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초월체 유성(5)
번-쩍!!
시커먼 우주를 가로지르는 눈부신 빛의 포격이 쏘아졌다.
가공할 기세를 머금은 포격.
그것은 단숨에 시커먼 우주 공간을 뛰어넘어 무수한 운석군 집단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운석군들이 흔적도 없이 부스러져 버리고, 마침내 포격이 둥지의 중심부에 닿으려던 찰나.
안쪽에서부터 나타난 무언가가 그 공격을 정면에서 맞부딪혔다.
[■■■■!]
여섯 장의 날개를 활짝 펼친 그것은, 다름 아닌 완전체의 드라칸이었다.
녀석이 정면에서부터 스스로의 몸을 이용해 공격을 틀어막았다.
활짝 펼친 날개를 마치 갑옷처럼 감싸며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감내했다.
함대가 쏴 날린 포격의 빛덩어리가 사방으로 부스러지듯 흩어지고 열기가 사방으로 분출되었다.
쿠아아아아-.
이윽고, 포격의 끝은 도달했다.
그 강대했던 기세는 점차 사그라들고, 마침내 함포의 빛이 완전히 잠잠해진 이후에 여전히 살아있는 드라칸의 모습이 관측되었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던 통제실의 관측병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와, 완전체. 생존 확인되었습니다. 피해 전무합니다.”
오죽했으면 솔라스 란조차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을 정도다.
“…괴물은 괴물이로군.”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질릴 만큼이나 터무니없는 방어력.
무려 함대 단위에서 쏴 날린 포격조차 견뎌내는 수준의 장갑을 가진 게 바로 완전체의 갑각이었다.
스스로의 눈으로 모두 목격하였음에도 정말이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타격은 분명히 존재했다.
모든 기세를 끌어모아 일제히 쏘아날린 포격의 기세에, 완전체의 몸 이곳저곳에는 고열에 타오른 듯한 상흔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버텨낼 수만은 없었던 것임이 분명했다.
함대 단위의 포격은 그 에너지의 총량과 기세가 너무도 압도적이었으니까.
아마도 이와 같은 에너지 포화를 한 번 정도만 더 날릴 수 있다면 녀석을 틀림없이 쓰러트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 타격은 오로지 첫 번째에만 한정하여 유용하게 작용하는 법이었다.
‘놈들에게도 지능이란 게 있지. 통하는 건 어디까지나 한 번뿐이다.’
이렇게까지 인간의 함대가 위협적이라는 것을 습득한 이상.
놈들이 순순히 그들을 놓아줄 리는 없었다.
기습이 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처음의 한 번뿐.
다시 한번 대규모 포화를 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소요된다.
드라칸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만한 시간적 여유를 줄 리가 없었다.
이제까지 그들이 알면서도 놈들을 쉽사리 선제타격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때문에, 사령관 솔라스 란은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부탁하지. 유성.”
그의 부름과 함께 모니터 화면 한쪽에 보여지고 있던 파일럿이 대답했다.
[그러죠.]
번-쩍!
그 순간, 운석군 저편에서부터 번뜩이는 빛무리 하나가 관측되었다.
솔라스 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또 하나의 빛의 정체를 확인한 관측병이 소리쳤다.
“나머지 완전체 한 기가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역시, 쉽지 않은 전개다.
인간들의 세력과 기술력이 빠르게 강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놈들과의 전쟁에서 쉽사리 승리를 거머쥐지 못하는 이유였다.
* * *
“그러죠.”
삐익!
대답과 동시에, 모니터 화면에 적색 경고음이 켜졌다.
대량의 마력 반응이 관측되는 그곳으로 시선을 향하자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는 갑각질의 생명체가 보였다.
“또 하나의 완전체인가.”
전달받았던 개체들의 관측 정보와도 일치했다.
푸른 갑각질의 생명체. 여섯 장의 날개와 아직까지 완벽한 성체가 되지는 못한 듯 연한 재질의 장갑까지.
녀석들은 아직 완전히 다 자라지 못한 개체들임이 틀림없었다.
옆에서 긴장한 빌객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젠장, 저것들하고 또 맞닥트려야 하나?]
한 귀에 듣기에도 탐탁지 않아하는 모양새의 음색.
어쩔 수 없어하는 듯한 음성이 가득했다.
그에 유성이 피식 웃었다.
“걱정은 말라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테니까.”
[뭐?]
하지만 그는 빌객스가 채 이유를 되묻기도 전에 먼저 움직였다.
단숨에 스러스터에 마력을 집중하고 빠른 속도로 놈들을 향하여 쏘아졌다.
[■■?!]
녀석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는 게 느껴진다.
그저 단순한 직감일 뿐이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감각에 있어 누구보다도 뛰어난 이로 탄생하였던 유성이다.
그의 소질은 세상 그 모든 생명체보다도 우선하여 작용한다.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정해진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놈들간에 이어지는 마력 채널에 끼어들었다.
[■■■■!]
녀석들의 대화란 마치 그들, 인류가 사용하는 통신 채널과도 비슷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라고 한다면 그 구성의 기본 단위가 마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뿐이었다.
머릿속을 울려대는, 마치 소음과도 비슷한 놈들간의 대화를 들으며 그는 생각했다.
‘들린다.’
예전이라면 결코 들리지 않았을, 이 녀석들의 대화 체계가 해석되었다.
녀석들이 뭐라고 하는지.
또는 무슨 내용을 서로 전달하고 있는지. 놈들의 선명한 감정과 더불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왕을 신경 쓰는군. 방금 전의 포격을 경계하고 있어.’
두 마리의 드라칸들은 마치 대치라도 하는 듯이 빌객스, 그리고 유성의 앞에 섰다.
마치 안개와 같은 새파란 마력이 흘러나오며 하나의 기세를 형성한 게 보였다.
그러한 놈들을 응시하며.
유성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여왕과 대화를 하고 싶다.”
그의 말이 놈들에게 닿은 순간, 녀석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분명 인간의 언어로 말한 것임이 틀림없었는데도 그 의미가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니까.
* * *
쿠웅.
고요한 지표면에 기체의 발이 닿는다.
그와 동시에, 운석군의 표면 부스러기 일부가 기가스의 육중한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풀썩 먼지처럼 일어났다.
땅에 내려선 유성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나쁘지 않은 곳이군.”
유성의 감상은 꽤나 긍정적이었다.
드라칸. 놈들의 둥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외부에서의 공격에서도 어느 정도 안전할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였다.
운석의 심부에까지 파헤쳐 만들어낸 이 넓은 공동은 꽤나 안정적이었다.
마치 평가라도 하는 듯 주변을 살피던 그가 정면을 응시했다.
[■■■!]
[■■■■!]
다수의 드라칸들이 하나같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고, 마력을 강하게 피워올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유달리 그를 경계하는 게 보인다.
그는 인간이었다.
오로지 여왕체에 의하여 탄생한 자식들만이 거주하는 이 공간에, 나타난 외부의 존재인 그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먼저 공격을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왜냐하면, 지금 유성에게서부터는 당황스럽게도 동족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고 있을 터였으니까.
놈들 드라칸들이 느끼고 있을 감정이 선명하게 예상되었다.
아마도 당혹스럽겠지. 그럴 거다.
하지만 이상한 것 또한 아니었다.
주변 모든 마력을 완벽에 가깝게 조작하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는 이제 와 놈들의 무리가 지닌 태생적인 기운마저 고스란히 변질시킬 수 있었다.
[■■■■…….]
둥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여왕체를 보호라도 하듯, 빙 둘러싼 놈들의 앞에서.
유성이 입을 열었다.
“여왕. 이 자리에서 물러나라.”
그의 음성이 둥지 내부에 울려퍼진 순간.
놈들이 움찔거렸다.
왜냐하면 그의 말에 대한 의미가 고스란히 여왕체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드라칸의 언어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놈들의 의사 체계란 여전히 복잡하기 그지없고, 인간과는 발성 구조부터가 달랐으니까.
다만 그가 말한 의미가 전달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놈들이 그 말에 따를 이유는 없었다.
[■■■.]
여왕체, MTU-014.
운석군 무리에서부터 활동이 목격된 14번째 발견 개체라는 의미를 담은 명칭의 녀석은, 담담히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싫다는 건가.’
결국 대화는 대화일 뿐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철저하게 지성체인 스스로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었다.
물론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는 놈들의 둥지였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무리의 수를 불리고 생존에 적합하도록 일궈낸 이곳 영역을, 고작 말 한마디로 물러나라 하는 것도 우스운 소리기는 하였다.
유성이라도 그것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인간들의 영역이기도 하지.’
드라칸들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것은 반대로 인간의 영역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태양계의 전 영역을 배경으로 서서히 잠식해나가고 있는 드라칸의 활동은 필연적으로 인간과의 마찰을 빚어낼 수밖에 없었다.
비록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한다고는 할지언정, 그것이 긍정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리브.”
그 순간.
유성의 부름과 함께 그의 뒤편에 있던 공간이 쩌억, 벌어졌다.
“응.”
밝은 미소와 함께 열린 공간에서부터 나타난 소녀가 기가스의 어깨 위로 올라탔다.
“나 불렀어? 아빠.”
“이 녀석들 좀 대신 부탁할게. 역시 내 말은 듣지 않네.”
“하하! 역시 그렇지?”
그 말에 유성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네. 역시나 아직은 무리인 것 같아. 공격성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따르지도 않으니까.”
“맡겨둬!”
고오오-.
힘찬 대답과 함께 소녀, 리브의 눈이 황금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대번에 그녀의 몸에서부터 퍼트려져 나간 금빛의 마력이 주변을 거미줄처럼 뒤엉켜나갔다.
이윽고, 그 기세가 절정에 달한 순간.
[■■■!]
여왕체가 당황한 듯 기색을 내비쳤다.
무리를 가르고서 천천히 앞으로 다가서기 시작한 녀석의 모습에도, 유성은 놈을 막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응시하기만 할 뿐이었다.
‘닮았겠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럴 터다.
유성이 보기에도 그러했으니까.
리브의 모습은, 수년 전 그가 마주했던 최초의 여왕체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단지 그 형상만이 아니라 마력의 형질마저도.
오래도록 자신의 어미를 마주하지 못하여 그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던 여왕체의 뇌리에, 잊고 있었던 기억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
마침내.
리브의 바로 앞에까지 다가선 여왕체가 물었다.
정말로, 그녀가 맞느냐고.
“미안.”
하지만 리브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아니야.”
최초의 여왕체가 어떻게 되었는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유성도, 알파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연속된 공간의 뒤틀림 끝에 끝내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들의 시야로는 알지 못할 아주 먼 시간대 너머의 세계에 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므로 리브는.
그저 최초의 여왕체가 하고 있던 모습과, 비슷한 마력을 지닌 전혀 다른 여왕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여왕체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오로지 최초의 여왕체를 찾아 온 우주를 향하여 수를 늘리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그들에게 있어, 리브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안식이 될 수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