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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91화 (191/200)

191화. 선택의 갈래(7)

과거 지구 시절에 존재했던 구 넘버즈의 정체는 인간이 아닌 드라칸이었다.

그리고 유성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지녔던 비정상적으로 강력했던 능력은 처음부터 태생의 특별함 때문이었을 뿐이다.

인간인 듯 인간이 아니었던 그들은.

비록 그 겉모습과 구조, 성질만큼은 모두가 인간의 그것을 따라했을지언정 본질의 속성만큼은 드라칸이었다.

강함과 특질은 그저 서로간의 차이가 달리 나타났을 뿐인 것이었다.

모든 여왕체들을 만들어 내었던 최초의 여왕체 FDP-01 이 자신의 창조자였던 남자를 떠올리며 모방하고 끝내는 도달해낸 결정체.

그게 바로 이시혁이라는 인간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그렇지?]

그 사실을 마침내 직면하게 된 유성의 눈에 서렸던 것은 당황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쓰게 웃으며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에, 예상했다는 듯 알파가 말을 건네왔다.

그의 눈에 존재했던 살기와, 굳건한 의지는 이미 오래 전에 사그라든 뒤였다.

그저 그 감정의 편린이란-.

[…후.]

힘 빠진 웃음이었다.

스윽.

유성의 어깨에 손을 올린 알파가 입을 열었다.

[대장.]

[…….]

[이제, 마지막이야. 대장이 녀석을 적대하며 마침내 리브라는 꼬마를 죽인 결과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 * *

콰드득!

한편, 현실의 빌객스는.

[크윽?!]

콰앙!

조금의 전조조차도 없이 날아드는 일순간의 참격에, 대검을 들어 간신히 공격을 막았다.

언터처블의 공격은 놀라우리만치 강력했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수준의 것이었다.

녀석은 주변의 기운 그 자체를 다루었다. 주변의 마력을 난데없이 물질화시키는 구현계 능력을 선보이며 빌객스를 압박했다.

마치 유성을 흉내내기라도 한 듯, 그의 대검과 팔을 아무것도 없었던 주변의 대기에 여럿 구현화해낸 녀석은 방금 전까지 유성이 휘둘렀던 공격을 거의 고스란히 선보이며 그녀를 몰아치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는 빌객스의 두 눈이, 붉었다.

핏줄이 터져 시뻘개진 탓이었다.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가!]

태생부터 완전체로 태어났던 신 드라칸, 언터처블.

놈의 능력은 간단했다.

학습이었으며, 모방이었다.

유성과 비슷하지만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진화이자 발전 방식이었다.

그가 타인의 마나 능력을 배우고 그것을 전투에 활용하는 방식이었다면, 놈 언터처블은 아예 상대방이 구사한 기술과 모습을 현실에 그대로 구현시켰다.

게다가 갈수록 그 수가 많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비교적 어설펐던 놈의 공격도 갈수록 세밀해지고, 또한 익숙해지고 있는지 이제 와선 간신히 감지하고 방어해내는데 급급할 정도였다.

넘버즈들 중에서도 그다지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던 빌객스의 수준으로는 시야에 보이는 녀석의 참격을 막아내는 것조차 벅찼다.

콰득!

순간, 측면에서부터 생겨난 대검의 일격이 그녀가 타고 있던 기가스를 휩쓸었다.

반응이 한 발 늦었던 빌객스의 기가스가 왼팔을 그대로 뜯기며 기체에 큰 데미지를 입었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뒤로 물러서지 못했다.

빌객스의 뒤편에 있는 것은 유성이 타고 있는 기가스였다.

[…….]

유성과 그의 기가스는, 마치 정지한 듯 멈춰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알파에 의한 작용임을 아는 빌객스다.

알파는 그녀에게 이 상황 또한 예견하여 전달했다.

때문에 이 순간 빌객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완전체, 언터처블을 막지 않는다면.

그 공격은 유성과 그의 기가스째로 이 세상에서 으스러트릴 것을 말이다.

[리브! 그만해!]

이대로는 빌객스가 당할 것을 알았던 라피스가 소리쳤다.

그녀의 기가스가 빌객스를 도왔으나 소용없었다.

언터처블은 집요할 정도로 빌객스와 유성을 노렸다. 마치 라피스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엄마.”

그녀의 부름에 리브가 쓴웃음을 지었다.

리브는 이제는 예전과 달리 조금 커진 양손을 모두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난 이 아이에게 명령을 내린 게 없어. 오히려 싸우지 않기를 권했지. 설령 내가 죽더라도 움직이지 않았어야 하지만…….”

설령 이곳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리브는 유성과 마주하기 이전부터 모든 것을 드라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해두었다.

다만, 그것이 자식이었던 언터처블의 입장에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소리였을 뿐이다.

드라칸에게 있어 여왕체란 세상의 모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미를 섬기며 따른다.

만약 누군가가 여왕을 공격한다면, 드라칸들로서는 그 침범자를 주저 없이 반발하고 적대하며 응징할 터였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게 바로 어미와 자식 간의 관계성이었으니까.

실제로 리브는 언터처블에게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만의 정신 채널을 통해 계속해서 멈추라며 의식을 건네고 있었다.

다만 언터처블은 그 말에 따르지 않았다.

따른다는 것은 결국, 여왕체 리브의 죽음을 두 눈을 뜬 채로 방관해야만 한다는 소리였으니까 말이다.

이미 녀석은 몇 번이고 이 자리에서 자신이 싸울 의지가 없음을 몇 번이고 피력해왔다.

투지조차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물러설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공격해온 것은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둥지를 침범한 것도 모자라, 다른 모든 동족들을 죽였으며 집을 파괴하고 이제는 여왕체와 자신까지 공격했다.

어째서 저 유성이라는 인간이 움직이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면 지금 움직여야 했다.

이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그였다. 무려 드라칸인 자신마저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의 능력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한 괴물이었다.

녀석은 어떻게든 그가 정신을 찾기 전에 죽여없앨 생각이었다.

유성.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순간 죽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 전에 먼저 그 앞을 틀어막고 있는 빌객스를 죽인다.

[■■■■!!]

새파란 안광을 번뜩인 완전체 언터처블이 주변 대기를 조작했다.

그러자 퍼져나간 마력들이 순식간에 변질되듯 형상을 이루더니 대검을 연달아 꽂았다.

[큭, 이 새끼가!]

주변의 마력이 요동치는 것을 직감한 빌객스의 두 눈이 형광 물질처럼 푸른 빛을 뿜어냈다.

녀석이 특성을 발동하는 것처럼, 그녀 또한 자신의 능력을 발동하려는 거였다.

녀석이 불러내던 모든 공격들을 강제로 공간을 흩트려 억압하고 제재했다.

주륵.

하지만 얼마 지나지 못해 빌객스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미 능력을 연거푸 사용하느라 한계에 달한 육체가 더 이상 제 구실을 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으아아아!]

빌객스는 이를 악물고서 능력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에 자리한 푸른 안광이, 마치 깜빡이는 전등불처럼 그 빛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등 뒤에서부터 나타난 대검을 채 감지하지 못했다.

언터처블이 온 사방에 가득 드리운 치밀한 설계에 속았던 탓이었다.

[빌객스!]

놀란 라피스가 소리쳤을 때.

상황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빌객스가 타고 있던 그녀의 기체 뒤편에 대검이 꽂혀들었다.

[빌객스!]

유성이 눈을 뜬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 * *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가!]

[리브! 그만해!]

‘…이 소리는.’

마침내 유성이 잠겨있던 저편에서부터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의 귀에 들려온 것은 누군가의 고함과 비명 소리였다.

둘 모두 익숙한 목소리들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빌객스. 그리고 라피스.’

더듬거리며 희미한 시야가, 점차 전등불이 켜지듯 밝아져 온다.

그리고 그와 함께 유성 그의 의식 또한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갔다.

수백여 년에 달하는 긴 시간의 흐름을, 한순간의 찰나에 모두 경험해왔던 의식은 설령 유성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곧, 그는 인지했다.

자신이 현재 드라칸 언터처블과 싸우고 있었으며, 이곳이 현재 리브가 만들어낸 둥지의 안쪽임을.

그리고 또한.

그는 알파와 함께 잠시잠깐 동안 그 긴 시간을 경험해 정신이 아득해졌음을.

‘다들 어떻게 됐지?’

유성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흐릿했던 그의 동공이 빠르게 시야를 회복하며 상황을 눈에 담았다.

제일 먼저 그의 눈에 보였던 것은 주변에 가득한 파편들이었다.

이미 어떠한 말도 없이, 침묵하는 채로 부서진 넘버즈들의 기가스들이.

주변 대기를 떠돌 듯이 부유하고 있었으며 그 파편들 중의 일부가 유성의 앞에까지도 떠올라 있는 모습이었다.

[으아아아!]

[빌객스!]

그때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라피스였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은 유성이 황급히 조종석 내의 화면을 돌려 그들에게로 향했다.

순간, 그가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것은.

언터처블의 앞을 가로막은 빌객스의 뒤편에 꽂혀드는 거대한 대검이었다.

유성의 눈이 삽시간에 커졌다.

[빌객……!]

그가 채 자리에서 박차고 움직이기도 전에.

콰득!

검이 빌객스가 타고 있던 기체의 등판에 꽂혀 버렸다.

* * *

“…….”

빌객스는 감고 있던 눈을 간신히 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독할 정도로 두 눈이 무거웠다.

마치 긴 시간을 잠들어 있는 듯 피로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었지?’

의식은 침잠해 있었다.

그녀는 의식이 끊기기 직전,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조종석의 내부는 온통 시뻘건 피범벅이었다.

커다란 데미지를 받은 듯 일그러진 조종석과, 그 내부에 끼어버린 그녀의 육체.

그리고 모니터 화면은 물론이고 천장과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온통 튀어버린 핏물까지.

‘당해버렸나.’

빌객스는 그제야 자신이 언터처블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객스! 빌객스!]

치직-.

그때 모니터 화면 너머로 유성의 얼굴이 보였다.

시끄러운 잡음이 뒤섞여 있어서 제대로 들리진 않지만, 유성이 마침내 눈을 뜬 모양이었다.

“…하, 하하.”

그 모습에 빌객스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뭐야, 대장.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보네? 콜록!”

대답과 함께 피가 울컥 토해졌다.

피가 화면에 뿌려졌으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빌객스! 괜찮은 거냐?!]

“…그래, 아마도 말이지. 하하.”

대답에는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빌객스는 힐끗 고개를 내려 아래쪽을 내려다보곤 웃었다.

“대장.”

하지만 이내 다시금 고개를 든 그녀는 모니터 화면의 너머로 비춰지는 유성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 나름대로 애쓴 거야. 알지?”

콰앙!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현재 유성은 완전체 언터처블과 접전 중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이제 이전과 같은 날렵한 기세 따윈 없었다.

오로지 녀석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적인 모습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언터처블을 틀어막은 채로 소리치고 있었다.

[빌객스! 지금 라피스가 그쪽으로 가고 있다, 조금만 버텨!]

“걱정 마.”

빌객스는 쓰게 웃었다.

“난 살 테니까.”

그 말과 함께,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조종간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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