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초월체 유성(3)
유성과 아스트라 함장.
둘 사이의 대화에 있어, 가감은 없어 보였다.
당연할 터였다.
이제는 유성이 그러한 아스트라의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전투계인 기갑 파일럿으로서 이 함내의 고위 직책에 올라선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털썩.
유성이 아스트라 함장의 옆 자리에 다가가 걸터앉자, 그는 피식 웃어 보였다.
“슬슬 익숙할 때가 되어가지 않나, 그 자리? 나름대로 꽤나 시간이 되어가는데 말이지.”
“그렇다기엔 이 자리에 앉을만한 기회가 별로 없어서요.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이 아닌 조종석에서 보내고 있으니까요.”
파일럿이란 건 결국 통제실이 아닌 기가스의 조종석에 있을 때의 시간이 많은 게 당연한 직종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도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직까지 유성에게 있어 부함장이라는 자리는 여전히 껄끄럽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익숙치 못한 데다, 자리의 무게감이란 게 영 무거웠다.
‘이런 자리를 원치는 않았는데 말이지.’
유성은 옅은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스트라 함장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 보좌관 직책을 내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함장의 기여도가 큰 편이었으니, 그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보좌관인 부함장을 고르는 건 어디까지나 배의 주인인 함장의 선택이 크게 작용하니.’
결국 부함장의 자리란 동시에 함장의 뒤를 내정하는 차기 함장이기도 하였다.
아스트라 함장의 딴에야 나름대로 선심을 쓴 모양인 듯 하지만.
그로써는 아니었다.
“벌써 일어나는 건가?”
결국 얼마 못 가 자리에서 일어난 유성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역시 오늘은 이쯤하면 된 것 같습니다.”
그 소리에 아스트라 함장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간은 많은 법이지.”
적잖은 고난을 함께 헤쳐 나온 둘의 사이는 이제 어떤 식으로든 나름대로의 연이 형성된 상태였다.
* * *
기잉-.
전동문이 열린다.
“후우.”
개인실에 들어선 유성이 털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그는 걸치고 있던 복장을 대충 벗어던지고선 자리에 누웠다.
삑.
유성의 접근을 알아차린 AI 모니터가 자동으로 켜지며 이전에 누군가가 남겨두었던 메시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유성. 나다, 유리. 이번에 알타이라 콜로니에서 지원 요청이 나왔다. 나는 현재 행성 테라의 대기층을 지키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이니 대신 지원을 바란다.]
삑.
해당 음성을 모두 재생하자, 다음은 또 다른 이의 음성이 재생되었다.
[유성 대장, 요 근래 꽤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는데 슬슬 한 번 쯤 만나보는 게 어때? 이번에 꽤나 괜찮은 카페를 찾았는데 말이지-.]
음성 메시지는 몇 개나 더 재생되고서야 꺼졌다.
하나같이 익숙한 음성들이다.
그의 지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통신을 남겨두곤 했다.
개중에는 급박한 전황으로 인한 지원 요청도 존재했지만, 혹은 단순히 개인사로 인한 것들도 여럿 있었다.
드넓은 우주에서는 간혹 긴 시간차가 발생하기도 했다.
“…….”
눈을 감은 채로 그것들을 가만히 들으며 휴식하던 유성은.
한참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면 오늘도 할 일이 많았다.
피곤하다고 해서 한 자리에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후의 전투는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함내의 유일한 각성자인 그에게 있어 주어진 역할은 나름대로 많았으니까 말이다.
* * *
격납고에 들어서자 다수의 인력들이 보인다.
기가스 엔지니어. 한때 유성의 목표했던 진로이기도 했던 직종의 인간들.
그들 중의 다수가 한 기의 기가스에 여럿 달라붙어 한창 작업하는 게 보였다.
이 배에 존재하는 유일한 전용기, 아르타니스에 달라붙은 엔지니어 중 몇이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슨 짓을 해야 고작 두 시간 만에 융합로 엔진이 빈사 상태가 되어 버리는 거지?”
“미쳤군. 각성자조차 염두에 두고서 제작된 기가스인데 무슨 몇 달씩은 운용한 것처럼 한순간에 너덜너덜해졌잖아? 대체 얼마나 출력을 높일 수 있어야 이 정도로 기체가 데미지를 받을 수 있는 거야?”
하나같이 아연실색해하는 얼굴들이다.
몇몇은 이것을 수리할 생각에 안색이 새파래지기까지 했을 정도.
하지만 그들이 이제 막 군의 사관학교를 졸업한 졸업생 신분의 신입들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그들이 함선 알바트로스의 지원을 명목으로 이곳에 파견된 것은 불과 십수 일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사실만을 따져본다면, 이러한 반응은 당연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전용기 아르타니스의 초과열 증상은 그저 ‘일상’ 에 해당하는 것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 모습이 꽤나 우스웠던 듯, 태연한 기색과 함께 다가오는 한 인물이 있었다.
“큭큭, 고작 그 정도로 놀라기에는 너무한 거 아니냐, 애송이들?”
“아, 치프.”
치프 엔지니어.
꽤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엿보이기 시작하는 그는 배의 모두에게 이름보다는 주로 치프라는 별칭으로 자주 불리우곤 하는 인물이었다.
이 배의 치프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 노년의 등장에 배의 신입들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한 것에 신경쓰기보다, 먼저 기가스에 집중했다.
“어이! 다들 이쪽으로 오라고!”
신입들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냐하면, 그가 활동한 시간이 꽤나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적잖을 정도였다.
실제로 지금 다가오는 이 또한, 그 중의 하나였다.
“치프, 저 왔습니다.”
“음?”
유난히 가라앉은 서늘한 음성.
그 고저없는 익숙한 음성에 이 신입들을 알려줄 셈이었던 치프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곧 그의 인상이 밝아졌다.
“아, 뭐야. 유성 너였나?”
“예.”
목소리의 정체가 유성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는 십수 미터를 훌쩍 넘는 기가스의 꼭대기에서부터 훌쩍 뛰어내렸다.
격납고의 지면에 쿵, 하고 떨어지자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전혀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유성이 미미한 웃음기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물었다.
“이제는 슬슬 나이가 있으셔서 언제까지처럼 그렇게 험하게 몸을 굴리시긴 무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치프.”
“이 시건방진 녀석은 매번 말이 변함이 없군. 그보다 왔으니 때마침 잘 됐군. 그렇잖아도 부르려고 했는데 말이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뒤의 저 녀석들을 봐라.”
“……?”
그 소리에 유성의 시선이 자신의 전용기, 아르타니스에 올라탄 다수의 엔지니어들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앳된, 거의 갓 학교를 졸업했을 듯한 얼굴을 한 이들의 모습에 그가 물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던 신입들입니까?”
“그래. 파릇파릇한 녀석들이지.”
치프가 웃었다.
그는 검댕이 묻은 코를 쓱 훔치더니 유성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그보다 어떠냐, 유성?”
“……? 뭐가 말입니까?”
의아한 듯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에, 치프가 엄지로 그 신입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녀석들에게 가서 뭐라도 말 좀 걸어주는 게? 저 눈빛들이 안 보이는 거냐?”
그 말에 유성은 시선을 뒤로 향했다.
그의 눈이 꽂힌 곳에는 유달리 반짝이는 듯한 기대의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신입들이 있었다.
“…….”
하지만 다시금 고개를 돌린 그는 그저 무심한 듯 치프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보다 치프, 오늘 온 건 다름이 아니라 따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쳇, 뭐냐. 이제는 다 커서 노인네의 말도 무시하는 거냐?”
툴툴거리는 그의 모습에 유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대충 그렇다는 거겠죠.”
“뭐? 크하하핫!”
그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태연한 대꾸에, 치프는 그렇게나 유쾌할 수 없다는 듯이 소리내어 웃었다.
정작 놀란 것은 뒤편의 신입 엔지니어들이었다.
“뭐, 뭐야.”
“그 치프랑 말장난을 하고 있잖아?”
그들은 그 불같은 성격의 치프가 저렇게 웃는 것은 처음보았다.
언제나 얼굴에 잔뜩 힘이 들어간 사내였으니까 말이다.
치프는 연합에서 가장 이름이 난 엔지니어 중의 하나였다.
그 성격과는 별개로, 그의 실력은 돈을 주고서도 구하지 못하는 수준의 것이라는 평가가 자자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반응에는 아랑곳조차 하지 않고, 치프는 그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예전보다 늘어난 주름과 함께, 그가 웃었다.
“이제는 꽤나 군복이 어울리는 사내 녀석이 다 되었군그래.”
“그렇습니까?”
“그래. 사실 원래부터도 그렇기는 했지만 말이지.”
“뭐…… 그야.”
유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말이죠.”
“아하핫!”
그 무심한 듯 내뱉는 유성의 말장난에 치프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쿠오오오!
그리고 약 십여 분 후.
전함 알바트로스에서부터 한 기의 기가스가 빠져 나왔다.
* * *
알타이라 콜로니.
유난히 진한 녹림이 우거진 숲의 한 가운데에, 한 기의 기가스가 내려앉았다.
쿠웅-.
기가스에서부터 내려선 파일럿, 유성.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대충 이 근처일 텐데.”
요청받은 좌표대로라면, 이 근방에 그를 불러낸 이가 있을 터였다.
때문에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곧, 인기척을 느끼고선 뒤편으로 시선을 향했다.
유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꽤나 급박한 지원 요청이라고 해서 와 봤습니다만……. 또 그래 보이지도 않는군요.”
“하하, 그래 보이나?”
그 말에 남자는 웃어 보였다.
유난히 화려한 색감의 제복을 착용한 남자. 알타이라 콜로니의 새로운 사령관 역을 일임하게 된 솔라스 란이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오랜만이로군, 유성.”
“예.”
사령관, 솔라스 란은 주변의 무장한 군인들을 둘러보더니 가볍게 손짓했다. 물러나라는 의사의 표현이었다.
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이들이 그대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오로지 단 둘만이 된 자리에서, 솔라스 란이 말을 건넸다.
“잠시 걷지.”
“그러죠.”
둘은 새가 지저귀는 콜로니의 숲을 거닐었다.
주변은 한적했다. 이곳은 사람이 드물었고, 그러한 반면 나무와 수풀이 우거졌다.
여기도 과거 솔라스 란이 자리했었던 베자리우스 콜로니와 같은 군사용 목적의 콜로니였다.
다만 이곳의 환경이 유달리 자연친화적인 것은 이곳이 휴식을 목적으로 한 주거 구역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유성이 알기로, 이곳은 얼마 전 새로이 신설된 군사 콜로니였다.
드라칸과의 장기전을 목적으로 건설된 탓에, 내부에는 군인들과 파일럿을 위한 다양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장소였다.
솔라스 란이 입을 열었다.
“사실 자네를 부른 건 정말로 급해서였어. 나름대로 여유가 없었지. 전력에 다소 구멍이 생겨났거든.”
“빌객스가 옆에 붙어있는데도 말입니까?”
“그렇지.”
빌객스도 각성자다.
비록 유성에 비할 바는 아니라곤 해도, 홀로 완전체와 대적이 가능한 특출난 전력인 셈.
그러한 파일럿이 붙어있는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도움을 요청할 만 했다.
“사실 이 근방에 둥지를 튼 여왕체가 보통 녀석이 아니거든. 완전체를 둘이나 데리고 있는데, 우리들의 전력으로는 조금 상대가 어려워.”
세상이 진일보하고 있다곤 해도, 상대는 완전체였다.
여전히 각성자의 도움이 없다면 놈들의 상대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