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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4화 (4/170)

제4화

김명희의 고민은 그 나이 때 자녀가 있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할 만한 고민이었다.

“아이가 게임을 너무 좋아해요.”

아이의 이름은 김영서. 중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너무, 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정도가 심하군요?”

“네.”

김명희가 한숨을 폭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아이가 게임을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건 힘들 거라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다른 또래 아이들도 하니까. 그러니 게임을 아예 못하게 막는다면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더 심하다면 왕따까지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김명희는 판단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간을 정해 줬어요.”

“얼마나요?”

“하루에 두 시간이요.”

두 시간이라.

“그런데 점점 그게 안 지켜지는 거예요. 그래도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설득하려고 애썼죠.”

그 설득이 통하기도 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설득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그다음에는 혼냈죠.”

자연스레 말싸움으로 번졌고 말이다.

“그러시군요.”

이은후는 중간중간에 반박하고 싶은 점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김명희의 이야기를 묵묵히 집중하며 들어 주었다.

“결국에 게임 때문에 수업도 제대로 집중 못 하고 성적도 많이 떨어지고. 건강까지 나빠졌다니까요?”

그러다가 결국에 반쯤 손을 놓게 되었다고.

“요새 저희 집에서 게임이란 단어조차 잘 안 꺼내게 되었어요.”

일종의 금기어가 된 셈이었다.

“게임은 아예 안 할 수 없으니까 적당히 하고 공부에 더 집중하거나 하다못해 책이라도 읽었으면 좋겠는데.”

으레 부모라면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바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입장이었다.

“이런 말도 결국 우리 아들 흉보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우리 집만 가진 고민도 아니라고 보고요.”

그래서 어디에다 털어놓기 참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니까 좀 낫네요.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명희의 입가에 씁쓸하지만 조금은 편안함이 느껴지는 미소가 걸렸다.

“요새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나요?”

“그렇죠.”

은후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게임에 관해 그리 잘 아는 게 없다 보니 원론적인 답변밖에 해 드릴 수 없을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물론이죠.”

게임.

한때 은후도 정말 좋아했으나 이세계에 있던 기간이 너무 길었다. 그 시간만큼 가치관도 바뀌었고. 더불어 은후는 자녀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통용되는 진리가 있었다.

“일단 어머님께서 공부하실 필요가 있어요.”

“네? 공부요?”

생각지도 못한 은후의 말에 김명희가 살짝 당황했다.

“네, 공부요. 제 생각이지만 자녀분이 단순히 게임이 재밌어서 그 정도로 빠지진 않았다고 보거든요? 그 자녀분이 하는 게임이 정확히 무슨 게임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박 중독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닐 거잖아요.”

그 수준까지 갔다면 이미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해결책을 찾으려면 원인부터 파악해야 하죠. 제가 공부하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래서예요.”

왜냐하면 게임이라고 다 같은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생각나는 게임의 큰 종류만 해도 RPG, FPS, 아케이드, 시뮬레이션…… 정말 많거든요?”

그렇다고 같은 장르면 같은 게임이냐?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 자녀분이 하는 게임이 뭔지 알아내셔서 공부하세요. 그렇게 된다면 설령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더라도 좋은 점이 있어요.”

“그게 뭔가요?”

“자녀분과의 관계 개선이죠. 자녀분이 좋아하는 게임을 두고 대화를 좀 더 많이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하물며 공부가 아니었으니.

“게임을 두고 하지 마라, 그만해라, 그럴 게 아니라 게임 자체를 두고 대화를 하세요. 어떤 부분에서 자녀분이 흥미를 느끼는지, 어떨 때 기분이 좋은지. 그런 주제로요.”

한마디로 공감을 해 주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한다면 최소한 좋지 않았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고, 또 훗날엔 자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게임 시간을 구체적으로 몇 시간 해라, 이건 좋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게임에서도 중요한 순간과 그렇지 않은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 관해 기억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이 정도는 은후도 기억했다.

“예컨대 팀으로 하는 게임에서 단체로 무슨 전투를 한다고 가정해 봐요. 그럼 그 게임을 하는 사람한테는 무척 중요한 순간일 거예요. 만약 그럴 때 자녀분에게 게임을 끄라고 하면 어떨까요?”

당연히 싫을 수밖에 없을 터.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민폐가 된다고 여길 거예요.”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신이 쓰레기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최소한 그런 순간만큼은 그 일을 마무리하고 꺼도 괜찮다고 해 주셔야 해요. 그 정도로 게임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시면 이런 말씀도 하실 수 있겠죠.”

지금 딱히 게임에서 중요한 순간이 아니니, 일단 끄고 할 일을 하라고.

“무작정 게임을 끄라고 하는 것보다 반발심이 덜 들걸요?”

은후의 말에 김명희는 일단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없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노력해 볼게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호칭을 바꾸었다. 은후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끼며 설득당했기 때문이다. 또 은후가 풍기는 분위기가 비범해 보여서이기도 했다.

단순히 감정선에 개입하는 일. 이는 이세계에서 은후가 평소에 쓰던 마법과 비교한다면 마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술법이었다. 하나 그 정도만으로도 김명희를 설득하기엔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리고 아까 불면증이라고 하셨죠.”

“네.”

“제가 며칠 뒤에 술 한 병을 선물로 드릴게요. 잠들기 전에 한 잔 마시고 주무시면 효과를 볼 거예요.”

“술이요?”

“네, 제가 술을 좀 만들거든요.”

이세계에서 은후는 마법을 이용해 술을 만들곤 했다.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함이었고, 마법을 이용한 만큼 술은 매우 특별했다.

* * *

김명희의 상담 이후, 은후는 데스크를 보며 오는 손님들을 응대했다. 그 와중에 은후는 마법을 이용해 손님들의 기분을 풀어 줌과 동시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가게에 평소 불만이 있다거나 개선했으면 하는 점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런 질문을 직접적으로 받는다면 대개 좋게 넘어가려 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손님 대부분이 은후 어머니와 친분이 있으니 더더욱. 게다가 은후는 단순한 직원이 아닌 아들이지 않던가.

하지만 마법의 힘은 위대했다. 물론 마법에만 그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은후의 마법은 과하지 않은, 음식에 비유하자면 양념에 불과했으니. 양념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마련. 은후의 말과 분위기가 그러했다.

“제가 어머니 기분 상하지 않도록 잘 말할 테니까요.”

매우 상투적인 말. 하나 그 말이 손님들에겐 빈말이 아닌 진심으로 와 닿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답해 주었다.

“그게, 음. 시설이 좀 낡았죠?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은영이 아니면 올 이유가 없죠.”

“그 쉬고 있다는 여자 직원 있잖아요. 좀 예의가 없더라고요. 너무 틱틱대고. 그렇다고 내가 은영이한테 직원 바꾸라고 말하기도 참 그렇고.”

은후는 이러한 손님들의 불평을 머릿속 한구석에 잘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김명희와 같이 고민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틈틈이 상담해 주었다.

다만 제대로 상담을 하기엔 김명희처럼 일대일로 할 수가 없었기에 가벼운 고민이 주를 이루었다. 시간이 지나며 손님들이 제법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은후도 굳이 마법까지 동원해 가며 상담하지 않았다. 그저 진지하게 들어 주며 일반론적인 답변을 하는 것. 다만 그것만으로도 고민이 있던 이들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나저나 은영이가 아들을 참 잘 키웠어?”

“그러니까 말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은후의 어머니에게 손님들이 아들을 칭찬하게 되었다.

“에이, 내가 키우긴 뭘. 알아서 잘 컸지.”

손님들의 칭찬에 은후의 어머니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손님들이 전부 돌아가고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은후의 어머니가 가게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아들, 고생했어.”

“어머니가 더 고생하셨죠. 저야 손님들 응대한 것뿐인걸요.”

“그게 고생이지. 응대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 텐데.”

하물며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 은후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것도 꽤. 그런 손님들을 응대하며 고민을 들어 준다는 건 20대로서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소한 은후를 두고 싫은 티를 내는 손님은 없었어.’

하다못해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을 법도 했는데. 모두가 은후를 두고 칭찬하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들 한번 안아 볼까?”

“……그럴까요?”

은후의 어머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장례식 때문이려나.’

평소에 이렇게 포옹이라도 할라치면 참 내키지 않아 했는데.

“그나저나 아들.”

“네.”

“술 담가? 명희가 그러던데.”

“아. 네, 취미로 조금.”

“어디서 배웠어? 난 아들이 그런 취미가 있는지 처음 들었네. 명희만 주고 엄마는 안 줄 거야? 조금 섭섭한데.”

“대학교에서 교양 시간에요. 다음에 올 때 어머니 것도 챙겨 올게요.”

술을 담근다는 건 은후의 나이를 고려하면 솔직히 평범한 취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불법적이지도 않았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은후의 어머니는 이에 관해서 굳이 더 언급하지 않았다.

* * *

며칠 후.

은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 온 술들을 바라봤다.

‘잘 안 되네.’

처음엔 쉬울 줄 알았다. 마법을 이용해 술을 만드는 건 이세계에서 돈을 벌기 위해 곧잘 해 봤던 일이니까.

하물며 이세계처럼 특별하고도 맛을 끌어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그 정도의 마법적 효과만 부여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파는 술을 사다가 시도해 봤는데 문제가 있었다.

‘마나를 머금고 있지를 못하는군.’

마나가 깃들어 있어야 뭘 할 수 있을 텐데. 은후가 술에 마나를 불어 넣으면 금방 흐트러졌다.

“쯧.”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찼다.

‘원인은.’

재료의 문제. 아마 이는 지구의 마나 농도와 관련이 있으리라. 특히 공산품은 더더욱 그러했다.

‘방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가지고 있는 마나를 쓰면 그만이었다. 혹은 자연에서 마나를 꽤 머금고 있는, 예컨대 산삼이나 인삼 따위의 약재료 담근 술들.

은후가 확인해 본 바 그런 약초들은 마나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그러긴 좀 힘들지.’

술을 건네주겠다고 한 기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당장 금전적으로 그다지 여유가 없었기에 비싼 약초를 사거나 직접 캐는 것도 힘들었다.

‘최소 인삼. 그것도 품질이 좋지 않으면 안 돼.’

그래야만 마법이 깃들 수 있으리라. 은후가 확인한 바로는 그랬다. 그러니 공산품을 이용해야 했다. 방도가 없지는 않았으니까.

그건 바로 일반적인 마법이 아닌 흑마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원래는 흑마법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흑마법사라고 딱히 일반적인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흑마법과 일반적인 마법은 일정 부분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아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흑마법은 사람의 감정을 원료로 삼는 술법. 그 원료를 두고 마법사들은 감정 마나라 명명했다.

정의하자면 사람의 감정을 바탕으로 형성된 마나였고, 그 마나는 술자 본인이 아닌 타인의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소모재였다. 한 번 쓰면 사라지고 마는 일회성 원료. 그래서 흑마법사들은 문제를 일으키기 쉬웠다. 감정 마나를 수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흑마법에 입문하는 순간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내 감정 마나를 쓰기엔 불안정해.’

아마 그 원인은 차원을 이동했기 때문이겠지. 단순히 마법을 쓰는 게 아닌 어떠한 물질에 깃들게 하여 마법적 조치를 하는 거라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그건 확신에 가까운 마법사로서의 직감이었다.

‘지금 가진 마나량이라면 소주 기준으로 여섯 병 정도인가.’

버스에서 만났던 학생. 어머니 피부샵에서 응대했던 손님들로부터 조심스레 모은 감정 마나의 양을 전부 쏟는다면 그 정도.

‘그래도 최소한의 마나는 남겨 둬야겠지.’

사람 일이란 혹시 모르니.

‘일단 어머니에게 드릴 한 병. 그리고 김명희 씨에게 드릴 한 병.’

마지막으로 예비로 한 병. 은후는 그렇게 총 세 병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술부터 사 올까.’

기왕 공을 들이기로 했으니, 평범한 소주로 하기엔 좀 아까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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