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24화 (24/170)

제24화

은후가 일전 메일을 확인했을 때 확실히 사진은 잘 찍혔었다. 이따금 부업으로 돈을 벌거나 작품을 출품하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실력이 있었다.

‘하기야 본업이 의사인데.’

정말로 자신이 재밌고 즐겁지 않으면 할 이유가 없었다. 하물며 모델 또한 훌륭했다. 은후는 말할 것도 없이 이하연까지. 딱히 꾸미지 않고 기본적인 차림이었음에도.

둘 다 외모가 뛰어났기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빛이 났다. 거기에 제법 뛰어난 사진 기술까지 더해지니 사람들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 탄생했다.

“와.”

가게에 있는 구형 PC에서 이메일을 열어서 사진을 띄우자 모두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까 봤던 화보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치?”

“우리 선생님 옆에 계신 친구분도 장난 아니시네.”

“선남선녀네, 선남선녀야.”

“그러니까 말이야.”

손님들이 사진을 구경하며 은후를 칭찬하기 바빴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은후의 어머니 이은영의 입가엔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저렇게 좋으실까.’

은후가 속으로 웃었다. 꽤 뿌듯했다. 사진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걸 보여 준 까닭은 어머니를 위해서였으니까.

본디 자식이 잘나가는 게 부모의 행복 중 하나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은후는 메일을 통해 김성백이 제안한 모델 건을 수락할까 싶었다.

‘이번에 새로 론칭하는 브랜드라고 했던가.’

옷과 관련된 모델을 해 달라고 메일을 통해 김성백이 부탁해 왔다. 어떻게 된 것이냐면,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찾아간 스튜디오의 지인이 한눈에 은후와 이하연을 보고 꽂혔다는 것이다.

물론 거절해도 상관은 없다고 했다. 지인과의 인연 때문에 말씀은 드리지만 불편하게 할 생각은 없다고. 다만 이쪽 계통에 발을 들일 생각이라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제 지인이 좀 잘나가서요.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봐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게 잠시 상념에 잠겼던 은후에게 어머니인 이은영이 물었다.

“아들.”

“네?”

“요 세 번째 사진 말이야.”

“네.”

“인화 좀 크게 해서 가게에 걸어 두고 싶은데 괜찮을까?”

“가게에요?”

“응. 연예인 사진 걸어 놓는 느낌으로.”

“연예인……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은후가 멋쩍게 웃자 옆에 있던 김명희가 슬쩍 끼어들어 말했다.

“안 그래도 저쪽 벽이 허전한 것 같았는데 그러면 좋지 않겠어요? 그리고 우리 선생님이면 연예인 맞죠. 적어도 가게에서만큼은이요. 안 그래, 다들?”

김명희의 말에 다들 그렇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멋진 외모는 물론, 절로 존대를 하게 만들 정도로 진중한 분위기. 게다가 이따금 해 주는 고민 상담은 백미였다.

“그, 일단 같이 찍은 친구 의견 좀 물어보고요. 저 혼자만 나온 사진이라면 괜찮은데요.”

“그래. 친구 불편하게 하지 말고. 안 된다고 하면 독사진으로 고르면 되니까.”

은후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어머니 이은영과 다른 손님들은 독사진을 건다면 어떤 사진이 제일 나을지 토론하기 시작했다.

* * *

자취방으로 돌아온 은후는 이하연에게 문자를 남겼다.

[할 말 있는데 시간 될 때 전화 좀.]

모델 제안은 은후만 온 것이 아닌 이하연과 세트로 온 제안이었다. 그리고 가게에 걸어 놓을 사진. 또 전주에서 언제 만날지 날짜도 잡아야 하니까.

용건이 셋. 그러니 문자보다 전화가 편했다. 이하연은 할 말이 있다는 은후의 말에 살짝 긴장하면서, 망상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응. 할 말이 뭐야?”

- 김성백 씨한테 제안 온 모델 건 말이야. 메일 확인했지?

“했지.”

- 할래?

“나야 뭐 백수니까 상관없는데. 은후, 넌 괜찮겠어?”

- 괜찮으니까 하자고 했겠지?

“그렇다면야.”

사실 이하연은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은후와 같이 모델로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가 좀 망설여졌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접했던 은후와 다르게 오프라인에서 겪은 모습이 너무 담담해서. 보통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진 촬영 제안을 받으면 기쁜 표정이라도 지었을 터인데.

‘하지만 은후는 안 그랬어.’

으레 일상이라는 듯, 너무 익숙해 보였다.

‘그렇다고 촬영을 자주 한 것도 아니라고 했고.’

모델로서 카메라 앞에 선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 외모를 가지고도. 그러니 이하연으로서는 은후가 그런 쪽에 관심이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같이 할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했는데.

‘먼저 은후가 말을 해 줄 줄은.’

정말 의외였다. 그래서 무척이나 기뻤다.

- 여보세요?

“어, 어어. 하여튼 난 괜찮아.”

- 그래.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너랑 찍은 사진 한 장 가게에 걸어 놓고 싶다더라. 괜찮을까?

“가게? 아, 맞다. 어머니가 피부숍 한다고 하셨지? 물론 괜찮지.”

- 땡큐.

“그런 거로 뭘. 그나저나 전주 언제 갈까?”

- 언제가 편한데?

이하연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일?”

- 갑자기?

“뭐 어때. 너도 저번에 그랬으면서.”

- 그거야 그런데.

내일이라.

‘딱히 일정은 없나.’

박수무당인 김영호와의 만남은 아직 시간이 남았다. 담금주 사업체와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건 채권과 보석을 현금으로 바꾼 이후이고.

“마음대로 해.”

- 좋아. 그럼 내일 봐.

이하연이 속으로 소리쳤다.

아싸!

* * *

다음 날, 은후는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약속 시각은 점심 무렵이었기에 좀 더 느긋하게 잠을 자려고 했지만 바깥이 워낙 시끄러웠다.

‘이럴 땐 좀 불편하네.’

보디 체인지 이전에도 은후의 감각은 정말로 날카로웠다. 마나를 품고 마법을 쓰기에 자연스러운 일. 그런데 보디 체인지 이후 더욱 감각이 예민해졌다.

물론 그만큼 조절 능력이 뛰어나서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이처럼 예기치 못한 소음이나 움직임이 감각에 걸려들면 자연스레 눈이 뜨였다.

‘나가 볼까.’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 감정 마나도 모으고, 호기심도 해결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은후는 적당히 옷을 입은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주머니?”

“아, 은후 학생.”

“무슨 일이래요?”

“그게, 하.”

자취방의 건물 아주머니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위를 슥 살핀 후 은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에 사람이 죽었거든. 참한 양반이었는데.”

“사람이 죽어요?”

“그 인사성 밝은 양반 있잖아.”

“아.”

시대가 시대였다. 과거와 다르게 대부분 이웃과의 교류는 거의 없기 마련이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닌 시대.

그 와중에 은후의 위층에 사는 아저씨는 특이하다면 특이한 사람이었다. 나이 불문 근처 이웃과 교류하려고 최대한 애썼으니까.

‘이유는 간단했지.’

외로워서.

‘막 여기 왔었을 무렵이었던가.’

김치를 담갔다며 은후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그걸 계기로 마주치면 인사하고 짧은 대화 정도는 하게 되었다.

“어쩌다가요?”

“방금 경찰한테 들었는데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고 하더라고. 다행히, 아니, 다행은 아닌가. 살인이나 강도는 아니라고 하던데.”

은후가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쯧.’

딱한 이야기.

‘응?’

그런데 은후의 감각에 걸리는 게 있었다.

‘정령?’

그러니까 귀신, 폐지 줍는 노인 때와 같은.

‘아니, 그건 아니야.’

애매한 상태. 얼마 전 의사이면서 취미가 사진인 김성백의 낡은 카메라 때와 비슷한. 하지만 김성백의 카메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태어나지 못하고 곧 사그라질 거라는 것.

‘한번 가 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은후에게 말했다.

“내가 학생이라 이야기해 준 거야. 학생은 그 양반이랑 좀 친했잖아?”

“딱히 친하다고 말하기도 좀 그런걸요.”

“에이, 그 정도면 친했던 거지. 여하튼 다른 데 가서 이런 말 하지 말고. 소문이 안 퍼지면 좋겠는데. 에휴, 이게 무슨 난리람.”

안타까운 사연.

하지만 건물 아주머니에게 있어서는 불행이기도 했다.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집값이 내려갈 테니까. 혹은 방이 오랫동안 안 나갈 수도 있겠고.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다지 교류가 없는 타인의 죽음이란 그랬다.

* * *

은폐 마법을 펼친 은후는 조심스레 위층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경찰관과 방송국 사람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카메라?’

대충 듣자 하니 고독사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고.

“신원은 확실한 거죠?”

“그럼요. 내가 짬밥 하루 이틀 먹은 것도 아닌데. 그런 건 정확히 확인했죠.”

“그런데 강 형사님은 강력계에 계시던 거 아니셨어요?”

“좀 쉬려고 보직 이동했습니다.”

은후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조심히 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원룸이 아닌 투룸. 거기에다 정령이 탄생하려 하는 건 안쪽 구석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보였다. 꿈틀거리는 마나 덩어리가.

“대충 알아보니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온 양반이고 주위 평판도 좋은 것 같았는데, 안타깝게 되었어요.”

“그러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편지가 제일 안타깝더라고요.”

편지라는 단어에 정령이 되려 하는. 하지만 그러기엔 힘이 모자란 마나 덩어리가 반응을 보였다.

“아들에게 쓰는 편지였죠? 기밀도 아닌데 나중에 좀 보여 주세요.”

“그 정도야 뭐.”

아들.

편지.

하지만 어느 정도 반응만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둔다면 결국 태어나지 못하고 사라질 마나 덩어리.

‘과연.’

구성 요소는 영혼과 생전의 감정. 그 외에 알 수 없는 자잘한 무언가들.

‘일종의 사념 덩어리라고 봐도 좋겠고.’

좀 더 연구하고 조사해 보지 않으면.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확신도 없었다.

‘마나만 모아 주입한다면.’

형체를 갖출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일단 시도는 해 보자.’

은후가 마나를 일으켰다. 그러자 반응이 있었다. 심지어 외부에 물리력까지 행사할 정도로.

“편지 내용 읽어 보면 알겠지만 참 불쌍한 양반이요. 가능하다면 유족들…… 뭐, 뭐야?!”

주위 물건들이 허공으로 붕붕 떠올랐다. 일종의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랄까. 그때 방송국의 PD가 외쳤다.

“야! 카메라! 찍어!”

“이 와중에 촬영?! 안 도망가요?!”

“제가 먹고사는 일이 이건데 어쩌겠……! 악!”

“일단 나갑시다! 이러다 크게 다치겠어요!”

둥둥 떠오르던 물건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흉기로 돌변했다. 카메라맨은 도망치면서도 그 광경을 착실하게 담았다. 이윽고 은후 외의 사람들이 전부 사라졌다.

그리고.

‘태어난다.’

정령이.

“나, 나는. 아.”

조금씩.

조금씩.

“나는.”

제대로 된 말을.

“여기는 대체 어디?”

이내 형상을 갖추었다,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은후는 그 과정을 최대한 집중해서 관찰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경찰과 PD, 카메라맨이 돌아왔다. 그리고 귀신이 말했다.

“은후 학생?”

그 목소리는 오로지 은후에게만 들렸다. 다른 이들에게는 우웅거리는 알 수 없는 진동으로 전달됐다.

“귀신!”

“아니, PD님, 요즘 세상이 무슨 귀신이요?!”

“형사님은 아까 폴터가이스트 현상 못 봤어요?”

“폴터니 포터니 내 알 바 아니고!”

한쪽에서는 호들갑 떨면서.

“오랜만에 뵙네요.”

“그래요. 그런데 나는 죽지 않았던가?”

다른 한쪽에서는 두런두런 담담히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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