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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88화 (188/200)

188화. 선택의 갈래(4)

째깍. 째깍.

심상 세계에 구현된 회중시계의 초침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치 누군가가 아주 빠르게 돌리기라도 하는 듯.

그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이윽고 너무도 빨라 초침의 회전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대장.”

돌연, 알파가 입을 열었다.

“스스로 선택했으니, 한 번 잘 보길 바래.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모습이 허상처럼 점차 사그라 들기 시작한다.

* * *

번쩍.

유성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세계를 시야에 담고 있었다.

3세기의 시간이 지난 미래의 인류는 이제껏 없던 영역에 들어서 있었다.

알파의 사념마저 완전히 제한하는 이가 없어진 그들의 과학 기술은 진보하였으며, 그 힘은 한낱 성서에서나 나올 법한 창조의 단계에까지 발을 내디뎠다.

생명을 조작하고, 만들었으며.

필요에 따라 이제껏 전혀 없던 생명체마저도 창조했다.

그들 인류는 스스로를 신의 영역에 마침내 들어선 오만한 자들이라 자칭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유성이 보기에도 그러한 듯 보였으니까.

우주의 영역마저 예외가 아니었다.

한계점까지 다다른 그들의 세력은 더욱 팽창해, 이미 태양계 하나만으로 몸을 담기에는 너무도 작아졌다.

그러자 인류는.

이제, 자신들을 내내 억죄여 오고 있던 외우주의 영역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드라칸들이 존재하고, 그들로 인하여 결코 나서지 못하던 바깥으로.

그들은 점차 세력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오래전, 구 시대의 인류로서는 감히 엄두조차도 내지 못했던 최초의 업적을.

마침내 스스로의 손으로 이루어갔다.

전 우주의 영역에 가득 채워져 있던 드라칸을 몰아내고, 그곳에 인류의 식민지 세력을 건설했다.

이제 막 갖춰나가기 시작한 새로운 기술, 테라포밍을 이용하여 행성을 그들의 환경에 온화한 성향으로 뒤바꾸어 나갔다.

찬란한 번영의 시대였다.

이제 드라칸은 그들의 적수가 아니었으며, 설사 여왕이 만들어내는 무리의 정수, 완전체라 할지라도 문명의 앞에 빛을 바랬다.

드라칸들의 멸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이뤄졌다.

여왕들이 심혈을 기울여 생산해내는 완전체보다, 인간의 기술력을 응용하여 양산해낸 전쟁병기가 더욱 강력했다.

수에서도, 질적인 측면에서도 밀리니 그들의 멸망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 시점에만 하더라도 유성은 생각했다.

‘틀림없이, 이게 올바른 선택이다. 그런데 알파는 어째서 이 길을 틀린 것이라 여기지?’

계속해서 뇌리에 머무는 의문과 함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유성은 스스로 관찰자의 시점으로 세상을 지켜보았다.

더욱 미래의 시점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이제는 그 스스로가 의식이라는 것을 할 수 없을 때까지도 계속해서.

오랜 시간이 흘러 인류의 기록상으로만 드라칸이 존재한다는 것이 드문드문 존재할 즈음.

그들은 치열한 전쟁을 시작했다.

그것은 끝도 없는, 분노에 찬 전쟁이었다.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로지 그들 자신이었다.

각각의 태양계들이 저마다의 세력으로 갈라져 더 많은 자원과 기술을 잡아먹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이 늘어난 만큼.

그들은 더더욱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뛰어난 기술은 그만큼의 자원을 필요로 하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군사기술과 전쟁병기는 온 우주를 뒤흔들었고, 갈수록 세계 전체의 에너지가 황폐화되어 갔다.

갈수록 적어지는 에너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앞 다투어 서로의 영역을 탐냈다.

마치 반드시 그래야만 할 듯이.

탐욕스럽게 서로의 것을 탐냈다.

비록 기술의 발전은 찬란하였으나.

인류의 의식은 오래 전, 서로 땅 덩어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던 지구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마침내, 우주는 한계점을 맞이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다른 세력의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빼앗기 위해 끌어다 썼던 모든 에너지들이 고갈되자.

결국 그들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에너지가 바닥이 난 시대에, 남은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수많은 행성들이 불과 한 세대 사이에 불타오르고 붕괴해 나갔다.

뒤늦게 살아남은 인류는 이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를 깨달았으나.

때는 늦은 뒤였다.

결국, 그들이 택한 것은 하나였다.

세상을 구성하는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면.

이제, 스스로의 손으로 그러한 에너지를 만들어내자, 라고.

그들은 필사적인 동안의 연구 끝에, 오래 전 남아 있던 기록을 바탕으로 ‘마나’ 라는 것의 재현에 성공했다.

세상에는 다시금 조금씩 빛이 찾아드는 듯하였으나,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인류는 마나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마나를 토대로 한 수많은 병기를 만들었으며, 마력 생명체 ‘드라칸(Drakan)’ 역시 그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세상은 몇 번이고 파괴와 재생에 휩싸였다.

지독한 전쟁은 불을 내뿜었고, 행성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몇 번인가 굴레의 소용돌이가 반복될 때 즈음.

마침내 전쟁의 화마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인류가 전쟁을 끝내서였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였다. 대부분의 땅에서 스스로 자멸한 인류는, 서서히 온갖 독기와 폭발에 휘말려 죽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오로지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된 드라칸 뿐이었다.

온 우주에 드라칸이 존재하게 된 이유였다.

[…….]

기나긴 시간이다.

의식조차 희미해지는 그런 역사의 굴레를 바라보는 유성의 의식은, 놀라우리만치 투명해져 있었다.

스스로의 존재조차 잊을 무렵, 그를 일깨운 것은 알파였다.

“대장. 어때?”

그 말에.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서야 마침내 스스로 자의식을 회복한 유성이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이게, 마나와 드라칸의 진실인 건가?”

“그래.”

알파가 웃었다.

그녀는 우주의 한 공간에 나타난 소파에 앉아, 태연히 말을 건넸다.

“시공간마저 일그러트리는 그들의 기술력이지. 어쩌면, 지금 우리들의 세상은 이미 수백 수천 번을 더 반복된 인과의 역사일지도 몰라. 미래에 존재하던 마나와 드라칸이 현 시대에 존재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점은 없다는 건 이해하지?”

“…그래.”

조금 늦은 대답과 함께, 유성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는 눈앞의 알파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시간마저 역행하더군. 어쩌면 우리들의 우주 어딘가에는 그들이 만들어낸 틈새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아득할 정도로 머나먼 시대의 구현이다.

그것은 제아무리 유성 그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정도의 것이었다.

‘알파는 늘상 이러한 것을 보고 있던 건가.’

지끈거리는 머리에, 그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러한 유성을 향해 알파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 더 있어. 기억 나?”

“…뭐였지?”

정신이 아득하다. 그가 무엇을 더 얼마나 알아야만 하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질 않았다.

일순간이나마 세계에 동화된 탓에,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적응이 다소 어려웠다.

“리브. 그리고…….”

알파가 조금 쓰게 웃고는 말했다.

“대장이 알게 되면,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를 진실 말이야.”

“그래, 그랬지.”

“정말 아직도 알고 싶어?”

“…….”

그녀의 말에, 유성은 말없이 감았던 눈을 치켜떴다.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그의 시선에, 그녀는 웃었다.

“역시 대장답네. 알겠어.”

따악!

대답과 함께, 알파가 손을 튕겼다.

고오오오!

다시금 유성의 사고가 물밀 듯이 밀려오는 정보의 범람에 파묻히기 시작한다.

* * *

보그르르.

배양액이 질척거린다.

다수의 거품이 보글거리고, 내부의 액체가 간혹 떨려 왔다.

그리고 그곳에.

몸을 웅크린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

아직은 다소 작은 어린 아이의 형상을 지닌 그 소녀를 다수의 과학자들이 응시하며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의식 신호는? 멀쩡한가?”

“조금씩이지만 자아를 확립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 일 이내에 깨어나겠죠.”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의 명칭은 FDP-01.

First Drakan Protocol이란 속뜻을 지닌 소녀는, 드라칸의 유생이었다.

인간이 가진 기록의 재현을 통하여 마침내 완성해낸 드라칸의 여왕체.

세상 모든 만물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잡아먹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된 그것은 현재 철저한 유도 단계를 거쳐 가며 성장을 거듭 반복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머잖아 이 병기는 눈을 뜰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되는 것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게 될 터였다.

현재 태양계 곳곳을 잠식하기 시작한 적 세력의 드라칸들을 몰아내려면 이 방법만이 유일했다.

소녀는 드라칸들을 잡아먹을 것이고, 그곳의 인류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양분 삼아서 새로운 드라칸들로 재탄생시킬 테지.

그들이 드라칸의 여왕체라 명명한 것도 결코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연구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

쿠구궁-!

돌연, 연구소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거세게 뒤흔들렸다.

“뭐, 뭐야!”

당황한 그들이 소리쳤다.

한 번 일어난 진동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때 외부 상황을 확인한 수석 연구원이 다급히 소리쳤다.

“적습입니다!”

“뭐?!”

“상대는 아크로폴리스 소속의 드라칸 군단인 모양입니다!”

연구원이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

[■■■■-!!]

“윽?!”

울려 퍼진 외부에서의 강렬한 소음에, 그들은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이 고막을 울리는 강한 신호는 다름 아닌 살기였다.

명령에 따라 살아 숨쉬는 생명체를 죽이도록 프로그램 된 마력 생명체 드라칸들이, 영적인 울림을 통하여 내뿜는 진동 공격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연이어 지면이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퍼부어지는 드라칸들의 공격에, 시설이 버티질 못하고 있었다.

위잉-!

이내 경각에 달한 연구소의 내부가 적색 표시등으로 바뀌었다.

[현재 시설 내 데미지가 위험 수치입니다!]

[마력 경계등 파손율 73퍼센트이므로 속히 조치 부탁드립니다!]

연이어 떠오르는 경고 알람에, 그들은 황급히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연구원 중 하나가 아직까지도 여왕체 FDP-01 의 앞에서 바쁘게 무엇인가를 조작하고 있는 소장의 모습에 소리쳤다.

“소장님! 빨리 나오세요!”

“아니, 최소한 이것만이라도 보내야 해!”

소장은 시스템을 조작하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필사적인 움직임으로, 그가 한시바삐 손을 놀리고 있던 그때였다.

키이이잉!

돌연, 대기가 저릿하게 울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외부에서부터 드라칸의 외침이 들려왔다.

[■■■■■■■-!]

삐익!

경고음이 발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위험! 외부에 대량의 마력 에너지 반응 감지! 공간 속성의 완전체가 범위 공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 시설의 방어 수단으로는 적의 공격을 방어해낼 수 없습니다! 시급히 대피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 됐다!”

그 순간, 마침내 모종의 수단을 강구한 소장이 여왕체를 향한 조작을 가한 순간.

외부에서 마력을 끌어모으며 준비를 끝마친 드라칸의 포격이 연구소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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