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은후가 김영호와 함께하는 명분은 일종의 조수였다. 그래서 굿판 차리는 데 은후가 움직였다. 상차림부터 의식에 사용되는 장식 모든 것을.
“이거 죄송합니다. 저도 도왔어야 했는데.”
김영호가 주위 눈치를 살핀 후 슬쩍 은후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런 소리 말고 적당히 떨어져서 근엄한 표정 짓고 계세요.”
“그거야 제 특기지요.”
판의 크기는 거대했다.
김영호는 돈세탁하며 꿍쳐 둔 자산이 많았고, 그 자산의 일부를 이번 기회에 확 풀었다. 최대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사람이 생길 테니까.’
장군님을 믿을 사람이.
목숨을 구해 준 빚, 그 빚을 갚는다는 명분도 있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크게 한몫 잡아 보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진짜 신통력 있는 무당이 된다면 돈이야 쓸어 담는 건 진짜 일도 아니었다.
* * *
한창 굿판이 벌어지던 와중, 이번 하연읍 토막 살인 사건을 맡은 경찰 중 한 명인 김정철이 검사 이종호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 검사님.”
“김 팀장님 오셨군요. 뭔가 추가로 더 발견된 건 없답니까?”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만, 아직요.”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당장 왼팔과 왼다리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김정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견될 겁니다. 어떻게든 찾아야죠.”
“오늘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걱정입니다. 증거가 꽤 쓸려 나갈 텐데.”
“강수 확률이 30%라고 했으니 안 오길 바라야죠. 그나저나 들으셨습니까?”
“뭘요?”
“지금 근처 해수욕장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요. 이유가 살인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라던데요.”
그건 김영호가 일부러 은밀히 소문을 퍼뜨린 탓이다. 성수 장군의 믿음을 사람들에게 이끌어 내기 위해서. 그런 사정을 모르는 이종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소문이 퍼졌나요?”
“네, 게다가 돈도 왕창 썼는지 엄청 화려하다고 합니다.”
“쓸데없이.”
“지금으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가 볼까요? 무당이 뭐라도 알아내면…….”
이종호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김 팀장님이 그런 미신을 믿는다니 의외네요.”
“하하, 아까 말했던 대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서요. 솔직히 그 뭐시기 장군이든 서해 용왕님이든, 사건 단서만 잡게 해 준다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거야 이종호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굿판이 벌어져서 확실히 좋은 점은 있습니다.”
“뭔가요?”
“요새 주위 분위기가 흉흉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사건이 새어 나가는 바람에요.”
언론이야 아직 통제되고 있지만 사람의 입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굿판을 벌인다니 이목이 꽤 그리로 쏠렸어요.”
그리고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는 목적도 있다고 하니 그래도 좀 나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같이 숨이라도 돌릴 겸 함께 가시죠?”
“그럴 시간에 조사해야죠.”
“그러지 마시고요. 검사님 고생하고 있는 거 여기에서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다 쓰러져요.”
“그래도요.”
김정철이 억지로 이종호를 붙잡았다. 휴식도 엄연히 일이라면서.
“계속해서 집중하다 보면 거기에만 매몰되어서 뭔가 놓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거 전부 다 저번에 검사님이 제게 해 준 말입니다?”
결국 이종호가 한숨을 내쉬고 김정철과 함께했다. 그리고 굿판에 도착했을 때.
‘허.’
나지막하게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무슨 영화 보는 것 같은데.’
정말로 화려했다.
또 엄숙했다.
그래서인지 구경꾼들이 많이 몰렸음에도 굿을 벌이고 있는 김영호를 제외하면 말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영호가 입만 다문다면 적막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왠지 몸이 무거운 것 같은데.’
기분 탓이 아니었다.
일부러 은후가 적당히 마나를 퍼트려 사람들의 감각을 흩트렸으니까. 물론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어?”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지금부터였다.
‘먹구름?’
갑자기 모여드는 새까만 구름.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 그건 마치 신이 계시라도 내리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 * *
마법으로 기후를 바꾸는 일, 가능은 했다. 하지만 그건 은후로서도 많은 공과 시간을 들여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날씨를 이용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구름의 위치를 조정하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만들어서.
그래서 일전에 다큐멘터리에 봤던 몸통과 머리가 발견된 장소에 빛을 내리쬐게 하는 것. 빛의 강도만 살짝 강하게 해서. 그게 은후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멋지게 성공했다.
‘미리 하늘에서 장소를 확인해 둬서 다행이야.’
굳이 이런 쇼를 벌이지 않아도 결정적인 단서와 범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박수무당 김영호를, 그가 모시는 성수 장군을 믿지 않겠는가.
“성수 장군님께서 계시를 내리셨네! 저 빛이 증거이니!”
은후의 지시에 따라 김영호가 소리쳤다. 은후는 김영호에게 슬쩍 고개를 끄덕인 후 검사 이종호에게 다가가 말했다.
“가시죠.”
“네?”
“생각보다 저희 정성이 빨리 장군님께 닿았나 봅니다.”
“무슨 말입니까?”
“몸통과 머리, 찾아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옆에 있던 김정철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검사님, 대체 뭔 소립니까?”
“후, 가면서 설명하죠.”
약속을 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겁니다.”
이종호의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자초지종을 들은 김정철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농담은 아니신 것 같네요.”
“차라리 농담이면 좋겠네요. 저도 윗선에서 지시를 받을 때 딱 팀장님과 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나저나, 거 리안? 리암?”
“리암입니다.”
“그래요. 근데 딱 봐도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영국인입니다.”
김정철이 묘한 눈동자로 물었다.
“서양인도 무당을 믿으쇼?”
“그거 인종차별입니다?”
은후의 뉘앙스는 반 농담, 반 진담이었다. 그래서 김정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미안하구려. 신기해서 그렇수. 서양인과 무당이라니, 거참.”
이후 목적지까지 도착하는데 침묵만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중간에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빛이 사라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 그래서 눈대중으로 봤던 곳까지 도착한 다음 검사 이종호가 은후를 바라봤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저쪽으로.”
은후의 지시대로 운전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여기서 내리시죠.”
도착했다.
“이 근처를 수색하면 나올 겁니다.”
“…….”
이종호가 미간을 찡그렸다. 진짜로 수색해야 하나 싶어서. 그러다가 툭 내뱉었다.
“약속은 약속이죠. 팀장님, 찾아봅시다.”
“진짜요?”
“팀장님 말대로, 무당이고 자시고 단서만 찾아낸다면야 아무래도 좋지 않습니까. 게다가 아까 말씀드린 사정도 있고요.”
윗선의 지시.
“끙, 알겠습니다. 인원 부르죠.”
이종호 검사가 김정철 검사의 어깨를 두드린 뒤 은후를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마지막입니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이 사건이 해결되는 건 무려 15년 뒤였다. 그리고 몸통과 머리의 경우 좀 더 시간이 흘러야겠지만 은후의 도움 없이도 발견되었을 단서였다. 더불어 범인을 찾는 데 그리 크게 의미 없는 단서이기도 했다.
* * *
수색을 위한 인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하지만 많은 인원이 동원된 게 무색할 정도로 몸통과 머리의 사체가 빨리 발견되었다.
“찾았습니다!”
한 경찰의 외침에 이종호 검사가 제일 먼저 달려갔다.
“진짜로 찾았나?!”
“네!”
주위 사람들이 모두 감탄한 눈초리로 이종호 검사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종호 검사는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다.
‘진짜로?’
솔직히 믿지 않고 있었다.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 팀장의 말처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었다. 빨리 수사에 방해되는 귀찮은 걸 치워 버리자는 심정으로 온 것인데.
“하.”
정확한 건 따로 과학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이 일대에서 토막 살인을 당한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꼭 그래야만 했다.
‘신원이 불일치한다면 피해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는 셈이니까.’
그리고 연쇄살인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감식반 불러.”
“네!”
이럴 줄 알았으면 감식반도 함께 왔을 텐데. 하지만 애초에 믿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면 도움이 되었을까요?”
이종호 검사가 기척도 없이 다가온 은후의 목소리에 흠칫한 후 고개를 숙였다. 이전과 다르게 정중한 태도로.
“감사합니다.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수 장군께서 하신 일이지요. 감사는 그분께 드리면 됩니다.”
“그렇습니까.”
“네.”
사건의 단서를 잡을 수 있다면 감사는 백번이고 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이종호의 마음속에서 믿음이 피어났다. 진짜로 성수 장군이 존재하리라는, 그리고 그 힘이 진짜라는 믿음이.
“한번 들르셔서 공양이라도 드리면 더 좋고요.”
“사건이 끝나고 시간이 나면 그러죠. 박봉이라 많은 돈은 낼 수 없겠지만요.”
“대한민국 검사가 박봉이요?”
“힘은 좀 있을지 몰라도, 돈은, 글쎄요, 스폰이라도 구하지 않으면 하는 일에 비해 박봉 맞습니다.”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 예상입니다만. 아마 이거만으로 사건을 해결하시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아니길 바랍니다만.”
이종호 검사는 과거와 다르게 은후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아무런 단서를 잡지 못한다면 가덕산으로 오세요. 큰돈이 아니어도 좋으니 공양물을 좀 마련해서요. 이런 건 성의가 중요한 거거든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은후가 조용히 현장을 벗어나며 다시 한번 사체가 나온 근처를 훑었다.
‘혹시나 했지만.’
피해자가 억울함에 정령이라도 되었을까. 하지만 은후의 감각엔 전혀 그런 낌새가 포착되지 않았다.
* * *
하연읍 일대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최근 일어난 살인 사건의 단서를 한 용한 무당이 굿판을 벌여 알려 줬다는 것. 게다가 그 굿은 전부 무당의 사비로 진행한 거라고 말이다.
“그거 들었어? 굿판이 벌어진 이유가 성수 장군이 피해자를 안타까워해서 그런 거라잖아.”
“검사님도 인정하셨다고 하더라. 속는 셈 치고 가 본 곳에 진짜 시체가 나왔다고.”
심지어 그때 굿판을 벌이는 광경을 누가 카메라에 담기까지 했다. 먹구름이 모여들고 그 사이로 내리쬔 빛이 도달한 곳에서 사체의 일부가 발견되었다는 구체적인 말까지.
물론 이건 모두 수면 아래에서 박수무당 김영호가 주도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성수 장군은 진짜로 어느 정도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보름 뒤, 은후는 다시 가덕산을 찾았다. 채권과 보석 일부를 처분한 현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가덕산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김영호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며칠 동안 나와 계셨습니까?”
“아니요. 성수 장군께서 힘을 꽤 되찾으신 덕에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오실 줄 알았습니다.”
물론 막 낭비할 힘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후였기에 이런 성의를 표한 것이다.
“게다가 그 검사님도 곧 오실 모양이더군요.”
“결국 사건을 해결하시진 못한 모양이시네요.”
은후는 어깨를 으쓱 한 다음 말했다.
“그건 성수 장군께서 마저 해결해 주시는 거로 하면 될 겁니다. 마무리는 확실하게 해야죠.”
범인을 잡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어디서 나올지는 저번에 헤어질 때 건넨 자료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돈은 얼마나 나왔습니까?”
“깔끔하게 5억입니다.”
“꽤 크군요.”
은후가 내심 꽤 놀랐다.
5억,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어쩔까.’
오늘 은후가 찾은 목적은 하나 더 있었다.
곧 벌어질 남오세티야 전쟁, 그 정보를 이용해 돈을 벌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막연하게 전쟁이란 정보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짐작만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몰랐다. 그럴 때는 방법이 있었다. 전문가를 쓰면 된다.
‘믿음의 문제가 있을 뿐.’
일전 대화에 해 보니 김영호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판단이 들었다. 다만 너무 커다란 정보이다 보니 일전에 넘겨 준 자료에 언급하지는 않았다.
‘뭐, 계약서도 작성했으니까.’
일단 믿어도 되겠지.
다만 돈에 탐욕이 있는 것 같으니 단단히 주의 주지 않으면. 그래서 은후는 일부러 마나를 퍼뜨려 분위기를 팍 잡으며 입을 열었다.
“김영호 씨.”
“……네.”
갑자기 훅 바뀐 은후의 눈초리에 김영호가 바짝 긴장했다.
‘절대로 밉보이면 안 돼.’
김영호가 바라보기에 은후는 항간에 떠도는 최고위급 이상의 능력자였다. 날씨를 조작하는 걸 봤을 땐 정말로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당시에 굿판을 벌이고 있었기에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했을 뿐.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것만 봐도 그렇고.’
변장이나 은폐 능력은 또 어떤가.
변장 능력을 지닌 능력자로서 그 유명한 무강 도사도 저 정도는 아닌 거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영호는 결심했다. 절대로 은후와 척을 지지 말자고.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건 은후가 김영호 앞에서 딱히 숨기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냈기에 알아차릴 수 있던 부분이었다. 일부러 그랬다. 마법 계약서란 안전장치가 있기는 했지만, 더 확실히 하는 게 좋았으니까.
‘그나저나 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고 저리 무섭게 분위기를 잡는 건지.’
보통 일은 아닐 것 같은데.
꿀꺽.
김영호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은후가 그런 김영호를 좀 더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