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이 리어카가 나와 한 몸이 된 것 같으이.’
이유는 아마도 죽음을 그 리어카 위에서 맞이해서 그럴 거라고.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 리어카 또한 노인이 성불함에 따라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은후의 감각에 걸리적거렸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곧 사라진다.’
은후는 본능에 몸을 맡기고 감정 마나를 움직였다. 노인으로부터 얻은 마나였다. 그러자 리어카가 흔들거렸다.
‘좀 더.’
마나를 이렇게.
‘단순히 불어넣는 것만으로는 안 돼.’
얼마 전 얻은 깨달음은 은후를 대마법사라는 경지 직전으로 올려 놓았다. 그렇기에 본능과 눈앞에 놓은 조그마한 단서만으로 새롭게 마법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아.’
잘 모르겠다.
그저 본능에만 의존해서 만든 마법이었다. 그래서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나 쓸 수는 있었다.
‘효과는 귀신…… 정령이 가진 걸 아티팩트화하는 것.’
기존 마법의 변형이 아닌 새로운 창조였다. 이런 마법은 이세계에서도 없었다.
‘좀 더.’
좀 더.
그러니까.
‘이 부분을.’
본능에서 비롯되었다지만 이 마법은 오롯이 은후로부터 비롯된 것. 그렇기에 은후는 마법을 조금씩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저기요?”
하지만.
“저어.”
갑자기 만들어 낸 마법. 그리고 덕분에 다시금 찾아온 깨달음의 순간이 옆에서 들린 목소리 때문에 깨어졌다
‘쯧.’
은후가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깨달음의 순간, 주위 마나가 비틀리며 은신 마법이 깨어졌나.’
하지만 자신에게 말을 건 김수현에게 불평불만을 내뱉지 않았다.
‘궁구한다면 또 찾아오겠지.’
노력한다면 그리 머지않은 시간 내에.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만약 에피쿠로스의 말로부터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꽤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깨달음 덕분에 은후는 픽 한번 웃는 것으로 아쉬움을 털어 낼 수 있었다.
“행복하시길.”
“네?”
“김영섭 씨는 항상 아내와 자식을 걱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김영섭 씨의 부인께서 삶이 며칠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은후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
김수현이 당황했다. 잠시 후 김영섭의 아내가 다가와 물었다.
“아들아?”
“어, 그게요.”
방금 상황을 설명하려던 김수현의 눈에 어머니의 모습이 이상하게 비쳤다.
‘하나도 안 젖으셨네?’
조금 전 비가 그쳤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시간 동안 비가 내렸는데. 아무리 우산을 들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건 은후의 작은 배려였으나 김수현이 알 도리는 없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던 게 더 이상한 일이지만. 그나저나 섭섭하네.’
이해가 아예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한마디 정도는.’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김영섭이 아들에게 가졌던 미련은 이미 풀렸으니까. 아무리 은후의 도움이 있었어도 모습을 보이는 것 외에는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에이. 그래도 후련하게 잘 가셨으니 그거면 된 가지.’
섭섭하지만, 뭐.
‘씁.’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섭섭했다. 그때 김수현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다.
“수현아.”
“네, 어머니.”
“그이가 마지막에 네게 무어라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었다는구나.”
“그랬어요?”
“그래. 그러니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네게 뭐라고 전해 달라고 했냐면…….”
그 말에 김수현의 표정이 풀렸다. 그러다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며칠 안 남으셨다고 했어.’
의사가 아니라면. 아니, 의사라도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소리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법.
아버지의 유산을 찾아 줬다. 게다가 어머니가 아버지와 재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 딱히 화가 난다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울 뿐.
‘아내에게도 말하고, 연차도 최대한 당겨서 어머니 옆을 지켜야겠어. 그리고 어떻게든 수소문해서 보답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큰 은혜를 입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꿈꿨냐며 코웃음 치겠지만.’
그러나 실제로 겪은 일임이 분명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과도 같은 행운. 그 행운의 주체인 은후에게 김수현은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표했다.
* * *
은후는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티팩트화된 리어카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봐도 봐도 잘 이해가 안 되네.’
의지에 따라 실체화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차원의 경계에 걸쳐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처음에 은후는 리어카를 이세계에서 접했던 아공간 아티팩트와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오는 길에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공간 아티팩트는 같은 차원을 비틀어 이용하는 마법. 하지만 리어카는 그게 아니야. 그래도 기본적인 사용 방법은 비슷한 것 같고. 또 다른 기능도 있어 보이지만.’
그 또 다른 기능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차차 연구를 해 봐야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리어카는 다른 차원에 걸쳐 있는 듯했고, 그와 관련된 기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아무리 살펴봐도 영 모르겠단 말이지.’
구조나 원리 등도 반 정도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서 호기심이 느껴졌고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찾아왔다.
‘아까 깨달음을 갈무리했으면 확실히 알 수 있었겠지만.’
아마 지금처럼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겠지.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는 법.’
이세계에서의 여느 보통 마법사라면 은후를 미친놈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호기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게 깨달음 아니던가. 이건 경지 고하를 막론하고 보통 마법사의 상식이었다. 그걸 은후도 알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마법사라는 경지에 도달하는 이가 얼마 없는 걸 거야.’
이게 전부는 아닐지라도 꽤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탑에 이 주제로 논문이라도 냈으면 당장에 두 단계는 승급했겠는데.’
마법사라면 너무도 당연시하시기에 떠올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 정도 사고를 하려면 대마법사의 경지 근처라도 가까이 가야 하는데, 은후가 살던 시대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설혹 있었어도 그런 깨달음을 공개적으로 풀 리도 없었을 테고.’
마법사의 지식은 대부분 철저한 비밀이었고 은밀하게 전수되었다. 그걸 타파하고 많은 마법사를 양성하고자 세워진 것이 마탑이었지만.
‘글쎄.’
아예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만.”
은후가 일부러 소리 내어 말했다. 그리고 상념을 끊어 냈다.
‘이세계에서 내가 겪었던 과거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
하나 얽매일 생각 또한 없었다.
‘그나저나 아공간 아티팩트가 생기니 이건 편하네.’
변장을 위해 입었던 옷가지는 아티팩트에 넣어 두면 되니까 말이다.
* * *
은후는 한동안 딱 반나절을 빼고는 두문불출하며 리어카의 연구를 거듭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호기심이란 충동을 억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느 정도 궁금했던 부분이 풀렸다.
“후우.”
여기까지만 할까.
은후가 크게 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최소 1년은 진득하게 붙잡아야 완전히 결과가 나올 것 같아.’
그게 본디 보통 마법사로서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건 썩 내키지 않았다. 과거 이세계에서의 은후라면 모를까.
‘마법사가 아닌 인간 이은후의 삶에도 충실하지 않으면.’
연구야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은후는 마법으로 꾀죄죄했던 몰골을 마법으로 씻어 냈다. 그리고 책장에 놓여 있는 기초 화장품을 얼굴에 발랐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부. 마법.’
이세계에서 귀족이라면 남녀 불문하고 돈을 아끼지 않았던 물건 중 하나가 바로 화장품이었다.
‘화장품에 마법이라.’
돈 냄새가 솔솔 풍겼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도 싶었다.
‘술이면 충분해.’
돈을 버는 데는.
‘그래도 연구는 해 둘까.’
어머니나 동생에게 선물. 또 어머니의 피부숍 매출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니까.
다만 당장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화장품과 마법에 관련된 기초적인 지식은 있었으나 딱 거기까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구하거나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은후는 절로 떠오르는 여러 가지 마법 지식을 뇌리 저편으로 밀어 놓은 후 창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CCTV에 걸리지 않게 이동한 후 아티팩트화된 리어카에서 옷가지를 꺼내 변장했다.
‘가 볼까.’
폐지 줍는 노인 김영섭이 은후에게 주기로 한 유산 중 하나. 그걸 오늘 은후는 찾으러 가기로 했다.
장소는 건지산.
높이 약 100미터의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산으로, 은후가 사는 자취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 * *
리어카를 연구하던 은후가 반나절 시간을 냈던 이유는 김명희에게 만든 술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겸사겸사 어머니의 얼굴도 보고 가게도 돕고 말이다.
“반응은 좀 어때?”
술 홍보는 김명희의 남편 김석하가 전담했다. 김석하는 대기업까지는 아니지만 매우 탄탄한 중소기업의 임원이었고 마당발이었기 때문이다.
“장난 아니지. 벌써 나한테 대체 어디서 파는 거냐고 연락 오는 사람이 한 트럭이라니까?”
“그래?”
“어, 특히 술 마신 뒤에 해장술이라고 이거 주면 장난 아니더라. 솔직히 술로 숙취 해소라니 못 믿었는데.”
은후가 홍보를 위한 샘플용 술을 건네면서 했던 말.
‘숙취 해소 효과도 제법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특별한 해장술이라는 소리인데 그게 말이 되나 싶었다. 솔직히 해장술이라는 게 말이 안 되었으니까. 김석하는 해장술이란 게 허세라고 여겼다.
“이건 진짜배기 해장술이라고 마신 사람이 다들 그러더라고. 나도 충분히 효과 봤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회사 영업도 하고 있어.”
그 결과 또한 매우 흡족했다. 그래서 아무리 홍보 도움을 주는 거라지만, 김석하로서는 자신이 얻은 게 너무 크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날짜 잡아 봐. 공적인 걸 떠나서 우리가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 도리상 밥이라도 한번 사야지.”
회사 일로부터 얻은 이득, 거기에 이들 부부에게 있어 아들과의 관계 개선에 은후가 일등공신이었으니.
“그때 우석이도 데려갈까?”
“우석이를?”
“친한 형 동생으로 지내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먼저 물어보고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사전에 말도 없이 아들을 데려가면 예의가 아니야.”
김명희가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다. 정말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예의는 지키는 편이 좋았다.
“그나저나 우석이는?”
“책 보고 있던데.”
“책?”
“응. 무슨 게임 역사 관련 책이라고 하더라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김석하가 피식 웃었다. 다만 그 웃음에는 이전과 다르게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래도 책을 본다는 게 어디야?”
“내 말이. 당신이 한번 가서 대화 좀 나눠 보면 어때?”
“내가?”
“응. 선생님께서 말해 줬던 거만 잘 고려해서 대화하면 딱히 싸울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술병을 건네며 은후는 김명희에게 아들과 관련된 마지막으로 조언을 건넸다.
조건을 걸어 사랑을 주지 말고 존재만으로 칭찬하여 자존감을 높여 주라는 것. 비슷한 내용을 언젠가 조언으로 들어 봤지만 은후가 말하는 건 또 다르게 다가왔다.
“알았어. 한번 가 볼게.”
김석하가 조심스레 아들 방문을 두드렸다.
“아들 있니?”
“어, 있어.”
“들어가도 돼?”
“어.”
김석하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무슨 책 읽어?”
“게임…… 책.”
“왜 그런데 힘이 없어? 책 읽으면 좋은 거지.”
김석하의 아들 김우석이 우물쭈물했다. 근래 관계가 꽤 개선되었다지만 앙금이 완벽하게 풀린 것은 아니었기에.
“그런데 직접 게임 하는 게 더 재밌지 않아?”
하지만 다정한 아버지의 말에 용기를 내어 답했다.
“그것도 그런데, 최근에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무슨 생각?”
“나도 게임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고…… 그래서, 그러려면 게임 역사에 관해 좀 알아야겠다, 싶어 가지구.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게임은 만들 수 없을 테니까, 예전에 나온 게임이면 좀 만들기 쉬울 것 같아서.”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깊이 있는 말에 김석하가 환하게 웃었다.
‘진짜 우리 아들 많이 컸네.’
더불어 은후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은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아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언제였을까. 분명한 것은 지금이 아닌 먼 훗날, 혹은 찾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란 사실이었다.
“그랬어? 진짜 장하다. 아빠는 네 나이 때 놀기 바빴는데 말이야.”
“……아빠가?”
“그럼. 아빠도 어렸을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우석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이 어떤 종류인데? 게임도 종류가 다양하잖아.”
그렇게 두 부자의 화목한 시간이 깊어만 갔다. 간식으로 과일을 가져온 김명희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정말 환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