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관찰이나 연구는 나중에. 당장은 눈앞의 귀신 아저씨의 의문점부터 풀어 주는 게 먼저였다.
‘예전의 나였다면.’
눈앞에 있는 정령의 상황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겠지. 마법사라는 족속들이 그랬다. 은후도 과거에는 예외가 아니었다. 마법은 그렇게 집착하고 미쳐야만 입문할 수 있는 학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집착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었기에 은후는 인간의 도리를 더 우선시했다. 아무리 정령이라고 한들 생전에 인간이지 않았던가.
“죽은 건 기억하고 계시나요?”
“흐릿해서 잘 모르겠어. 그래도 죽은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그 외에 기억나는 건 없다고.
‘사후의 비밀은 여전히 풀 수 없는가.’
사실 아주 조금은 기대했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죽음 이후 정령이 된 인간은 자신의 마지막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폐지 줍는 노인도 그랬었고.
“그런데 나는 어떻게 된 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드리자면 귀신이 되셨습니다.”
“귀신?”
“네, 귀신이요.”
중년의 사내는 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저 컵 한 번 집어 보시겠어요?”
“컵?”
“네.”
“…….”
중년 사내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휙 하고 컵을 관통했다.
‘거의 억지로 사라지려던 정령을 탄생시켰으니.’
당연히 힘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는 순간이야 잠시 마나가 집중되어 외부에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하, 하하.”
한동안 충격에 휩싸인 중년 사내가 침묵했다. 은후는 중년 사내가 감정을 정리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귀신……. 뭔가 자네가 나한테 한 것 같은데 맞나?”
“네.”
은후의 마나로 탄생한 정령. 그래서 중년 사내는 뭔가 느끼는 게 있었다.
“왜?”
“미련이 있으셨던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 외에는 제 호기심?”
“호기심이라고?”
“네. 정령, 그러니까 귀신이 제 힘으로 탄생할 수 있는가? 단순히 마나만 집어넣는다고 될까? 또 인간이 정령이 되는 과정도 궁금했고요.”
뭔가 판타지 같은 이야기였다.
평소 웹 소설 감상이 취미였던 중년 사내는 은후의 말을 온전히는 아니어도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그게 끝인가?”
“그렇죠. 그래서 그러는데 제 연구에 협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일주일만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못다 한 미련을 풀게 도와 드리죠.”
“미련, 인가.”
“네. 죽기 직전에 떠오른 게 있으실 텐데요.”
은후의 말에 중년 사내가 움찔하면서 괴로운 표정으로 답했다.
“아들을, 아들을 보고 싶었네. 이제 죽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보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왜 일주일인가?”
“길어야 보름. 짧으면 열흘 정도일 거거든요.”
중년 사내 정령이 사라지는 것은.
‘불안정해.’
은후의 힘으로 사라지려던 걸 강제로 탄생시켜서 그랬다.
“귀신도 죽는가 보고만.”
“네.”
“혹시 아나? 그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만. 제가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는 가설은 윤회입니다.”
“윤회라. 자네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한결 마음이 좀 놓여.”
* * *
중년 사내는 자취방 근처를 떠날 수 없었다. 조금만 멀어질라치면 형체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불안정성이 더욱 커졌다.
‘다행히 내 방까지는 괜찮나.’
마나를 좀 더 불어넣어 준다면 이동 하는 건 어찌어찌 가능할지 싶은데.
‘그건 나중에 실험해 보면 돼.’
은후는 중년 사내를 홀로 내버려 두고 씻은 뒤 바깥으로 나왔다.
‘혼자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거야.’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귀신이 된 자신.
심란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그리고 은후는 점심에 약속이 있었다.
“오늘 자정까지 반납해 주셔야 합니다.”
“네.”
은후는 근처 렌터카 업체에서 중형 세단 한 대를 빌렸다. 대학생으로서는 약간 부담되는 돈. 하지만 앞으로 통장에 채워질 돈을 생각하면 이 정도 사치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렌트를 한 이유는 간단했다. 안 그래도 더운 날이었다. 데이트하는데 이 정도 배려는 이하연에게 해 주고 싶었다. 은후로서도 편하고 싶었고 말이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차를 몰아 보는 건.
첫차를 산 게 언제였더라.
‘그때 참 기뻤지.’
하물며 신차였다. 그래서 흠이라도 날라치면 안절부절못했다. 시도 때도 없이 상태를 확인하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사소한 건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지만.
‘차라.’
이번에 채권과 보석이 현금화되면 차를 한 대 사긴 할 건데.
‘어떤 차를 사야 하나.’
은후는 그런 사소한 고민을 하면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은후가 사는 자취방에서 제법 떨어진 곳. 하지만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나왔기에 은후의 운전은 매우 느긋했다.
전주역 주차장에 도착한 은후는 차를 세운 뒤 준비했던 양산을 챙겼다. 그리고 로비로 가서 기차역 간판을 확인했다. 이하연이 탄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20분이었다.
‘이런 건 참 우리나라가 좋다니까.’
다른 나라와 다르게 사고가 없다면 거의 칼같이 시간을 지키니까. 은후는 적당히 사람들을 구경하며 로비에 있는 큰 TV를 시청했다.
‘응?’
마침 그때 은후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나왔다.
“훈훈한 소식 전해 드립니다. 전주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던 중년 여성이 완벽하게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김 모 씨가 치매를 앓기 시작한 건 약 2년 전. 많은 나이도 아니었던 데다가 봉사 활동에 열정적이었던 사람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는데요.”
뉴스로 나올 정도의 일이었나.
‘하기야.’
현대의 발전한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불치병. 하물며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을 지독한 고통과 슬픔으로 몰아넣는 병 아니던가.
‘이세계에선 돈만 많다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인데.’
신관에게, 혹은 마법사에게.
은후도 치매를 치료할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릴 뿐. 그런 의미에서 찰나에 치매라는 병을 완치시킨 우산 요괴의 힘은 기적이었다.
‘아니, 기적은…….’
모든 것이었다.
김미나가 우산을 소중히 대한 것. 그리고 하필 우산을 잃어버린 곳이 덕진공원이었고, 또 하루살이인 우산 요괴를 안타깝게 여겼던 공원의 수호령이 힘을 썼고, 끝내 은후가 만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뭐.’
이런 기적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은후는 희미하게 웃으며 시계를 흘끗 보고 역 안에 있는 카페로 가서 주문했다.
“캐러멜 마키아토 한 잔이랑 카페 모카 한 잔 주세요. 둘 다 아이스로요. 결제는 여기 카드로 부탁드립니다.”
“네, 주문받았습니다.”
은후는 커피를 들고 기차가 도착하는 바로 앞까지 가서 섰다. 이윽고 기차가 도착하고 이하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사람과 함께였다.
‘김성백?’
은후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하연에게 다가갔다.
“왔어?”
“어?”
“뭘 그렇게 놀라?”
“아니, 뭘 여기까지 마중 나왔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지.”
“이게 뭐 어렵다고.”
이하연이 샐쭉이 웃었다.
“또 뵙네요.”
은후가 김성백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김성백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나저나 두 분은 어떻게?”
“하하, 그게 우연이었습니다. 마침 전주에 내려갈 일이 있었거든요.”
하필 또 근데 근처 좌석이었다고.
“업무차 오신 건가요?”
“네, 만날 사람이 좀 있어서요. 이번에 치매에서 갑작스레 회복한 분인데요.”
김성백은 신경과 전문의였다. 그리고 치매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따로 개인적으로 연구도 하고 논문도 준비하고 있다고.
“정말 희귀한 사례라 뭔가 치매 치료에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인터뷰 요청을 했거든요. 흔쾌히 허락해 주시기에 전주로 내려왔습니다. 겸사겸사 바람도 좀 쐬고요.”
일이 이렇게 연결되나.
은후는 대한민국도 참 좁다, 싶었다.
“하연아.”
“응?”
“여기 커피. 선생님도요.”
“이거 감사합니다. 그런데 은후 씨 거 아니었나요?”
“가면서 한 잔 더 사면 되죠. 받으세요.”
“이거 죄송한데요.”
은후는 그냥 웃으며 억지로 김성백에게 커피를 건넸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은후는 준비했던 양산을 펼쳐 이하연에게 씌워 주었다.
“센스 뭐야?”
“그러게? 그나저나 선생님은 어디로 가시나요?”
“저는 덕진공원으로 갑니다. 그분이 인터뷰 장소를 거기로 지정하셔서요.”
“그럼 같이 가실래요? 차 가져왔거든요.”
이하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차? 벌써 샀어?”
“아직 산 건 아니고. 오늘은 렌트. 대중교통으로는 좀 불편할 것 같아서.”
“그야 그런데, 무리하는 건 아니지?”
“전혀,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나저나 그렇게 먼 거리 아니니까 선생님도 같이 괜찮을까?”
덕진공원.
안 그래도 이하연이 생각해 둔 데이트 코스 중 하나였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 이동하는 것뿐이라면야.
* * *
이동하는 도중 두 사람이 김성백이 전해 준 모델 건을 수락했다는 것, 또 은후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피부숍에 김성백이 찍어 준 사진을 건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인화된 결과물은 경훈이랑 만날 때 받으시면 됩니다.”
김경훈.
은후와 이하연에게 모델을 해 달라고 의뢰한 포토그래퍼. 그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요새 잘나간다고 했다.
“그런 사람한테 모델 의뢰라니. 진짜 놀랐다니까?”
“그래?”
“응.”
“경훈이가 좀 잘나가기는 하죠. 원래도 잘나갔지만 작년에 빵 떠서는. 그나저나 저랑 약속한 날짜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다음 달 월차도 미리 냈어요.”
다시 한번 모델을 하기로 한.
“뭐야? 언제 그런 약속 잡았어?”
“그때 처음 만났을 때.”
은후는 김성백의 낡은 카메라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 것. 그리고 그때 다시 한번 모델을 하기로 했다는 말을 이하연에게 해 주었다.
“넌 못 들었었나?”
“못 들었거든요.”
이하연의 입술이 뾰로통해졌다.
“괜찮으시면 하연 씨도 어떠십니까?”
“저도요?”
“그럼요. 하연 씨도 모델로서 훌륭하죠. 비용도 넉넉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은후만 좋다면 좋아요.”
은후가 픽 웃으며 답했다.
“난 상관없어.”
두 사람의 표정이 환해졌다. 자연스레 분위기가 한결 더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덕진공원 뒤쪽 주차장까지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그럼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김성백이 눈치껏 먼저 자리를 비켰다.
“잠시 걸을까?”
“응.”
은후가 다시 한번 양산을 펼쳤다. 그리고 그때 쪼르르 멀리서 공원의 수호령이 달려왔다.
“뭐야, 뭐야. 누구야?”
은후가 입을 열지 않고 마나로 의지를 전달했다.
- 내 친구.
“단미 같은 사람이네.”
- 단미?
“으응, 그러니까 사랑스럽고 달콤한 여자.”
예전에 쓰던 말인가.
“누가 너보고 단미라고 하더라.”
“단미?”
“응, 사랑스럽고 달콤한 여자를 뜻하는 말이래.”
“……누가 그런 말 했어?”
“그러게. 누구일까.”
은후가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하연은 귀를 빨갛게 물들이며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공원의 수호령은 서운한 감정을 털어 내고 은후에게 외쳤다.
“좀 있으면 분수 쇼 있다구 하더라! 난 그거 보러 갈게! 그런데 다음에는 나랑 놀아 줘야 해?”
공원의 수호령이 뽈뽈거리며 사라졌다. 은후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픽 웃은 후 말했다.
“분수 쇼 보러 갈래?”
“좋아.”
얼마나 발걸음을 옮겼을까.
호수의 다리를 건너는 도중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솟구쳤다.
“와!”
이하연이 눈빛을 반짝였다.
‘좋구나.’
좋은 날씨와 음악, 평화로움을 만끽하는 사람들.
분수 바로 근처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웃음을 터트리는 공원의 수호령.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의사 김성백과 치매에서 완연히 회복한 김미나.
‘정말로 좋아.’
다만 마음 한 켠이 쓸쓸한 건 오늘 아침에 만났던 귀신 아저씨가 떠올라서 그런 것일까. 은후가 휘휘 고개를 저으며 뇌까렸다.
‘아들을 보고 싶다, 라.’
그 아들이란 사람, 잘살고 있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