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은후가 공원의 수호령에게 물었다.
“이름이나 특징은?”
“김미나. 나랑 키가 비슷했어.”
공원의 수호령이 머리를 긁적이며 해맑은 웃음에 어색함을 담았다.
“어, 지금은 아니겠지?”
“……당연한 소리를.”
정령이니만큼 겉모습과 정신 연령이 일치하지 않을 거로 판단했지만.
‘때때로 비슷하기도 하군.’
아니지.
이건 어디까지나 기준을 인간으로 두었을 때 이야기였다. 정령을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 되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내가 순간적으로 착각한 이유는…….’
은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고의 흐름을 끊어 냈다. 이런 고민은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그게 끝?”
“헤헤, 좀 어려우려나? 게다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월도 꽤 흐른 것 같은데.”
은후가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어떻게든 해 보지.”
“정말?”
“뭐.”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됐으면 좋겠다.”
그건 은후 또한 그랬다. 말투는 무심했으나 진심은 아니었다.
“다음에 보자.”
“좋아. 그런데 일주일 이내에는 꼭 와 줘야 해?”
“그때까지가 한계인가. 알았다.”
“약속?”
“그래, 약속.”
은후는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공원의 수호령에게 약지를 건 뒤 은폐 마법을 더 강력하게 펼쳤다. 그리고 우산 요괴에게 마나를 투사하며 입을 열었다.
“저항하지 마. 네 소망을 이뤄 줄 테니까.”
“……응.”
은후는 우산 요괴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산 요괴를 기준으로 탐지 마법을 대규모로 펼쳐야겠군.’
은후의 의지에 따라 허공에 마나가 드넓게 수놓였다.
‘감정…… 마나도 써야 하나.’
은후가 탐색하고자 하는 범위는 전주 시내 전부. 그 정도를 아우르려면 지금 가진 일반 마나로는 모자랐다.
“후.”
필요할 때 쓰고자 모은 게 아니던가. 아까울 것도 없었다. 전부 쓰는 것도 아니니까.
‘가능하다면 우리나라 전국을 탐색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아직은.
그러니 지금 가능한 한 최대한.
‘부디.’
전주에 있기를.
은후가 그렇게 소망하며 탐색 마법의 기준점을 우산 요괴로 설정했다. 결국 우산 요괴의 탄생부터 소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우산 요괴의 주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찾았다.’
은후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 * *
갑작스레 요동치는 하늘. 그래서인지 전주에 내리던 이슬비가 갑자기 소나기로 돌변했다. 은후의 탐색 마법이 우산 요괴를 기준점으로 삼아서 자연 현상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짐작할 일반인이 있을 리 없었다.
“아, 씨.”
전주 평화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청년 또한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X랄이야.”
우산은 있었다. 하지만 우산이 비를 전부 막아 주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하물며 이렇게 격렬하게 쏟아지는 비는.
“후우우.”
청년은 밖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따뜻한 집을 내버려 두고. 그 이유는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를 찾기 위함이었다.
‘대체 어디 가신 거지.’
그것도 하필 비 오는 날에.
“엄마! 어디 계세요?!”
청년 어머니의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노인에 비하면 확실히 젊은 중년의 나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행이 찾아왔다.
치매.
인간이 쌓아 올린 시간을 앗아 가는 병. 차라리 다른 병이라면 청년이 이렇게 애타게 어머니를 찾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암……이었다면 좀 나았을까.’
청년이 다시 뛰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기 시작한 지 고작 이제 2년째. 하나 그 시간 동안 청년이 겪은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른 병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이유는 청년이 느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아무리 치매에 걸렸다고 한들 어머니를 모시는 데 불평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이 어머니를 찾으러 나갈 때마다 서서히 지쳐 가는 자신이 눈에 띄었다. 왜 하필 비 오는 날마다 사라지시는 것인지.
‘그냥 빨리 돌아가셨…….’
아니지.
‘그건 아니야.’
청년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혼 후 홀로 자신을 키워 주신 어머니가 아니던가. 그냥 어디 보육원에 버리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고 자신에게 사랑을 쏟으셨다. 그 점을 청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나무랐다.
‘병 앞에서 효자도 3년을 버티기 힘들다고 했지.’
이제 자신은 고작 2년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30년 정도만…… 버텼으면 좋겠는데.’
지친 나머지 못된 생각을 하지 않기를. 청년은 진심으로 그렇게 바라며 길거리를 헤맸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마트 앞이었다.
‘엄마!’
청년이 후다닥 뛰어가 비를 맞고 있는 어머니에게 우산을 씌웠다.
“대체 어디 가셨어요?”
“응…… 장난감.”
“네?”
“우리 아들 장난감 사 줘야 해.”
이럴 때마다 항상 뭔가를 사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장난감이었던가.
“예전에 너무 힘들어서 우리 아들이 장난감을 사 달라고 했는데 못 사 줬어.”
“아.”
청년이 울컥했다.
‘비…… 오는 날마다 사라지신 이유가.’
엄마.
“생일날에 그렇게 사 달라고 했는데. 장난감 못 사 줘서 우리 아들이 그렇게 울었어.”
그래, 그런 날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한창 장마철이던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엄마, 엄마.”
청년이 어머니를 꼭 끌어안고 울었다.
‘신이시여.’
우리 가족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어머니가 그렇게 믿는 신이 진정 있다면.’
대체 왜 이리도 매정하나이까.
‘저는 아니어도 어머니는 그리도 독실하셨는데. 또 우리 가족이 딱히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청년에게는 원망할 곳이 필요했다. 또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평소에 잘 찾지도 않던 신을 찾았다.
“어…… 명……현이. 우리 아, 들.”
“엄마?”
“대체 왜……?”
“엄마 기, 기억이…… 저 기억해요?”
* * *
치매를 앓고 있는 김명현의 어머니 김미나가 기억을 서서히 되찾고 있는 이유는 은후와 함께 찾아온 우산 요괴 때문이었다.
“주인……!”
우산 요괴는 알았다. 자신의 주인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재회의 기쁨보다 슬픔이 넘쳐나게 된 건. 그래서 우산 요괴는 소망했다.
‘주인아, 아프지 마.’
그리고 날 기억해 줘. 그런 우산 요괴의 강렬한 소망이 은후의 탐색 마법진으로 비롯된 마나와 상호 작용했다.
‘날…… 기억 못 해도 좋으니까.’
그냥, 주인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이 치유의 힘을 만들고 있었다. 은후는 자신이 펼친 마법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굳이 방해하지 않고 담담히 지켜봤다.
‘어차피 이미 쓰기로 작정한 마나였으니.’
지금 탐색 마법을 중지한다면 얼마간의 마나는 회수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산 요괴가 일구어 내는 기적이었다.
‘치유의 힘.’
이세계에서도 정령을 이용한 마법이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주체는 마법사였다. 이런 식으로 정령 자의로 마법을 일으키진 않았다. 하물며 치유 계통은 듣지도, 보지도, 접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였다. 김명현의 어머니가 서서히 기억을 되찾고 있는 건. 차츰차츰 하나씩. 아들의 이름, 자신과 아들을 두고 도망친 남편, 그러다가 어째서 비 오는 날 마트에 왔는지까지도.
“아.”
우산 귀신의 형상이 빛무리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 또한 평범한 정령이 소멸하는 모습과 판이하게 달랐다.
“고마워.”
우산 귀신이 은후에게 인사했다.
“마법……과도 같은 일을 내게 선물해 줘서.”
은유로서의 표현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은후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진짜 마법사였으니까. 하지만 멋없게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조금 아쉽, 다.”
“뭐가?”
“주인을 제,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우산 귀신이 본디 바라던 소망. 하지만 그 소망보다 우선인 것은 주인의 불행을 해결하는 것이었으니.
“그래서 미안, 한데. 하나 부탁……해도 될까.”
“부디.”
“주인에게 알려, 알려 줬으면 좋겠어. 내 존……재를.”
“그거면 되겠나?”
“……응. 그거면 돼. 그냥, 그냥. 아.”
우산 귀신의 끝이 다가왔다.
“좀 쓸, 쓸하네.”
우산 귀신의 눈가에 비가 아닌 눈물이 맺혔다. 은후는 순간적으로 눈빛을 빛내며 마나를 움직였다.
‘정령의 눈물!’
귀하디귀한 재료였다. 일반적으로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꼭 들어주지, 네 부탁.”
“믿을……게.”
완연히 빛무리를 이룬 우산 귀신. 은후는 그제야 우산 귀신으로부터 비롯된 감정 마나를 흡수했다.
이전까진 혹시라도 힘이 약한 우산 귀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라서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잘, 잘 있…….”
우산 귀신이 말을 끝나지 못하고 사라졌다. 동시에 은후의 탐색 마법 또한. 그리고 비가 그쳤다.
* * *
비가 온 어젯밤.
김명현의 어머니 김미나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치료제가 없다는 치매가 완치된 것이다. 김명현은 아직도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
“얘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엄마야?”
이전과 다르게 발음도 또박또박하고, 또 흐리멍덩하기만 했던 표정이 자신만만해진 어머니였다.
“엄만 엄마죠.”
“으이구.”
김명현은 다시 한번 울컥했다.
“다시는, 다시는 아프지 마세요.”
“그게 내 맘대로 되겠니.”
김미나는 자고 일어나서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치매를 앓던 나날의 기억까지도.
“며칠 쉬다가 우리 장난감 사러 가요.”
“응?”
“엄마가 저 장난감 사 주신다면서요.”
“……그랬지.”
“그러니까 가요, 네?”
눈물을 글썽이는 아들의 말.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따금 기억나기는 했지만 한이 맺혔었나 보다. 그래서 김미나도 울면서 말했다.
“그래. 비 오면 마트에 가서, 가서 장난감 사 줄게.”
김미나는 그날 아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라는 것이 이리도 좋은 건지 몰랐다.
‘집 청소도 좀 해야겠는데.’
2년 남짓이었던가. 그사이에 집 안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아들은 나름대로 신경 쓴다고 쓴 것 같지만.
‘일단 잘까.’
시간도 늦었고 아직 몸이 지쳤으니까. 그렇게 잠자리에 들려는 김미나에게 은후가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누, 누구세요?!”
느닷없는 낯선 목소리. 하물며 바깥도 아니고 집 안이었기에 김미나는 화들짝 놀랐다.
“지나가던 마법사입니다. 당신을 치료한 요괴의 부탁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네?”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 하지만 은후의 말에 잔뜩 실린 마나가 김미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게다가 이어진 기현상.
“이 정도면 믿으실까요?”
은후가 김미나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
갑자기 느껴지는 부유감에 김미나가 당황했다. 은후가 다시 김미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딱히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주세요.”
“그, 알겠어요.”
진짜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짓을 하고자 했다면 진즉 했을 것이다. 그리고 태도 또한 정중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가시죠.”
“어딜요?”
“가 보시면 압니다.”
“그러면 잠시만요. 아들이 일어나서 놀랄 수도 있으니까 쪽지 한 장만 쓰고요.”
김미나의 아들 김명현에게는 이미 은후가 수면 마법을 펼친 상태였다. 그래서 내일 아침까지 일어날 일은 없었지만 딱히 은후는 그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쪽지를 쓴 김미나와 은후가 집을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나요?”
다시 한번 목적지를 물은 김미나. 은후는 빙그레 웃은 후 부유 마법을 발동했다. 정령이었던 우산 요괴와 다르게 단순히 마나로만 사람을 하늘로 이끌 순 없었으니까.
“……?”
정말로 황당한 일이 일어나면 소리도 못 지른다고 했던가. 김미나가 그랬다. 갑작스레 날아오른 자신의 몸뚱어리.
‘꾸, 꿈?’
하지만 꿈이라기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는 너무 현실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