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한동안 이창석은 회상에 잠겼다. 자신의 착각이라고 하기엔 고양이 울음소리가 너무도 선명해서. 하지만 이미 죽은 고양이 꼬질이가 다시 나타날 리도 없지 않은가.
‘다른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착각했나.’
하지만 요동치는 자신의 감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꼬질이의 죽음 이후 어떤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도 감정이 흔들린 적이 없건만. 그래서 이창석은 은후에게 물었다.
“혹 선생도 들었소?”
“무얼 말입니까?”
“고양이 울음소리 말이요.”
“바람 소리라면 들었습니다만.”
바람이라.
‘내가 착각했는가.’
하지만 아직도 간질이는 이 감정은 먹먹하기 그지없는데.
“그렇소이까?”
너무도 그리워 환청을 들었는가. 이창석은 그렇게 납득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싶었다. 그토록 그리웠던 꼬질이의 울음소리인데.
“계약서는 가지고 오셨소?”
이후 술자리는 자연스레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일전에 은후와 이야기 나누었던 계약 건을 마무리 지었다. 서로 도장만 찍으면 되었기에 시간이 걸릴 일도 없었다.
“죄송하지만 배웅은 할 수 없을 것 같구려. 좀 더 이 자리에 있고 싶어서 말이오.”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저도 이 근처를 좀 산책하다 들어갈까 싶었으니까요.”
은후의 말에 이창석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아니요. 차량을 준비해 드릴 터이니 바로 들어가시구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믿을지 모르겠소만.”
근처 터가 안 좋다고.
“내 집 근처라면 모를까. 이 주위에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오.”
단호하기 그지없는 이창석의 말. 은후는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조심히 들어가시구려.”
다시 오는 게 좀 귀찮기는 하지만.
‘쓸데없는 오해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
* * *
은후가 집으로 돌아온 건 오후 10시경. 은후는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더 보낸 뒤 은폐 마법을 펼치고 자취방을 나섰다. 그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었다. 그리고 보름달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그에 가까운 달빛.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기에 하늘을 날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어디 보자.’
은후는 자취방에서 가까운 곳 중 그나마 높은 곳인 금암동의 전북 은행 빌딩으로 향했다. 그리고 꼭대기에 올라서서 영맥의 흔적을 확인했다.
이창석의 자택으로부터 쭉 이어지는 영맥의 흐름. 물론 전주 시내였기에 은후가 있는 곳은 영맥의 흔적이 얇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세계였다면 각종 보호 마법으로 확인하는 것부터가 일이었겠지.’
영맥이란 큰 자산이며 마법사들은 물론 귀족들에게까지도 중요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현대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 의미는커녕 활용 방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풍수지리학이란 게 발달하기는 했지만.’
그건 은후 기준에서 기초 중의 기초 정도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오르나 했더니.’
풍경이 좋았다. 지방이었기에 딱히 고층 빌딩도 없었고. 그래서 전주 풍경이 거의 눈에 확 들어왔다. 은후는 잠시 풍경 감상을 하다가 훌쩍 날아올랐다.
하늘을 날았기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은후는 가면 갈수록 진하게 느껴지는 악령의 썩은 내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현대에서도 변함이 없나.’
특유의 악취.
‘그래도 좀 다른 것 같은데.’
뭐랄까, 이세계의 악령보다 미묘하게 더 끈적이는 느낌이었다. 다만 존재감이 약했다.
‘마나 농도가 낮은 곳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 같은데.
“대추나무?”
은후가 중얼거렸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군.’
그래서였나.
현대에서도 그랬지만 이세계에도 대추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자연적인 벼락에 맞은 대추나무는 마법사에게 훌륭한 재료였다. 왜냐하면 자연스레 마나를 품기 마련이었으니까. 그건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싶었다.
“나와.”
은후가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외쳤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안 나오나?”
보통 악령이라면 자연스레 생명체에게 품는 악의. 그래서 이 정도 도발이면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는데. 현대의 악령은 다소 다른 것 같았다.
‘안 나온다면 강제로 끌어낼 수밖에.’
은후의 의지에 따라 마나가 도도한 흐름을 이루기 시작했다. 마법이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보통 뒤틀어 현상을 일으키는 법칙이니.
‘타오르라.’
이번에 은후가 선택한 현상은 불이었다. 당연히 은폐 마법은 펼쳐 둔 상태였다. 범위도 철저하게 국소 부위로. 소방차라도 출동하면 안 되니까.
—!
대추나무 근처에 갑자기 나타난 불길의 향연. 악령이 괴성을 내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대추나무는 악령이 존재할 수 이유였으니까 생명의 위협이었던 것. 불길에 악령은 크게 화를 내며 은후에게 돌진했다.
은후는 픽 웃으며 준비한 스크롤을 찢었다. 악령을 사로잡기 위해 특별하게 준비한 스크롤이었다. 하지만 이내 은후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벗어나?’
이유가 뭘까.
“쯧.”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찼다.
‘개념은 같아도 태어난 곳이 다르기에 그런 것인가.’
불길이나 바람을 날리는 등의 원소 마법과 다르게 영과 관련된 마법은 섬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만 틀어지면 결과를 낼 수 없었다.
‘끈적임.’
이세계의 악령과 확연하게 달라 보이는 특성. 연구하지 않으면 사로잡기란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은후는 여건이 허락하는 내내 가볍게 악령을 상대하며 분석했다.
그렇게 약 두 시간. 은후는 얼추 현대 악령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은후가 직접 마법을 발동했다. 그러자 이내 악령이 당황했다. 갑자기 자신을 옥죄는 무언가. 하지만 은후의 마법을 저항할 수는 없었다.
‘됐다.’
악령이 은후가 준비해 온 루비에 봉인됐다.
“후우.”
은후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할 일은 끝났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흔적은…… 지워야겠지.’
최대한 조심하기는 했으나 두 시간 동안 악령과 상대했기에 환경이 어느 정도 손상될 수밖에 없었다.
‘아까 처음 봤던 그대로.’
최대한.
‘마나만 충분했다면 정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 텐데.’
미묘한 차이. 일반인이나 어지간한 능력자라도 구분할 수 없을 터인데, 은후의 눈에는 불만족스러웠다. 이럴 때마다 항상 마나 보유량이 아쉬웠다.
* * *
이창석을 만나고 악령을 사로잡은 날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다. 그사이 은후는 새로운 연구거리에 몰두했다. 현대의 악령은 은후에게 있어서 흥미롭기 그지없었으니까.
‘얼추 궁금한 건 다 파악했나.’
은후가 기지개를 폈을 때.
‘응?’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아티티틸라?’
아.
‘친구, 이하연.’
온라인으로 인연을 맺은 친구였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게임에서 알게 되고, 게임 취향이 비슷해 계속해서 같이 게임을 하고. 그렇게 약 10년을 알고 지냈다.
‘이 무렵이었나.’
군대에 다녀온 동안 잠깐 연락이 끊어졌었다. 다녀와서 하게 된 게임에서 재회했다. 서로 모든 게임에서 아이디와 닉네임을 똑같이 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다시 연락하게 되었고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는데, 실제로 한번 보자고 약속을 했었다.
[왜 요새 게임 접속 안 함?]
은후가 픽 웃으며 답했다.
[접음]
[? 구라 즐]
10년이 짧은 세월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하연의 취미는 웹 소설 감상이었다. 그 덕분에 은후도 읽지도 않던 웹 소설을 좀 읽었더랬다.
‘친해지고 싶어서.’
그렇게 입문하게 된 웹 소설은 신세계였다. 이후에도 꾸준히 웹 소설을 읽었고 나중엔 영미 쪽까지 손을 뻗쳤다. 그 경험들이 이세계에서 생활에 꽤 도움이 되었다.
‘꿈에도 몰랐지.’
정말로.
그래서 은후는 굳이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이하연을 퍽 선명하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야 진짜임?]
[아마?]
[아마는 뭐임 ㅡㅡ]
[그렇게 됐다]
[접을 거면 템 다 넘겨]
은후가 문자를 보내며 픽 웃었다.
[넘겨 드림]
[? 진짜인가 보네 그나저나 서울 언제 옴? 조만간 보자고 했으면서]
[내일 갈까?]
[뜬금?]
어차피 서울로 한번 올라가긴 해야 했으니까.
‘슬슬 채권 현금화시켜야지. 보석도 몇 개는 처분해야 하고.’
다행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을 폐지 줍는 노인이 알려 주었다.
[시간 없음?]
[한가하긴 한데…… 진짜 봄?]
[싫음 됐고]
[ㄴㄴㄴㄴ 너라면 괜찮겠지]
[뭐가?]
[나 졸라 이쁨, 반하지 마라?]
은후가 문자를 하며 피식 웃었다. 처음엔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이뻤으니까.
그래서 반했다. 하물며 게임이란 취미도 같았고. 결국 은후의 노력 끝에 사귀게 되었더랬다. 다만 장거리 연애였기에 그리 오랜 기간 함께하지 못하고 깨지게 되었다. 이후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고. 이게 은후의 제대로 된 첫 연애였다.
* * *
다음 날, 은후는 기차를 탔다. 버스를 안 타고 기차를 탄 이유는 목적지가 정확히 용산이었기 때문이다. 이하연이 사는 곳은 용산이었고, 기차를 타면 용산역에서 바로 내릴 수 있었다.
‘이런 이동 수단은 확실히 현대가 낫네.’
은후는 멍하니 차창 바깥에 시선을 던지며 휴식을 취했다. 최근에 너무 바쁘게 지내서 이럴 때라도 머리를 풀어 줘야 했다. 그래서인지 기차는 목적지에 금방 도착했다. 은후는 약속 장소로 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안 왔나?’
만나기로 한 장소는 용산역 건너편의 한 카페. 은후는 다시 한번 카페를 쭉 훑은 후 문자를 보냈다.
[언제 옴?]
[좀만 ㄱㄷ 가는 중]
답장은 빨랐다. 은후는 픽 웃고 커피를 시켰다.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네.”
은후는 적당히 창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르바이트생이 쟁반에 커피를 가지고 왔다.
‘응?’
그런데 거기에 쪽지가 함께였다. 아르바이트생이 주위를 둘러보고 조심스레 말했다.
“제, 제 번호예요.”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보디 체인지.’
원래도 그리 나쁘지 않던 외모. 그런데 보디 체인지 이후 눈에 띌 정도로 잘생겨졌으니. 그래서 그날 이후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다. 번호를 받는 경우도 이처럼 있었고.
‘예전의 나였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의 은후에게 있어서 이런 경험은 별 감흥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쪽지를 버리거나 할 순 없었기에 조용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멀리서 은후를 지켜보던 아르바이트생이 주먹을 꾹 쥐며 조용히 환호성을 외쳤다. 그리고 잠시 후 이하연이 도착했다.
[너 어딨음?]
[창가 제일 끝에]
이하연이 두리번두리번하다가 은후 앞에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과깎기개장인 맞나……요?”
“맞아. 그런데 뭘 존댓말이야.”
“아니, 그게 처음 보니까?”
“내숭은. 얼른 앉아. 그나저나 커피 뭐 마실래? 카페 모카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하연이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와, 씨.’
뭐 이리 잘생겼어.
‘게다가 그런 건 또 왜 기억하고 있고.’
괜히 사람 설레게.
“앉아 있어. 주문하고 올게.”
“어, 어어. 어? 내가 갈게.”
은후가 그냥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만하면 은후는 이하연에게 잘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하연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덕분에 이세계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으니까. 또 서로 헤어질 때도 나름 깔끔하게 헤어졌으니.
‘좋은 추억이지.’
이제는 은후만 홀로 기억하는 일이지만. 그게 은후는 내심 씁쓸했다. 괜히 이럴 때마다 자신이 이방인이 된 것 같아서. 이 시간대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아이스 카페 모카 한 잔이요.”
은후에게 쪽지를 건넸던 아르바이트생이 애써 표정 관리하며 주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