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초월체 유성(1)
고오오오-
빛의 폭발이 잦아 들기까지는 그야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력은 오래도록 주변을 집어삼켰고,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마침내 주변에 격동하던 눈부신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에 가득한 것이라곤, 그저 먼지처럼 잘게 으스러진 파편 부스러기들만이 전부였을 뿐이었다.
“…….”
리브는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언터처블의 보호 아래 불안한 눈으로 상황을 살피던 리브는.
마침내 유성이 그곳에 없음을 알았다. 그는 죽었다.
“아.”
리브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그 모습에 당황한 듯 언터처블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몇 번이고 이유를 물었으나, 리브는 그럴 만한 정신이 없었다.
그저, 이것은 리브에게 있어선 최악의 결말이었다.
당연한 거였다.
리브에게 있어서 이것은 상처밖에 남지 않는 싸움이었다.
둘 중 설령 누가 이긴다고 한들, 리브는 그런 결과를 원치 않았다.
때문에 방관했다. 모든 드라칸들을 유성이 쓰러트리도록 유도하면서.
그리고 끝내는 자신마저 당하도록.
유성의 죽음을 택한다니. 그런 것을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차라리 그것보단, 제 자신의 죽음을 택했던 리브였다.
이제껏 언터처블을 제약하며 리브 자신이 이곳에서부터 결코 도망치거나 물러서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처음 이곳에 유성이 당도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그러했다.
리브는 처음부터 죽을 생각으로 이 자리에서 유성을 마주했다.
“우…….”
곧 눈가에서부터 물기가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을 때.
“쯧. 울고 있기는.”
스윽.
머리 위로, 손길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리브는 그의 정체를 확인하곤 순간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공간을 가르고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유성이었다.
비록 다소 수척해진 모습과 사라지기 이전보다 성장하기라도 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그 정체는 틀림없었다.
“…….”
믿을 수가 없다는 듯.
한동안 멍하니 침묵하던 리브가 이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빠?”
“그래.”
유성은 피식 웃었다.
[■■■!]
순식간에 격해진 모습을 한 언터처블이 자신의 손 위에 올라탄 유성을 그대로 붙잡으려 하였으나, 그는 단지.
가볍게 손을 들어 허공을 긋는 행위만으로 녀석의 공격을 막아냈다.
“거기까지.”
[■■■■?!]
놀랍게도, 녀석의 공격은 조금도 닿지 않았다.
마치 어떠한 투명한 벽이라도 있는 듯이.
그들의 사이는 가로막혔다.
심지어 현재의 유성은 기가스에조차 탑승하지 않은 오로지 맨몸뚱이만으로 선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놀라우리만치 태연했다.
금빛의 광채를 은은하게 눈에 머금은 유성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린 그가 이내 조금 빛이 바랜 듯한 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다. 리브.”
유성은 눈물기가 가득한 채로 안겨 오는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 *
여왕체 리브.
아니, 아직은 단순히 리브라는 이름만으로 불리던 수개월 전의 시기.
한때 인류의 영역이었던 행성 테라였으나, 이제 와선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솟구칠 정도로 대기층에 드라칸들의 수가 늘어났다.
단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몇 마리 즈음인가의 드라칸을 발견해낼 정도로 놈들의 수는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숲의 한가운데에 리브는 있었다.
새액- 새액-
리브는 가쁜 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있었다.
호흡이 가팔랐다.
지친 듯, 혈색 또한 좋지 못했다. 얼굴색이 창백했다.
그것은 실제로도 착각이 아니었다.
때때로 푸르게 빛나는 혈관이 피부 아래로 내비칠 때면, 여지없이 몇 겹인가의 피부가 마치 종이처럼 벗겨져 떨어져 나가고는 했다.
현재의 리브는 육체를 유지하는 것조차 불안정할 정도로 크게 지쳐 있었다.
스륵.
하지만 간신히 어느 정도 육체의 수복을 끝마친 리브가 눈을 떴을 때.
그 곁에는 다수의 완전체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
녀석들 중의 일부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는 것이 느껴진다.
리브는 희미한 대답을 흘렸다.
“…괜찮아.”
그 소리는 바람결만큼이나 아주 희미하였으나, 인지 능력이 한없이 세밀하며 뛰어난 생명체였던 완전체들이다.
그 대답을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제껏 리브는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겨왔다.
아마 어느 인간들도 알지 못하는 채로, 수없는 위기를 헤쳐 오면서.
현재 행성 내에는 이미 드라칸들로 인해 포화 상태에 달하고 있었다.
리브의 무리들이 아니다. 그 밖에 다른 무리를 뜻하는 소리였다.
“하아.”
리브는 가늘게 눈을 뜬 채로, 긴 호흡을 내뱉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대기 중에 존재하는 풍성한 마력 에너지가 몸속을 채워 나간다.
그리하여 부서지고 금이 가는 육체를 다시금 천천히 수복한다.
리브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드라칸의 여왕체라서 더더욱 그러했다.
자신의 본능 아래에 감추어진 탐식하는 본능이, 지금 이 순간에도 행성 내에 존재하는 마력의 밑바닥까지 갉아먹어 무리의 발전을 꾀하라는 외침을 말이다.
본래 드라칸이란 건 탐욕스러운 마력 생명체였다.
그들은 쉼 없이 마력을 탐하며,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발전과 탐식을 추구한다.
물론, 그것이 딱히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행성을 내핵 단위에서부터 갉아먹고 끝내는 붕괴 단계에까지 달할 정도로 막대한 대미지를 주기 위한 용도의 생명체였다.
드라칸이란 건 그저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두진 않아.’
이대로 둔다면 결국 이곳 테라에 존재하는 것은 머지않은 미래의 종말뿐이다.
행성은 착실하게 붕괴의 단계를 밟을 것이며,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 또한 사멸하거나 혹은 다른 살 곳을 찾아 이주해야만 한다.
인류가 가진 지금의 기술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재앙이 펼쳐지고 말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행성 내에 존재하는 모든 드라칸들의 수를 줄이고 종말을 막아내려면, 그것은 오로지 리브가 가진 근원의 특성만이 유일했다.
때문에 리브는 힘을 냈다.
고통으로 턱이 벌벌 떨리고 살이 아렸으나, 그럼에도 해내기 위해 애를 썼다.
리브가 그러한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뿐이었다.
유성과 라피스를 위해, 단지 그것만이 전부였다.
고오오오-
리브의 두 눈이 푸른 마력을 다시 한번 내뿜었다.
‘내 고유 능력으로 행성 내의 모든 여왕체들을 포섭해, 그들을 이곳에서 물러나도록 해야만 해.’
시작만이 어려울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꿰찬 지금은 그보다도 순조로운 과정만이 남아 있었다. 남은 것은 그저 결과만이 다였다.
이미 다수의 여왕체와 완전체들을 하나의 초군체로 묶어내는 데에 성공한 지금은, 다수의 무리들을 동시에 상대하며 그들을 리브 자신의 의식 아래로 포섭하는 과정이 더더욱 쉬워졌다.
그저 뒤따르는 고통만을 감수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으득.
리브는 이를 악물었다.
‘쉬운 일이야. 조금만 참으면 돼.’
행성 내에 존재하는 모든 드라칸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그들을 이곳 테라에서부터 몰아내어, 저 우주로만 내몰면 되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인간들은 하나로 뭉친 드라칸들을 한 번에 박멸할 수 있을 터였다.
설령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유성이 있었다.
“하하.”
리브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로 웃었다.
“설마 아빠가 살아 있을 줄은 몰랐어.”
얼마 전 유난히 강한 한 파일럿을 목격한 완전체가 있었다.
그와의 교전 끝에 찰나의 한순간을 노려 간신히 자리에서 탈출한 개체가 있었다.
그 완전체와의 의식 공유를 통하여, 리브는 그 남자가 다름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능수능란한 검술과 익숙한 마력 능력이라니.
이 세상에 그런 인간은 오로지 한 명뿐이었다. 유성, 그 말이다.
“그러니 나만 제대로 해낸다면. 틀림없이 이 모든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겠지.”
빠른 에너지 채굴 과정으로 인해 붕괴의 단계를 맞이하려던 행성 테라를 구할 수도 있고, 그 안의 사람들 또한 구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단지 테라에만 국한되었을 이야기일 뿐이라, 저 대기층 너머의 바깥인 태양계의 다른 우주에까지 뻗어 나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거기까지 여유를 되찾는다면 인간들은 틀림없이 다른 드라칸들마저 상대할 만한 힘을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다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리브는 쓰게 웃었다.
거기에는 리브만이 없을 뿐이었다.
당연한 소리였다.
이것은 스스로의 죽음이 전제가 되어 있는 계획이었다.
자신을 따르는 이 모든 드라칸들을 강제로 죽음의 길로 내모는 주제에, 스스로만 도망쳐 살아나갈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
결국 리브는 드라칸의 여왕이었다.
지금도 자신에게 한없는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드라칸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차마 그 시선조차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그저 무감정하게 드라칸 무리를 불리고 세력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하는 다른 여왕체들과는 달리.
오로지 인간의 몸으로 의태하고 인간의 정신으로 자랐던 리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브는 숲의 위를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기다란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리고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바라보던 두 명의 인간들이 있었다.
[…잘 봤지, 대장?]
[…….]
유성과 알파.
둘은 과거의 리브가 했던 일들의 진실에 대해서 돌아보고 있었다.
힘없이 고개를 늘어트린 유성이.
이내 눈을 감았다.
[결국 리브가 행했던 일들에 대한 의도란, 이런 거였나?]
[사실은 대장도 잘 알고 있었잖아? 리브가 유난히 대장과 라피스를 좋아했던 거.]
인간이란 자신이 받은 애정에 보답을 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
드라칸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무감정한 단순한 생체 병기일 뿐이며, 그렇게 작용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하지만 리브는-
그 틀에서부터 벗어나 있었다.
물론 유성이나 알파 또한.
어쩌면 이 모든 것도 최초의 여왕체였던 그들의 원종, 여왕체 FDP-01 이 의도한 끝에 탄생한 감정이었을지도 몰랐다.
조금이라도 더 인간을 닮은 자식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내 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참 짓궂은 장난 같아.]
[그렇지?]
지독한 진실이었다. 그저 유성 그 자신과 라피스 때문에 이 모든 과정들을 참아냈다니.
스스로에 대한 진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알면 알수록 더더욱 몰랐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진실이기도 하였다.
[돌아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하하!]
유성의 중얼거림을 들은 알파가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한동안 킥킥대다, 이내 그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대장. 미안한데, 사실 대장은 늘 그래왔어. 항상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솔직하지 못했지.]
[그랬나?]
[그래. 물론 어수룩한 것도 덤이고. 눈치를 채고 있으면 최소한 어느 정도 티는 내줘야지 이쪽에서 섭섭지 않잖아?]
그 말에.
유성이 이내 쓰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래야지.]
그는 곧, 알파와 마주 보고서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까지 애를 써줘서 고맙다.]
[뭘, 이 정도로.]
실실대며 웃는 알파의 모습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태연했다.
와락.
하지만 그런 그녀를 그가 안아주자.
그 표정이 경직된 듯이 굳는다.
[대장……?]
[섭섭하게 했다니, 미안해.]
[하하.]
알파의 육체가 흩어지듯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내 붉어진 얼굴로 눈가에 물기를 흘리더니.
저도 모르게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한 번쯤은 안아주네. 기분은 좀 좋은걸.]
그 말을 끝으로.
알파의 몸이 완전히 세상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