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선택의 갈래(6)
유성의 눈에 익숙한 여왕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콜로니를 탈출할 시기에 목격했던 그 녀석만이 다가 아니라, 이시혁이었던 전생의 시기에 마주쳤던 여왕체들 또한 보였다.
모든 여왕체들이 다들 이곳에 있었다.
그들 모두가, 오로지 그녀 하나만을 따르며 이곳에서 지내왔다.
그리고 저 소녀의 형상을 한 여왕체 FDP-01 야말로, 이 모든 여왕체들을 낳은 어머니였다.
게다가.
고오오-!
열려진 시공간의 틈새로, 그녀의 자식들인 여왕체들이 사고와 함께 휩쓸려 마침내 도착한 곳이.
바로 시대와 장소를 불문한 우주의 곳곳이었다.
그리고 저들 중의 일부가 마침내 도달한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지구였을 뿐이다.
시공의 틈새에서 마침내 능력을 각성한 최초의 여왕체.
그리고 온 우주에 퍼져 있던 드라칸의 진실.
그것은 그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 과학자가 펼쳤던 사고 속에서 발생한 우연한 상황과 우연한 사고의 연속성이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이 모두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녀석들은 세계의 흐름 속에 탄생한 자연스런 생명체임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한 셈이었다.
완성조차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한낱 아류작이, 시공의 틈새 사이에 몸을 감춘 채로 수시로 열려대는 불안정한 차원틈의 사고에 의해 자신의 자식들을 흩뿌렸던 것이 그들의 역사에 치명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니.
지금의 인류가 고작 머나먼 미래의 편린 한 조각 따위에 좌지우지되고야 만다는, 그 농담보다도 더욱 우스꽝스러운 신랄한 현실을 목격한 유성이 자조적인 웃음을 띈 채로 중얼거렸다.
[세계는 이런 식으로 반복된 건가. 우습지도 않은 농담이로군.]
[그렇지? 나도 그 말에 동의해.]
그러다 돌연, 알파는 유성을 돌아보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모호한 미소와 함께.
그녀는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을 함께 봐야겠지?]
[…….]
유성은 말문조차 열지 못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들만 하더라도 충분히 충격적일진대, 그보다도 더한 것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대체…….]
그가 채 입을 모두 열기도 전에, 알파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따악!
튕겼다.
* * *
째깍. 째깍.
시간은 다시금 팽팽하게 조인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속을 시작한 시계 바늘의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고, 동시에 이 불안정한 공간에서 무리의 규모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늘리기를 반복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여왕체 FDP-01의 자식들은 끊임없이 수많은 사고에 휘말려 이곳에서부터 사라졌다.
많고 많은 드라칸들의 여왕체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어머니를 찾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끊임없이 자원을 끌어 모으는 이유도, 주변의 모든 것들을 죽여 없앴던 이유도.
크게 본다면 여왕체 FDP-01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 중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득할 정도로 먼 거리를 항행하며 우주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드라칸들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 전부가, 그저 길 잃은 양떼마냥 자신을 낳았던 어미와 무리를 찾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이들에 불과했다.
아무런 전조조차도 없이 열리는 차원의 틈새에 휩쓸려 사라지는 개체들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분명 느리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여왕체 FDP-01 는 자신이 속한 무리의 규모와 수를 착실히 불려 나갔다.
그 중에는 유성이 알고 있던 여왕체들 또한 적잖게 존재했다. 그가 아는 개체들의 수만 족히 수십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
문득, 여왕체 FDP-01은 떠올렸다.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기억을.
이전까지는 단지 눈앞의 생존에 급급하여 무턱대고 불렸던 자식들에 대한 개량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보다 질이 좋고 뛰어난 자식을 만들었으며.
동시에 무리 전체의 생존에 더욱 적합한 자식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질량이 크고 비대한 것들의 시작이었다.
원시형 특성을 간직했던 거대한 드라칸 여왕체들의 규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져 갔다.
그 형태는 처음에는 규칙성이 없었으며, 나중에는 일정한 규칙성이 생겨났고, 종래에는 두 발로 서기까지 했다.
세대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더더욱 그 형상은 인간의 것을 닮아갔다.
여왕체 FDP-01은 자신의 창조주인 남자의 외형을 모방했다.
그녀는 더욱 인간과 비슷하고 정교한 구성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마치 뭉툭한 찰흙을 섬세한 손놀림으로 빚어내듯, 그녀의 자식들 또한 더욱 섬세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외형은 겉모습만큼은 인간이라 칭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단계에까지 도달했다.
사람처럼 표정을 지을 줄 알며, 눈을 감을 줄 알고,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다.
이제껏 그녀가 탄생시켰던 드라칸들 중에서 가장 지성이 뛰어난 생명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제껏 긴 세월을 이곳에서 지내왔던 그녀의 육체에 점차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결국 최초의 여왕체라도 그 끝은 존재했다. 생명체인 한에는 누구나가 존재하는 끝이었다.
그러한 시기에 도달하고서도, 여전히 그녀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자식들을 낳으며, 몇 번이고 자신을 만들었던 창조자를 떠올려 인간을 닮은 존재들을 만들어냈다.
그러길 다시금 수 세기.
마침내, 그녀가 도달한 영역은 완벽한 인간 그 자체에 도달해 있었다.
[저건…… 정말로, 인간이로군.]
외부의 생김새에서부터 내부에 이르기까지.
그 구성과 외견까지 모든 것이 인간의 아이와 일치했다.
유성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열 명의 갓난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평했다.
여왕체의 자식들은 갓 태어난 인간의 아이처럼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녀에게 떼를 쓰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순수한 웃음까지도 지을 줄 알았다.
그 모습에 순수하게 그저 바라만 볼 뿐인 유성을 향해, 알파가 되물었다.
[정말 그렇게만 보여?]
[무슨 소리이지?]
[저 열 명의 어린 애들이, 그저 인간을 흉내 낸 거로만 보이냐는 뜻이야.]
알 수 없는 소리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고오오오-!
그 순간, 다시 한 번 여왕체와 자식들의 앞에 시공의 틈새가 열렸다.
공간이 찢어지듯 입을 벌린 그 광경에.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안간힘을 쓰며 저항했다.
여왕체 FDP-01은 필사적이었다.
이 저항할 수 없는 불규칙적인 강대한 공간의 균열에, 그녀는 버텨내기 위해 애를 썼으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곁에 존재하던 열 명의 아이들이 함께였기에, 결국 그녀는 택해야만 했다.
살기 위해선 오로지 그녀 혼자만이 자식들을 버리고서 스스로만이 도망치던가.
그게 아니라면 함께 이 폭풍에 휩쓸리던가.
그 과정 속에 그녀가 택했던 것은 후자였다.
그녀는 홀로 이 자리에서 도망치기보다 자식들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비록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였을지언정, 그녀의 감정은 진짜였다.
고오오오-.
다시금 우주의 저편으로 휩쓸려나간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마력을 끌어 모았다.
마력 장막을 펼치고, 아이들을 지키던 그녀는.
피를 토해가면서도 거칠게 휘몰아치는 마력 폭풍에 저항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이어지던 인고의 시간 끝에, 그들이 마침내 도착한 것은-.
다름 아닌 ‘지구’였다.
응애! 응애애-.
게이트 발생을 확인한 다수의 군인들과 연구진.
무장한 채로 출동한 그들이 해변가의 모래사장에서 발견한 것은, 이미 숨이 끊어져 죽어 있는 여왕체 FDP-01 과 소리내어 울고 있는 열 명의 아이들이었다.
다급히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한 군인 중의 하나가 소리쳤다.
“아이들은 모두 무사합니다!”
“어머니는? 이미 죽은 건가?”
“예, 안타깝게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이 아이들을 지키려다 죽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때, 주변의 마력 반응을 검측하던 이 중의 하나가 죽어있는 여왕체와 아이들에게 검측기를 가져다 대더니 이내 표정이 변했다.
“이 아이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마력 반응이 보통이 아닙니다.”
“뭐라고?”
그렇게 아이들의 처우가 결정되었다.
연구진은 즉각 울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서 연구소로 복귀했다.
마력을 가진 채로 태어난 최초의 아이들.
넘버즈(Numbers)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그들 열 명의 아이들 중, 유난히 마력 반응이 적었던 이가 있었다.
이제 갓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꼬마를 향해, 연구원이 머리를 쓰다듬곤 말을 이었다.
“네 이름을, 유성으로 하마.”
[…….]
[대장.]
말없이 침묵하는 그를 향하여.
알파가 말했다.
[우리들이 가진 이 비정상적인 힘의 근원이, 설마 단순히 없던 힘이 갑작스럽게 생겨났을 정도로만 여겨왔던 건 아니겠지?]
[…….]
아니, 그런 적은 없었다.
유성도 한 때에는 그가 가진 힘이, 어쩌면 무언가 이유가 있으리라고 여긴 적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그들 넘버즈가 가진 힘의 근원은 이전의 인류는 갖지 못한 초월적 요소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었다.
그건 한낱 인간이 가졌다고 보기엔 너무도 비이성적인 힘이었다.
같은 각성자인 라피스의 혈연인 유리나 그 밖에 다른 이들조차, 정작 유성의 능력에는 빛을 바랬다.
차이점은 간단했다. 출신 성분의 차이, 단지 그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그들은 갖지 못한 요소가 유성 그에게는 존재하였다.
[차라리 드라칸을 단순히 죽여 없애야만 할 존재로 알다가 끝나는 게 대장에게는 더 좋았을지도 몰라. 최소한, 복잡한 생각은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때때로 사람들은 진실을 숨기기도 한다.
현실의 사정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알파는 이제까지 오로지 홀로 이 모든 현실들을 마주해왔다. 수백 년 동안을 숨긴 채, 인류 전체의 기술을 강제적으로 억누르고 억압해왔다.
모든 것을 알며, 진실을 깨우친 자에게는 그만한 고뇌가 있기 마련이다.
이내,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유성이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 소녀의 모습을 한 최초의 여왕체는 어디로 간 거지?]
여왕체 FDP-01.
진실된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그들 넘버즈들의 부모. 그녀의 사체에 대한 행방이 궁금했다.
[알고 싶어? 물론, 원한다면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아마 모르는 게 도움이 될 거야. 난 그걸 알게 된 이후로 그곳의 ‘인간’들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거든.]
[…그렇겠지.]
그녀의 말에 유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인류는 가지지 못한 비정상적인 마나 능력을 보유한 그들 넘버즈의 어머니.
그녀가 가진 육체의 비밀과 특성을 파헤치기 위해, 연구원들이 어떠한 일을 벌였을지는 불보듯 뻔했다.
그는 알파의 뒷말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쉽사리 예상했다.
이제껏 꽈악 세게 움켜쥐고 있던.
유성의 주먹이, 힘없이 풀렸다.
그는 눈앞에서 재생되고 있는 과거의 재현을 가만히 응시하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리브에게는 뭐라 할 말이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