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선택의 갈래(1)
콰앙!
하지만 그러한 빌객스의 격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알파 그녀는 일말의 표정의 변화조차도 없었다.
[…….]
그저 뜻 모를 미미한 웃음을 지어보임과 함께.
빌객스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오히려 그것이 성질을 더더욱 자극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빌객스는 팍 인상을 구기고선 소리쳤다.
“젠장! 뭐라 말이라도 해, 알파!”
[내가 여기서 어떠한 감정을 드러낸들, 결국 선택하는 건 네 몫이지. 난 그저 그러한 선택지의 예가 하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야.]
알파는 머나먼 미래선의 너머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이 단순히 갈라진 시간 선상 속의 편린을 내다보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이미 답이 정해진 인과의 무엇을 내다보는 것인지는 같은 동료들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때로는 알파가 점지했던 몇몇의 사건이나 갈래들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녀도 늘상 완벽한 존재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연속된 시간선상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몇몇 사건들의 연속 속에서 뒤바뀜으로 인하여 변경된 미래의 갈래 중의 하나였다.
결국, 시간이라는 것은.
무수한 갈래들이 저마다 어지롭게 뒤얽혀 있고, 그것들을 선택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선택 속에서 이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이 가진 능력에 관해선 대장인 이시혁 그를 제외하고선 가장 가까이의 다른 동료들에게조차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알려줄 수가 없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알파는 빌객스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한 가지 정도는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녀 자신이 본 미래상의 결과에 반드시 도착하게 만들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 비슷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영역선에 가까이 유도를 할 수는 있다, 라고.
그리고 바로 그것이야말로.
시간의 속성을 지닌 마나 능력자의 진정한 힘이기도 했다.
[빌객스.]
여전히 빌객스 그녀로선 영문조차 모를 미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알파는 말을 이을 뿐이었다.
[그 결과가 궁금하다면, 한 번 직접 시도나 해보고 난 이후에 생각하지 그래?]
“정신 나갔어? 그랬다간 온 세상에 드라칸이 판을 쳐 댈 텐데? 이미 그것들을 몇 번이고 지긋지긋하게 봐 와놓고서 그딴 소리가 나온다는 건가?”
[안 될 건 또 뭐지?]
“…뭐?”
놀라울 정도로 태연자약하기 없는 그녀의 음성에.
빌객스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서서히 불쾌감을 띄기 시작하는 그녀를 향해, 알파가 말했다.
[어차피 인간은 드라칸을 이기지 못해. 그건 이미 몇 번이고 증명되어 왔다. 아마 지금보다 더 강한 문명과 세력을 일궈낸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야.]
“그건 그때 가 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무작정 단언을 할 수는-.”
[있다.]
단언이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아마 우리들의 대장인 이시혁보다 강한 능력자가 태어나올 것 같아?]
“…….”
[그는 존재 자체부터가 이레귤러인 남자야. 설령 천 년의 시간이 더 흘러간다고 한들, 인간들의 역사에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능력자이지.]
그 말에는 빌객스도 대답할 수 없었다.
인간 이시혁.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드라칸의 능력을 모두 흉내낼 수 있는 마나 능력자.
그 능력은 강대하면서도, 동시에 상식을 초래하는 기이한 수준의 영역이었기에.
그는 같은 넘버즈들 중에서도 돋보적인 존재였다.
같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드라칸에 가깝지 않을까 할 정도로.
실제로 모두가 그러한 평가를 내렸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어딘가 인간의 한 부분에서부터 벗어나 있었다.
[실제로 나는 이미 흘러간 역사를 지켜봤어. 아득한 시간 동안, 많은 각성자들이 역사의 갈래길에서 탄생과 죽음을 반복한다. 하지만 드라칸에 대적하는 한, 결국은 모조리 생을 끝까지 이어가지도 못한 채로 죽고 말지.]
피식 이유 모를 웃음을 흘린 알파가 덧붙였다.
[덧붙이자면 네 자식도 각성자이긴 했었지. 물론,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내가 지금 너랑 말장난이나 하려고 이렇게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줄 알아?”
[진짜였는데. 드라칸과 싸우다 죽었어.]
“…….”
오죽했으면 어처구니가 없어진 빌객스가 오히려 되물었을 정도다.
“진심이야?”
[어.]
즉답이었다.
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한 모양새.
오히려 알파는, 실실 웃기까지 해 보였다.
사실 다른 이들이야 빌객스를 해적선단의 무법자로 여겨 두려워하지만.
알파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애당초 둘은 같은 동료로서 다년간을 함께 군에서 복역해온 사이였다.
그 지독했던 수난을 헤쳐오며 볼 꼴 못 볼 꼴을 모두 보아가며 지내왔던 그들 사이라는 것은.
설령 수백 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조차, 경계나 의심보다는 오히려 농담 어린 동료애가 섞여 있다고 봐야만 정확할 터였다.
사실 지금도 그들의 대화 속에서는 흐트러지거나 사나운 기류 따윈 전혀 없었다.
그저 예전처럼, 서로 간의 의견을 주고받는 내용물이란 것들이 조금 거칠 뿐이었다.
[그러니 궁금하면 한 번 내 말에 따라 보지?]
그 말에.
한동안 침묵하던 빌객스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질문을 했다.
“…만약 내가 거기서 대장이 그 녀석을 죽이는 걸 지켜만 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마 이 세상에서 드라칸과 인간의 전쟁이 멈추는 날이 오진 않겠지.]
“따른다면?”
[완전히 보장까진 할 수가 없지만. 운이 좋다면 이 전쟁은 얼마 가지 않아 끝날 거야. 아마도.]
“…….”
빌객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 대답이었다.
드라칸을 죽이면 영원히 이 전쟁이 계속될 것이며, 죽이지 않는다면 이 전쟁이 끝날 것이라니.
의문은 물론이고 의심과 경계마저 치솟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최소한 그녀 빌객스는.
눈앞의 알파가 늘상 사실만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대충 대답은 나온 것 같네.]
주륵.
그때, 알파의 볼을 타고서 피눈물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이런.]
무심코 피가 흘러내린 볼을 소매로 훔쳐낸 알파는, 자신의 상황을 깨달은 듯 희미한 신음을 흘렸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아. 최근 들어선 몸의 운신조차도 힘들 정도라서 말이지.]
“뭐가 문제야? 병이라도 얻은 거야?”
[제아무리 내가 각성자라고 한들,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니까.]
나이?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마나 사용자들은 보통의 인간과는 다르게 장수하기 마련이었다. 신체적인 활성도는 뛰어나며, 늙는 시간은 그에 비례하게 더욱 느려진다.
하물며 각성자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인간이라고 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더더욱 길게 살기 마련이었다.
그 대답이란 게 의아해서 입을 열려는 찰나, 알파가 덧붙였다.
[저번 대전쟁의 시절에서부터 줄곧 살아온 나는, 이미 그 나이가 상당한 편이지. 그러니-.]
그제야 빌객스는 이해했다.
대전쟁의 시절. 그 말인즉슨 지구 시절에서부터의 삶을 의미해왔다.
그 시간은 족히 사백 년을 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나 긴 세월.
빌객스처럼 새로운 세상에 전생한 것이 아닌, 과거에서부터 줄곧 목숨을 연명해왔던 알파였던 만큼.
그녀의 육체에는 그 한계가 진작에 찾아왔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각성자라고 한들 그렇게까지 긴 세월을 살아온다면, 육체는 노쇠할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각성자라도 결국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건가. 그런 상태로 용케도 여기까지 시간을 끌었어?”
[필요한… 콜록!]
그 순간 기침과 함께, 모니터에 피가 튀었다.
[…필요한 과정이었으니까. 그것마저도.]
하지만 그녀는.
곧, 그마저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소매로 피가 흥건한 입가를 훔쳐내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내용은 받아들인 것 같으니, 조만간 널 대감옥에 잡아넣을 각성자 둘을 보내도록 할게. 유리 후작과 에스메랄다 후작을 보내도록 하지.]
“대감옥, 심연(深淵) 말이지? 그 막대한 중력으로 빛조차도 빨아들인다는 감옥 말이야.”
[그래.]
힘겹게 말을 끝마친 알파가 잠시간 숨을 골랐다.
옆에서 그녀를 부축해주는 이가 하나 보였으나, 곧 손길을 뿌리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마,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다음은… 아마 없을 테니.]
그 말과 함께, 알파가 웃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고스란히 자신의 표정을 드러내 보이더니 덧붙였다.
[대장을 막으려면 꽤나 고생 좀 해야 할 거야. 그 인간이 보통 센 게 아니니까.]
“하! 날 뭘로 보고?”
[하하.]
마른 웃음이었다.
통신 속 알파는 웃고 있었다.
[그럼 잘 있-.]
힘없이 웃음을 흘리던 그녀가, 통신을 꺼뜨리려던 순간이었다.
“자, 잠깐만.”
[뭐지?]
알파의 물음에.
잠시간 망설이던 빌객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애를 먹어가면서도 네가 관여하려는 이유가 뭐야? 네 말대로라면, 어차피 넌 드라칸과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기도 전에 죽는 거 아니야?”
[하하…….]
알파는 눈을 감은 채로 힘없이 웃었다.
그 노쇠한 얼굴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소녀의 것이었으나 표정만은 죽음을 앞에 둔 노인의 그것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어째서?”
[음… 그건.]
이제는 통신조차 더 이상 이어가기조차 힘겨운 듯.
잠시간 눈을 감고선 침묵하던 알파가 답했다.
[최소한, ‘이번 생’에서만큼은 우리 대장이 편하길 바랐거든.]
“다른 넘버즈들의 죽음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네가?”
[그래. 대장은 내 삶 속에서 유일한 버팀목이었거든. 연구소에 우리들이 자라날 시절부터 무수히 많은 시간에 뒤얽혀 괴로워하던 날 구해준 것도 대장이었고, 매일같이 이어지던 고문 같았던 전투 속에서 날 도와줬던 것도 대장이었어.]
“…너.”
그제야, 이유를 알아차린 빌객스의 눈이, 이전보다 조금 더 커졌다.
알파가 어째서 한계에 부딪힌 지금에 와서조차 이렇게까지 행동하는지를 말이다.
“너, 설마 대장을-.”
[거기까지.]
빌객스의 말을 자른 알파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아닌 척 남 말하기는.]
장난스러운 마지막 반문과 동시에.
그들 사이를 이어주던 통신의 연결이 끊어졌다.
[치익-.]
“…….”
잡음만이 이어지는 새카만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던 빌객스가.
“하, 하하.”
이내 허탈한 듯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정말, 정말로.
꿈에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가면을 쓴 듯한 인위적인 미소를 입가에 고정하여 띄운 채로 사람들을 대해왔던 그녀다.
늘상 표정과 기색을 감추고서 드러내지 않았던 알파는 설령 죽음의 위기가 닥쳐온 순간에서조차 태연함을 유지했다.
그런 알파를 늘상 마주해왔던 동료였기에.
빌객스는 그녀, 알파가 마지막 순간 보인 웃음이 얼마나 솔직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참 웃는 것도 더럽게 어색하기는.”
마지막, 통신이 끊기기 직전.
알파의 표정 위로 떠오른 것은 마치 일평생을 숨겨왔던 부끄러움을 들키기라도 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란, 영락없는 어린 소녀의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