모님의 관심을 포기하게 되었다. 스스로 자각한 건 수능을 보고 난 직후 어느 날, 김지훈은 방 안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조차도 부모님의 관심을 받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런데 계속 안 나가다 보니 다 귀찮더라고요. 기운도 없고요. 어느 순간부터 만사가 귀찮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왜냐하면.

“죽으면 우리 부모님은 슬퍼하실까? 물론 슬퍼는 하실 것 같은데, 얼마나 슬퍼하시려나 궁금하고. 근데 막상 진짜로 죽자니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시도는 못 하겠더라고요. 무섭기도 하고요. 솔직히 진짜 죽으면 불효니까, 그건.”

이런 이야기 어디에다 할 수도 없었다.

“친구들한테 말하면 어디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지는 소리라고 할 거고. 아, 진짜 친한 친구 한 명 있는데, 걔가 그러더라고요. 갑자기 생각났네.”

짜장면으로 세수하고 싶냐고.

“행복에 겨워 은근슬쩍 자랑하지 말라고 정색하면서 말했어요. 전 아니었거든요. 근데 또 생각해 보면 그렇더라고요. 힘든 사람 세상에 참 많은데. 뉴스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나 정도면 행복해야만 하는 환경이죠. 저도 알아요.”

사업에 바쁘지만 돈을 잘 버는 부모님. 집에서 게임만 하면서 학교 성적이 높게 나오는 자신. 친구 관계도 원만했고. 딱히 불행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냥, 뭐. 그래도 전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김지훈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람의 힘듦이란 주관적인 것이니. 잘 모르는 사람의 죽음보다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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