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야옹.
야옹.
고양이 수호령이 서글프게 울며 이창석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창석의 뺨에 자신의 뺨을 가져다 댔다. 그러다가 이창석의 발에 자신의 꼬리를 감았다.
“선생은 이번에도 묻지 않으시는구려.”
“무얼 말입니까?”
“내가 고양이들을 집 안에 들이고 보살피는 이유 말이오. 내 집에 초대한 손님이라면 으레 묻기 마련인데.”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언가 계기가 있으셨겠지요.”
솔직히 궁금은 했다. 특히 묘비를 제외하고 고양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퍽 담담했기에. 어찌 보면 무심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대충 봐도 알았다. 이창석이 얼마나 여기에 있는 고양이들을 알뜰살뜰하게 살피는지. 그래서 굳이 묻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의 추억에 다가가는 건 조심해야 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어르신과 그리 친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흐, 그건 그래요. 예전에도 느꼈지만 선생은 참 생각이 깊어요. 나이답지 않게 말이오.”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나 확실한 건 은후와 같이 차분하지는 못했으리라. 대화 내용 또한 판이했겠지.
“괜히 심술이 나는구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묻지 않으니 말하고 싶어졌소만. 들어주시겠소?”
“듣는 것뿐이라면야 어렵지 않지요.”
굳이 마나를 내뿜지 않더라도 은후가 가진 특유의 담백한 분위기, 그게 보디 체인지 이후 더욱 강해졌다. 자연스레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 사람을 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였다, 이창석이 자신의 이야기를 은후가 들어줬으면 하게 된 건.
“한잔하시렵니까?”
“음?”
“무언가 사연이 있으신 것 같은데 술이 빠지면 섭하죠. 마침 제가 좋은 술을 가져왔으니, 어떠십니까?”
“저번에 말했던 특별한 술 말이오? 잠에 좋다는.”
“네.”
이창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은후와 이창석 앞에 조그마한 술상이 차려졌다. 어느새 치즈냥이는 사라진 상태였다.
야옹.
다시 한번 은후만 들을 수 있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은후와 이창석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몇 번이나 나누었을까. 꾹 다물어져 있던 이창석의 입이 열렸다.
“술맛이 정말로 좋군요. 포도주는 좋아하지 않는데 술술 들어갑니다.”
“맛도 좋아야 특별한 술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건 그래요. 딱히 다른 효능 없어도 이만한 맛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겁니다.”
다시 한번 한 잔. 이창석의 눈이 과거를 더듬기 시작했다.
“내 아비는 참 못된 사람이었다오. 하지만 가정에만큼은 따스했소.”
남에게는 한없이 냉정하지만 가족에게는 그러지 않은.
“다만 공부만큼은 엄격하셨지. 제 일을 물려주시지 않고 싶으셨던 게요. 자식은 공부로 성공하길 바라셨소.”
“부친께서 무슨 일을 하셨길래요?”
이창석이 잠깐 망설이다 답했다.
“조폭이셨소.”
그래서 이창석의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공부해야 사람이 된다고 하셨지. 그러면 자연스레 성공은 따라온다며.”
하지만 이창석의 눈에 아버지는 공부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난 공부가 싫었소. 처음에는 아비가 시키니 나름대로 노력도 해 보았소만.”
잘 안 되었다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공부를 손에 놓았소. 그러다가 아비와 다투었지.”
그 다툼이 심화되어 끝내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소.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성적표 때문에 그렇게 된 건 기억나는데.”
이창석이 안주를 한 점 집으며 말을 이었다.
“조폭답게 아비의 주먹은 매서웠소. 그래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지. 자칫 잘못하면 죽을 뻔했다나?”
그 결과 아버지는 크게 울며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는 공부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내 머리였소. 사고 이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감정이 마비되었지.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그 전까지만 해도 꽃을 보면 예쁘다고 느꼈다. 바다를 보면 경이로움을 느꼈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해맑은 웃음을 짓는 어린아이를 보면 흐뭇했다.
“그런데 그 이후 그런 감정이 들지 않더란 말이오. 숱하게 병원도 찾아다녔지만 해결책은 찾을 수 없었소.”
그러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하게 되었다고.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 다리를 절뚝이며 피를 흘리고 있었소. 그 광경에 슬픔을 느꼈지. 그때는 참 당황스러웠소.”
왜냐하면 그 고양이를 보기 전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을 목격했기에.
“교통사고 현장이었는데 별 감흥이 없었소. 아마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끔찍하고 또 슬프게 느껴졌을 현장이었는데 말이오.”
그날의 기억은 이창석에게 퍽 생생했다. 죽었다 여겼던 자신의 감정을 일깨워 준 고양이를 만난 날이기에. 그래서 확실하게 그날을 묘사할 수 있었다.
“피를 철철 흘리고 죽어 가는 한 사내 옆에서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울부짖고 있었지.”
하지만 그것보다 이창석에게 슬픔을 느끼게 했던 건 고작 고양이의 상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교통사고 현장은 이창석에게 별 감흥이 없었다. 이성적으로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해야 할 광경이란 건 알았으나 감정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망가졌단 사실을 그제야 인정했소. 그전까지 애써 부정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그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지. 이름은 꼬질이라고 지었소.”
꼬질이.
그 말이 이창석의 입에서 나오자 고양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전히 은후만 들을 수 있는 고양이 수호령의 울음소리였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털에 하얀 문양이 있는 턱시도 고양이었는데…….”
평범한 고양이답게 너무 씻는 걸 싫어해서. 그래서 1년에 딱 한 번만 씻겼다고.
“꼬질이는 집 안에만 있지 못했소. 도둑고양이라서 그랬던 걸까. 그래서 항상 꼬질꼬질했지. 그래서 꼬질이였소.”
이창석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회상에 잠겼다. 은후는 묵묵히 빈 술잔을 채워 주며 고양이 수호령이 이창석에게 애교 부리는 장면을 바라봤다.
“마누라를 만난 건 그때 즈음이었소. 집 근처에서 꼬질이가 어떤 여자에게 애교를 부리더이다. 질투 나서 누구냐고 소리쳤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소.”
“결혼하셨었군요.”
이창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녀는 못 봤소만. 하여간 그날 나는 희망을 봤다오. 솔직히 감정이 없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겠소이까?”
애초에 없었다면 모르겠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면 살아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이창석은 알고 있었다.
“이미 감정이란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그런데 문제는 꼬질이와 있을 때만 내 감정이 움직였다는 게요.”
다른 고양이들은 아니었다.
“결혼도 그래서 할 수 있었소. 사랑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그런데 문제는 고양이의 수명이었소.”
하물며 요새와 달리 수의학은, 동물 병원은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때였다.
“추정 나이 열둘, 꼬질이가 병으로 죽었소. 내 감정도 덩달아 거의 사라졌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후 아내만이 그나마 내 감정을 뒤흔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소. 그마저도 서서히 약해졌지만 그게 어딘가 싶었소.”
문제는 이창석의 아버지였다.
“아비가 조폭……이라는 게 결혼에 있어서 참 걸림돌이었지. 아내의 친정에서 정말 내켜 하지 않았어. 그래서 당시 내 약조했지.”
아버지가 쌓은 부, 사회로 환원하겠다고.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피해 입은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보상하겠다고 말이다. 그걸 조건으로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다.
“아내의 아버지는 꽤 정의로운 검사였거든. 그래서 장인과 손을 잡고 아버지를 교도소로 보냈소. 근데 딱히 별 감정은 들지 않더구려. 배신이라면 배신이지 않소? 감정을 잃기 전이라면 무언가 느껴졌을 터인데.”
이게 이창석의 삶이었다.
“조금 변명하자면 나는 아직도 부자요. 그만큼 사람들을 돕기도 하지만. 하지만 이 부는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 언젠가 사회에 돌려줘야겠지.”
그러나 문제는 이 나라에 도둑놈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그냥 국가에 환원하거나 어떤 봉사 단체에 기부한다면 그 돈이 온전히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난 자신 있게 없다고 말할 수 있소. 그래서 아직 자산을 쥐고 있는 것이지. 비겁한 변명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소만.”
그 와중에 이창석이 개인적으로 사치를 부리는 건 미식을 위한 돈. 그리고 개인 운전사를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 정도라고 했다.
“그 정도는 그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소. 뭐, 이것도 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
이창석이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선생이 두 번째요.”
“두 번째요?”
“꼬질이에 관한 이야기. 내가 감정을 잃은 것. 아내 외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은 없었거든.”
어째서일까.
“그냥 그러고 싶었소. 내 감정이 그리 움직인 건 아내의 죽음 이후 처음 겪는 일이라 그대로 따랐지. 이 정도로 자세히 이야기하려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어느 순간 자연스레 말하게 되더이다.”
은후는 그게 자신이 품고 있는 마나 때문이라 판단했다. 하물며 일반 마나 외에 감정 마나까지 품고 있었으니.
‘추측건대 이창석의 뇌는 감정을 거의 전달받지 못하는 대신에 마나에 민감해졌을 거야.’
이세계에서는 아예 강제로 마나 감응력을 높이기 위해 감정 제거 시술까지 했다. 이 경우 일정 이상의 마나만 모은다면 다시 감정을 되찾을 수 있어서 비싸기는 하지만 꽤 선호되는 시술이었다.
‘게다가 술.’
술에 한 특별한 조치. 악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예측되는 악몽을 해결해 주기 위해 마법을 담았다. 당연히 그 마법은 마나가 재료였고, 그 결과 이창석이 잃었던 감정을 어느 정도 다시 찾았을 것이다.
“내 이야기는 이게 끝이오. 혹 더 궁금한 거 없으시오?”
“네.”
악령에 관한 것도 얼추 짐작할 수 있었으니, 그거로 되었다.
‘아마 이창석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일이겠지.’
아무리 교도소에 가고 죗값을 치렀으며 가해자의 아들이 사죄와 보상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죄나 보상 따위 필요 없다고 외칠 만한 이가 없었을까.’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런 추측과 판단은 마법사로서의 직감이었다. 단순히 직감이라고 해서 무시할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런 일에 관한 마법사의 직감은 거의 맞아떨어졌으니까. 하물며 보디 체인지까지 겪으며 더욱 날카로워졌으니.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
이창석이 악한 이가 아니어서.
‘만약 악령의 복수가 내 기준에서 정당하다면.’
그랬다면 악령을 사로잡기 전에 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 밤 흔적을 추적해서.’
포획한다. 그게 불가능하면 퇴치하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악령이 가진 본질 때문에 주위에 피해를 끼쳤을 터였다.
아무리 복수라는 미명하에 태어났다 할지라도 악령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수의 대상이나 그 핏줄만 노릴 수 없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억울한 피해자가 나왔을 가능성이 컸다.
“마지막 잔이군요.”
“마지막 잔은 꼬질이에게 줘도 되겠소?”
은후가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창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비석 앞에 술잔을 놓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원래 고양이에게 술은 줘서 안 되지만.’
죽어 버린 고양이에게 바치는 위로주라면. 어차피 이 또한 자기 위로라는 걸 이창석은 알았다.
‘보고 싶구나.’
이창석이 중얼거렸다. 그때 묘비 앞에 있는 술잔에 고양이 수호령인 꼬질이가 입을 가져다 대었다.
“어?”
이창석이 화들짝 놀랐다. 이창석의 눈에 꼬질이가 살짝 스쳤던 것. 그건 술에 담긴 마나 덕분에 힘의 여유가 생겨서, 그래서 꼬질이는 힘을 살짝 써서 이창석 앞에 모습을 잠깐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내 바로 사라지며 나지막이 울었다.
야옹.
잊을 수 없는 생전 꼬질이의 모습과 울음소리. 이창석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