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김유석에게 장례식 때의 기억은 희미했다. 몇 번인가 장인어른으로부터 뺨을 맞고, 장모님이 울부짖다가 실신해서 실려 나가고.
“아들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데려가셨네. 그 이후 한동안 폐인처럼 살았지. 아내의 유언은 신경 쓸 수 없었고.”
혹시라도 자신이 잘못된다면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그런 아내의 말에 김유석이 소리쳤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당신도 아들도 둘 다 건강할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유언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살아 보기로 했네. 돈이라도 좀 벌어서 아들의 앞길에 도움을 좀 주려고.”
다행히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찾아갔을 때 아들과 만남은 막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아들에게 말실수를 했어.”
취해서, 너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고.
“그런…… 그런 말을 아들에게 해서는 안 되었는데.”
김유석으로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홀로 품고 내뱉으면 안 되는 말이었다. 최소한 아들에게만큼은.
“후회하고 사과해도 아들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는 없었어.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으니까.”
이후 모두 자산을 정리하고 전북대 근처의 원룸에 자리를 잡고 일을 했다고. 돈이라도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그래서 유언장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미리 준비했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이지.”
은후는 따로 김유석을 위로하지 않았다. 묵묵히 서로 같이 술잔을 기울였을 뿐. 그러다가 술이 다 떨어졌다. 김유석은 술을 더 찾지 않았다. 멍하니 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가 떴다.
은후가 말했다.
“해장으로 라면 어떠세요?”
* * *
다음 날, 김유석은 아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사는 곳은 전주 평화동의 한 아파트.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집 근처에서 기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양복을 입고 퇴근하는 김유석의 아들이 보였다. 꽤 지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도 이내 풀렸다.
“빠!”
김유석 아들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어린 아들을 안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유석의 아들은 아이를 보고 굳은 표정이 풀렸다. 그리고 이내 활짝 웃었다.
“우리 아들!”
김유석은 그 장면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들이 가족과 사라질 때까지.
“결혼……했구나.”
“모르셨나 보네요?”
“몰랐지. 조금 충격인데.”
“말씀하는 것치고는 그리 충격받은 것 같지 않으신데요?”
“그러게. 왜일까.”
김유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서서히 김유석의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나가 흐트러진다.’
정말로 단지 본 것으로.
‘그것만으로도 미련이 해소된 건가.’
김유석이 형언하기 어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내 마지막을 쓸쓸하지 않게 해 주어서.”
“……천만에요.”
김유석이 완전히 사라졌다.
평범한 삶을 동경했던.
‘그런 삶을 아들이 대신해서 이루어 주었다고 여겼는가.’
사그라드는 마나에서 그런 감정을 은후는 느꼈다. 탄생부터 소멸까지, 그사이의 존재마저 은후의 마나가 톡톡한 역할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범한 삶. 행복.
평범은 모르겠으나 행복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정작 손에 넣는 이는 드물었다. 설령 손에 넣었다고 한들 오랫동안 붙잡기 어려운 것이 행복이었다.
‘부디 아버지의 바람대로.’
행복한, 평범한 삶을 끝까지 지킬 수 있기를.
은후는 그렇게 속으로 읊조린 후 머릿속으로 김유석을 관찰했던 현상을 되새겼다. 그리고 자취방으로 돌아온 뒤 연구 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논문이라도 한 편 뚝딱 나오겠는데.’
제목은.
‘정령의 탄생에 있어서 마법사의 개입 가능 여부 및 그 과정에서 술자의 마나가 미치는 영향에 관한 가능성 고찰.’
정도일까.
아직은 단순한 현상 기록 및 자기 생각을 나열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 * *
박수무당 김영호와 만나기 전날까지 은후는 연구 일지에 집중했다. 그 와중에 틈틈이 머리를 식힐 겸 김영호에게 넘겨 줄 자료 또한 따로 정리했다.
대리 예언을 하는 만큼 예언이 두루뭉술하지 않아야 했다. 그렇다고 너무 구체적이면 문제가 될 테니까 적당하게, 한마디로 적당하게.
‘약속이 내일이었던가.’
만나기로 한 장소는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하연읍. 근래 토막 살인이 일어난 곳. 보도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아직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은후는 일단 경주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포항까지는 변장한 후 날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이번 기회에 또 다른 신분을 하나 준비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능력자로서 활동할 신분 말이다. 혹시나 발생할 불의의 사태와 귀찮은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 부분에 관해선 김영호와 헤어지며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신분 세탁도 가능하다고 했지.’
우리나라는 어렵고 일본을 추천했다. 그 이유는 김영호가 일본 쪽의 인맥이 두텁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은후는 고개를 저으며 영국으로 부탁했다. 돈이나 시간은 얼마든지 들어가도 좋으니까.
그 이유는 은후가 구사하는 영어가 전형적인 포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상류층만 사용하는. 그걸 알게 된 건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였다.
‘기왕 할 거면 철저하게.’
언어에 있어서 특유의 악센트는 배우기 어려운 법. 게다가 모습도 일부러 서구적으로 바꾸면.
‘나와 연결점을 찾기란 무척 힘들 테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CCTV는 당연하고, 지문도 신경 써야겠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꽤 귀찮았다. 하지만 은후는 기꺼이 그 귀찮음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훗날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위협과 귀찮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구름 한 점 없네.’
경주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은후의 눈에 비친 하늘은 청명했다. 하지만 은후는 속으로 혀를 가볍게 찼다. 날씨가 좋긴 했으나 하늘을 날기엔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
‘다른 신분이 마련되면 이렇게 날아다닐 일은 거의 없겠지.’
일부러 은후는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빨리 날았다. 그래서인지 약속 장소인 농협 하나로 마트에 금방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김영호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은후가 땅에 내려 주위를 살핀 뒤 은폐 마법을 풀며 모습을 드러냈다.
“김영호 씨.”
“누구십니까?”
“접니다, 오늘 약속했던.”
그 말과 동시에 은후가 마나로 확실히 자신임을 밝혔다.
- 성수 장군께서 힘을 얼른 되찾으셔야죠?
김영호가 눈에 이채를 띄며 답했다.
“리암?”
“네.”
리암은 앞으로 은후가 변장했을 때 쓸 이름이었다.
뜻은 확고한 보호, 강한 의지.
유럽 문화권의 남자 이름으로, 아일랜드식이었다. 꽤 인기 있고 널리 쓰이는 적당히 흔한 이름. 그리고 은후가 이세계에서 썼던 이름이기도 했다.
“이거 완전히 모습이 달라지셨군요. 전혀 몰라 보겠습니다.”
“이런 건 확실히 해야죠.”
“괜히 장군께서 리암 씨를 선택한 게 아닌 것 같군요.”
“그나저나 오늘 모습이 꽤 멋지신데요?”
김영호의 복장은 비단으로 만든 여름용 개량 한복이었다. 이런 시골에서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복장이었고, 그 옆에는 전형적인 서구인으로 보이는 은후가 있었다.
하물며 은후의 외모는 잘생겼다. 변장하는 데 일부러 못생기거나 흔하게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특수한 목적이 있지 않은 이상.
‘외모는 큰 힘이 되니까.’
굳이 마나를 이용해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아도, 외모가 된다면 같은 말을 해도 호감을 사기 쉽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여기에 마나까지 더해진다면.
‘이 모습으로는 최대한 사람의 호의를 사 둬야지.’
그렇게 은후는 리암으로서 행동 방침을 정했다.
“언제까지 준비될까요? 이 모습의 신분요.”
“석 달 정도 걸릴 겁니다.”
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를 섞어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 예언에 관련된 자료는 준비해 두었습니다. 헤어질 때 넘겨 드리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처음 부탁하셨던 건 금액이 꽤 크다 보니 넉넉하게 보름 정도 더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하신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겠지만 추천해 드리진 않습니다. 수수료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거든요.”
“급하지 않으니 최대한 손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민감한 단어는 피하며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도착했다. 바로 하연읍 토막 살인 사건의 담당 검사였다.
“김영호 씨?”
“누구십니까?”
“검사 이종호입니다.”
“반갑습니다. 성수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 * *
검사 이종호는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무당을 만나라니.’
거참.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줄 사람이라고 했다. 과거부터 사건 해결에 있어서 도움을 준다면 딱히 누구도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무당이라니.
성격 같아서는 아예 무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 선배가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설령 도움이 안 되더라도 말은 들어 보고 최대한 협조하라고.
‘안 그러면 네가 꽤 곤란해질 수도 있어.’
차라리 불법적인 커넥션이나 부당한 명령이라면 강하게 반발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건 해결을 위한다는 명분을 들먹였기에 그러기도 좀 난감했다.
‘우리 부장 검사님도 탐탁지 않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하니까.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말 안 해도 알지? 쫓아내려면 최소한 명분은 확보하고.’
그보다 더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는 의미였다.
‘에휴, 내 팔자야.’
그래서 이종호는 일단 최대한 협조하기로 했다. 다만 무작정 쓸개 내주듯 알랑거리진 않기로 했다.
‘잘 보이면 뭔가 콩고물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성격상 그게 안 되었다. 그럴 거면 진즉 그랬을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윗선의 명령이라기에 협조는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진짜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강직한 검사분이라고 들었는데 말씀대로시군요.”
“아부는 됐습니다. 이틀 정도는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다만 그 안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조용히 돌아가 주시지요.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김영호가 흘끗 은후를 바라봤다. 은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의 태도에 이종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옆에 분은 뉘쇼?”
“리암이라고 합니다.”
“멀리서 오신 분 같은데.”
“영국이 고향이죠.”
“한국말을 참 잘하십니다?”
안 그래도 사건의 단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지지부진한 상황, 윗선의 황당한 지시, 무더운 날씨.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이종호가 티껍게 은후를 대했다.
“성수 장군과 작은 연이 있어서 함께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게 궁금하신 건 아니실 테고요.”
“뭔가 안다는 소리요?”
“토막.”
“…….”
“몇 개나 찾았습니까?”
이종호가 표정을 구겼다.
“왼팔하고 왼다리, 맞죠?”
“어떻게 알았소?”
이종호가 표정을 굳히며 답했다. 토막 난 시신의 왼팔과 왼다리를 찾은 건 어제. 아직 보고가 제대로 올라가지도 않았을 텐데.
‘정보가 샜나?’
하지만 그렇다고 확신하는 것도 좀 무리가 있었다. 딱히 기밀 정보는 아니었고, 꽤 고위 인사와 연결점이 있는 것 같으니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더 생각하지 말자.’
사건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이종호에게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 제법 많죠. 몸과 머리가 있는 곳…… 하루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하루요?”
“네, 하루.”
“어떻게?”
“성수 장군께서 알려 주실 겁니다. 좀 준비가 필요합니다만.”
미리 말을 맞춰 두었던 김영호가 입을 열었다.
“굿을 좀 해야겠습니다.”
“굿이요?”
“네.”
“…….”
굿으로 어디에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체의 일부를 찾는다.
‘하.’
기가 찼다.
“굿을 하는 데 내가 필요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내일 저녁에 제가 말하는 장소로 와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진짜. 좋아요, 내가 이틀을 말했으니 내일까진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죠. 가기 전에 번호 좀 알려 주시고요.”
이종호가 명함을 건네고 사라졌다.
잠시 후, 하연읍의 끄트머리 근포 해수욕장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매우 성대하게.
은후는 하늘을 바라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기상 예보로는 비가 올 확률이 30%라고 했지만 은후가 판단하기에는 아니었다. 거의 무조건이라고 예상했고, 그게 맞아떨어졌다.
‘완전히 비가 내리기 전에.’
먹구름을 모아서, 그 틈새로 햇볕을 내리쬐자.
사체의 몸과 머리가 있는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