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김유석의 집안은 가난했다.
“뭐 어디에나 널려 있는 흔한 집안이었지.”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난이란 단어는 언제나 사회에 스며들어 있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부모님이었어.”
아버지는 일용직을 전전하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어머니…… 어머니인가.”
김유석이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잠깐 침묵했다.
‘어머니, 라.’
김유석의 어머니는 이중인격자였다. 적어도 김유석이 느끼기엔.
“형이랑 동생이 있는데 말이야. 형이랑 동생한테는 정말 다정다감하신 분이었어.”
그런데 둘째인 김유석에게는 아니었다고.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이 뭐였냐면, 널 낳아서 재수가 없어졌다고, 그런 말을 늘 나한테 하셨거든.”
누구나 기억을 더듬다 보면 도착하는 제일 머나먼 과거. 김유석에게는 그 과거가 어머니의 그런 말이었다.
“그 재수 없는 게 동생을 낳으면서 회복되었다고 말이지. 그래도 폭력까지는 쓰지 않았어.”
차라리.
“손찌검이라도 했다면 도망쳤을 거 같은데, 그러진 않았거든. 그리고 또 최소한 밥은 챙겨 줬으니까.”
물론 형이나 동생과 달리 김유석의 앞에 놓이는 반찬은 정말로 별거 없었다.
“어떨 때는 간장만 줬었다니까?”
김유석이 큭큭, 웃으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아. 갑자기 생각났네. 밥 하니까 생각나는데 말이야. 내가 어렸을 때는 라면이 꽤 귀했거든?”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 서민들의 대표적인 음식인 라면. 하지만 그 라면도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면서 라면을 한 봉 사 오셨는데 나한테는 한 젓가락도 안 떨어지더라.”
그렇게 김유석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철저한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다.
“형이랑 동생 공부시키기 위해서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말이지, 어머니가 강제로 공장으로 보내 버렸어. 나랑 상의도 안 하고 말이야. 그때라도 도망쳤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사랑이 고파서. 사랑받고 싶어서. 내가 노력하면 나를 한 번이라도 봐 줄까 싶어서. 어디서 주워 온 자식은 아니라고 해서.
“공장에 가라고 했을 때 아무 말도 못 했어. 공장에 안 가면 집에서 내쫓을 거라고 그랬거든.”
아직도 그때 어머니의 한마디가 김유석에겐 선명했다.
‘싫어? 싫으면 나가. 아무도 너 안 잡는다.’
그래도,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집을 나갈 수 없었어. 조금 오기도 생겼고. 내가 돈이라도 좀 벌어 오면 따뜻한 말 한마디쯤은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 외에도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당시엔 집이란 울타리 밖을 나가긴 무섭더라.”
그런데 공장 일이 참 힘들었다.
“한계가 금방 찾아왔지. 그 어린 나이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녔던 데다가 2교대로 쉴 틈이 거의 없었으니까.”
멍청하게도 번 돈을 족족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러다 이대로 계속 공장에 다니다 보면 죽을 것 같아서 몰래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맞았다.
“뺨도 맞고, 발로 걷어차이고 밟히고. 대체 왜 그랬냐고, 힘겹게 사정사정해서 얻어다 준 자리라고 했지. 형이나 동생은 말리기는커녕 날 구경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한마디 안 하셨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거, 애새끼 진짜로 잡겠네. 죽으면 장례비는 어디서 나오나?’
‘장례도 치러 주게요?’
‘그래도 내 씨인데 장례는 치러야지.’
‘으이구.’
너무도 담담한 목소리로 나눈 부모님의 대화.
“그때 생각했지. 연을 끊자고. 저놈들은 부모가 아니라고.”
그럼에도 여전히 김유석은 어머니라고, 아버지라고 부모를 칭하고 있었다. 은후는 그 점을 지적하고 이유를 물을까 하다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삼자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겠지.’
하물며 감정에 관련된 것이라면야.
“다음 날 무작정 집을 나왔어. 나오는 길에 집에서 돈도 좀 훔쳐서 말이야. 그 길로 무작정 아무 버스나 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벗어나고 싶었거든. 그 지역을. 가족이 못 찾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
그러다가 도착한 곳이 전주라고 했다.
“터미널에서 내린 다음에 무작정 걸었어. 그냥 딱히 무슨 생각도 안 하고 걸었던 것 같아.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었고.”
그런데 하필 도망친 시기가 겨울이었다. 그래서 무척 추웠으며 전날 구타까지 당한 상태였다.
“그러니 쓰러지지 않을 도리가 있나?”
살랑거리면서 내리는 눈발. 차가운 도로.
선명하게 다가오는 죽음.
“죽기 싫었지. 당연한 소리지만.”
하지만 그 반대로 편안하다는 느낌 또한 받았다. 이제는 쉴 수 있구나. 그런데 살 사람은 어떻게 산다고 했던가.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그때 내 아내를 처음 만났어.”
덤덤하게 말해 오던 김유석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풀어졌다. 그리고 잠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은후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빈 잔에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눈을 떠 보니까 왜 소설에서 나오는 첫 문구 있지?”
눈을 떠 보니 처음 보는 천장이었다, 라는.
그걸 실제로 체감했다.
“하얀 벽지였어. 그리고 침대라는 걸 그때 처음 써 봤고. 이불은 또 얼마나 보드랍던지. 맨날 딱딱한 바닥에 낡은 이불 한 장만 덮고 살았거든.”
김유석의 눈은 과거를 질주해 그 시절로 돌아갔다.
* * *
정신을 차린 김유석은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리며 주위를 살폈다.
낯선 풍경, 너무 따뜻하고 포근한 방.
아직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한 지친 몸뚱어리. 그래서 김유석은 마치 이 모든 게 꿈을 꾸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어?”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천사가 나타났다. 적어도 김유석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느껴질 정도의 미인이었다.
“일어났네요?”
뭔가 기분이 몽롱했다.
김유석이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천사?”
그 말에 막 방에 들어온 여인 김수련이 고개를 갸웃했다. 잘못 들은 것 같아서. 김유석이 눈치를 살피다 슬그머니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긴 천국……인가요? 천국은 못 갈 줄 알았는데.”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김수련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꽤 화통한 웃음. 김유석은 그 웃음소리에 내심 당황하며 생각했다.
‘아닌가?’
김수련은 간신히 웃음을 멈추며 말했다.
“아, 하, 하아. 진짜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천국은 무슨 천국이에요. 죽지도 않았는데.”
“그럼 여긴 어디예요?”
“우리 집이요.”
“집?”
“네, 집.”
꽤 멍청한 느낌의 대화였다.
“죽은 줄 알았는데.”
“죽을 뻔했죠. 그런데 운 좋게 제가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구했네요.”
“왜요?”
“네?”
“왜 저를 구했어요?”
김유석은 태어난 이래 그때까지 한 번도 이런 호의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딱히 보답할 수 있는 게 없는데.”
피붙이인 가족도. 학교에 다니긴 했으나 집안 환경 때문에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귈 수 없어서. 또 그 외 알고 있는 어른들도. 예컨대 학교에서 만났던 선생님이나 공장에서 아저씨들까지도 이렇게까지 잘해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러게요. 그냥 제 마음이 시켜서요.”
“어떻게요?”
김유석의 질문에 담긴 감정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그걸 알아차린 김수련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답했다.
“쓰러진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칠 수 없었달까. 안 그래도 옷도 얇게 입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대로 내버려 두면 죽을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래서 구했다.
그것뿐.
“그게 끝이에요?”
“그러면 여기서 더 뭐가 필요해요?”
“…….”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어요. 부모님께서 예전부터 이런 말씀도 하셨고요.”
가여운 이를 불쌍히 여기고, 가능하다면 손을 뻗어라.
“좋은 말이죠?”
“그러, 게요.”
그런 말, 처음 들어봤다.
“그래서 왜 거기에 쓰러져 있었어요?”
“도망쳤거든요.”
그 말에 무언가를 느낀 김수련은 더는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그리고 툭 한마디 내뱉었다.
“밥 먹을래요? 배고플 것 같은데.”
그 말 한마디에 잊고 있던 허기짐이 격하게 몰려왔다. 그래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도 났다. 그 소리에 김수련이 피식피식 웃었고, 김유석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김유석은 식사 자리에서 김수련의 부모님을 처음 뵈었고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김수련은 김유석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얘, 우리 집에 있게 하면 안 돼요?”
그날부터였다.
김유석이 김수련의 집에 얹혀살게 된 건.
* * *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탐탁지 않아 했어.”
살아온 환경 때문에 김유석은 눈치가 빨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굳이 그렇게 안 해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싫었다.
“갈 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솔직히 아내를 더 보고 싶었거든. 현실적으로 내가 이 집을 떠나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끝내 김수련의 부모님은 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자신에게 이리 가르친 건 부모님이 아니냐면서 김유석에게 했던 말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항상 저 보고 불쌍한 이를 가엾게 여기고, 가능하면 손을 뻗으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지금이 그때 아닌가요?’
그날 이후 김수련은 김유석에게 많은 걸 베풀었다.
“고등학교도 다니게 해 줬지. 원래 어디 일자리라도 구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 하지 않겠냐면서 말이야.”
김수련의 나이는 김유석보다 네 살 위였다. 그래서 공부도 줄곧 가르쳐 주고, 매번 함께 식사하고. 그렇게 점점 정이 쌓였다.
“나는 자연스레 아내를 좋아하게 되었어. 하지만 고백할 용기는 없었지. 그럴 생각도 없었고. 고백했다가 차이면 친한 누나 동생 관계도 깨질뿐더러…… 집안 차이가 명백했으니까.”
그래서 속으로만 그런 감정을 품었다.
“언감생심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좋아한다는 티를 절대로 내지 않으려고 했어.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아내가 고백하더라. 좋아한다고, 정식으로 교제하고 싶다고.”
처음에는 불쌍해서, 이후엔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었다며.
“얹혀사는 처지에 하나라도 흠이 잡히긴 싫었거든. 그래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는데 그게 참 귀여웠다나 봐. 그래서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어느 순간부터 잘 대해 주셨고.”
다만 그 관계가 깨진 건 김유석이 김수련의 고백을 받아들이면서부터였다.
“당연히 난리가 났지. 안 날 수가 있나?”
귀한 딸이 어디서 굴러들어온 말 뼈다귀 같은 놈에게 넘어간 것인데.
“솔직히 오갈 곳 없는 날 받아 주신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대단한 분이야. 아무리 딸이 그렇게 말했다지만. 그런데 아내가 더 대단했어.”
김유석이 흐릿하게 웃음을 흘렸다.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게 무엇이 문제냐면서, 아버지랑 어머니야말로 이상하다고 외쳤어. 물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셨고, 그럴 거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지.”
그래서 다음 날 집을 나왔다.
“우리 아내, 행동력도 대단했다니까.”
김유석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후는 고생의 연속이었다고.
단칸방에서 조그마한 집을 얻을 때까지.
“아내도, 나도, 열심히 일했지. 그때가 참 좋았는데.”
그러다가 사랑의 결실이 아내의 몸에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김수련의 몸이 약하디약했다는 것. 안 그래도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집을 나온 이후 너무 고생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병원에서는 김유석과 김수련에게 임신 이후 계속 경고했다. 산모의 몸이 약해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그러니 아이를 지우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내는 곧 죽어도 낳아야겠다고 했어. 내 자식, 절대로 포기 못 한다고.”
이후 시간이 흘렀고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아내가 죽었다.
김유석에게 세상이 무너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