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이은후가 이세계로 가게 된 이유는 딱히 없었다. 흔한 소설 속 클리셰처럼 작가에게 장문의 쪽지를 보낸 것도, 버스에 치여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세계 쪽에서 용사로 부른 것도, 신의 변덕 또한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이유라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덜 억울했을까.
‘아니, 그건 아니었겠지.’
이은후는 내심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 후회는 있었을지언정 큰 불만은 없었으니까.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오점이었던 이혼조차 그랬다.
‘다시 생각해도.’
후회는 있었으나 불만은 없었다. 뭐, 이혼 직후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그런데 진짜 무너질 줄은.’
현대 대한민국에서의 이은후의 삶은 이세계에서 송두리째 무너졌다. 살아남는 것, 생존부터가 문제였기에 그랬다.
이은후가 도착한 이세계는 중세 시대의 판타지 세계였다. 약육강식과 신분제가 지배하는 곳. 정말 다행인 점이 있다면 대륙 공용어가 영어라는 점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은후는 그 사소한 사실에도 감사했다.
왜냐하면 아무런 능력조차 없이 이세계에 내동댕이쳐졌으니. 그런데 만약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이은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만 으레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회화는 썩 실력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사기도 당하고 죽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말을 잘 못 하는, 신분도 분명치 않은 사람이란 사기 치기에 딱 좋은 대상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이세계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곳. 나쁜 사람도 있었으나 좋은 사람 또한 있었다. 그 숫자가 무척 적었지만 순수한 호의를, 은혜를 입은 적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사랑도 할 수 있었다. 이혼이란 큰 상처 때문에 다시는 결혼하지 않으리란 다짐도 다시 찾아온 사랑 앞에서 무너졌다.
‘레아.’
이은후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복수.’
그래.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 제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크루트 공작가의 한 망나니 새끼 때문에. 소설의 흔한 클리셰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내의 미모에 혹해서 그 망나니가 납치를 했고, 강간했다. 이세계에서 손에 넣은 마법사로서의 위치와 힘은 공작가라는 이름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결과 아내는 죽었다. 시름시름 앓다가. 그래서 복수를 결심했다.
‘그다음엔.’
복수라는 감정에 미쳐서.
흑마법에 손을 댔고.
악마와 계약했으며.
끝내 공작가를 멸망시켰다.
이후 대륙 공적으로 지목당했다.
* * *
이은후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눈을 떴다.
‘분명히 난 죽었을 텐데?’
대륙 공적으로 지목당한 이후 제국과의 전쟁 속에서 이은후는 삶을 마감했다.
분명히 그랬을 터인데.
‘어?’
이은후가 당황했다.
‘공기다.’
공기가 느껴졌다. 숨을 쉴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은후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제국과 전쟁 도중 리치가 됐으니까.
리치.
강력한 흑마법사가 영생과 힘을 얻기 위해 육신을 언데드화하면 탄생하는 존재. 언데드가 됨으로써 불멸에 가까운 신체를 얻는 대신,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감각과 감정을 잃는 것은 필연이었다.
‘여긴 대체 어디야?’
이은후가 당황하며 몸을 일으킨 후 주위를 살펴봤다. 그제야 오랜 시간 전의 기억이 스물스물 기어 나왔다.
‘자……취방?’
대학교에 다니면서 구했던 자취방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이은후의 다른 감각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은후는 자신이 언데드가 아닌 인간임을 자각했다.
‘리치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말은 못 들어 봤는데.’
하기야 그렇게 따지면 자신이 이세계로 건너간 것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소리도 잘 들리는군.’
이은후의 귀에 빗소리가 다가왔다.
‘냄새도.’
한 번 잃어버렸던 감각을 다시 되찾았기 때문일까. 오감이 무척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
무심코 내뱉은 헛웃음. 제대로 소리가 나왔다. 리치일 때는 마법이 아니면 덜그럭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는데.
‘허무하네.’
한때 그토록 바랐던 원래 세계로의 귀환. 그러나 결혼하면서 사라진 꿈이기도 했다. 아마 돌아올 방법을 찾았어도 이세계에 뼈를 묻었을 것이다. 아내의 죽음만 아니었다면.
‘꿈, 은 아니겠지.’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다. 하지만 동시에 흐릿하기도 했다.
“후우.”
이은후는 숨을 크게 내뱉으며 마나를 느끼고자 애썼다.
‘느껴진다.’
다만 정말로 희박했다. 이세계와 비교했을 때 비율로 따지면 약 스무 배 정도의 차이일까.
‘이러면 애초에 느끼는 것 자체가 힘들겠군.’
천고의 재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설혹 그런 재능을 타고난다고 해도, 이래서야 마법에 입문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나도 리치로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단순히 마나를 감지하는 것조차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간단한 마법 정도는 쓸 수 있겠군.’
이은후가 눈곱만큼 모은 마나를 움직였다. 그러자 이은후의 손가락의 끝에서 조그마한 불씨가 타올랐다.
‘꿈은 아니었구나.’
그게 꿈이 아니었어.
차라리 꿈이었다면, 그랬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은후의 손가락에서 선명히 타오르는 불꽃이 그 바람을 부정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삶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복수는 이루었다. 비록 제국까지는 어찌하지 못했지만 복수의 대상이었던 공작가는 확실히 멸망시켰다.
‘사실 제국과의 싸움은 원하지 않던 바였지.’
그저 어쩔 수 없었을 뿐.
만약 아내가 남긴 유언이 아니었다면 공작가를 멸망시킨 후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복수는 잊고 끝까지 살아 달라고. 기왕이면 잘.’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도저히 복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살아 달라는 부탁은 지켜야지.
‘어?’
그러다가 이은후는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눈치챘다.
‘내가 이혼한 건 서른여섯? 일곱이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이혼 시기가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취방에 머물렀던 시기.
‘20대.’
그것도 대학교 졸업 전까지.
‘졸업 후에는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갔던가?’
아마 그랬던 것 같은데.
이은후가 끙끙거리며 과거를 더듬었다. 그 와중에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 그리운,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랑아.
과거 유행했던 발라드의 한 소절.
초반 인트로에서 담담하게 읊조리는 운율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핸드폰 알람음으로 설정했었다.
마치 자신의 일을 말하는 듯한 노래에 이은후의 감정이 요동쳤다.
‘레아.’
리치가 되면 완전히는 아니지만 감정을 거의 소실하기 마련이었다. 대개 남는 것은 마법의 끝을 보겠다는 집념이거나, 죽기 싫다는 미련이었다. 왜냐하면 마법사가 리치가 되는 경우는 그 두 가지 이유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은후는 아니었다.
복수.
아내.
‘이제는 놓아줘도 될 것 같지만.’
복수는 이루었고, 아내를 추억하기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조금만 더.’
아직은 잊기 싫었다.
‘그러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말라고, 당신.’
이은후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무슨 일 있니?
이은후가 슬쩍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어머니’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
아, 어머니.
순간 이은후가 울컥했다.
가족.
가족과의 사이는 평범했다.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은후가 이세계로 건너갔던 초기에 마음의 버팀목이 되었다. 어떻게든 원래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꿈 또한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은후야?
“네, 어머니.”
- 어머니? 정말 무슨 일 없니?
“아니요, 딱히 없어요.”
- 없기는 무슨. 네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건 무슨 사고 쳤을 때밖에 없잖니.
그랬던가.
“엄마.”
- 그래, 우리 아들.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쳤을까?
“정말로 없어요.”
- ……그래?
하지만 엄마는 엄마였다. 평소와 다른 아들의 낌새를 단순히 목소리만으로 눈치챘다. 이은후가 되살아난 감정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럼 오늘은 쉬렴.
“오늘요?”
- 그래, 하루 정도는 가게 안 도와줘도 되니까. 내일은 올 수 있지?
가게라.
이맘때에 어머니 가게를 도와 드렸던가.
“네, 그럴게요.”
통화를 끊고 이은후의 기억 속에 어머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 피부숍을 운영하셨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꽤 수익이 쏠쏠했다. 동네에서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았다. 실력은 평범했으나 입담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도와 드렸던 건.’
직원이 다쳐서.
어머니를 포함, 세 명이 돌아가며 일했는데 직원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른 한 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무슨 일이 생겨서 잠시 어머니 혼자 가게를 운영해야 했고, 그래서 한가했던 아들에게 얼마간 카운터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 그랬었지.’
그 시기는 대학교 4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 * *
이은후가 다니는 대학교는 전주에 있는 국립대였다. 그리고 본가는 익산에 위치했다. 스쿨버스가 다니기는 했지만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고역이었던 이은후는 자취방을 구했다.
‘고작 그게 뭐라고.’
누군가에게는 큰일이겠지. 당시의 이은후에게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이은후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계산이요.”
이은후는 이른 아침 몸을 씻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버스를 타기 전 캔 콜라를 하나 샀다.
‘이게 더 큰일이지.’
이세계에서 그토록 그리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콜라였다.
‘그래, 이 맛이야.’
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탄산. 그로부터 비롯된 청량감과 콜라 특유의 단맛에 이은후가 나지막이 감탄했다. 한동안 콜라의 감동에 멈춰 서 있던 이은후가 속으로 피식 감탄하며 다시 기억을 정리했다.
이은후는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후 밤을 새웠다. 군데군데 빈 기억은 많았지만 어느 정도는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마나를 얼마 못 모은 건 아쉽지만.’
농도가 희박하니 그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차피 현대 사회였기에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에 몬스터와 싸울 것도, 이동하면서 도적 떼가 습격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은후는 마나를 쥐꼬리만큼 모았음에도 조급하지 않았다.
‘미리 탈까.’
정류장에 너무 일찍 도착했다. 출발 시간까지 20분도 넘게 남았다.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이은후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고, 출발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전의 애매한 시간 때문일까. 채워진 자리는 몇 되지 않았다.
‘어?’
출발 직전.
아슬아슬하게 탄 교복 차림의 한 학생을 보고 이은후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감정의 크기가.’
무척이나 커다랬다.
이세계에서 흑마법사가 배척받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의 감정을 마법의 원료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일반적인 마나와 다르게 흑마법사는 사람의 감정, 개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주로 사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효율이 좋으니까. 딱히 다른 감정을 사용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다만 그렇게 감정을 뽑아서 쓰다 보면 큰 문제가 생겼다.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감정을 완전히 잃는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는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아도 사람이라 부르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면.’
혹은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뽑는다면, 의학적으로도, 옳은 방향으로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음이라. 다만 이세계에서는 그럴 수 없는 환경이었을 뿐.
‘어쩔까.’
다시 흑마법에 손을 대어도 괜찮을까. 부정적인 감정을 뽑으면 자연스레 술자인 본인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에 관해선 이미 극복했으니. 이는 깨달음의 문제였다.
‘살짝, 조금만.’
나는 마나를 얻어서 좋고.
저 학생은 안 좋은 감정을 덜어 낼 수 있어서 좋고.
이은후가 눈을 감고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움직여 교복 차림의 학생으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뽑아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