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92화 (192/200)

192화. 선택의 갈래(8)

콰앙!

살기를 가득 피워올린 언터처블의 접근을 튕겨낸다.

검을 휘둘러 놈의 침식을 막아내고, 주변 공간의 마력적 작용들을 모두 밀어내었다.

놈과의 거리가 벌려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 직후, 유성은 라피스를 향해 소리쳤다.

“라피스! 빌객스를 데리고 먼저 물러서!”

[뭐, 뭐? 넌 그럼 어떡하려고? 저 녀석을 혼자서 상대라도 할 셈이야?!]

그녀의 음성에 서린 것은 걱정의 기색이었다.

당연할 터였다.

이미, 유성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시간 간섭계의 각성기를 몇 번이고, 더군다나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유성 그 하나뿐이다. 한낱 복제된 클론 따위가 흉내내기에는 너무도 고등하며 희소한 기술이었으니까.

그녀 또한 그와 언터처블간의 접전으로 인해 명확한 확신이 섰을 터다.

다른 클론체, 넘버즈들은 한 순간의 일격조차 버텨내지 못하는 마당에 오로지 그만이 멀쩡하였으니까.

하지만 그가 제아무리 유성이라도 홀로 언터처블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 것이었다.

유성이 데려온 분대원, 넘버즈들은 이미 모두가 당했다. 주변에는 그들로 인해 부서진 파편들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잘게 부숴져 흐트러진 상태일 정도였다.

놈, 언터처블은 그 만큼이나 강했다.

그러므로 결국, 라피스가 듣기에 이것은 단순한 시간벌이용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이곳에서부터 빠져나갈 때까지 목숨을 걸고서 버텨내겠다는 정도의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유성이 피묻은 얼굴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그의 굳건한 기세를 담은 동공이 그녀를 직시했다.

“라피스.”

그의 부름에 라피스가 눈을 떨었다.

“리브와 저 녀석은 내가 책임지고 물러서게 만들겠다. 물론 이전과 같은 불상사로 만들지도 않아. 그러니 먼저 돌아가.”

이제까지 몇 번이고 들어왔던 그 단호한 음성.

하지만 그것은 맡은 바 역할을 늘상 끝내온 그의 것이었다.

“듣고 있겠지, 아서? 너라면 아직 살아있을 테니까.”

[끄… 으!]

그의 부름과 동시에 채널에 타인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것은 피투성이를 한, 넘버즈 분대의 아서였다.

그는 피를 한 차례 이미 울컥이기라도 하였던지 피가 흘러내린 입가를 스윽 닦아내고는 쓰게 웃었다.

[이 내가 당했을 리가 있나. 콜록! 물론이다, 하, 하하!]

다 죽어가는 몰골로 저렇게 웃기까지 하다니.

그 모습에 유성 또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유쾌한 반응이었다.

어쩌면 아직 버틸만할 런지도 몰랐다. 물론 단순한 허세일 테지만 말이다.

“그래. 그럴 거라 생각했다.”

후우-.

숨을 내쉰다.

그와 동시에, 조종석 내부의 대기 기류가 급변한다.

키이잉.

그는 대검에 마력을 끌어올리며, 태세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주변 모두를 향해 분대 채널을 열어젖혔다.

“다들 들어라.”

그는 아직까지 생체 신호가 흘러나오는 동료들을 향해 음성을 전달했다.

“아서가 이 자리에서 너희들을 책임지고 보조해줄 거다. 그러니 라피스와 함께 이 자리에서 떠나.”

시간이 없었다.

언터처블이 처음 등장함과 동시에 주변에 퍼트렸던 마력의 기세가, 다시 한 번 느껴지고 있었다.

위험한 때가 다시금 도래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그 광범위한 폭발을 일으킬 터였다.

지금 상황에서 그만한 공격에 대응을 할 수 있을만한 이는 없었다.

이번만큼은 설령 유성 그라고 할지라도 막아내지 못한다.

처음의 일격은 여력이나마 존재하였기에 막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몸을 운신할 최소한도의 여력밖에 남질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이하일 정도로.

‘처음에 일어났던 그 폭발이 다시 한 번 이곳에 퍼져 나갈 거다. 그렇게 된다면 누구도 막지 못해.’

과거에도 가지고 있었던 놈의 기술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인 공격기 중의 하나였다.

마력을 극한까지 응축하고 한순간에 터뜨려 버리는 저 공격은, 주변 일대를 모조리 휩쓸어버린다.

3년 전, 수도의 일부를 집어삼켰던 그 정도의 폭발 따위와는 격이 다른 파괴력을 지녔다.

“다들 가서 바깥의 함대와 함께 자리를 피해라.”

여유가 없는 것은 바깥쪽에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력을 분산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바깥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때, 라피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러면 너는?]

그녀의 걱정하는 시선이 유성 그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유성은.

그는 태연히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내가 당하는 걸 봤어?”

[…….]

그 말에 라피스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시선을 아래로 내릴 뿐이었다.

“서둘러. 내가 여기서 물러섰다간 저 녀석은 날 끝까지 따라올 거다. 그랬다간 너희들마저 모두 폭발에 휘말리겠지.”

언터처블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그 하나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설령 그가 이 자리를 피한다 해도, 녀석은 따라붙을 터였다. 저 녀석 자신을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가장 위험한 것이 유성 본인이었으니까.

곧 라피스는 입을 열었다.

[돌아올 거라 믿어. 그리고….]

잠시간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곧 모니터 화면 너머로 내비치는 유성의 시선을 정확히 응시하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예전에, 네가 다시 돌아왔다고 했을 때 믿지 못해서 미안.]

“천만에. 그땐 상황이 상황이었잖아?”

유성이 웃었다.

그 당시엔 상황이 그러했다. 누구라도 유성의 생존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시기였고, 또 그러한 게 당연했다.

수도의 일부가 흔적조차 없이 날아간 상황에서 돌아온 유성의 존재.

거기에 그의 신체를 기반으로 태어난 다수의 클론체들이 날뛰면서 연합과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그의 복귀란 어떤 식으로든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정황상으로도, 상황상으로도 그러한 시기였다.

아마 유성 본인이라도 그러했을 터다.

키이이잉-!

언터처블의 육체에 크나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치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듯, 마력이 거세게 발화를 시작하는 그 모습에 유성이 황급히 소리쳤다.

“가라!”

[다시 볼 수 있다면 좋겠군. 대장.]

[돌아와라.]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서는 클론체, 넘버즈들의 모습에.

채 대답해줄 새도 없이 언터처블의 몸이 심상치 않은 변화를 보였다.

폭발이 머지 않았다.

놈의 육체가 야광체처럼 발광하기 시작했다.

마력의 기류가 마치 폭풍처럼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처음의 폭발과는 비교조차 되지도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세였다. 기가스의 몸체가 뒤로 밀려나가려는 게 느껴졌다.

공간계 각성자, 아서가 급하게 주변 파일럿들을 데리고서 몇 번이고 공간 도약을 반복하며 이곳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놈의 폭발이 시작되었다.

쿠구구궁-.

무시무시한 마력의 파도가 마치 태풍처럼 밀려들었다.

눈부신 푸른빛의 범람에, 유성이 다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안광을 번뜩인 그가 다가오는 기류에 빠르게 상황을 훑었다.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은 설령 나조차도 불가능하다.’

범람하는 폭발. 그 기세는 설령 전함의 포격일지라도 빛이 바랠 정도로 아득한 세기를 머금은 종류의 것이었다.

유성은 몇 번이고 불가능한 상황을 헤쳐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의 상황도, 타인이라면 결코 헤쳐나가기 어려울 순간이었다.

그의 육체가 한낱 인간의 것에 속해있는 이상.

그 또한 이만한 규격의 폭발에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다.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게 인간이라는 필멸자들이 가진 속성의 운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잠시간 자신의 마력에 남은 여력을 감지했다.

‘이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최소한의 희망 정도는 걸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

차분히 심호흡을 한다.

그리곤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치, 평온한 상태의 자신을 유지하는 듯이.

그는 몇 번이고 시간과 공간을 건너 뛰어왔다.

처음의 그가 이 시대에 태어났을 때.

수도에서의 폭발에 휘말려, 마침내 불규칙적인 시공의 틈새에 집어삼켜졌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파가 시간선을 가속하여 드라칸의 탄생을 알리는 최초의 여왕체를 목격하는 그 순간까지.

한 번이라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터다.

하지만 그 경험은 유성의 내면에 착실하게 축적되었다.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세 번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충분하다.

‘그러니 그 감각을, 다시 한 번 이곳에 재현한다.’

그리고 다시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은 찬란한 황금빛을 머금고 있었다.

“각성기.”

황금빛의 마력을 검에 두른 유성이, 허공을 갈랐다.

너무도 깔끔하게 베여나간 시커먼 암흑매터 물질들이 엿보이는 어두운 틈새 속의 세계가.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 * *

세상에 홀로 오롯한 창조는 없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다.

인간들은 늘상 타인의 것을 모방해왔으며, 그 능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발전해왔다.

고대에는 단순히 날짐승의 이빨과 발톱을 이기기 위해 돌과 나무를 깎아 모방한 인류의 기술은.

현대에 와선 더더욱 세밀한 곳에까지 스며들어 이제는 기계 공학에마저 동물과 곤충들이 지닌 특성들을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드라칸 중의 하나로 태어났던 유성은.

그러한 타인의 것을 모방하는 인류의 특성을 가진 채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크게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드라칸들이 원종, 최초의 여왕체였던 여왕체 FDP-01이 그저 자신이 태어나 마주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인간이었던 남자를 본 따 만들고자 그의 모든 형상에서부터 인간이라는 종 본연에 속해있던 아주 깊숙한 원시의 특성마저 고스란히 따왔던 탓이었으니까.

인간을 낱낱이 해부한 듯 그 특성을 극한까지 발전시켜 적용한 것이야말로.

바로 유성이라는 남자가 지닌 본연의 힘이었다.

그 결과.

유성은 마침내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의 미래선의 시간선에마저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었다.

‘몸이… 너무도 무겁다.’

유성은 조금도 꿈쩍할 수 없는 자신을 느꼈다.

그는 현재 흘러가고 있었다.

조금의 규칙성조차 없이 무심하게 뒤흔들리는 시공간의 틈새에 끼어버린 그는, 이 막대한 시간과 공간의 억압 속에 몸이 짓눌려 있었다.

맨몸으로 이곳에 당도하자, 손가락 하나조차도 꿈쩍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무게감이 온몸에 느껴져 왔다.

‘하지만 움직여야 한다.’

그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 이곳에 도망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찰나의 순간.

언터처블이 내지른 공격, 그것이 사그라든 직후의 세계로 건너뛰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를 위해선 현재의 억압된 상태에 멈춰있어선 안 되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마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리고 또한.

아직 ‘그 녀석’ 에게도 또한 사과를 하지 못했다.

녀석이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 왔는지, 전혀 이해조차도 하지 못한 그는.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만 했다.

키이잉!

그의 두 눈이 시퍼런 안광을 번뜩였다.

‘리브. 지금 돌아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