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선택의 갈래(5)
쿠오오오-!
드라칸의 포격이 연구소를 휩쓴 순간.
그 강렬한 마력 입자가, 외부에서부터 건물을 서서히 부숴 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격에 휩쓸리며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마침내 소장은.
자신에게 주어졌던 역할을 다 했다.
그가 전송 버튼을 누른 순간.
공간이 열리더니, 이내 그 너머로 여왕체 FDP-01의 몸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뽀그르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변을 감지한 듯, 소녀의 모습을 한 여왕체가 천천히 감겨 있던 눈을 치켜떴다.
그런 그녀를 향해.
바깥에서부터 쏟아져 오는 열선의 입자에 휩쓸리며, 산 채로 죽어가던 소장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살아남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말을 끝으로, 소장의 육체가 산산이 부서지듯 흐트러졌다.
무너져 내리는 연구소와 함께 끝내는 세상에서 지워져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
여전히 그녀에게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여왕체 FDP-01 은 시공의 틈새 너머로 휩쓸려 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창조자가 남긴 마지막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고오오오-.
시공간의 틈새 너머의 세계는 불안정했다.
세계 곳곳에서부터 유입된 대량의 마력이 요동쳤으며, 때때로 유입과 배출을 몇 번이고 해 왔다.
생겨난 구멍을 통해 알 수 없는 시대의 유물과 생명체들이 들어와 이곳에서 죽어가고 다시금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때때로 부스러진 건물의 잔해와 폐허들이 도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고는 하였다.
쉽게 말해, 이곳은 곳곳에 구멍이 난 또 하나의 차원계였다.
소장은 여왕체를 살리기 위하여 마지막까지 애를 썼으나, 그것은 최선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차선에 불과했을 뿐이다.
여긴 조금의 규칙성조차 존재치 않는 아웃랜드였다.
만약 그에게 조금이나마 더 시간의 여력이 존재하였다면 여왕체의 안위를 위한 최소한의 어떠한 방도라도 내주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결국 일은 이미 벌어졌다.
그는 죽었고, 남은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쿠르르릉-.
정처 없이 떠도는 수많은 구조물들이 부딪히고 휩쓸렸다.
때로는 수천수만 미터 이상의 거대한 것들이 부딪히며 강렬한 폭발과 충격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여긴 그토록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물론 배양액 캡슐이 보통의 충격에는 끄떡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재질로 되어 있었지만, 그 크기가 크기였던 만큼 거대한 구조물이나 충격에 버티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
여왕체는 눈을 감은 채 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의식을 유지할 만한 최소한의 기력마저도 존재치 못했다.
쿵-.
그러다 간혹, 배양액에 부딪히는 옅고 강한 진동을 느끼면 눈을 뜨고는 하였다.
물론 오래지 않아 정신을 유지할 기력마저 없었던 그녀는 다시금 눈을 감고는 하였으나, 그러한 일은 오래도록 반복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천운이었다.
모든 것이 불안정한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운명의 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간혹, 의식을 간신히 되찾은 그녀는 몇 번 즈음인가 보았다.
세계의 곳곳에 생겨나는 수많은 시공간의 통로를.
결국, 이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을 유영을 반복하며 배양액 캡슐에 갇힌 채로 정처 없이 떠돌던 여왕체의 육체는.
마침내 그녀의 바로 앞에서 생겨난 시공의 틈새에 휩쓸려, 어딘가로 흘러 들어갔다.
* * *
그렇게, 수십 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쿠웅.
몸을 뒤흔드는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번쩍.
여왕체 FDP-01 가 눈을 떴을 때.
그녀가 들어있던 배양액 캡슐은 거대한 운석의 표면층에 박혀든 상태였다.
그녀는 무거운 눈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온통 시커맸다. 마치 밤이라도 되는 듯이 온통 새카만 하늘과 회색빛의 지면.
여왕체는 알지 못하였으나, 이곳은 우주였다. 그리고 그녀가 있는 이곳은 운석의 표면이었다.
쩌적. 쩌저적.
그때 충돌한 충격으로 인하여 그녀가 들어있던 캡슐의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주 긴 세월 동안 그녀를 보호해준 외벽이었으나, 결국 이것에도 한계는 존재했다.
마침내 금이 가기 시작한 캡슐의 외벽은 그대로 쿵 무너져 내렸고, 여왕체 FDP-01은 축축한 녹색 배양액들과 함께 그대로 쏟아졌다.
철퍽.
바닥에 쏟아진 그녀는 힘없이 널부러졌다.
“…….”
그녀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애당초, 의식을 되찾는 일조차도 힘겨운 그녀였다. 육체를 움직이기 위한 최저한도의 기력이 그녀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 그녀는 자신의 창조자가 남겼던 한 마디를 기억했다.
[살아남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여왕체는 창조되어진 목적과는 다르게도 정말이지 나약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간신히 힘을 짜내었다.
꿈틀.
손가락의 끄트머리가 떨리듯 경련하였고, 이윽고 손으로 바닥을 짚고서 일어섰다.
하지만 다시금 주저앉았다.
오랜 시간 동안을 모든 것이 휩쓸리던 세계에 머물러 왔던 육체는 나약했다. 이제껏 소장과 그의 연구진들이 해 왔던 조정 과정은 어디까지나 육체의 개선 과정이었다.
완벽하게 끝마쳐진 성장기의 과정이 아니었다.
결국, 그 세세한 과정을 해내기 위해선 스스로가 끝마쳐야 한다.
다행히도.
그녀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이 운석의 표면에는 아주 적기는 하지만 마나가 존재하였다.
‘마나.’
그녀는 운석의 표면에 존재하는 마나를 감지했다.
드라칸의 여왕체가 되기 위한 운명을 지닌 그녀 또한 하나의 마력 생명체였다.
본능적으로 마력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운석의 지층 전역에 퍼져 있는 마력을 끌어 모았다.
마치, 나무가 물을 빨아먹듯이 아주 천천히.
그렇게 조금씩, 그녀가 운석의 내부에 자리한 마력을 빨아먹으면 빨아먹을수록, 서서히 그녀의 말라붙었던 체구에는 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아주 간소한 변화였다.
애당초 이곳에는 너무도 적은 양의 마나만이 존재하였을 뿐이었고, 또 그것으로 자신의 육체를 변화해내기란 아주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의식과 육체를 활동시키기 위하여 적잖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탓에, 그녀의 회복은 더더욱 늦추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이 어려운 과정을 넘기는 데에 성공했다.
느리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부족한 살을 채우고 기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설, 최소한의 에너지까지 끌어 모았을 때.
마침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운석의 지층에 존재하는, 중력이라는 것을 이겨낸 작지만 커다란 변화였다.
그 다음으로 그녀는 지금보다도 더욱 많은 성장을 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스스로의 육체에 프로그램 되어진 본능에 따라, 최초의 자식을 낳았다.
[■, ■■?]
여왕체가 낳은 최초의 드라칸은 아주 작았다. 그녀의 체구에 비해 기껏해야 반의 반도 되지 않을 만큼이나 작고 볼품없었다.
또한 의식의 수준 또한 형편없었다.
언젠가 그녀가 스스로의 몸으로 느꼈던 적이 있던, 연구소 너머의 완전체가 가졌던 그 강대하던 기운에 비한다면 턱도 없을 정도로 미약한 생명체였다.
하지만 이 또한 그녀 스스로에게 있어선 아주 큰 진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이 어린 드라칸을 항하여 입을 열었다.
“…마나를 모아.”
[■■.]
그 명령에 따라.
그녀의 자식은 충실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득!
운석의 지층을 파헤치고, 다시금 파헤치며.
그 깊숙한 곳에 자리한 마력을 끌어 모아 나갔다.
그 속도는 현대의 드라칸과 비교한다면 분명 한없이 느린 속도였지만, 당시의 그녀에게 있어선 크나큰 성장임이 틀림없었다.
끌어모은 마력은 여왕체인 그녀를 더욱 성장시켜 주었다.
육체를 건강히 시켜주었으며 더 많은 새끼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하였다.
속도는 점차 가속화되었다.
자식들의 수는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하나의 무리라 칭해져도 될 만큼이나 그 수가 늘어났다.
그 사이 운석에 남아있는 마력은 더더욱 줄어들어, 이제는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야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적어졌다.
사실상, 이곳의 모든 에너지를 가져다 쓸 수 있을 만큼이나 그녀는 성장한 것이었다.
고오오오-.
그러한 그녀의 앞에.
다시금 시공의 틈새가 열렸다.
“……?”
그녀가 채 그 사실을 인지하고서 움직이기도 전에, 틈새는 그녀를 빨아들였다.
그렇게 간신히 이곳의 흐름에 따라 안정되어 가던 그녀의 육체는 다시금 열린 시공의 틈새에 휩쓸려 집어삼켜졌다.
이번에도 또한 사고였다.
쿠구구궁-.
모든 것이 불규칙적인 시공간 너머의 세계.
다시금 그곳에 휩쓸리게 된 그녀는, 그녀 자신이 낳았던 자식들과도 뿔뿔이 흩어졌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혼자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이제 예전과 달리 스스로의 육체를 온전할만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여왕체 FDP-01.
그녀는 이 모든 것이 거칠고 급작스러운 환경 속에서 몇 번이고 자식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이 낳았던, 적잖은 수의 아이들이 열려진 시공의 틈새 너머로 휩쓸려 먹히거나 사라져 갔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창조자가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남겼던 단 한 가지의 명에 따라 충실히 무리의 수를 불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주 곳곳에 널리 퍼져 끝도 없이 나타났던. 드라칸들의 정체성이었다.
녀석들은 생겨난 게 아니었다. 나타난 거였다.
모두가 하나의 어미와 시작점을 둔, 완벽한 동종(同宗)이었다.
[어때, 대장?]
그때 말없이 눈앞의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유성의 곁으로, 알파가 다가섰다.
[…….]
[아마 대장도 저 녀석은 익숙할 거야. 직접 보았을 테니 모를 수가 없겠지.]
둘은 어느 커다란 드라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왕체 FDP-01를 지키는 듯 그녀를 등에 태운 거대한 드라칸을.
족히 수십 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커다란 녀석이다.
벌을 닮은 외향에, 날개를 지녔다.
3년여 전.
그 때 즈음, 유성은 기껏해야 콜로니의 아카데미생에 불과했다.
그때 콜로니의 붕괴를 촉진하던 벌의 외형의 닮은 여왕체가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녀석은 FDP-01이 낳은 수십 번째의 자식이었다.
이번의 생을 시작하게 된 뒤로 처음 만났던 여왕체.
녀석이 눈앞에 있었다.
[…….]
유성의 눈이 초점이 없어진 듯 흐려졌다.
녀석을 이곳에서 다시금 마주할 줄은 정말이지 생각조차 못했다.
그때의 그는 콜로니 붕괴의 현장에서 함선 메티스와 함께 탈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었다.
때문에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약간은 기억한다.
아마도 그때 그가 만났던 저 벌을 닮은 여왕체 녀석은 지금보다도 훨씬 거대한 체구를 지녔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까마득한 시간이 지난 시점의 것이란 소리였다.
[머나먼 미래의 생명체들이 과거의 시대로 넘어온 건가.]
[그런 셈이지. 사실, 대장과 저 녀석이 만났을 시점에, 녀석은 이미 자신의 어미를 찾아 이 드넓은 우주를 유영하면서 끝없이 찾아다니고 있었지.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로 말이야.]
알파의 대답은 이 우주의 진실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곧, 유성은 그보다도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왕체들을 낳는 여왕체. 녀석이 바로 모든 여왕체들을 낳았던 최초의 어미였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