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김수혁은 은후와 만났던 날을 꿈처럼 여겼다. 하지만 마냥 꿈이라고 할 수 없는 증거인 쪽지가 있었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아내와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익산에 한 번 내려가려고 하는데, 어때?”
“그건 상관없는데. 솔직히 믿을 수가 없네.”
아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말이 안 되잖아.”
“나도 그래. 그러니까 나들이 겸 어때? 내가 겪은 일이 사실이면 좋고, 아니면 마는 거지.”
한마디로 주된 목적은 데이트라는 소리였다. 자신이 겪은 신비한 일의 확인은 덤이고.
“우리 데이트 못 한 지도 오래되었잖아.”
그제야 아내가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거라면. 아, 어머님도 모시고 갈까?”
“어머니?”
“응. 솔직히……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지만,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잖아.”
결혼한 이래 어머니가 아내에게 참 잘해 주었다. 어떨 때는 아들인 자신보다 더더욱. 그런 만큼 아내 또한 어머니를 정말로 따랐다.
‘후우.’
김수현이 남몰래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그 원인은 노환이었기에 누굴 원망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갑갑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거기가 고향이시잖아. 몸이 편찮으셔서 요 몇 년 계속 집에만 계셨고.”
“그래. 그러자. 내일 여보가 어머니께 한번 말씀드려 봐.”
“알았어.”
김수현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괜찮다며 거절했다.
“나 때문에 너희 귀찮기만 하지. 둘이 갔다 오렴. 잘 걷지도 못하는데 휠체어까지 끌고 거기까지 가는 거 일이야, 일.”
하지만 아들인 김수현까지 합세해서 설득하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주 일요일 점심.
“오시기 참 잘했죠?”
김수현의 어머니가 회한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김수현이 지갑 속에 끼워 넣었던 쪽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아내에게 말했다.
“확인해 보고 올게. 어머니랑 있어.”
“같이 안 가도 돼?”
“아니면 괜히 허탈하기만 할 텐데. 사실 반은 안 믿고 있어, 나도.”
“반은 믿는다는 소리잖아?”
김수현이 피식 웃으며 건물 뒷마당에 있는 사과나무 앞에서 발자국을 옮겼다.
‘서쪽으로 열다섯 걸음.’
이후 가져온 삽으로 열심히 땅을 팠다.
“후우, 후우.”
5미터는 파야 한다고 했다.
‘내가 체력이 많이 떨어지긴 했어.’
말이 5미터지, 한 사람이 그 정도로 아래를 파고 들어가려면 정말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도 10년 전이라면 이 정도는 거뜬했을 것 같은데. 한창 운동 열심히 하던 시기였으니까.
‘대충 이쯤이면…… 얼추, 어?’
열심히 땅을 파던 와중.
‘뭔가 있어?’
삽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얼마 후 김수현은 그게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드럼통이었다. 그리고 그 드럼통에는 금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 * *
김수혁이 그때 겪은 일이 사실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러자 김수혁의 아내는 물론, 어머니 또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이가, 그이가 너희에게 남겨 둔 거구나. 이걸 진즉 발견했으면 너희가 고생을 좀 덜 했을 것을.”
“……그러게요. 빚만 남겨 주신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그 귀인은 대체 누구니?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사라졌다며?”
“그건 저도 잘.”
김수혁이 어머니에게 고개를 저었다.
“다시 만난다면 뭔가 보답이라도 하고 싶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김수혁의 머릿속에 남은 건 희미한 사람의 형체에 불과했다.
‘사람이라는 건 기억나는데.’
지금에 와서 사람이라는 것조차 의심스러웠다. 그건 은후가 마법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고 김수현의 감각을 교란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금을 어떻게 처분할지도 문제네요. 옮기는 것도 그렇고. 대충 계산해 봐도 억 단위인데.”
“차분히 생각하렴. 그리고 큰돈이니만큼 조심하고. 자칫 잘못하다간 행운이 불행으로 변할 수 있어.”
“네. 안 그래도 차분히 생각하려고요.”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고.
“김수혁 씨 계십니까?”
은후가 노인과 함께 찾아왔다.
* * *
은후는 노인과 함께 김수현이 사는 아파트에 가기 전, 그때처럼 변장했다. 마법으로 모습을 바꾸고 옷을 갈아입고 장갑까지 끼고. 그걸 바라보고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거기에 마법까지 쓰니 귀신인 노인의 감각에도 은후의 존재감이 옅어졌다.
“인상이 흐릿해져서 어디 계룡산에 사는 도인이라고 해도 믿겠어.”
“도인이요?”
“도사라고도 하지.”
“실제로 도사가 있나 보군요.”
“뭐, 그렇지. 그런데 저번에도 말했지만, 도사든 무당이든 진짜배기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네. 내가 아는 진짜 도사는 계룡산의 무강 도사 정도일까.”
그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그 도사가 도와준다면 아내와 대화도 나눌 수 있을 텐데.”
처음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몇 마디 정도는 말을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힘이 사라지고 있었다.
노인이 조그맣게 읊조렸다.
“아무래도 진짜 사라질 때가 온 모양이야. 간신히 모습이나 드러낼 수 있으려나.”
미련을 해소했기에 자연스레 힘도 약해지는 것이다. 그건 원한으로부터 탄생한 귀신의 숙명이었다.
“일단 가시죠.”
“그려, 얼굴이라도 보고 가는 게 어디인가.”
그렇게 잠시 후, 은후가 김수현의 집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아! 그때 그?”
문을 열고 은후를 본 김수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흐릿한 안개가 걷힌 것 같았다. 여전히 애매한 느낌은 없지는 않았지만.
“어서 오세요. 덕분에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유산을…….”
한동안 횡설수설하던 김수현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들어오시죠. 비도 내리는데.”
“그 전에 볼일이 있습니다. 혹시 김영섭 씨의 부인께서도 안에 계시죠?”
“네, 그런데 어머니께는 혹시 무슨 일로?”
“김영섭 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아버지가요?”
“네, 성불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내를 만나 뵙는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말. 하나 고향 집에 묻혀 있던 금괴는 진짜였다.
“어머니께서 몸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주무시고 계시는데 다음에 날을 잡으면 안 될까요?”
은후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김영섭 씨가 현세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날이.”
“그,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김수현은 잠시 멈칫한 후,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깨우고 사정을 설명했다. 김수현의 어머니는 처음에 믿을 수 없어 했으나 금괴 건은 사실이었기에,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수현아.”
“네, 어머니.”
“30분 정도 기다려 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거라. 만약에 그 귀인이 말하는 말이 진짜라면 좀 꾸미고 나가야지.”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되도록 이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김수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가 물었다.
“30분 정도 괜찮을까요?”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럼 준비가 되면 그때 만났던 벤치로 오세요.”
은후는 그렇게 말을 남긴 후 등을 돌렸다.
“저!”
김수현이 소리쳤다.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또 받은 은혜의 보답을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은후는 듣지 못한 척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그리고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는 노인에게 말했다.
“30분이면 만나실 수 있으실 겁니다.”
“30분?”
“네.”
“에잉, 30분이나?”
“당장 사라질 것도 아닌데 30분 정도야 좀 느긋하게 기다리시죠.”
“여전히 느리구만.”
“여자니까요.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 은후의 말에 노인이 다시 한번 투덜거렸다.
“어차피 쭈그렁 할망탱이인데.”
하지만 그 투덜거림엔 애정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나이를 먹어도 여자는 여자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30분이라도 더 같이 있으시고 싶어서 그러시는 모양입니다만.”
정곡을 찔린 노인이 멈칫했다.
“아마 그러실 수 없으실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30분은커녕 그보다 짧은 시간일 터이니 하실 말씀을 정리해 두세요.”
“……뭔가 알고 있나?”
“네.”
“그런가. 시간을 더 늘릴 방법은 혹 있고?”
은후가 고개를 저었다. 노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굳이 이유를 묻지 않은 이유는 은후였기 때문이다.
단 두 번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노인은 은후가 흰소리는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다른 도움은 드릴 수 있습니다만.”
“무슨 도움?”
“기왕이면 멋진 모습으로 만나셔야죠. 지금 모습은 좀 후줄근하시니까요.”
지금까지 받은 도움이 얼마던가. 하지만 아내와의 마지막 만남. 그래서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노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네. 정말로.”
“저도 얻어 가는 게 있으니 그리 미안한 표정은 안 지으셔도 됩니다.”
대체 뭘 얻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할 말을 정리해 두라고?’
그럴 수 없는데.
자신의 힘은.
하지만 노인은 은후의 말을 믿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다.
“오셨군요. 말씀하신 것보다 일찍 나오신 걸 보니 마음이 급하셨나 봅니다.”
“으응, 그러게.”
노인이 당황했다.
은후가 씩 웃으며 마나를 움직였다.
* * *
아들 내외의 도움을 받아 한복을 입고 나타난 김수현의 어머니는 주위를 두리번두리번했다. 그러다가 낯익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 여보?”
내심 기대는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어떠한 일이든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큰 법이라는 걸. 아무리 남편의 유산을 찾아준 귀인이라지만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옷을 갈아입고 단장을 하고 밖에 나온 것은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 아아.”
원래는, 세상은, 기대하면 기대할수록 배반하는 법이라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당신. 왔어?”
“여, 여보.”
“거참, 많이 늙었어.”
“당……신은 그리 바뀐 게 없네요.”
노인의 아내는 울먹이면서 애써 웃음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에 노인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울려면 울어. 당신은 울어도 이쁘니까.”
“늙었다고 타박할 때는 언제고.”
“늙은 건 사실이지 않아? 그래도 이뻐.”
“당신은 안 늙었나 봐요?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인 걸 보면.”
“나야.”
노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가 아차, 싶어 정신을 차리고 모습을 바로 했다.
“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뭐예요?”
“프러포즈할 때 말이야, 했던 약속 지켰어.”
“……그러게요. 죽어서도 사랑한다고 그랬죠.”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는 말처럼 허황된 말. 하나 달콤하기에 믿고 싶은 말. 그래서 알면서도 웃으며 속아 줬다. 그런데 그 약속이 사실이 되었다.
“진짜 지켰어요.”
“그려. 여전히 난 당신을 사랑해. 거, 그런데 시간이 짧다고 하더니만.”
“시간이 짧다뇨?”
“당신과 만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 있어. 아, 그리고 원래는 이렇게 대화도 할 수 없는데 그 사람이 뭔가 손을 쓴 모양이야. 그런데 대체 어디 갔대?”
옆에서 기척과 모습을 감추고 있던 은후가 마나를 통해 조용히 노인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남은 시간에 할머님이랑 이야기나 더 하세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대략 5분 정도 남았습니다. 이번엔 진짜입니다.’
이래저래 은후에게 받은 은혜가 참 컸다. 하지만 5분이라는 말에 노인이 가볍게 헛기침한 후 한 마디 내뱉었다.
“고맙네.”
“여보?”
“으응, 아니야. 그러니까…….”
이후 5분.
두런두런 김영섭과 그의 아내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되도록 너무 일찍 오지 말고, 좀 더 늦게 와.”
시간이 되었다.
노인이 세상을 진정 떠날 시간이.
“솔직히 성불한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나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 약속할게.”
“뭐를요?”
“이후에도 계속 사랑하겠다고.”
“……믿을게요.”
노인이 흐릿하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노인의 신체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노인이 항상 끌고 있던 리어카와 종이 박스 뭉치 또한.
“여, 여보?!”
“진짜 가야 할 때인가 봐. 너무 슬퍼하지 말고. 응?”
느닷없이 찾아온 것처럼 급작스레 떠났다. 그와 동시에 줄기차게 쏟아지던 비가 갑자기 그치고 무지개가 걸렸다. 마치 노인의 성불을 축복해 주는 듯.
보기 드물다는 문보(moonbow), 밤에 뜨는 무지개. 그 무지개를 김영섭의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쳐다봤다.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은후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노인이 항상 끌고 다니던 리어카가 은후의 눈에 밟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