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열리는 문(4)
[■■■■-….]
놈이 나타난 순간부터.
주변의 기류가 음울하게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변이 불길한 기운으로 시커멓게 변질되어 가는 광경에.
[이, 게 무슨?]
녀석을 에워싸고 있던 기가스들, 넘버즈가 물러서기 시작한다.
라피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놈의 시선을 받는 것조차도 꺼림칙한 듯이,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조금도 입을 열지 않은 채로.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직감하기라도 한 듯한 광경이었다.
저 공간에 침범하게 된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단단히 일어나고야 말 것임을 말이다.
‘현명한 판단이다.’
이미 유성 그 또한 녀석에게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직후였다.
녀석의 불길한 기운은 단지 느낌만이 존재하는 비영역의 기세 따위가 아니었다.
저것은 분명한 위력을 가진 실질적인 무언가였다.
스멀거리며 번져가기 시작하는 놈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
그 순간부터 에너지란 에너지는 모조리 잡아 먹힐 터였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마력 한 가지만을 뜻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에너지라는 것은 존재하는 비물질과 물질적인 모든 것을 뜻한다.
즉, 인간의 육체마저도 놈의 지배 하에 모조리 잡아 먹힌다.
산 채로 남김없이.
‘저항할 능력조차도 없는 이상, 저 영역에 발을 들이는 건 죽음을 뜻한다.’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운 녀석은 단지 성질을 죽이고 있을 뿐임을, 유성은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은 그저 자신을 낳아준 여왕체 리브의 곁에 있기에 얌전할 뿐이다.
만일 주변의 동료들이 녀석과 리브에게 위협을 가하려 하는 순간, 대번에 저 음울한 기세는 지독한 독기가 되어 달려들 터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성은 여전히 놈의 정체에 대하여 여전히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 녀석이 맞는 건가?’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한 유성의 모습에.
리브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는 듯 쓰게 웃어 보였다.
“…아마. 아빠가 지구에서 마주했던 녀석이, 바로 이 아이일 거야.”
“너…….”
“내가 낳은 처음이자 마지막 자식이거든. 아마 아빠가 마주했던 건, 지금보다도 더 자랐을 무렵의 아이일 테고.”
우습게도, 리브는 유성의 과거마저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환생자라는 사실마저 꿰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성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보다도.
당장 눈앞의 불길함을 집중하는 데에 온 정신을 다해야 했다.
저것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유성이 물러선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저건 반드시 다른 누구도 아닌 유성 그가 처리해야만 했으니.
저것은 인류가 가진 그 무엇으로도 죽일 수가 없다.
세상 모든 에너지를 탐욕스럽게 집어삼키기에, 설령 핵을 때려 박는대도 일순간의 약화만이 가능할 뿐 그마저도 잡아먹고 성장하는 생명체의 카테고리에 들어선 지조차 의심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놈을 죽이는 일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유성, 그 자신뿐이었다.
스윽.
리브는 자신의 주위를 지키듯 에워싼 언터처블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
녀석은 마치 그 손길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순한 소음을 흘리며 느리게 리브에게 고개를 비볐다.
전생에서는 그토록 거칠 것 없이 모든 것을 파괴했던 그 괴물이.
지금의 이 시점에서는 자신을 낳아준 리브를 따르고 있었다.
“아마 믿기 어렵겠지만, 이 아이는 날 때부터 완전체 등급이었어. 다른 드라칸들의 등급이 상위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러한 리브의 말에.
여전히 눈앞의 상대에게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은 채로, 유성이 반문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완전체라… 그게 가능한 소리인가?”
그 말에 리브는 웃었다.
“그게 내 또 한 가지의 능력이거든. 난 여왕체이지만, 다른 여왕체들처럼 무리 군체를 양산하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어.”
리브는 여왕체였으나, 동시에 여왕이 아니었다.
자식을 낳지 못하고 군체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은 다수의 무리로서 둥지를 형성하는 드라칸 무리의 습성상 치명적인 결점이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다른 군체 무리를 지배하고 통솔할 수 있는 유례 없던 능력 또한, 모두 그러한 단점들을 메꾸기 위한 무의식적인 습성에서부터 유래된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것도 드라칸이 아닌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서 태어난 반작용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는 거기에 덧붙였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내가 낳은 최초의 자식은 다른 여왕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양질의 기세를 품고 있었어.”
본래라면 드라칸의 여왕체란 건 다수의 군체 무리를 낳기 마련이다.
주변의 마력 자원을 채취하는 일꾼 수준인 저질의 양산체를 낳고, 거기서 좀 더 마력 에너지가 보충되면 그제야 전투체를 낳는다.
후에 보다 성장한 무리 규격 단위에 도달해야지만 상위체를 낳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리브는 그 과정을 모조리 뛰어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결과로.
처음으로 낳은 자식의 시작점이. 무려 완전체 등급이라고 하는, 이제껏 없었던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어쩌면 그것은, 양산체나 전투체를 낳지 않은 대신 그만큼 하나의 자식에 에너지가 집중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례 따위는 없었고, 그것은 리브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건 여왕체가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계승되는 여왕의 기억 속에도 없는 경우였다.
이건 명백한 이레귤러다.
게다가 어쩌면 이건 처음이 아닐지도 몰랐다.
한 번 자식을 낳게 된 이상.
다음에 리브가 또 다른 자식을 낳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새로운 자식 또한 완전체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지금 이상으로 위협적인 터무니없는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은 리브 본인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보지 못한 ‘미래의 영역’ 이었으니까.
리브는 자신과 언터처블을 노려보고 있는 유성을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도 이 아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
고오오오-.
낮은 진동음을 흘리는 기체의 조종석 안에서.
유성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상황을 응시하며 침묵할 뿐이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지만.
유성은 놈을 직면한 순간, 분명하게 직감하고 있었다.
논리도 무엇도 없는 그저 단순한 확신이다.
‘저건 정말로 내가 알던 그것이 맞다.’
놈은 모를 수가 없는 상대였다.
궁극체. 언터처블.
모습도, 체격도, 기세도.
모든 것이 예전 그가 기억하던 당시의 그 끔찍한 시절의 그것보다도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축소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유성은 확신했다.
녀석은 언터처블이 맞았다.
비록 그 크기도, 기세도 모든 것이 이전의 기억 속에 있던 놈보다 훨씬 유약한 수준에 불과하긴 했어도.
그저 녀석은 아직까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릴 뿐인 개체인 것이었다.
드라칸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성장하는 종이다.
마치 인간이 그러하듯이.
놈들 또한 자라면 자랄수록 갑각질이 두터워지고 육체에 살이 차오르며, 나이를 먹는다.
리브의 말처럼, 아직까지 녀석은 실제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녀석에게서는 어리숙한 태가 났다.
실제로 녀석은 주변의 위협스런 적의 등장에 나서서 대응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수 개씩이나 되는 다수의 팔로써 리브를 보호하듯 지켜선 채로 상황을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음습한 기류를 흩뿌리며 검은 안광으로 주변을 훑어보면서도.
동시에 싸우길 꺼리는 듯한 기색 또한 은연중에 묻어나왔다.
‘녀석은 아직 어리다.’
그렇기에-.
유성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여기서, 놈을 반드시 죽여 없앤다.’
키잉!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치켜들었다.
[■■■■?]
태세를 갖추는 유성의 모습이 심상찮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던지, 녀석 언터처블이 눈에 띄게 반응했다.
네 개의 손아귀로 여왕인 리브를 보호하듯 감싼 채로 그 앞을 가리고서 섰다.
[…■■■!!]
쩌억, 벌린 이빨들과 함께 적대감을 내비쳤다.
드러나는 강렬한 기세.
녀석의 갑각질로부터 뻗어 나간 새카만 혈관과도 같은 것들이 마치 날개처럼 퍼져나가며 주변을 넓게 감쌌다.
분명 위협스럽기 짝이 없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유성은 놈이 드러내는 기세를 보면 볼수록.
더더욱 강하게 노려볼 뿐이었다.
‘…역시 녀석을 이 자리에서 살려 보내선 안 돼.’
놈을 내보낼 순 없다.
여기서 끝장내야 했다.
만약 놓쳤다간 틀림없이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말 거다.
잠시간 정체된 듯싶었던 그들의 사이로, 경직된 딱딱한 기류가 퍼져 나갔다.
놈도 알고 있는 거다.
유성이 쉬이 물러설 상대가 아니란 것을 말이다. 그들은 적이라는 관계성에 얽힌 적대자들이었다.
주륵.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 다시 한번 기세를 끌어올리자.
눈가에서부터 물처럼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각성-.”
초장부터 전력을 다하기 위해, 이를 악문 채로 다시금 각성기를 발동하려던 찰나.
그 순간.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유성의 모니터 화면 속 시야에.
삑.
누군가가 껴들며 외쳤다.
[대장!!]
그것은 다름 아닌 빌객스였다.
* * *
지금으로부터 약 수십여 년 전.
현재가 아닌 과거.
“하. 미쳤군.”
고오오오-.
해적 선단의 주인, 빌객스.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
그녀가 바라보는 커다란 모니터 화면의 저편으로는, 익숙한 한 인물이 보였다.
그 상대를 향해, 빌객스는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반문했다.
“넌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순순히 들어줄 거라 생각하는 거냐?”
[…안 될 것도 없을 텐데.]
놀랍도록 태연한 화면 너머, 상대방의 대꾸에.
새카만 안광을 번뜩이며 빌객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개소리 집어치워, 알파!”
그녀의 격한 반발에 화면 속 알파는 말을 이었다.
[내가 널 무리까지 해가면서 이 시대에 데려온 건 전적으로 그 한 수를 위해서였다. 대장의 선택지는 언제나 하나뿐이야. 죽이고, 죽이지. 그게 전부야.]
쾅!
그 말에 빌객스는 앞의 탁자를 쾅 걷어찼다.
“하! 그게 어때서?!”
푹 우그러진 철제 탁자가 튕겨나가 허공을 유영하듯 떠다녔다.
지금 빌객스가 있는 이곳은 중력이라곤 거의 존재치 않는 우주 공간이었다.
“그 역겨운 벌레 새끼들은 모조리 죽여야 돼! 눈에 보이면? 생각할 것도 없이 죄다 쓸어버려야지!”
빌객스의 적개심은 오로지 드라칸에 한했다.
그녀는, 자신이 보던 눈앞에서 모든 가족들을 참살당했다. 드라칸 놈들에 의해서.
빌객스의 격한 감정은 타당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녀를 향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든, 그게 아니라면 욕설을 퍼붓든, 그따위 것은 하등 상관이 없다.
하지만 드라칸은 아니다.
그녀는 놈들이 자신의 앞에 얼쩡거리는 것조차 참아내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혐오주의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런 빌객스의 과거와 성격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저 빌어먹을 알파 녀석은 자신에게 태연한 목소리와 함께 제안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성이 드라칸을 죽일 것을 막아라, 라고.