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머나먼 세계(1)
“뭐야.”
유성의 시선은 빌객스가 앉은 자리에로 향했다.
“하암-.”
다리를 주욱 뻗은 채, 느긋한 하품을 내지르던 빌객스가 뒤늦게 물기어린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되물었다.
“왜?”
“지금 네가 앉은 그 자리, 함장석이지 않아? 보통 사령관의 바로 옆 자리가 그러할 텐데.”
유성의 말에 사령관 솔라스 란이 그를 한 번 흘깃 바라보더니 뜻 모를 웃음과 함께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솔라스 란이 최고 지휘자로 자리매김한 이곳 군사 콜로니 기지에서의 함장이란, 꽤나 모호한 직급이었다.
그들의 자리는 함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함선 내에서는 가장 높은 지위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령관보다는 한 단계 낮은 단계에 속한 계급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의 전함을 다루는 최고 책임자인 함장직보다, 함대 전체를 이끄는 솔라스 란의 직급이 더 높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곳 사령함에는 다수의 함장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모두가 사령관 솔라스 란의 호출 아래 그의 직계 보좌관들인 함장들이 착석하기 위한 자리였다.
유성은 설명을 요구하기라도 하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흐흥.”
그 말에 빌객스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툭툭, 팔걸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두들기더니 되물었다.
“이제야 알았어?”
“…….”
흡사 약이라도 올리는 듯한 모양새.
더군다나 옆에 있는 솔라스 란 그 또한 부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한 눈으로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빌객스가 말했다.
“그래. 직함뿐이긴 해도, 이래봬도 나는 대장보다 훨씬 높은 상급자 신분이 됐다, 이거지.”
그녀의 농담에 유성이 피식 웃었다.
“출세했군.”
그때 솔라스 란이 껴들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혹시나 자네도 원한다면 이쪽으로 오지 그러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무슨 소리기는. 인재에게 자리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는 소리지. 설마 자네 정도의 인재에게 내어줄 자리 하나 없겠나?”
“그 자리가 설마 함장직이라도 되는 겁니까?”
유성의 물음에.
사령관 솔라스 란은 그저 태연히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탓에, 그는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됐습니다.”
“그렇군.”
“다시 붙잡으려 하시지는 않으시는군요.”
“그도 그럴 게, 이미 우리들 쪽에는 빌객스가 있지 않나. 이미 그에 따른 제약도 심한 마당에, 자네가 거부하는데 구태여 또 다시 물어볼 필요까지는 없지.”
각성자들의 보유 한도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콜로니에 한 명을 원칙으로 한다.
한쪽에 힘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극단적으로 한 곳에 치우친 힘은 결국 휘둘릴 곳을 찾아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어지간한 경우 연합에서는 단 한 명의 각성자조차 오랜 거주 영역을 가지는 게 아닌 일정 주기를 기점으로 다른 지점으로 자리를 옮기길 추천하는 실정이었다.
예외적으로 유별나게 격렬한 전장의 상황이 아닌 한에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자네를 원하는 자리는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많지 않나.”
그 말대로였다.
현재의 유성은 이미 여러 곳에서부터 영입 제안이 쇄도하고 있었다.
각성자들 중에서도 수위권에 달하는 그의 강함은 이미 비교가 무색할 정도라, 사실상 돋보적일 정도였다.
매일같이 사방에서 지원 요청을 보내오는 통에 스스로도 몸이 꽤나 바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거주 영역을 옮겨달라는 요청 또한 매일같이 보내져오고 있었다.
솔라스 란이 구태여 빌객스를 데리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유성마저 붙잡을 여유는 없었다.
만에 하나 유성이 그의 제안에 수락하더라도 문제였다.
그 뒤에는 다른 곳에서부터 막대한 반발이 터져나올 것은 당연한 문제였으니까.
이제 태양계 구석구석에 퍼져 나간 드라칸들의 수만큼이나, 각성자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더더욱 늘어났다.
하물며 그 수준이 상위체 정도만 되어도 각성자가 없어선 지극히 전황이 불리할 정도이니 그들의 필요함은 더더욱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그러니 이미 빌객스가 있는 솔라스 란으로선 혹여나 유성이 그의 부탁에 긍정한다면 그것으로 좋고, 그게 아니라면 마는 정도.
그저 그 정도 수준에 불과한 제안일 뿐이었다.
분에 넘치는 힘은 손에 쥐지 않은 것만큼이나 못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
유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금 복장을 착용했다.
“그보다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슬슬 움직여야 할 때인가?”
“네. 생각보다 일이 많아서요.”
그 말에.
사령관 솔라스 란이 턱짓으로 빈 자리 중 하나를 가리켰다.
유성은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다시는 제안하지 않을 것처럼 하더니, 불과 일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금 제안하는 그의 모습이 절로 실소를 불러일으켰다.
* * *
위잉-. 위잉-.
강렬한 적색신호음이 울려대고 있다.
기이잉-.
동시에, 전함의 포문이 개방되며 기다란 가상 활주로가 모니터 화면에 표시되는 게 보였다.
[브릿지 시스템 온라인(Online). 활주로 보조 프로그램 연동 완료.]
[캐터펄트 정상 작동 확인. 사출 준비 올 클리어(All Clear).]
[포문 개방합니다. 파일럿 유성, 준비되었습니까?]
“물론.”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유성의 대답과 함께, 그의 눈앞에 모니터 화면이 출력되었다.
‘기가스를 탄환처럼 쏴 날린다라…….’
고오오오!
유성은 자신의 기가스를 쏴 날리기 위해 마력 입자를 끌어 모으기 시작하는 함포 내부의 상황을 살피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점퍼 시스템(Jumper System).
이것은 과거, 유리 엘 바이어스가 개방된 포문을 오로지 본인의 육체만으로 버텨내며 쏘아졌던 것에서부터 착안된 시스템이었다.
제 자신의 육체를 탄환처럼 쏘아 날려 순식간에 먼 거리를 도약하는 단지 듣기만으로도 어이가 없는 신기술.
말 그대로의 의미와 생각을 지닌 단거리 도약 기능이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도 의문이지만, 최근에 개발되기 시작한 기가스들은 이 막대한 고성능의 함포에도 버텨낼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두터운 장갑을 이루는 소재의 강도는 말할 것도 없었으며, 그 기술력의 접함점 역시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성장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그 순간적인 압력을 버텨내야 하는 것은 결국 기체만이 아닌 파일럿 또한 마찬가지라서 지금 당장은 단지 극히 일부의 파일럿들에만 한정하여 실험적으로 운용되는 시험 도약 기능이었지만, 그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많은 이들에게 확대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미 태양계 전역에 해당 기능이 탑재된 전함이 보급 중이라고 들었다.
사실상 투입은 이미 정해진 셈이었다.
‘이게 아니었다면 나 또한 움직이는 데에는 여러모로 제약이 있었을 테니까.’
고작 기가스 한 기만으로 함선 단위로나 가능한 단거리 도약 기능이 가능해진다니, 듣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미 실용화되기 시작한 기술력은 그마저도 가능케했다.
실제로 그가 이곳에 불과 수 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들도 모두 그러한 덕분이었다.
[사출, 시작합니다!]
고오오오오-.
말없이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던 유성은.
오퍼레이터의 사출 신호를 듣기가 무섭게 곧장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콰앙-!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성이 탑승하고 있던 그의 전용기가 폭발적인 굉음을 터뜨리며 포문에서부터 발사되었다.
기체가 삐거덕거리며 정신없이 뒤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강렬한 압박감이었다.
‘역시 이전에도 느끼긴 했지만, 상당한 수준이군.’
당연한 거였다.
이것은 단순히 기가스를 우주 공간 너머로 밀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전장으로까지 쏴 날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사출력을 가지고서 쏘아보내는 포대였으니까.
당연히 그 순간적인 압박감은 말로 표현될 게 아니었다.
유성이었으니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는 정도였지, 아마 다른 이들이었다면 꽤나 벅찰 만도 하다.
괜히 다른 이들의 접근이 제한된 게 아니었다. 아마 일반적인 수준의 파일럿이라 한다면 육체가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간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만에 함포를 넘어서 시커먼 우주 공간으로 쏘아지듯 나아간 그의 눈에, 모든 것들이 뒤로 주욱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힐끗 모니터 화면을 향하자 이미 솔라스 란의 콜로니 기지가 한참이나 멀어지는 게 시시각각 눈으로 보이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우주.
각양각색의 별들이 마치 선처럼 뒤로 밀려나가며 금세 조종석 내부의 공간이 고요해진다.
압력은 서서히 줄어들고, 그의 숨소리 또한 평온해졌다.
[대장.]
문득, 수 년 전 알파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의 뇌리 속에서 상념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음? 왜 그래, 알파.]
[그러고 보면 말이지. 꽤나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있어.]
[뭐가 말인데?]
그의 물음에, 알파가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이 우주에서의 대장이 드라칸과 한창 싸우던 인물이었다면, 과연 다른 우주에서의 대장은 어떨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전혀 그 뜻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한쪽 눈을 치켜 올리는 유성의 물음에.
그녀는 웃었다.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라고.]
[전혀 모르겠어.]
[대장이 지금보다도 능력을 더욱 키운다면, 여러 차원을 살필 수 있게 될 테니까.]
* * *
고오오오!
막대한 속도로 우주를 건너뛰며.
유성은 뇌리에 스치듯이 떠올랐던 그녀와의 상념을 이내 멈추었다.
고오오오-.
새카만 암흑이 끝도 없이 펼쳐진 우주의 저편을 바라보면서도, 정작 유성의 눈은 그 너머의 다른 세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평행 차원이라.’
전혀 다른 세계선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이 되어서야 가능하게 된 일이었다.
그곳에는 완벽하게 동일한 또 하나의 자신이 있었다.
너무도 거대한.
마치 드라칸이 연상될 만큼이나 거대한 그 거미를 응시하며, 그는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그저 우스울 따름이지.’
과거의 그였다면 전혀 상상조차 못했을 상상이다.
과연 알 수나 있었을까? 아니, 아마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게 당연했을 터다.
이곳의 차원. 그리고 그 너머의 차원. 그 어느 세상에서건.
유성은 언제나 드라칸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차원 너머를 꿰뚫는 유성의 눈은, 인간의 육신을 벗어던진 하나의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와 똑같이 유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서 환생했다.
‘아라크니드, 라고.’
그곳의 세계에서, 유성은 드라칸의 먼 아종(亞種)의 피를 이은 개체로 다시금 태어났다.
이 세계의 유성이 인간의 삶을 택했다면.
그곳의 유성은 인간이 아닌 아라크니드라는 이름의 드라칸으로서의 삶을 택했다.
“후.”
그는 짧은 실소를 했다.
역시, 세상은 알게 되면 알수록 더더욱 모를 일들투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