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은후가 목소리를 낮게 깐 뒤 말했다.
“전쟁이 곧 일어날 겁니다.”
“저, 전쟁이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김영호가 말을 더듬었다.
“네, 아,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건 아닙니다. 해외에서 일어날 전쟁이죠. 정확히 말하자면 남오세티야에서요.”
미국이 지원하는 조지아, 그리고 러시아가 지원하는 미승인국 남오세티야, 두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러시아가 지원하는 남오세티야가 이깁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시간도 꽤 짧고요.”
단 4일, 일방적인 러시아의 승리로 끝난다.
“꽤 돈이 되는 정보이지 않을까요?”
은후의 말에 김영호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야 당연한 말이었다. 이런 정보가 돈이 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정보가 돈이 된다는 말인가.
“5억을 적당히 불려 주세요. 그 정보를 이용해서 김영호 씨가 돈을 불리는 건 상관없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다만 조건이 몇 개 있습니다.”
하나는 이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 것.
“너무 사이즈가 커요. 아무리 미래를 보는 무당이라지만 김영호 씨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 이름을 날리는 무당 중의 무당이 아니던가. 각 정부 고위층이나 권력자들은 능력자의 세상을 이미 알고 있을 터.
“김영호 씨가 주목받게 된다면 확률은 낮지만 제 존재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위험 부담은 감수하고 싶지 않네요.”
“알겠습니다.”
김영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가 감당하기엔 사이즈가 커도 너무 큰 정보야.’
아무리 미래를 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 정보를 외부에 노출한다면 무조건 우리나라 정부의 특수 능력자 담당 부서가 움직일 거야. 정부에 바보만 있는 건 아니니까.’
시간이 흐르며 현대 능력자들의 힘이 감소했다지만, 아직도 유용한 면이 상당했다. 그리고 그걸 전적으로 전담하고 있는 비밀 부처도 있었고 말이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충분히 은후의 조건은 합리적이었다.
“둘째, 김영호 씨가 개인 자금으로 번 돈의 일정 부분을 전쟁 피해자들에게 기부해야 합니다.”
“네?”
김영호는 귀를 의심했다.
“전쟁으로 돈을 버는 것이니까요. 사람의 도리가 있지 않습니까. 피해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돌려줘야죠.”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너무 황당하게 쳐다보지 마세요. 돈은 다다익선이라지만,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합니다. 목적이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죠. 그리고 전부 기부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어느 정도 지키자는 것뿐.
“알겠습니다. 하기야 저희와 같은 사람들은 업(Karma)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현대에 이르러 그 인과가 희박해지기는 했습니다만.”
김영호의 말에 은후의 눈동자가 착 가라앉았다.
‘업?’
카르마. 사람이 살아가며 쌓이는 인과의 탑.
‘생각지도 못한 말을 여기서 들었군.’
행위, 결과, 원인.
그 세 가지가 얽히고 얽혀 만들어진 연쇄의 사슬.
‘업이라.’
이세계에서도 그와 똑같은 개념이 있었다. 그리고 마법이 발달하고 신이 실존하는 세계였기에 그 실체를 어느 정도 밝혀 냈다.
‘이세계에서 말하는 업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대의 세상과 똑같을까.’
아니면 다를까, 이세계에서는 차원 너머에도 통용되는 법칙이라 여겨졌는데. 다만 차원을 넘어 연구할 수는 없었기에 단정 지을 수 없었을 뿐.
‘이건 한번 고민해 볼 주제겠어.’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이 일어났다. 하지만 당장 급하거나 중요한 것도 아니고 연구에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그래서 은후는 업이란 단어를 마음속 저 너머에 밀어 두었다.
* * *
김영호와 만남을 마무리 지은 후 은후의 시간은 한가로이 흘러갔다.
‘계속 이렇게만 지냈으면 좋겠네.’
이따금 어머니 피부숍에 가서 손님들을 응대하고 이런저런 상담을 해 주고, 자취방에서 마법 연구를 하고, 이따금 덕진공원에 가서 수호령과 노는.
‘방학도 얼마 안 남았네.’
오늘은 8월 2일이었다. 은후가 다니는 전북대학교의 2학기 개강은 9월 1일. 남은 시간은 약 한 달.
‘미리 일정 좀 확인해 둘까.’
마법 연구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니까. 미리 확인하고 머리에 새겨 두지 않으면.
‘어디 보자.’
며칠 뒤에 있을 수강 신청. 그리고 그 유명하다는 포토그래퍼와 친구 이하연과의 모델 촬영. 마지막으로 신경과 전문의 김성백과의 모델 촬영.
‘날짜가 잡힌 건 이렇게 셋.’
그 외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담금주 사업체를 차릴 건물을 알아보는 것. 원래 이 또한 전주 유지 이창석이 해 준다고 하였으나 이것만큼은 은후가 알아본다고 말했다.
‘마법진을 설치하려면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해야 하니까.’
일반인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너무 대량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한 양을 꾸준히 주기적으로 생산하려면 수작업으로는 무리야.’
그래서 은후는 마법진을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요새는 다른 주제는 다 미뤄 두고 그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이세계와 조건과 환경이 다르기에 고려해야 할 것이 상당히 많았다.
‘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니로부터였다.
“네, 어머니.”
용건은 손님 중 한 명이 은후에게 상담할 일이 있다며 가능하면 조만간 시간을 내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오늘도 괜찮다고 하기에 은후는 오후에 약속을 잡았다.
- 아, 그리고 은후야, 네 덕분에 고정 손님이 더 늘었어. 괜히 심리상담학과가 아닌가 봐?
“에이, 아니에요. 아직 대학교도 졸업 안 했는데요. 많이 모자라죠.”
- 손님들 말 들어 보면 그런 것도 아니던데? 어지간히 비싸고 유명한 데보다 네가 낫다고…… 아, 네! 지금 가요! 엄마 바빠서 끊는다!
은후가 픽 웃으며 알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바로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약속 시간까지는 꽤 남아 있지만, 어차피 오늘은 한숨 돌리며 쉬려고 했으니까.
‘수호령이 삐지겠네.’
덕진공원에 안 들른 지도 꽤 시간이 되었으니까.
‘오늘 밤에라도 들를까.’
맛있는 거 사서.
요새 공원 수호령의 낙 중 하나는 바로 은후가 들고 오는 먹거리였다.
‘그건 그렇고.’
은후가 고민했다. 그건 바로 어머니의 피부숍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미 연구 결과는 나왔으니까.’
현대로 돌아오며 일찍이 생각했던 것 중 하나.
은후는 어머니의 피부숍에 도움이 될 만한 연구를 틈틈이 진행했다. 바로 피부 미용에 도움되는 팩이나 토너, 마사지 크림 등에 관련된 연구였다. 가시적인 결과도 나왔다.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고 도와 드리는 게 자연스러울까 하는 점이었다. 그냥 갑자기 토너 같은 물품을 가져다 드리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뭔가 계기를 만들어야 할 텐데.’
이는 차차 고민해 봐야겠다.
* * *
은후가 가게에 도착했다. 그런 은후를 어머니는 물론 손님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은후는 이미 가게에서만큼은 인기 스타였다.
“선생님 너무 오랜만에 오신 거 아니에요?”
은후가 멋쩍게 웃은 뒤 흘끗 가게의 벽에 붙은 자신의 사진을 바라봤다.
‘좀 어색하네.’
자신의 사진이라니.
“그나저나 제 지인 때문에 일부러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런 부탁은 언제든지 환영이죠. 앞으로 제가 일하는 데 도움도 될 거고요.”
처음 은후가 심리 상담을 해 주었던 김명희, 그녀의 지인이 이번 은후의 의뢰자였다.
“좀 있으면 도착한다고 해요.”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때 낯익은 이름이 TV에서 들렸다. 한 프로그램에서 김영호를 언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남오세티야의 전쟁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만큼 흥미로운 사건이 있다고 하죠?”
“네, 그렇습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하연읍에서 이번에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요. 그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가평의 유명한 박수무당이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 단서를 찾기 위해서 굿판까지 벌였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건 참고 영상을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래와 달리, 하연읍의 토막 살인 사건의 진범이 잡혔다. 빼도 박도 못 한 증거가 발견되어서.
“와, 진짜 신이 계시라도 내렸나?”
“에이, 그런 걸 믿어?”
TV에서 흘러나온 흥미로운 소식과 영상에 가게 손님들의 이목이 쏠렸다. 확실히 먹구름 사이로 흘러나온 빛 아래에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건 쉬이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사체가 발견된 후 결정적인 단서 또한 박수무당이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 외 그 박수무당은 최근에 일어난 간첩 사건을 비롯하여 몇 가지를 예언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건 광고 보고 알아보겠습니다!”
TV를 시청하던 손님들이 광고라는 말에 투덜거릴 때, 은후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은후가 당부한 대로 리암의 모습은 언론에 흘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문으로만 존재하겠지.’
일부러 전자 기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마법적인 조치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 * *
김명희의 친구이자 은후에게 상담을 부탁한 의뢰자 김수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명희가 하도 자랑해서 만나는 보겠는데.’
상담이 효과가 있을까.
“후우.”
약속 장소로 가는 길, 김수영은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고민은 아들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방에만 틀어박힌 아들.
신문에서 말하길 일본어로 히키코모리, 우리나라 말로는 은둔형 외톨이.
하루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며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가끔 과자나 음료수를 사러 근처 편의점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최근에는 게임도 재미없다고 했지.’
몇 달 전, 아들에게 빌고 빌어 간신히 전문적인 심리 상담 센터를 찾았다. 마음 같아선 센터가 아닌 병원을 찾고 싶었지만, 아들이 그런 곳은 절대 안 간다고 할 게 뻔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병 같은데.’
치료가 필요한.
처음에는 부정했다. 그래도 아닐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 상담 과정에서 아들이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김수영은 자신의 짐작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 지겹다.
게임도 재미없다.
그냥 죽고 싶은데 자살하자니 무서워서 싫다.
기운은 당연히 없고 최근에 씻는 것조차 귀찮다.
한마디로 만사가 귀찮은 것. 심지어 어떨 때는 숨 쉬는 것조차 그렇게 느껴진다고.
그 말을 전해 듣고 김수영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문제는 병원을 데려갈 수가 없으니.’
그래서 심리 상담 센터라도 좀 꾸준히 다니자고 말했고, 아들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귀찮다며 나가지 않게 되었다.
“왔어?”
피부숍에 도착하자 친구인 김명희가 눈에 띄었다.
‘조그마한 가게라더니 사람이 꽤 많네?’
김수영은 김명희와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고 다른 손님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기 이분이 내가 말했던 선생님이야.”
“안녕하세요, 이은후라고 합니다.”
듣던 대로 훤칠한 미남이었다. 다만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친구의 소개로 왔으니 겉으로 티를 낼 수는 없지만.
‘너무 어려 보이는데.’
나이로부터 비롯된 일종의 선입견이었다.
전주의 유명 심리 상담 센터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인데, 과연 이 젊은 선생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김수영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