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초월체 유성(4)
“빌객스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거야. 그러잖아도 마침 전투가 끝난 직후였거든.”
전투라.
하긴 이곳도 나름대로 치열한 분쟁 지역 중의 하나였다.
이곳 알타이라 콜로니는 조금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전진 기지 역할을 맡은 거점이었다.
다만 대부분의 다른 거점들과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곳의 크기가 보통의 함선이나 기지보다 압도적으로 거대하다는 점일 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은 무려 전함마저도 정박이 가능한 상당한 규격의 콜로니였으니까 말이다.
잠시간 사령관 솔라스 란의 말을 곱씹던 유성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런 것치고, 사령관인 당신은 꽤 얼굴에 여유가 있어 보이는군요.”
“하하!”
그 말에 솔라스 란이 웃어 보였다.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소리내어 웃는 모습에 잠시간 그를 응시하던 유성이 되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명색이 콜로니의 총사령관인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 만한 인간은 아마 세상을 모두 뒤져도 몇 없을 거야.”
“이 정도 소리는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니, 천만에.”
솔라스 란이 유성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 인간은 거의 없어. 내가 장담하지.”
그리고 그 직후.
그는 무엇을 기다리는지 돌연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연히 유성의 시선 또한 위쪽으로 향하였으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쿠오오오오-.
이내, 콜로니의 푸른 하늘이 보이는 대기층에 한 줄기의 새카만 선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기가스였다.
다른 기체들과는 달리, 유난히 시커먼 흑색 마력을 줄기줄기 내뿜으며 쏘아지던 기가스는 그대로 하늘 위를 지나쳐 가는 것이 아닌 그들이 있는 방향을 향하여 방향을 꺾더니 내려서기 시작했다.
펄럭! 펄럭!
다가서는 기가스의 강하에 주변에 강풍이 몰아쳤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제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고역일 정도의 세기였다.
하지만 솔라스 란이나, 유성 모두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체 능력을 가진 마나 사용자들이었고, 그 덕분에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제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쿠웅!
곧, 지면에 내려선 기가스의 개폐문이 열리더니 그 안의 조종석에서부터 한 명의 여성이 지면으로 뛰어내렸다.
“오, 제때 왔군. 때마침 자네 이야기를 하고 있…….”
“대장!”
기가스에서부터 뛰어내린 파일럿.
그녀는 사령관 솔라스 란이 손을 들며 인사를 하려는 것조차 그대로 지나쳐 유성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곤 와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그의 품에 안겼다.
“…….”
그 모습에, 솔라스 란은 들었던 손을 말없이 내렸고.
잠시 그에게로 시선을 향했던 유성이 자신의 품에 안겨든 빌객스에게로 눈길을 돌리곤 담담히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빌객스.”
“하하, 그야 물론이지!”
대답이 꽤 힘찼다.
음성에 반가움이 시린 것은 선하게 보일 정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은 벌써 수개월 만에 다시 재회한 것이었다. 이번의 상황 또한 솔라스 란 사령관의 요청이 아니었다면 유성이 이곳에까지 올 리는 없었을 터다.
유성은 여전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빌객스를 힘주어 떼어냈다.
그에 빌객스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지만, 유성은 그 모습을 무시하고는 물었다.
“눈은 좀 어때?”
“음? 뭐가.”
“상태는 좀 나아졌나 해서.”
“아아.”
그 말에 빌객스가 옅게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왼눈을 가린 안대를 두들기고는 대답했다.
“뭐, 여전하지. 가끔 쿡쿡 쑤시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상태는 나쁘지 않아.”
그러더니 그녀는 안대를 들어내며 자신의 생체 의안을 보여주었다.
묘한 빛을 흘리는 그 의안은, 한눈에 보기에도 사람의 것이 아님이 분명한 듯 보였다.
2년여 전 완전체 언터처블과 전투에서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던 빌객스는 한쪽 눈을 잃었다.
그 뒤로 그녀는 지금과 같이 언제나 안대를 착용하게 되었다.
물론 현재의 기술력은 고작 신체 일부의 손실 따위는 손쉽게 복구가 가능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부에 잔존한 마력에 의한 치명적인 상흔은 여전히 남아 그러한 복구의 회복마저 불가하게 만들었다.
“자자, 그보다!”
빌객스는 그러한 유성의 등을 밀었다.
“빨리 기지로 돌아가자고!”
그렇게 말하며 힘을 주는 통에 유성은 제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그녀의 손길을 따라 걸어갔다.
“…….”
사령관 솔라스 란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말조차 없이 금세 멀어지는 둘의 모습에.
이내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저들 중 그의 존재를 크게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그로부터 약 반나절 가량이 지났을 때.
고오오오-.
유성은 소형 운석군에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알타이라 콜로니의 근방에 위치한 이 운석 집단에는, 최근 그 수를 급격히 불리기 시작한 드라칸의 군체 무리가 있었다.
“…….”
미미한 푸른빛을 빛내며, 유성은 차가운 눈으로 운석군의 지표면을 내려다보았다.
지름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운석군.
그 아래에는 꽤나 많은 수의 드라칸들이 보였다.
고작 이만한 사이즈의 소규모 운석에서 탄생했다고 보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수였는데, 그 진상을 알게 되면 절로 긴장을 할 정도의 성장세를 이뤘기에 가능한 태세였다.
놈들은 이미 우주 항행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들로서 이 수많은 운석군의 무리를 스스로의 날개와 다리로 건너뛰듯 날아다니며 다량의 자원 채취를 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랐으니까 말이다.
삑.
모니터 화면을 조작하여 크게 확대하자 다수의 드라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원을 채취하는 모습이 보인다.
체구도 작은 것이, 태어난 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개체들이었다.
그나마도 지금 당장은 고작 중기 수준에 다다르기에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앞으로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음은 근방의 고에너지를 보유한 다른 행성이나 콜로니를 대상으로 움직이게 될 터였으니 말이다.
유성이 입을 열었다.
“준비는?”
[다 끝났어, 대장!]
그의 옆에는 기체의 체구만큼이나 커다란 대형 무장을 장비한 빌객스가 있었다.
거대한 포문과 그 이상으로 기다란 장신의 총열은,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종류의 것이었다.
오로지 대범위 포격을 위한 전용 무장 중 하나로, 적잖은 마력 소비를 요구하는 탓에 오로지 각성자에 준하는 이상 등급의 실력자들만이 사용 가능한 무장이었다.
통신 채널을 통해 비치는 빌객스가 말을 건네왔다.
[이 이상 들어서면 녀석들의 영역이야. 놈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접근해 오겠지.]
이미 몇 번이고 지긋지긋하게 교전을 해왔던 빌객스였다.
그녀는 놈들의 사정거리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조차 파악할 정도로 숱한 접전을 해온 상태였다.
그나마도 너절한 저등급 드라칸들의 대다수가 얼마 전 이어졌던 솔라스 란과 그의 함대의 포격으로 쓸려나갔던 덕분이었다.
고위급에 속하는 상위체, 완전체는 어려운 상대일지언정 그보다 아래에 속하는 양산체나 전투체 등은 거의 지워지듯 포격에 휩쓸렸다.
실제로 지금 활동하는 개체들의 대부분은 갓 태어난 유생들이다. 아직 껍질의 경화가 완전히 굳어지지 않은 게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비교적 나이가 어린 개체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안도가 되지 않는 정보이기도 했다.
총사령관 솔라스 란과 관측병들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 저 둥지의 안에는 대량의 마력을 머금은 드라칸의 알이 다수 관측되고 있었다.
그 알의 정체는 무려 전원이 상위체 등급이었다.
어떻게든 알타이라 콜로니의 전력이 이번 싸움에 전력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이유였다.
잠시 돌아가던 상황을 주시하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빌객스, 어디까지 가능하겠어?”
[나라면 문제없지. 얼마나 원해?]
전투를 코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태연자약하기 그지없는 빌객스의 음성에 유성은 조종간을 움켜쥔 채로 답했다.
“최대한의 전력으로. 녀석들이 놀라서 튀어나오도록 만들 정도로.”
[뒤는 괜찮겠어?]
“물론. 솔라스 란의 함대도 저 뒤편에 대기 중이잖아?”
그들의 뒤편에는 당장 십여 척의 전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일시에 전투에 임하기 위해, 전 포문을 열고서 대기 상태에 진입한 중이었다. 그들은 유성이 신호를 줌과 동시에 즉각 행동에 돌입할 터였다.
정상적인 현대전이란 건 원래 어느 쪽이 먼저 공격을 퍼붓느냐였다.
더욱 강한 에너지로, 더욱 빠르게 타격하면 그대로 끝이다.
가공할 수준의 에너지가 상대가 머무르는 영역의 대지를 완전히 날려 버려, 한순간에 모든 싸움이 끝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드라칸과의 싸움이란 그렇지 않았다.
놈들은, 그만한 에너지 포격조차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생명체였다.
그리고 완전체는 그보다도 한발 더 나아가 그들 인간이 퍼붓는 포격에너지마저 완벽하게 받아치는 게 가능할 정도의 상대이기도 했다.
그때 채널에 누군가가 껴들었다.
[가능하겠나? 파일럿 유성.]
“물론입니다, 사령관.”
익숙한 얼굴이다.
총사령관 솔라스 란. 그가 유난히 굳은 얼굴을 한 채로 유성을 응시하고 있었다. 표정에서부터 긴장감이 쉬이 엿보였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 반응이었다.
무려 완전체가 둘이나 기다리고 있는 둥지였으니 말이다.
상대는 왕성한 성장 끝에 크게 부푼 말벌집이었다.
유성은 보지도 않고서 저들이 겪었을 고초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은 몇 번이고 저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먼저 타격을 했다가 꽤나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을 터였다.
게다가 이미 그들이 데리고 있던 최대의 전력인 각성자 빌객스조차 상대하지 못한 둥지다.
그런 곳을 다시금 재차 방문했으니, 저들의 긴장감이 이해될 수밖에.
유성은 속으로 옅은 웃음을 흘렸다.
‘솔라스 란의 고초가 느껴지는군. 아마도 벌써 다음 싸움이 어떻게 흐를지에 대해 무게 중심을 둬가며 셈을 하고 있겠지.’
이곳에서 지게 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상대는 완전체 둘. 그러한 놈들로부터 물러서기 위해선 아마 전함 수 척을 대가로 도망을 쳐야만 가능한 일일 터였다.
그 손해는 정말로 막심할 터다.
게다가 그런 상황이 이미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을 테니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물론 유성은 두 번씩이나 같은 과정을 이어나갈 생각 따윈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한 번의 접전과 승리로 이어지는 결과였다.
‘처음부터 몰아치고 이번에 끝낸다.’
고오오-.
푸른 안광을 빛내며 그가 입을 열었다.
“날려 버려, 빌객스.”
[간다아아!]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빌객스가 탄 기체의 포문이 개방되었다.
대량의 마력 에너지가 모이는 그 신호에 맞추어 뒤편의 전함 또한 일제히 푸른 빛줄기를 쏘아 날렸다.
번-쩍!!
시커먼 우주를 가로지르는 눈부신 빛의 포격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