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여전히 비가 노래하고 있는 덕진 공원, 호수의 정자. 소주를 두 병 남짓 비웠을 즈음 노인이 은후에게 물었다.
“안 물어보나?”
“뭘요?”
“내 부탁과 보상이 뭔지 말이야.”
“급할 필요가 있나요.”
“허허, 젊은 사람답지 않구만. 그 나이대라면 호기심에라도 진즉 뭐라도 물어봤을 것 같은데.”
만약 은후의 정신이 20대 초반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풍류가 없지 않습니까.”
“풍류라, 풍류. 귀신과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는 게 말인가?”
“할아버지께서는 악령이 아니니까요.”
“악령?”
“네.”
단순히 인간에게 악의를 품는다고 악령이라 하지는 않았다.
“아마 귀신 중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지를 상실하고 생명체에게 끊임없는 증오를 발산하는 귀신이요.”
그런 정령을 악령이라 했다.
은후가 바라보기에 눈앞의 노인은 적어도 그런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니 충분히 술잔을 나눌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만약 노인이 악령이었다면 은후는 바로 사로잡았을 것이다. 감정 마나와 결은 다르지만 악령은 흑마법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재료 중 하나이니.
“그런가.”
악령.
노인은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으나 은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략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네. 그래서 그 부탁이라는 건 뭔가요?”
“이거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노인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과거를 간단하게 언급하기 시작했다.
“생전, 내가 돈이 좀 많았네.”
원래라면 자신의 삶에 관해 털어놓으며 신세 한탄을 좀 하고자 했다. 은후의 측은지심을 자극함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후의 말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술자리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노인은 충분히 만족했다.
“회사 하나를 만들었는데 한때는 좀 잘나갔어. 친구가 배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친구를 원망하시지는 않는 모양이군요?”
“흐, 원망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나. 내 손에 명을 달리했는데.”
“귀신이 된 이유가?”
“그렇지. 그래도 부인이나 자식들까진 건들진 않았어. 그 친구도 그랬거든. 아무튼 내가 잘나가던 시절에 꿍쳐 놓은 것들이 좀 있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꼴랑 두 개밖에 없지만.”
노인은 그 두 개 중 하나를 은후에게 준다고 했다.
“나머지 하나를 내 자식에게 좀 전해 주게나. 그게 내 부탁일세.”
“알겠습니다.”
“응?”
은후가 빈 술잔을 채웠다.
“안 물어보나?”
“뭐를요?”
“내가 줄 게 구체적으로 뭔지 말이야.”
은후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풍류가 없다고?”
“네.”
게다가 이미 얻은 게 있었다.
노인이 발산하는 감정. 심지어 현대에 볼 수 없으리라 여겼던 정령의 감정이었고, 이는 훌륭한 흑마법의 원료였다.
“풍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말 나온 김에 일단 내가 꿍쳐 놓았던 것들의 위치를 알려 줌세.”
은후가 피식 웃으며 노인에게 되물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뭘 믿고 저에게 그리 말씀하십니까?”
“딱히.”
“네?”
이번에는 은후가 살짝 놀랐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어떻게 믿나. 반평생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해 죽어서 귀신이 되었는데. 하여간 딱히 상관없다고 여겼네.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게 약속을 어길 것 같지도 않고.”
만약에 은후가 약속을 어긴다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탓 아니겠나. 한 번 실수했으니 두 번은 안 하겠지.”
실수해도 어쩔 수 없는 법이고. 게다가 노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이런 술자리를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그거 전부 자네에게 줘도 아깝지 않아.”
“자식분에게 남은 미련 때문에 아직도 남아 계신 것 아니었나요?”
“그건 맞네만. 자식들이 금전적으로 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아까 말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인데 어쩌겠나.”
어차피 죽은 사람인데.
“귀신이 산 자에게 개입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은 아니지.”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러했다.
* * *
폐지 줍는 노인과 헤어진 이래 은후는 어머니 가게를 도우며 한동안 술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술을 전부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가량. 그사이 어머니 가게의 직원 한 명이 돌아왔다.
듣자 하니 직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사인은 암이라고 했다. 암이라는 소리에 문득 은후의 머릿속에 미래의 광경이 스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이유도 암이었지.’
약 5년 후.
구체적으로 무슨 암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은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5년이라는 시간이면 암 정도는 자신이 어떻게든 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저 왔어요.”
이른 아침.
가게에 도착한 은후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이제 직원 있으니 가게에는 그만 와도 된대두. 올해 졸업이니 취업 준비로 한창 바쁠 텐데.”
“아직 반년이나 남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걱정 안 할 수가 있겠니. 요새 괜찮은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아들을 믿으세요.”
담담한 은후의 말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라면 모를까, 근래 보여 준 은후의 모습을 떠올리면 충분히 믿을 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가게 도우러 온 게 아니라 선물이 있어서 왔어요.”
“응? 선물?”
“네.”
은후가 준비해 두었던 술 두 병을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는 그 술병을 받자마자 자연스레 감탄사를 내뱉었다.
“병이 진짜 이쁘다. 이거 그냥 장식용으로 써도 좋겠다. 어디서 산 거야?”
“친구한테 선물로 받았어요. 유리 공예를 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은후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담금주라고 말했기에 기성품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나를 이용해 모양을 바꾸고 마법진을 새겨넣었다.
“이게 제일 예쁜 거니까 가게에 장식해 두세요. 이건 김명희 씨에게 약속한 선물이고요.”
다만 그건 어머니에게 선물할 술병에 한정했다. 지금은 아깝디아까운 감정 마나까지 써서 공을 들였으니까.
‘한 번.’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불의의 사고를 막아 줄 것이었다. 다만 그건 가게와 그 근처에 한정되었다.
‘조만간 어머니께 드릴 아티팩트도 하나 마련해야겠어.’
이세계만큼은 아니지만 현대 또한 이런저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않던가. 가장 대표적인 교통사고부터, 그럴 일은 드물겠지만 강도라든가.
“그럼 저는 가 볼게요.”
“조심하고.”
“그리고 시간 될 때마다 종종 가게 들러서 도와 드릴게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은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고 싶어서 그래요. 최대한 자주.”
은후의 어머니가 헛기침을 하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야.
‘손님들이 은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참 많이 아쉬워했는데 잘됐다.”
손님 중 은후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최근엔 은후를 보러 오려고 굳이 가게에 들르는 손님도 있었다. 그러니 공적으로도 은후는 존재 자체만으로 가게에 큰 도움이 되었다.
* * *
그날 저녁, 은후는 폐지 줍는 노인의 자식을 찾아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노인의 자식은 전주에 살고 있었고 은후의 자취방에서 그리 거리가 멀지 않았다.
사실 귀신의 부탁으로 사람을 찾아왔다는 건 상식적이지도, 믿어지지도 않는 일이었다. 하나 은후는 만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마나로 감정을 건드림과 동시에 노인이 말했던 과거사를 읊으면 되니까. 그러면 자연스레 믿게 될 터.
‘심지어 자식의 생활 패턴까지 알려 줬으니까.’
그 부분은 문제가 없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이능력자로서의 자신이었다.
노인에게 듣자 하니 현대에도 마법사 비슷한 존재가 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이들. 현대에선 이능력자라고 말한다고. 예컨대 무당이라든가, 도를 높게 쌓은 고승이라든가.
‘개중에서 진짜배기는 정말 드물다고 했지만.’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권력자들에게 이런저런 강요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은후는 그게 싫었다.
‘능력자라고 해도 큰 힘은 없는 모양이야.’
높다면 굳이 현대 권력자들의 협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은후로서는 권력자들이 크게 두렵진 않았다. 지금 상태에서도 약간의 무리만 한다면.
‘사람 몇은 쥐도 새도 모르게 치우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당장 떠오르는 방법만 해도 수십 가지였다. 다만 귀찮은 데다 신분이 노출될 시 위험을 겪어야 할 가족이 걱정될 뿐. 그러니 신분을 감춰야 했다.
‘현대 과학이란 게 귀찮기 그지없다니까.’
특히 대한민국은 길거리에 샐 수 없을 정도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과학의 발달로 지문이나 머리카락 등을 통해 DNA 검사까지 할 수 있었으니 말 다 했다.
‘얼굴은 바꾸고, 체형도. 머리카락 같은 건 바뀐 신분으로 활동할 때 흘리지 않도록 주의할 수밖에.’
지문의 경우엔 기본적으로 장갑을 끼면 되지 싶었다.
‘애초에 나갈 때부터 CCTV에 걸리지 않게 해야겠어.’
딱히 불법적인 일도 아니고, 위험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세계에서 삶 때문에 은후는 이런 면에 극도로 조심했다.
‘좋아.’
은후는 광학 미채 마법을 쓴 뒤 자취방의 창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그리고 CCTV의 사각지대에서 얼굴과 신체 크기, 그리고 옷의 색과 모양까지 마나로 손본 뒤 장갑을 꼈다.
‘조금 빠르게 걸어서 한 시간 정도인가.’
은후는 인식 저해 마법까지 쓴 후 발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 일반 마법은 충분히 감당 가능해.’
직접적으로 불덩어리를 만들어서 날리는 식의 원소 마법과 다르게 보조 계통이었고, 현대로 돌아온 후 끊임없이 마나를 모으고자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이 많네.’
오후 7시.
그리 늦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에 사람들이, 자동차가 참 많이 보였다.
폐지 줍는 노인의 자식이 살고 있다는 은평 아파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꽤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은후에게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그건 퇴근 후 집으로 들어가려던 폐지 줍는 노인의 자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인가.’
폐지 줍는 노인이 설명해 준 특징도 그렇지만 그 얼굴을 쏙 빼닮았기에 은후가 알아보기엔 어렵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헉!”
느닷없이 들린 목소리에 폐지 줍는 노인의 자식이 깜짝 놀랐다.
“김수혁 씨 되시죠?”
“어, 네. 그런데 누구시죠?”
은후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김수혁 씨 아버지 되시는 김영섭 씨 부탁으로 찾아왔습니다.”
“네?”
김수혁의 경계심이 짙어졌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언급했기에 더더욱.
은후는 그때 타이밍 맞춰서 마나를 움직여 김수혁의 경계심을 누그려뜨렸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에 마나를 실으며 입을 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소풍 때 바지에 똥을 쌌다며…….”
부모님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자신의 흑역사들.
“……중학교 3학년 때였던가요? 자신은 동물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셨던 게. 술을 처음 드셨던 것도 그 나이였고요. 김영섭 씨가 담갔던 인삼주를 먹고 진탕 취하신 뒤에.”
김수혁이 은후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자, 잠시만요! 믿습니다! 믿어요!”
“다행입니다.”
은후가 빙그레 웃었다.
“저기 벤치로 가시죠. 잠깐이면 됩니다.”
김수혁이 진이 빠진 표정으로 은후를 따라갔다.
“김수혁 씨도 시간이 많지 않을 테니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죠.”
“김영섭 씨가 남기신 선산에 지어진 집 한 채가 있지요?”
“네.”
“거기에 유산이 남아 있습니다.”
“네?”
아버지의 회사가 망하며 짊어지게 된 빚. 그래서 돈 때문에 정말 어려움을 겪었으나, 선산과 어렸을 적의 추억이 남은 집만은 지켜 냈다.
단순히 추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훗날 자산으로서도 큰 가치가 될 거라는 판단을 했기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그곳에 느닷없는 유산이라니.
“정확한 위치는 이걸 보고 찾아보세요.”
은후가 미리 적어 두었던 쪽지 한 장을 건넸다.
“그럼. 아, 김영섭 씨가 말씀하시더군요. 정말 고생했다고요. 그리고 기왕이면 제사상에는 정종이 아니라 소주를 올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네?”
은후는 할 말이 끝나자 곧바로 일어서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광학 미채 마법을 발동했다. 그러자 김수혁의 눈에 은후가 사라졌다.
“어, 어어?”
저도 모르게 당황한 김수혁이 중얼거렸다.
“꿈?”
하지만 손에 남아 있는 쪽지는 꿈이 아닌 현실임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