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이하연과 데이트는 제법 즐거웠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데이트 코스.
공원에서 산책한 뒤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그리고 전주의 중심 관광지 중 하나인 한옥 마을에 가서 데이트를 즐겼다.
‘이것저것 조사도 많이 해 왔네.’
오늘을 위해서 있는 힘껏 노력한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자잘한 실수. 예컨대 길을 잘 못 찾는다든가, 정말 유명한 카페라고 해서 가 봤더니 막상 별로였다든가, 그런 일들에 그냥 웃을 수 있었다.
“으, 미안.”
“미안할 거 없다니까.”
당사자인 이하연은 아니었지만.
‘은후는 완벽했는데.’
난 왜.
불안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데이트를 마치고 기차역으로 가는 길. 이하연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사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닌데. 은후 또한 크게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으니까, 그냥 나도 웃고 넘기면 되는 건데. 그게 그런데 잘 안 되었다.
그 이유는 이하연이 일종의 강박증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기는 직장에서의 따돌림이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하물며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라면야.
‘괜찮아.’
이하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하지만 은후는 이하연이 갑자기 불안해 하고 있는 걸 진즉 깨달았다.
갑자기 줄어든 말수도 그렇지만 아까와는 이하연의 감정이 달라져서. 그래서 은후는 잠자코 지켜보다가 이하연으로부터 감정을 흡수했다.
‘어?’
갑자기 편해졌다.
‘왜지?’
한 번 이렇게 자신의 실수를 자각하게 되면 최소 몇 시간은 끙끙거렸는데.
‘다행이다.’
사라진 불안감.
‘은후…… 덕분일까.’
왠지 그런 것 같은데.
이런 강박증에 시달릴 경우 이번처럼 갑자기 좋아진 적은 없었으니까. 심지어 가족들의 진심을 알았음에도 그랬다.
‘편해.’
아무런 말이 없어도, 그럼에도 이토록 편안한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라서. 그래서 은후와 헤어지며 이하연은 더욱 짙은 아쉬움을 느꼈다.
* * *
이하연과 데이트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 은후는 평범한 삶에 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평범한 삶이라.’
얼핏 생각하면 쉬운 것 같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그만큼 어려운 것 또한 없는 단어가 평범이었다.
‘위층 아저씨만 해도 말이지.’
은후가 이처럼 평범이란 단어를 곱씹는 이유는 이하연과 데이트를 하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쭉 자신의 마음에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에 관한 동경.
그건 은후의 감정이 아닌, 이제 정령이 되어 버린 위층 아저씨의 감정이었다. 그 이유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정령의 탄생에 감정 마나를 사용해 개입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은후는 마법사였다. 그것도 감정 마나를 다루는 흑마법사. 그렇기에 냉정하게 자신을 파악하고 감정을 관조했다.
“왔나?”
짐작한 이유가 맞았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된 감정. 그 감정이 눈앞에 있는 위층 아저씨 정령에 반응하고 있었다.
“네, 별일은 없으셨던 것 같네요.”
“귀신에게 무슨 일이 있으려고.”
은후가 쓰게 웃었다.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할까.
도움을 주는 대신 마법사로서 연구를 약속받은 일주일.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짧으면 열흘, 길면 보름, 그 정도 시간밖에 남지 않은 정령의 일주일이란 시간을 내 호기심을 채우는 데 써도 괜찮은 것일까.
‘쯧.’
은후가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이렇게 약해지면 안 되는데.’
마법사라면 응당 요구할 수 있을 정도의 대가였다. 딱히 마법사로서의 집착은 아니었다. 그건 인간으로서 손해를 보기 싫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게다가 내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바로 사라졌을 존재였으니. 그러나 그런 생각과 동시에 은후는 자신이 너무 빡빡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굳이 이해득실을 따져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호구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그냥 베풀 수도 있는 법 아니겠나. 하물며 평범한 삶을 동경하다가 홀로 쓸쓸하게 죽어 간 이였다.
‘왜 이렇게 감성적으로 된 건지.’
은후가 픽 웃었다.
“뭔가 웃긴 일 있으면 나도 좀 알려 주지?”
“별거 아닙니다. 그냥 제가 웃겨서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도 다짐했거늘.
마음이 가는 대로.
그래, 세상을 떠나기 전 온전히 본인에게 집중하고 미련을 풀 수 있도록 해 주자. 그러지 않아도 되었으나 그렇게 하자고, 은후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이 결정의 계기는 타인의 감정. 하나 원한다면 배제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러하지 않은 건 은후 본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진득하게 연구하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함께 있으며 틈틈이 관찰하면 무언가라도 얻겠지.
‘데릭이 봤으면 드디어 자비를 깨달았냐며 푸근하게 웃었겠어.’
어려운 이를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라.
이세계에서 친분을 맺었던 참된 신관, 그가 항상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었다. 은후는 그렇게 잠시 이세계에서의 옛 인연을 떠올리며 말했다.
“술이나 한잔하시렵니까?”
“응?”
“막걸리를 좋아하셨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귀신이 술도 마실 수 있나?”
“그럼요.”
“이거 참.”
위층 아저씨 정령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몇 번인가 술 한잔 마시자고 했었던 것 같은데, 죽어서야 같이 마실 수 있게 되었어.”
* * *
어디에서 마실까.
‘덕진공원이 무난하기는 한데.’
수호령 친구도 있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은후의 생각이었다. 연구를 포기하면서까지 이런 배려를 베푸는 건 위층 아저씨 정령을 위한 것이니까.
“어디에서 마시고 싶으세요?”
“장소?”
“네.”
“그러게. 어디가 좋으려나.”
어디에서 마셔야 하나.
평소에 마시는 곳은 줄곧 살던 방 안. 하지만 죽어서까지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풍남문?”
“풍남문이요?”
은후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뭔가 추억이라도 깃든 곳일까.
“아들이랑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같이 술을 마셨거든. 그 근처에서.”
풍남문은 아까 낮에 이하연과 데이트하면서 들렀던 곳이기도 했다. 졸지에 하루에 두 번이나 가게 생겼지만, 은후는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막상 가 보니 하연이는 그저 그런 것 같았지.’
한옥 마을 근처에 있으니까 겸사겸사 들러 본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위층 아저씨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가기 전에 술부터 사죠. 담배도 피우셨죠?”
“담배도 피울 수 있어?”
“술도 마실 수 있는데 담배라고 못 피우려고요.”
“자네는 비흡연자 아니었나?”
은근히 자신을 신경 써 주는 위층 아저씨에게 은후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 들러 막걸리 네 병과 종이컵, 그리고 말보로 미디엄 한 갑을 샀다.
“가시죠.”
“응?”
은후가 위층 아저씨에게 자신의 마나를 나누어 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위층 아저씨는 그런 은후를 바라보며 당황했다.
‘날아?’
정령이 되었다지만 생전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온전해서, 그래서 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위층 아저씨에게 은후가 말했다.
“아까부터 날아서 이동하셨어요. 그냥 난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띄워 보세요.”
위층 아저씨 정령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감을 잡고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풍남문으로 날아가면서 내심 감탄했다.
‘허.’
맨몸으로 하늘을 날다니, 생각지도 못한 호사였다.
‘좋구나.’
마침 반달이 떠 있었다.
‘아들과 마셨던 밤에는 보름달이었던가.’
꽤 오래전 기억이라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는 건 무척 기분이 좋았다는 것. 그리고 술잔을 기울였던 가게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는 것 정도.
‘그리고 비가 왔던 것 같은데.’
하필 그날을 떠올려서는.
‘괜스레 아쉽게.’
비라도 내리면 딱 좋았을 것을.
이윽고 은후와 위층 아저씨는 풍남문에 도착했다. 시간이 꽤 늦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제법 있었고, 근처 음식점이나 술집은 장사가 한창이었다.
“잠깐 저쪽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가도 될까?”
“그럼요.”
기억을 따라 풍남문 옆길로 이동했다.
‘여기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아들과 술잔을 나누었던 술집. 하지만 그곳은 이미 망해 버린 모양이었다.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여기서 아들과 마셨었어.”
왠지 모르게 감정이 이입되었다. 아들과의 관계가 파탄 난 것처럼, 가게도 망해 버린 것이.
“한 대 피워도 될까?”
“네.”
은후가 담배 한 대를 건넸다.
“라이터는?”
“여기.”
라이터가 무어 필요가 있나. 은후가 마나를 움직여 손가락 끝에 조그마한 불을 피워 냈다. 그리고 불을 붙여 주었다. 위층 아저씨는 담배를 한 모금 크게 빤 다음 연기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마법사라고 했던가? 잘 모르겠던데, 진짜 마법사 맞았네.”
은후는 마나를 움직여 담배 연기를 주위에 퍼지지 않고 하늘로만 올라가게 했다. 여전히 근처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까.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후우.”
“그나저나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내 이름?”
“네. 제 이름은 이은후예요.”
“성이 이씨였나. 궁금했는데 이제 알게 됐네.”
항상 건물 주인아주머니가 은후 학생이라고 불러서, 그래서 이름은 알았으나 성은 몰랐다.
“내 이름은 김유석이야.”
“김유석…… 삼촌?”
“삼촌?”
“형이라고 부르기엔 나이 차가 좀 있잖아요.”
은후의 너스레에 김유석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엄밀히 따지자면 내 나이가 훨씬 많지만.’
그렇다면 김유석이 은후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텐데. 그건 또 뭔가 많이 이상하지 않겠는가.
“술도 여기서 마시자고 할 건 아니죠?”
“그건 아니지.”
도로 한복판에서 술을 마시기엔 좀. 분위기도 그렇고.
“풍남문 앞에 공터에서 마시자. 어때?”
“괜찮죠.”
은후와 김유석은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그리고 풍남문 앞에 너른 풀밭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한 잔 받으세요.”
김유석은 약간 미심쩍은 표정으로 종이컵을 건네받았다. 자신은 귀신이었으니까. 저 종이컵을 쥘 수 있을까. 그런데 쥐어졌다.
‘허.’
은후가 없는 동안 별의별 짓을 다 해 봤지만 어떠한 물건도 손에 닿지 않았는데.
“맛 좋네.”
이따금 들리는 자동차 소리. 길거리를 오고 가며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그런 풍경이 왠지 모르게 아련하게 다가왔다.
왤까.
그건 아마도, 내가 바뀌어서.
‘저들이 바뀐 게 아니라.’
그래서 너무 멀어진 것만 같은 광경.
솔직히 김유석은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질 않았다, 자신이 죽었다는 게.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언제나 봐 왔던 일상 풍경인데.
‘멀다.’
가까운데, 곧 사라질 것만 같은. 마치 신기루처럼.
그런 느낌.
이내 김유석의 눈동자가 옛 과거로 돌아가 흐릿한 가로등의 빛처럼 먹먹함을 흩뿌렸다.
“내 고향은 대구였어.”
이후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귀신이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