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대개 어떠한 일이든 처음은 서툴기 마련이었다. 흑마법사가 감정을 뽑아내는 일 또한 그러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뭉뚱그려서 다룰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람이 뿜어내는 감정이란 저마다 다채롭기 마련이었으니.
‘부정적인 감정이 주를 이루지만, 그 안에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공존하고 있군.’
원하는 부문만 콕 집어내서 마나로 치환하는 것. 그건 흑마법사로서 상당한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은후는 감정을 다루는 데 스페셜리스트였다. 하나 은후는 자만하지 않고 극도로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조심스레 마나를 움직였다. 그러나 이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예상보다 무척이나 쉬웠다.
‘어째서?’
하지만 생각은 나중에.
일단은 눈앞의 일에 집중을.
아무리 감정을 다루는 데 익숙하다고는 하지만 실수할 가능성은 있으니까. 그리고 그 실수는 눈앞의 학생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리라.
“어?”
학생이 당황했다.
느닷없이.
갑자기.
순간적으로 죽음을 생각했을 정도로 우울했던 감정의 격류가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후우.”
그리고 이은후는 그 과정에서 알았다. 어째서 예상보다 감정을 뽑아내는 일이 쉬웠는지.
‘내성이 없어.’
마나의 농도가 낮은 세계. 그렇기에 마나의 내성이란 게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접촉하는 마나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반면 이세계에서는 아니었다. 세계 자체가 마나를 잔뜩 머금고 있었기에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자연스레 감응력이나 저항력 수치가 올라가고 소량이나마 품기 마련이었다.
‘당장 내가 가진 마나를 이용해서 조금만 집중한다면.’
그렇게 한다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이은후는 결론을 내렸다. 이세계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또 한 가지 깨달았다. 처음에는 아닌 줄 알았는데.
‘없구나.’
체내에 마나가.
감정을 뽑아낸 학생의 몸에는 마나가 아예 없었다. 생명이라면 당연히 품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마나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마법이란 학문에 입문하면서, 그게 당연한 진리인 줄 알았건만.
‘마나가 없어도 생명체는 살아갈 수 있다.’
세계가, 차원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이세계로 건너가기 이전에는 애초에 생각도 안 해 보았던, 그러나 이세계로 이동한 뒤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진리. 그 진리가 깨어졌다. 동시에 정체되었던 흑마법사로의 깨달음이 찾아왔다.
* * *
은후에게 있어서 마법은 진리를 좇는 도구가 아닌 수단이었다. 그렇기에 원래 세계로 귀환한 뒤에는 마법에 관해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저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유용할 정도의 수준만 되찾자고. 그건 이세계에서 은후가 이룩했던 경지에 비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현대 사회에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한마디로 집착을 버렸다.
“하.”
이세계에서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 중 하나였으나 실천으로 옮기는 이는 무척 드문 일. 현대로 따지자면 승려(涅槃)가 열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자 하는 일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는 어지간한 고승(高僧)도 불가능한 일이지 않던가.
‘경지를 너무 일찍 되찾았네.’
집착을 버린 상태에서 찾아온 깨달음. 이세계에서 깨달았다면 제국과의 싸움에서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미련인가.’
은후는 쓰게 웃으며 창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버스는 여전히 이동 중이었다. 깨달음의 순간은 영원에 가까운 찰나였기에, 주관적인 시간은 무척 길었으나 객관적인 시간의 흐름은 짧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때 앞자리에 앉은 학생의 통화 내용이 은후의 귀에 들려왔다.
“어, 이제 좀 괜찮아. 오늘 괜히 자체 휴강했나 싶기도 하고.”
꽤 뿌듯했다.
이세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도울 일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흑마법사란 대개 배척당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아마 복수가 아니었다면 은후 또한 흑마법을 접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흑마법도 도구에 불과한 것을.’
도구란 쓰기 나름이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사람에게 이롭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잘살아가는 것.
‘아내는 그걸 바랐겠지.’
이세계에서 보기 드문 선한 사람이었다.
정말로.
그렇기에 반했고 사랑했으며 결혼을 했다.
그런 식으로 죽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 * *
깨달음을 갈무리하고 과거를 더듬다 보니, 어느새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은후는 애써 아내의 기억을 의식 저편으로 몰아넣은 후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니의 가게는 버스 정류소에서 걸어서 약 30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은후는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참 많구나.’
정말로 이른 아침.
무슨 일로 이리도 많은 사람이 이동하고 있는지. 이마저도 익산이란 지역의 특성상 서울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고.
‘게다가 평화롭기 짝이 없어.’
자연스레 이세계에서의 생활상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으나, 자연스레 비교되는 건 너무도 긴 시간을 이세계에서 보냈던 탓이리라.
‘여기, 던가?’
이윽고 도착한 어머니의 가게. 다만 이은후가 이세계로 넘어가기 전 현대에서 겪었던 기억은 너무 빛이 바래 버렸다. 그래서 참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마법사로서 이룬 높은 경지 덕분에 잊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는 것. 먼 옛날의 흑백사진을 보는 느낌이지만, 이게 어디냐 싶었다.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뭐 하니?”
“어머니.”
다만.
“계속 어머니라고 부를 거니?”
어머니의 목소리는 듣는 순간 기억이란 사진이 채색되기 시작했다.
“…….”
“은후야?”
“네.”
“무슨 일인데?”
“아니요, 그냥 어머니 보니까 좋아서요. 그래서 그래요. 요 몇 달 거의 못 봤잖아요.”
은후가 애써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입가에 걸린 건 흐릿한 미소뿐.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힘껏 노력했지만 그게 한계였다.
“진짜예요. 딱히 사고 친 거 없어요.”
“사고 말고는?”
“그, 음. 최근에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좀.”
“그렇구나.”
애써 뇌리에서 쥐어 짜낸 변명 아닌 변명.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 무렵에 친구 어머니가 죽은 사건을 계기로 좀 더 자주 찾아뵙고 효도하고자 결심도 했었다.
“그래서 잘하려고요.”
하지만 은후가 바뀐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걸 은후의 어머니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다만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우리 아들 벌써 다 컸네. 일단 들어갈까?”
어머니가 가게 문을 열었다. 이후 여느 가게처럼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소파에 앉았다.
“커피 마실래?”
“네.”
은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어머니가 손사래 쳤다. 그리고 은후를 억지로 자리에 앉힌 뒤 손수 종이컵에 커피 믹스를 탔다.
‘그러니까, 그때는.’
이런 커피 믹스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싫다고 툴툴거렸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런 은후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속으로 의아해 했다. 평소의 은후라면 거절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이런 아들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었기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걱정이 되는 건 여전했지만 말이다.
‘달다.’
은후는 커피를 마시며 어머니를 어떻게 도움을 드릴까 고민했다.
원래의 과거에서는.
‘그래, 그랬었지.’
청소를 같이 하고, 그리고 커피를 싫다고 한 다음에 카운터를 보다가.
“어머, 오늘은 일찍 열었네?”
“오셨어요?”
그래.
눈앞의 중년 여성이 방문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어머니와 중년 여성은 퍽 친해 보였다.
“응, 이 여사는 참 부지런해.”
“사모님만 하겠어요.”
“에이. 그나저나 옆에는 누구?”
은후가 일어나서 고개를 정중히 숙이며 입을 열었다.
“이은후라고 합니다. 아들이에요.”
“아! 그 전북대학교에 다닌다는 아들?”
“네.”
“나도 커피 한 잔만 줘.”
“제가 타 드릴게요.”
은후가 커피를 타 오자, 두 사람은 조금 더 이야기하다가 안쪽에 마련된 안쪽 방으로 사라졌다. 그곳은 피부 관리를 위해 마련해 둔 침대가 놓인 장소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손님 한 명이 바로 방문했지.’
그 손님 또한 어머니의 단골이었다. 그리고 그 손님은 은후에게 상담 요청을 했다. 그 손님 또한 은후가 심리학과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은후는 제대로 된 상담을 해 주지 못했었다.
‘일단 방문하는 손님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하자. 그리고 가능하면 적당히 도움도 주고.’
은후는 어머니를 도와줄 첫 번째 방법을 결정했다.
‘심리학과라는 간판이 있어서 다행이야.’
본디 자신의 고민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물론 없는 건 아니지만.’
예컨대 기차에서 만난 낯선 이방인 현상이라는 게 있다. 이 현상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변호사인 지크 루빈에 의해 정의되고 기술된 용어다.
그는 논문을 통해 ‘전혀 모르는 낯선 인물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자 하는 심리’에 관해 저술했다. 비밀로 하고 싶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상태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 거기에는 앞으로 어지간하면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는 심리적 예측이 깔려 있었다.
은후는 이와 비슷하게 사람의 심리를 유도할 수 있었다.
흑마법.
사람의 감정을 주원료로 하는 술법.
그런 법을 다루는 은후에게 있어서 그 정도쯤이야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사람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걸 최소화하려면 그런 식이 좋겠어.’
현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마나 저항력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아예 없는 사람도 있고.’
아직 표본이 부족하기에 무어라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말이다.
* * *
여느 때처럼 피부숍 소마(SOMA)에 방문한 김명희는 처음 보는 얼굴에 내심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새로 들어온 직원이세요?”
“직원은 아니고요. 이 집 아들이에요.”
“아! 그 전북대학교 심리학과에 다닌다는 그?”
“네. 커피 드릴까요?”
무척이나 예의 바른 이은후의 모습에 김명희는 내심 감탄했다. 그리고 속으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참 곱네.’
그저 보기만 하고도 김명희가 은후에게 호감을 품었다. 그리고 그 호감은 편안함과 안도감으로 이어졌다. 이는 은후가 갈무리하고 있었던 마나를 살짝 풀며 아까 생각했던 바대로 김명희의 감정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어우, 커피 참 다네요.”
은후는 아무런 말 없이 미소지었다. 김명희는 커피를 홀짝이다 한숨을 폭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나는 방문 안 해도 되었거든요. 원래라면 사흘 후에 왔어야 했는데.”
그럼에도 가게에 찾아온 이유는 자신이 가진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서였다. 피부 관리가 아닌.
“괜찮으시면 한번 말씀해 보시겠어요? 제가 아직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긴 하지만 명색이 심리학과라서요. 간단한 상담 정도는 충분히 해 드릴 수 있어요.”
“그래도 되겠어요?”
“그럼요.”
김명희가 잠시 머뭇머뭇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내가 속으로만 앓자니 너무 갑갑해서 어디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그 고민으로부터 비롯된 부정적인 감정. 은후는 그 감정의 일부분을 아까 버스에서처럼 조심스레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명희는 뭔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꽤 편안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말하려고 마음만 먹었는데 이렇게 편해질 줄은.’
그래서 이런 착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