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초월체 유성(2)
[■■■■!!]
순식간에 격해진 모습을 한 언터처블이 유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만! 멈춰!”
리브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더욱 이빨과 살기를 드러내며 공격을 할 뿐이었다.
쾅! 콰앙!
날카롭게 치켜세운 세 개의 거대한 팔이, 정신없이 유성을 난도질하듯 휘둘러졌다.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모르는 건가.”
유성의 음성은 고저가 없이 무심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듯,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은 투명한 벽 너머의 언터처블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녀석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이미 시간선의 간극 너머에 대한 성장을 끝마친 유성은, 현실의 모든 공격 속성에 대한 완전한 무효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단순히 말뿐힌 표현 따위가 아니었다.
현재에 있어선 기껏해야 눈 한두 번 깜빡일 찰나에 불과하였으나, 그 유성 본인에 한정한다면 그가 한순간에 경험한 시간은 아득할 정도로 긴 시간에 달했다.
그동안 이루어진 막대한 정보의 체득과 육체, 정신적 성장.
그것은 고작해야 한낱 생명체 한둘 따위가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어수룩한 수준의 것 따위가 아니었다.
스윽.
유성은 다소 수척해진 눈으로 리브를 돌아보았다.
메마른 눈이 리브를 담자, 녀석이 순간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리브.’
리브가 어떤 생각으로 이곳에까지 도달했던 건지 전혀 몰랐었던 그였다.
모든 것을 알아차리게 된 뒤의 내면은 여전히 혼란하기 그지없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틀림없이 자신은 리브에게 사과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비록 그 과정 속에 적잖은 인간들의 희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리브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행성 테라의 전역에 손쓸 도리조차 없을 정도로 널리 퍼진 드라칸들을 끌어 모으고, 그러한 녀석들을 지워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비록 리브가 드라칸의 여왕체일지 언정.
녀석이 해 왔던 과정과 결과는 오로지 유성과 라피스뿐만이 아닌 테라의 모든 인간들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 속사정을 이제야 안 유성이다.
녀석이 고통으로 혼자 앓는 와중에도 끝끝내 참고 지나온 결과가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이내 유성은 조금 지친 듯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미안하다, 리브.”
그가 언터처블을 가로막으며 아직 비어있는 나머지 한 손으로 리브를 품에 안았다.
“어, 어?”
그 따스한 온기에.
당황한 듯 잠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리브였으나, 이내 녀석이 더듬거리며 유성을 올려다 보았다.
유성이 웃고 있었다.
“이전까진 너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는 전혀 모르지만, 이제는 알고 있어.”
그러자.
이내 리브의 두 눈이 붉어지더니.
“흐윽, 흐윽.”
눈에 띄게 훌쩍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몇 번의 떨림은 소리내어 우는 울음 소리로 바뀌었다.
“으아아앙!”
그 모습에 유성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뭐, 뭐야. 리브. 왜 그래.”
* * *
…….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번쩍.
유성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여.”
툭!
그때 그의 어깨를 두들기는 이가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파일럿 복장과 헬멧을 뒤집어 써 드러나지 않는 얼굴과 모습.
하지만 그 체형의 선을 본다면 그것이 여성이라는 것 정도는 쉬이 파악이 가능했다.
상대 파일럿이 말을 건네왔다.
“몸 상태는 어때?”
그 말에 유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헬멧을 벗어 내렸다.
“나쁘지 않아. 물론.”
땀으로 젖은 머리칼을 훔쳐 내리며, 그가 말했다.
“그다지 좋은 편도 아니지만.”
꽈악.
그는 세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몸 곳곳에서는 흉터들이 남아 있는 게 보였다.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진한 자상들이다.
벌써 드라칸과의 전투가 이어진 지, 어느 새 오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드라칸.
놈들은 여전히 곳곳에 산재했다.
때문에 매일같이 곳곳에서부터 크고 작은 전투와 싸움들이 이어졌으나, 이미 그들 인류를 비롯한 전반적인 사회는 놈들의 존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전함과 함대, 기가스들의 꾸준한 생산이 이어지기 시작하였으며, 파일럿들 또한 이제는 비교적 적은 수이긴 하였으나 조금씩 양산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들 태양계는 치열하게 밀고 밀리는 전선을 유지하며 드라칸과 서로 맞닦트리고 있었다.
쿵!
유성은 땀에 젖어 질척한 헬멧을 옆에 내려두곤, 벤치에 앉았다.
그런 그와 나란히 서 있던 상대 파일럿이 말을 건넸다.
“함장님께선 이쯤하고 쉬라고 하셔.”
“후, 그렇다면 오늘의 출격은 여기까지겠군.”
“그런 셈이지. 다만, 어디까지나 일시적 대기 명령에 불과하겠지만.”
대기 명령.
물론 그것은 언제고 전투 상황에 동원될 수 있다는 의미일 터였다.
평소라면 정말로 그런 의미였겠으나, 하지만 이렇게 대부분의 주된 전투가 끝난 오늘에 와서는 그것도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그들이 표적으로 하고 있던 드라칸 군체의 소탕은 대부분 끝난 마당이었다.
알파 차드 행성의 대기층에 있던 드라칸들은 이미 지워진 상태였으며, 지표면에 있던 놈들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다.
고열의 폭발 속에서 저등급 수준의 드라칸들은 대부분 사멸되었다.
“남은 것은 몇 안 돼.”
“예의 그 완전체인가? 래빗이나 사우전드 말이지.”
“그래, 그 정도.”
둘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었다.
전황은 대체로 유리한 편이었다.
과거 지구 시절이었다면 크게 불리했을 상황이, 기술력과 인간의 수가 크게 늘어난 지금에 와선 영 그러하지도 않은 요소로 작용했다.
이제 그들은 전력의 투입 아래 빼앗긴 영역을 착실하게 다시금 빼앗아 올 수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다.
다른 행성과 각 콜로니 구역에 전력을 분산하고서도 어느 정도 적은 수준이기는 하였으나 여유라는 게 존재하였다.
“무엇보다도 꾸준한 신입 파일럿들의 투입이 꽤나 크게 작용하고 있어. 물론 지금 당장이야 눈에 띄는 성장력은 없지만 그것도 잠시일 테지. 이대로 수 년이 더 지난다면 그들은 보다 나은 경험을 지닌 베테랑 파일럿이 되어갈 테니까.”
“물론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너만큼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유성.”
“하.”
그 말에 유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는 애당초 대체제 따윈 존재치 않는 비교가 불가한 파일럿이었다.
이제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열 명을 넘는 각성자들 중에서도 가장 위에 위치한 정상급의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2년의 시간이 더 흐를 동안.
그는 예전보다도 더욱 성장했다.
단지 육체만이 완전한 성인으로 자라나는 것 정도만이 아니라, 마력이나 실력의 기량 또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유성이 뻐근한 몸을 풀며 물었다.
“이봐, 아서.”
“음? 뭐야.”
그제야 헬멧을 벗어 내리는 아서의 모습에, 그가 한 차례 웃고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이제 예전과는 달리 좀 차분해졌군.”
“…뭐가?”
아서의 눈이 가늘어진다.
녀석은 은근슬쩍 유성의 손을 치워버리곤 되물었다.
“뭐기는.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 행동으로도 길길이 날뛰었을 거잖아.”
“쯧, 개소리하기는.”
대번에 욕부터 튀어나오는 그 모습에 유성은 다시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었군, 단순히 내 착각이었나.”
하지만 이내 그는 다시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보다 이거나 받아.”
“음?”
녀석이 건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음료였다.
아서는 고개를 돌린 채로 말을 이었다.
“피곤할 거 아냐? 일단 마시기나 하라고.”
“하하.”
그 말에 유성은 소리 내어 웃었다.
아서. 확실히, 예전에 비한다면 나아진 경향이 있었다. 녀석은 성장했다.
물론 아서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그를 비롯해서 나머지 넘버즈의 생존자들 모두가 내적인 성장을 이어왔다. 긴 시간 동안 그들은 계속해서 투쟁했고, 그것은 변화를 이어왔으니까.
* * *
함선의 통제실.
그곳에는 다수의 군인들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중앙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이 배의 함장이었다.
전함의 모든 전권을 휘어잡은 그의 이름은 아스트라, 한때 부함장으로 메타트론에 자리했던 그는 이제 홀로 배를 책임지는 자리에까지 올라 있었다.
“어떻게 되었지? 여왕체의 위치 관측은?”
“현재 지하 깊숙이 숨어있던 여왕체를 지표층의 가까이로 끄집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여왕체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관측됩니다.”
“좋아, 순조롭군.”
일정은 계획대로였다.
지하에 숨어있던 드라칸의 여왕을 지상의 가까이로 유인하고, 놈을 이대로 박멸한다.
그들의 계획은 여지없이 들어맞고 있었다.
이제 셀 수 없이 놈들과 싸워온 그들은 점차 드라칸과의 알맞은 대응을 해오기 시작했다.
여왕체를 중점적으로 공략하였으며 때때로 등장하는 위협적인 상대인 성숙체나 완전체 등을 상대로도 적절한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거기에는 이전의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각성자들의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기잉-.
그때, 통제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한창 바빠 보이시는군요, 함장님.”
들어선 것은 다름 아닌 유성이었다.
그는 아스트라 함장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어느 누구도 그를 가로막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듯이 짤막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의 앞길을 비켜줄 뿐이었다.
함선 알바트리온에 그가 탑승한 지도 벌써 수 개월 째였다.
이곳의 탑승 인원들 중에 유성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존재치 않았다.
“자네로군. 꽤나 늦었는걸.”
아스트라 함장은 그의 등장을 반기며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유성과 그가 같은 함선에 올라탄 채 전투를 이어온 기간 또한 길었던 만큼, 함장의 얼굴 어디에서도 경계의 기색 따위는 없었다.
물론 단지 그것만이 전부인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 또한 유성이 한낱 복제된 클론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아니, 심지어는 당장 클론체이기도 한 아서 또한 이 배의 파일럿으로 탑승해 있는 마당이다.
더 이상 그들 연합 간의 다툼에 대한 흔적은 테라에 남아있지 않았다.
유성은 익숙하게 그의 옆에 섰다.
중앙부에 위치한 모니터 화면을 잠시간던 그가 입을 열었다.
“여왕체가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군요.”
“그래, 자네 덕분이지. 미끼를 물었어.”
순조로운 일정이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고 이대로라면 그들은 군체의 박멸에 성공할 터였다.
잠시간 흘러가던 상황을 살피던 유성이 물었다.
“그보다 메타트론에서부터 소식은 따로 없습니까?”
“메타트론 말인가?”
그 말에, 아스트라 함장이 잠시간 턱을 쓸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잠시간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이내 피식 웃었다.
“라피스의 소식이 궁금한 모양이로군.”
“예, 뭐.”
“그녀라면 잠시 전 통신 요청이 왔었네. 자네의 전투가 끝나고 자리로 복귀하면 한 번쯤 연락 달라더군.”
“그렇군요.”
무심한 듯 대꾸하는 그를 향해 아스트라 함장이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조금 너무한 것 아닌가?”
“뭐가 말입니까?”
“무려 전함의 통제실을 한낱 개인의 연락을 위한 관측소 정도로 여긴다는 게 말이야. 게다가 자네나 라피스나 둘 모두 매번 이러지 않나.”
그 소리에 유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