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김명희는 주기적으로 은후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 소마에서 피부 관리를 받았다. 이전에는 단순히 친구의 솜씨가 좋아서였지만 이제는 마음의 빚까지 져 버렸다. 그래서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서 열심히 주위에 홍보까지 했다.
“내가 이 나이 먹고도 피부 좋은 건 관리를 받아서라니까?”
“돈 많이 들지 않아?”
“그거야 어디 유명한 대형 병원이나 그런 거고. 내가 다니는 데는 조그마한 숍인데, 가격에 비해서 솜씨가 정말 좋거든.”
이건 딱히 거짓말이 아니었다. 만약 친구인 은영이의 실력이 좋지 않았다면 진즉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금전적으로 부족한 집도 아니었고 말이다.
‘단순히 친분만으로 몇 년 동안 꾸준히 간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이는 스스로 떳떳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피부숍 소마를 홍보하는 데 거리낌 한 점 없었다.
“게다가 그 집 아들이 말이야. 얼마나 참한지 모른다니까.”
“아들?”
“응.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요새 잠도 잘 못 잤잖아. 아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져서.”
“그래, 대체 왜 사이가 안 좋은지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해 주고.”
“그게 말이야·…….”
은후와 만났을 때의 일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번에 선물받은 술까지 말하게 되었다.
“……선물받은 술 효과가 끝내준다니까? 우리 남편도 불면증 있었는데 그거 마시고 싹 사라졌잖아.”
“에이. 원래 술이란 게 어떤 술이어도 잠드는 데 도움이 되잖아. 매일 마시면 건강에 안 좋으니 그렇지.”
“아니, 내 말 들어 봐 봐. 이게 꾸준히 안 마셔도 한 잔이면 최소 며칠을 효과 본다니까?”
그래서 남편도 넌지시 이런 부탁을 했다. 가능하면 그 술을 더 구할 수 없는지 알아보라고. 금전적으로 대가를 충분히 치를 생각도 있으니까.
그건 김명희의 남편이 예기치 못한 효과까지 봤기 때문이다. 단순히 잠을 잘 드는 것 외에 피로가 완전히 싹 풀리는.
그건 은후가 만든 술에 깃든 마나의 부가 효과였다. 마나에 관한 저항력이 없는 현대인이기에 그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다.
‘술 한 병에 100만 원도 아깝지 않을 것 같으니까 꼭 좀 부탁해 봐.’
김명희는 남편의 말을 떠올리며 친구와 수다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리고 피부숍 예약 시간이 슬슬 다가왔을 때 친구에게 넌지시 물었다.
“오늘 안 그래도 거기 피부숍 예약해 뒀거든. 같이 어때?”
“그럴까?”
* * *
김명희는 들뜬 마음으로 피부숍 소마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만나고 싶었던 은후가 마중 나왔다.
“오랜만에 뵙네요.”
“선생님, 별일 없으셨죠?”
은후가 멋쩍게 웃었다.
“말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어머니 친구분이신데.”
“아니에요.”
김명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들과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은후 덕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귀한 술까지 선물로 받았다. 그러니 나이를 떠나 존칭을 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그래서 약속을 잡을 때도 정말 정중하게 부탁했다.
“일단 들어오시죠. 그런데 옆에 분은?”
“친구예요. 여기는 내가 말했던 친구 아드님.”
“그런데 선생님?”
“상담해 주셨으니까.”
김명희가 어깨를 으쓱하자 친구가 피식 웃고 말았다. 꽤 오랜 시간 교제했기에 친구의 성격과 스타일을 잘 알았다. 여전하다 싶었다.
“명희 친구예요. 하도 여기를 명희가 자랑하길래 호기심에 와 봤어요.”
“잘 오셨습니다. 일단 들어오시겠어요?”
잠시 소소한 잡담이 이어졌다. 그리고 김명희가 관리를 받을 시간이 되었다.
“나 대신 오늘 네가 받아 볼래?”
“내가?”
“응. 나는 여기 선생님이랑 대화를 좀 더 하고 싶어서.”
“어, 음.”
머뭇거리던 김명희의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내가 밥 한번 살게.”
“그래.”
친구가 피부 관리를 받으러 사라지자 김명희가 주위를 쓱 살폈다.
“잠시 상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기는 조금.”
그때는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래서 은후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여기에 따로 방이 없어서요. 앞에 벤치가 있던데, 거기는 어때요?”
시에서 시민 복지의 일환으로 설치된 벤치가 피부숍 바로 근처에 있었다. 사람들이 제법 왔다 갔다 하기는 하지만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는다면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으니까.
‘게다가 누군가 들어도.’
딱히 문제가 될 내용도 아니었다.
벤치에 도착했을 때 은후가 먼저 김명희에게 물었다.
“아드님 문제 말고 뭔가 말씀하실 게 있으신 것 같은데. 맞죠?”
“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
은후는 그냥 웃고 말았다. 이건 딱히 마나를 움직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
‘뭔가 말하고 싶은 티가 역력했지. 하지만 차마 먼저 말을 못 해서 망설였고.’
아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 정도로 머뭇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상담을 했던 부분이었기에.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단순히 듣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게.”
김명희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혹시 저번에 선물해 주신 술이요. 좀 더 구할 수 없을까요? 아, 물론 그냥 달라는 건 아니에요.”
“효과를 보셨나 보네요?”
“네, 저도 그렇고 남편도 칭찬이 장난 아니었거든요. 처음에는 어디서 속았냐며 핀잔을 줬었는데.”
“다행입니다. 그런데 주의 사항은 지키고 계시죠?”
“네. 철저히 지키고 있어요.”
“철저히 지키실 것까지는 없는데.”
은후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주의 사항이라고 해 봐야 할 별거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소주잔으로 한 잔만 마실 것. 그 이상 마신다고 하여 효과가 더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더 마신다고 하여 몸에 이상이 생길 것도 아니었고.
‘그 부분을 조율하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
일정 이상의 마나를 흡수하면 자연스레 몸에 남아 있지 않게끔 빠져나가게 해야 했다. 왜냐하면 마나 저항력이 없는 현대인이니까. 그런 조치가 없다면 자칫 잘못하다간 마나 중독 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면 정말 큰일이 발생했다.
“지켜야죠. 사실 더 마시고 싶어서 혼났어요. 맛도 너무 좋아서.”
그런데 이런 귀한 술을 단순히 맛만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선물로 더 드리기는 어렵지만, 돈을 주고 구매하신다면 소량은 가능합니다.”
“그러시다면……!”
김명희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리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
“금액은 얼마나 생각하고 계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글쎄요.”
은후가 빙그레 웃은 후 답했다.
“일단 한 병 무료로 더 드리겠습니다. 대신에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어요? 어려운 일은 아니실겁니다.”
부탁인즉슨 주위에 홍보해 달라는 것.
은후는 이를 위해 약 100밀리리터 정도의 유리병을 100개 구매해 술을 만들고 있었다. 병 크기가 작아서인지 금액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은후로서도 큰 부담은 없었다.
“장사를 좀 하려고 하거든요.”
“그런 술을 파시는 거면 정말 대박 나실걸요?”
“아마 직접 판매까지 이어지기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주류 제조 면허가 없어서요.”
담금주를 제조, 가공, 판매 등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면허를 취득할 필요가 있었다. 면허 없이 판매하면 당연히 불법이었다.
“저어, 혹시 미리 예약은 안 받으시나요?”
“예약이랄 게 있나요. 아직 제대로 생산 시설이 갖춰진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인연이 있으니 나중에 따로 말씀해 주세요. 가능한 한 편의 봐 드리겠습니다.”
김명희는 은후의 말에 활짝 웃었다.
“이제 제가 말씀드릴 차례군요. 사실 그때 상담 이후로 제가 공부를 좀 더 했습니다.”
은후는 김명희에게 도움을 좀 더 주고 싶었다. 그건 과거 김명희가 어머니를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너 어렸을 때 우리 집이 진짜 힘들었던 때가 있었거든?’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요?’
‘아는구나. 그때 명희가 돈을 빌려 줬어. 그것도 꽤 큰돈이었는데, 솔직히 말이 빌려 준 거지 사실상 준 거나 다름없었어.’
100년 무이자로 빌려 줄 터이니 형편이 나아지면 갚으라고.
‘몇 년 전에 그 빚은 다 갚았다만, 그래도 마음의 빚은 남아 있었는데. 네가 명희를 도와줬다니 좀 낫더구나.’
이는 이세계에 건너가기 전에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아마 그때와 다르게 김명희를 제대로 상담해 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좀 더.’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게다가 장래를 생각하면 번듯한 간판 직업은 있어야 할 테니까.
‘담금주를 파는 건 부업으로. 메인은 심리 상담가로.’
일단 그렇게 정했다. 그래서 근래 틈틈이 책을 펴고 공부했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논문도 읽어 보고.
“제 말씀이 아마 아드님을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김명희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은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들과 관련된 이야기.
어머니로서는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였다.
* * *
게임에 어떤 마성이 있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우리 아이가 게임에 그렇게 집착하게 된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왜 수많은 것 중 아드님이 게임에 집착하게 되었을까요?”
“글쎄요?”
은후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아이의 세계는 보통 좁죠. 왜냐하면 만나는 사람이 얼마 없으니까요.”
개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부모님. 그다음으로 또래 친구들. 마지막으로 학교나 학원의 선생님 정도일까.
“어렸을 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그래서 그래요. 아이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부모님이 하라고 하니까.”
그런 부모님이 하라고 한다. 그리고 잘하면 칭찬을 받고, 못하면 혼이 난다. 그게 어린아이가 공부하는 1차원적인 이유였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하는데 안 할 수 있을까요?”
가족의 절대 권력인 부모의 말이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사실상 거부권이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공부에서 칭찬을 받기란 쉬운 일일까요?”
“글쎄요? 그런 생각을 따로 안 해 봐서요.”
은후가 김명희에게 물었다.
“아드님이 몇 등 하기를 바라시나요?”
“1등까지는 아니지만 상위권이면 좋겠어요.”
“이상적으로는 1등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럼요.”
은후가 빙그레 웃으며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전국 1등? 전교 1등? 하다못해 반에서라도 1등?”
“…….”
“만약 아이가 반에서 25등쯤 하면 어떨까요. 칭찬하실까요?”
“애가 만약에 30등 하다가 25등 하면 칭찬할 것 같아요.”
“그러면 그다음 시험에서 28등을 하면요? 아드님께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김명희가 머뭇거렸다.
“어, 왜 이번에는 공부 안 했냐고…… 물어볼 것 같아요.”
“혼나네요? 설혹 어머님 본심이 혼내려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라고 해도 아이는 그 질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혼난다고 느낄 거예요.”
난 원위치로 갔을 뿐인데.
“공부라는 게 그래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칭찬이란 걸 받기 굉장히 어려운 영역이죠.”
자타공인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1등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계속 1등을 하는 게 쉬운 일은 또 아니었다.
“과연 공부라는 영역에서 계속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아이는 몇 명이나 있을까요?”
“……거의 없겠죠?”
“그렇죠. 게다가 공부는 칭찬뿐만 아니라 성취감을 느끼기도 참 어려운 분야예요.”
계속 올라가기만 해야 하는.
“항상 살얼음 같은 거죠. 정말 열심히 노력해도 한 번 떨어지면 혼나고. 올라가도 계속 올라가야 해요. 끝없이.”
그러니 천재가 아닌 이상 재미없을 수밖에 없었다.
“재미없죠. 아, 지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죠? 공부가 재밌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김명희가 속으로 뜨끔했다.
“극소수의 아이를 제외하면 다들 재미없죠. 왜냐하면 이길 수 없거든요. 학교를 기준으로 몇백 명의 전교생 중에 승리자는 단 한 명이니까. 기준을 전국으로 높이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할수록 패배감이 커지기 마련이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시작했고, 어느 순간 노력도 해 봤다. 그런데 잘 안 되고. 그래도 또 노력하고.
“안에서 작은 성과를 거두어도 그건 나중에 당연한 게 돼요. 시험에서 실수라도 한 번 하면 이런 말을 듣고요.”
너, 아는 건데 왜 틀렸어?
“계속해서 큰 성과를 원하는 거죠.”
노력해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다시 떨어지는 경우도 흔하디흔했다.
“하물며 이런 케이스도 있어요. 나는 잘했는데 옆에 친구들이 더 잘했네?”
그래서 등수는 변함이 없다면.
“언제쯤 공부라는 분야에서 제대로 된 칭찬을, 아니면 성취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 속에서 짧게는 몇 년, 길게 10년 넘게 공부하라는 소리만 들으면.
“혼나도 별 감흥이 없게 되어 버려요. 그래서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은후가 잠시 말을 멈춘 뒤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인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가 있습니다.”
인정 욕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거든요. 내가 타인보다 낫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해요. 이건 나이 불문 인간이라면 자연스레 갖는 본능이죠.”
이 욕구는 이세계에서조차 그러했다.
“공부는 인정을 받기 힘들어요. 대부분 모든 아이가. 그렇다면 그 욕구는 어디서 채워야 할까요?”
참거나 채우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아이도 인정받고 싶어 해요. 나도 무언가 잘하는 게 있고, 누군가가 나에게 너 잘한다, 라는 말을 해 주는 영역.”
잠자코 듣고 있던 김명희가 물었다.
“그게 게임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하물며 게임은 공부와 다르게 목표 달성 및 꾸준한 성장이 눈에 보이기 마련이었다.
“공부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높은 등수에서 낮은 등수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잘할 때도, 못할 때도 있죠. 그러나 게임은 보통 그러지 않아요. 적어도 후퇴는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시간과 노력을 쏟은 만큼 눈으로 확실하게 보인다. 공부와 달리.
“팀으로 하는 게임은 어떨까요. 아드님이 하는 게임이 AOS 팀 게임이라고 하셨죠?”
“네.”
“만약 나는 잘했는데 우리 팀원들이 못해서 진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좋은 피드백을 주지 못하는 부모님과 선생님을 대신에서 친구들이 칭찬해 줄 수도 있죠.”
야, 그때 스킬샷 좋더라.
“설사 내가 실수했어도 또래 친구들이기 때문에 저번에 너도 그랬냐며 웃고 넘어갈 수도 있어요.”
그러니 게임은 즐겁다.
꾸준한 성장, 이겼을 때의 성취감. 내 친구들의 인정.
“게임이 아이들에게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죠.”
아이가 문제가 될 정도라면 그 욕구가 결핍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자연스레 결핍은 집착으로 이어지기 마련.
‘그래서 아이 대부분이 빠지는 게 온라인 게임이지.’
김명희의 아들처럼.
플스와 같은 비디오 게임에 빠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함으로써 나의 성장과 잘함을 누군가 봐 주고 느끼고. 그 부분을 본능적으로 스스로 알 수 있었으니까.
“그 과정을 통해 결핍이 해소되는 거죠. 물론 부모님들은 아이가 공부에서 그런 인정 요구를 채우기 바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러니.
“아이가 게임을 하느냐 마느냐, 얼마나 하느냐, 그렇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는 본인이 무언가를 잘한다, 내지는 다른 애들에 비해서 잘한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접근하셔서 아이에게 잘 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셔야 해요.”
왜냐하면 모든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하나의 기준으로 다 올라갈 수 없으니까.
“그걸 인정하셔야 해요. 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 아이의 인정 욕구를 채워 줄 것인가?”
그게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정 욕구가 채워지면 다른 하나에 집중되는 의존도가 줄어들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차라리 아이가 게임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칭찬해 주세요.”
아이는 클수록 또래 친구들의 의존도는 높아지기 마련. 하나 여전히 인정 욕구를 가장 크게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게임에 관해 이해도가 높은 상태에서 칭찬해 주고 잘한다고 하면 그 안에서 되게 큰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인정 욕구를 충분히 채운다면? 그런 아이는 자신감이 넘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다른 것들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긍정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게임에 대한 집착.
그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정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한다면 발생하는 일이었다. 아이에게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날 뿐. 성인들에게도 사실상 비슷한 일이 나타난다.
“이런 쪽으로 이해하시고 접근하시면 아이와의 관계나 양육에 있어서 도움이 되실 겁니다. 게임뿐만 아니라요.”
김명희가 일어나서 고개를 푹 숙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진짜, 대단하다. 인정 욕구라니. 처음 들어 봤어.’
자신은 아니지만 남편이 아들과 관련해서 전문적인 상담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비싼 돈을 내고서.
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해 준 상담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어떻게든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아이가 하지 않게끔 유도하는 방법을 말했다.
‘하기야 나보고 게임을 공부하라는 것도 그랬지. 이것도 처음이었어.’
이제 곧 대학을 졸업한다고 했던가. 줄곧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정말 새삼스럽기 그지없었다.
※ 07화에서 작중 등장인물 김명희에게 주인공 은후가 게임에 관해 상담해 주는 부분은 유튜브 <중년 게이머 김실장> 채널의 ‘학부모 김실장이 아들의 게임을 막지 않는 이유(feat.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https://www.youtube.com/watch?v=anN9mHVM2gw)를 기반으로 쓰여졌으며, 저작권 허락을 받았음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