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머나먼 세계(2)
행성 테라.
쿠구구구궁-.
대기권에서부터, 무언가가 추락하듯 떨어져 내렸다.
구름을 가르고서 지상을 향하여 곤두박질치는 그것은, 이내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도심의 한 가운데에, 한 기의 기가스가 내려앉았다.
지나치던 사람들은 들려오는 소음에 잠시간 시선을 향하다가도 이내 다시금 고개를 돌려 갈 길을 갔다.
마치 이것이 일상이라는 듯이.
실제로 그다지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하늘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수의 기가스와 전함들이 부유하며 상공을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당연한 이유였다.
황족들이 이제껏 통제하고 있던 기술력은, 그들의 사망과 함께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뛰어난 기술은 그들이 맞서는 드라칸과의 마찰로 인해 전쟁 방향을 향하여 움직인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런 전개였다.
이제 와선 대기층을 강하하는 수준을 버틸 만큼이나 대단한 수준의 내열 장갑을 확립한 기가스의 개발은 순조롭게 이뤄진 지가 오래였다.
물론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뛰어난 파일럿이 아니고서는 내부의 열기를 여전히 감당하기가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쿠웅-.
이내 기가스의 개폐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부터 내려선 것은 파일럿 유성이었다.
“후-.”
짧은 한숨.
그는 피곤한 듯 눈가를 매만졌다.
피곤할 만도 했다.
족히 두어 개 가량의 콜로니를 연이어 지나치며 단시간에 행성 테라에까지 점퍼를 연달아 했으니 그의 육체적 부담감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아마 다른 파일럿들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을 터다.
무려 우주층에서부터 지상에까지 이어진 긴 시간 동안의 강하.
그 과정을 오로지 기체 한 기만으로 버텨냈던 덕택에 조종석 내부의 공기는 후끈하다 못해 이글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어렵기는 하나 비교적 버틸 만은 한 수준이었고, 하물며 각성자인 유성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에게 있어 이 과정은 이제 하루의 일상적인 피로감에 불과할 정도였다.
“훗.”
문득, 유성은 설핏 웃음을 흘렸다.
그는 머리칼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이마저도 고역이었는데 말이지. 지금에 와서는 그저 당연히도 지나쳐가는 일상이 됐군. 시간이 흐른다는 게 느껴져.”
예전의 그라면 버거웠을 과정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와선 당연하다시피 받아들일 뿐이었다.
“빨리빨리들 움직여!”“오늘 내로 라우라르트 콜로니까지 보급 모두 보내야 하는 거 잊었어?!”
주변은 온통 소음으로 가득했다.
바쁘게 소리치는 엔지니어들과, 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기가스들.
전장으로 향하기 위한 보급 물자들이 쉴 새 없이 전함에 실려나가는 게 보였다.
유성에게는 이제 익히 눈에 익은 모습일 뿐이다.
“음?”
그때였다.
문득, 하늘에서부터 익숙한 기감이 감지되는 게 느껴짐에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쐐애애액!
시뻘건 열선.
뭔가가 하늘 위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추락하여 떨어져 내리는 게 보였다.
“저건?”
“웃차!”
그가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그 새빨갛게 달궈진 ‘그것’ 이 힘찬 기합과 함께 지면에 쾅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요란한 굉음이 터져나오고 지면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난다.
일어난 흙먼지가 주변을 매캐하게 가렸다.
“뭐, 뭐야!”
사람들이 놀라 뒷걸음질치는 게 보였다.
당황한 이들 중에는 어찌나 놀랐던지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자빠진 이들도 있었다.
저벅. 저벅.
그때, 태연하게 크레이터의 중심부에서부터 걸어나온 그녀는 유성의 앞에 마주섰다.
“하하! 왔네?”
“여전히 요란하시군요. 그보다 뒤에를 좀 보시죠.”
“응? 왜?”
그 태연한 반문에, 유성은 옅은 웃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들이 꽤나 놀랐는데 말입니다.”
“어쩌겠어. 저들이 이해해줘야지. 너도 알잖아. 나 강하하는 도중에 따로 속도를 줄일 수 없는 거.”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칼을 대충이나마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하긴 그 말대로였다.
그녀는 유성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마나 능력자였다.
일격에 전함을 관통할 정도로 강맹한 육체 능력을 지닌 강력한 주제에 정작 그것을 세밀하게 컨트롤할 능력은 가지지 않은 압도적인 육체파.
유성과 더불어, 유일하게 온 우주에서 장시간의 맨 몸으로 활동을 하고서도 멀쩡한 초인 중의 초인.
유성이라면 세밀한 단위로 조정하여 대기 중에서조차 떨어지는 자신의 몸을 거짓말처럼 멈춰세우는 게 가능했을 테지만, 그녀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타고난 본연의 마나 성질 때문이었다.
“뭐, 뭐가 떨어진 거지?”
“설마 사람? 사람이 떨어졌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그녀의 뒤편에 보이는 인파는 하나같이 믿지 못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러다 이내, 그녀의 인상착의에 하나둘 술렁이기 시작한다.
“어, 설마 저 분은?”
“마, 맙소사.”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렸다는 듯.
못 볼 것을 보았다는 양 서서히 입을 벌리는 사람들.
유난히 비치는 듯한 푸른 색감이 인상적인 긴 머리칼. 키는 소녀만큼이나 작은 주제에 정작 자신보다도 서너 배는 커다란 거창을 어깨 위로 짊어진 언밸런스한 모습.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느 누군가와 닮은 듯한 이색적인 미인.
“오래간만입니다.”
스윽.
활기가 온몸에서 율동하듯 흘러넘치는 그녀를 향하여, 유성은 그렇게 말문을 열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유리 님.”
“하하.”
유리 엘 바이어스 후작.
그녀는 유성의 인사에 마주 웃었다.
“오래간만이구나, 유성.”
* * *
둘은 함께 대로변을 걸었다.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가자, 곧 둘을 지나쳐가는 사람들 중의 몇몇이 간혹 둘이 착용한 군의 고위 간부임을 알리는 제복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향하더니 이내 놀란 듯 돌아보거나 입을 벌리기도 했다.
아마 둘의 얼굴을 익히 아는 듯하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지나쳐만 갈 뿐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터였다.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이제 와선 둘에게 있어 익히 자연스러운 일상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유성.”
“말씀하시죠, 유리 님.”
아그작!
유리 엘 바이어스는 사과를 한 입 베어물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건넸다.
“솔라스 란, 그 양반이 정말로 그렇게 말하던?”
“예. 아무래도 그는 조금 전력의 모자람을 느끼고 있던 모양이더군요.”
그 말에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유리는 피식 웃음을 흘려 보였다.
“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유성?”
유성은 어깨를 으쓱이곤 대꾸했다.
“일단은 저도 예의차 그렇게라도 말하는 거긴 합니다만.”
그녀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욕심이 과하군. 이미 빌객스도 데리고 있는 마당에 뭐하러 유성 너까지 욕심을 내는 건지. 연합의 반발과 견제는 생각도 안 하고 있는 건가? 뭐, 하긴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당연하긴 할 테지만 말이지.”
이제 와 유성은 이미 각성자로서 연합의 파일럿 중 하나였다.
그가 하루라도 자리를 이탈하면 피해를 입는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한 이유로 가장 주요한 전력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위세 또한 드높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최근 들어서는 많은 수의 시민들이 유성에게 귀족의 위(位)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유성 본인은 그러한 데에 아무런 관심조차도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덧붙이자면.
중요한 것은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이 시류가 그렇다는 거였다.
치지직-.
때마침 거리의 빌딩 위에 달린 전광판에서 불이 들어왔다.
화면에서 말문을 열고 있는 것은 휘황찬란한 제복과 표식을 몇이나 달은 군의 수뇌부 중 하나였다.
둘의 시선 또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하여, 연합은 지금도 새로운 파일럿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합류하여,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 되어주십시오.]
유리는 마뜩찮다는 듯 그 전광판 화면을 노려보며 구시렁거렸다.
“중앙의 늙은이 놈들, 여전하구만.”
“너무 날을 세우시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저들이 유리 님을 그렇게 견제하는 겁니다.”
“하!”
그 말에 유리는 코웃음쳤다.
그녀는 뭐가 그리도 우스웠던지 유성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어 댔다.
“꽤나 웃긴 소리 좀 잘하는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 말이야.”
“웃긴 겁니까, 이게?”
“그렇고 말고.”
그녀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오히려 되물었다.
“나보다도 더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네 녀석이야말로 나보다도 더 저 늙다리들의 온갖 견제를 다 받고 있는 판에, 그런 소리를 하니 우습지 않을 리가 있나.”
“…….”
그 소리에, 차마 할 말이 없었던 그는 이내 멀거니 앞으로 시선을 향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닌 게 이미 그의 강함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리브와의 전투.
당시 그곳에 모여있던 파일럿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모두에게 고스란히 공개되어 버린 그 터무니없는 강함은 이제 와선 영상이 중앙 연합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유성으로서는 가장 꺼리는 식으로의 일이 결국에는 벌어지고야 만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그의 강함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동시에 자리를 차지한 중앙 연합에서의 견제가 더더욱 심해지고 만다.
골이 당겨온 유성이 옅은 한숨기와 함께 중얼거렸다.
“…제 꿈은 그저 대학에 진학해서 기가스 엔지니어나 되는 것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그 말에 유리는 더 이상 유쾌할 수가 없다는 듯이 그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이렇게까지 일이 틀어진 이상 그냥 받아들여! 이미 네 꿈은 개박살이 났다고!”
“하아…….”
골치아픈 일이다.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어쩌다 이렇게 피곤한 인생이 되어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흐르고 흘러 시간이 지나 보니, 이미 일은 걷잡을 수 없이 거쳐 있었다.
연합의 파일럿들 중 대부분은 이미 중앙 연합이 아닌 유성 그 하나를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이들이 상당했고, 개중에는 유성에 대한 중앙의 통제가 가해지는 한 전장으로의 출전조차도 거부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유성의 지지가 갈수록 거세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유리는 그를 향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리브 그 아이는 뭐하고 있어? 잘 지내고 있나?”
그녀의 물음이 이어지기가 무섭게 유성의 곁에 전조조차도 없이 나타난 누군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저 여깄어요.”
“오. 다 듣고 있었나 보구나.”
“헤헤.”
리브는 소리내어 웃어 보였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인원.
그들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엘 바이어스 가의 저택이었다.
웅성웅성.
저택에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어째선지 그들의 대부분이 한껏 차려입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모이는 한 가운데에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라피스가 있었다.
“아.”
때마침 다가오는 유성 일행을 발견한 듯, 라피스가 그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유성!”
그녀는 대번에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라피스. 잘 지냈-.”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손을 들려던 유성이었으나.
이내 그는 그대로 굳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식이 한 시간 남았는데 오늘까지도 이럴 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유리가 큭, 웃었다.
“그러게 내가 미리 복장을 좀 차려 입으라고 했잖나.”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